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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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어야 사는 여자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아무리 죽여도 머리가 뒤틀린 채 살아남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블랙피트족(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자전적인 북아메리카 원주민 이야기와 호러 소설을 주로 써온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Stephen Graham Jones 의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특별한 작품이다.

인디언 리키 보스 립스는 인디언 자치 지구에서 도망을 치다 살해당하는데, 위기의 순간에 그를 기다리며 가로막고 서 있는 건 엘크 무리였다.

또다른 인디언 루이스는 백인 여성 페타와 결혼해서 10년째 결혼 생활을 해오고 있었는데, 살고 있는 집에서 10년 전에 사냥했던 엘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후에 기르던 개 할리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루이스는 10년 전 친구 게이브, 리키, 캐스와 함께 인디언 자치구 내의 연장자 전용 사냥 구역에 몰래 들어가서 엘크 사냥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루이스가 쏜 소총에 맞은 어린 앨크는 등뼈가 부러진데다 머리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는데도 루이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어린 앨크는 임신한 상태로 태아 상태였던 새끼 앨크를 보호하려고 끝까지 저항했던 것이다. 결국 루이스는 원주민 출신 동료 셰이니를 살해하고 아내 페타마저 죽고 나서 경찰이 쏜 총에 살해당한다.

결국 남은 두 친구 게이브와 캐스도 죽음을 맞이하고, 앨크 머리를 한 여자는 게이브의 딸 데노라를 겨냥한다.

"우리 아빠요? 왜죠? 아빠가 뭘 어쨌는데요? 아빠는 당신을 알지조차 못한다고요."

"우리는 10년 전에 만났단다. 네 아빠는 총을 갖고 있었지. 나는 없었고."

"아빠는......, 아빠는 안 그랬."

"그래서는 안 되었지. 하지만 그랬단다."

"그냥, 그냥 저를 보내주면 안 돼요? 이건 당신과 아빠 사이의 문제예요, 안 그래요? 왜 저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죠?"

"너는 네 아빠의 새끼이기 때문이지."

쫓고 쫓기던 데노라와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드디어 마지막 장소에 도착한다.

"뭐지?"

그녀가, 그녀가 그렇게 멀리 왔을 리가 없다, 안 그런가? 여기가 마리아스, 그 대학살 현장이라고? 그 때의 그 뼈가 아직까지 여기 흩어져 있을 리가 없다, 안 그런가?

엘크.

데노라는 머릿속에서 뼛조각을 맞춰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엘크다, 확실하다. 이곳이 그 장소일 리가 없다. 아빠와 친구들이 10년 전 엘크들을 전부 쏴 죽였던 그곳 말이다.

블랙피트에게 일어난 일처럼, 전국의 모든 인디언에게 일어난 일처럼, 비 내리듯 쏟아지는 총알이 야영지 로지(임시거처)의 숨겨진 벽을 뚫고 들어오는 가운데 로지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데노라의 아빠는 그날 총알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쏴서는 안 되었던 엘크 떼를 향해 총을 쏘는 아빠를.

"미안해." 데노라는 자신이 만지고 있는 엘크의 갈비뼈를 만지며 눈을 감는다.

그녀는 피범벅된 무릎으로 미끄러지듯 가서는 자신의 작은 몸을 총과 자신의 아빠를 죽인 엘크 사이에 들이민다. 그리고 그녀는 차가운 공기에 대고또렷이 말한다. 안 돼요, 아빠(새아빠)!안 돼요!

끝났다. 그거면 됐다. 정말로 멈추길 바란다면 여기서 멈출 수 있다. 암컷 앨크는 눈에서 일어나 새끼를 향해 몸을 숙이고 새끼가 뒤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새끼의 얼굴을 핥는다. 그 모습을 끝으로 둘은 자취를 감춘다.

이 작품은 원제목은 <THE ONLY GOOD INDIANS> 다. 백인들이 서부 개척에 방해가 되는 인디언을 잔인하게 소탕할 때, 코만치족의 추장 토와시가 부족원들을 이끌고 투항하면서 "나 토와시, 좋은 인디언"이라고 선처를 호소하자 토벌대의 필립 셰리든 장군이 "내가 본 좋은 인디언은 다 죽어버렸어."라고 대꾸한다. 이 말이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란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원주민 출신 작가는 원주민과 엘크의 관계를 통해서 학살자 백인의 원주민 학살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끼를 잃은 엘크가 죽어가면서도 죽지 못하는 것처럼, 비 내리듯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 학살당한 인디언은 죽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단 앨크와 원주민만 그런 참상을 당했을까?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죽음을 당한 우크라이나 국민들, 80년 광주에서 학살당한 시민들, 4.3 제주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 양민들 등 죽어도 죽지 못하는 원혼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왜 이런 참혹한 일들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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