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엄마
김하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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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되었던 <국화꽃 향기>의 작가 김하인의 <안녕, 엄마>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막내인 김하인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엄마의 고단한 삶이, 힘든 시절을 살아온 우리 시대의 모든 엄마 모습을 보는 듯 했다.

* 엄마는 잠시라도 한가하게 앉아 계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셨지만 언제나 바쁘셨던 기억이 난다. 새벽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셔서 군불을 때시면서 방안도 따뜻하게 하시고, 아침밥도 준비하셨다.

작가의 어머니도 다르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언제나 농투사니('농부'를 낮춰 부르는 사투리)셨다. 고동색 몸빼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엄마는 시커먼 아궁이 앞에서 몽당빗자루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풍로를 돌리며 불을 때고 계셨다. 과일 껍질이 둥둥 떠 있는 구정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돈사로 걸어가 돼지 밥통에 부어 주시거나 아니면 해거름 녘까지 호미를 들고 드넓은 밭두렁을 기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잡초를 뽑고 계셨다.'

* '함창장사'의 아내

함창면민 씨름대회에서 3등으로 송아지를 상품으로 받아온 아버지는 함창장사로 불리었는데, 낮에는 순한 양이었지만 저녁이 되면 주막에서 술을 먹고 들어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셨다. 잠을 자다가도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오면 온 가족이 부리나케 장독대 뒤로 숨곤 했다. 그 순간 장독 밑바닥 가까이 놓여 있는 엄마의 푸른 맨발을 보면서 작가는 눈물을 흘린다. 장농 안에다가 보라색 보자기로 보따리 하나를 싸서 깊숙이 넣어두었다는 엄마의 고달픈 삶이 눈물겹다.

* 엄마의 갱시기(잡탕으로 끓여 낸 죽)

엄마가 해주시던 추어탕과 개떡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음식을 통해서 떠오르기도 한다. 작가의 엄마가 해주던 갱시기에 대한 추억이다.

'엄마는 오른손에 숟가락 하나만 들고 찬장 안에 있는 반찬 그릇을 집히는대로 끄집어낸다. 싸악 싹 비워서 솥 안에다가 마구 떨어넣는다. 썰어 놓은 김치포기, 신 김치며 마늘짱아찌, 먹다 남은 멸치조림, 깜장 콩자반, 씨래기무침, 시들어 빠진 채소 나부랭이며 바짝 말라붙은 파래, 눅눅해진 미역튀각 등등 찬장 안 반찬 그릇 안에 늘러붙어 있는 것들이라면 모조리 긁어서 솥 안에다가 내버리듯이 쏟아붓는다.'

어렸을 적 갱시기를 먹다가 혓바닥을 몇 번이나 데었던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갱시기를 거부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고향 집에 내려가면 엄마에게 간청하듯이 졸라 엄마표 갱시기를 얻어 먹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다.


* 엄마의 눈물

어렸을 적 누에고치에서 풀어내는 잠사(蠶絲)가 주수입원이었던 작가의 엄마는, 잠사 기술을 익히려다가 펄펄 끓는 물에 두 손 전체를 벌겋게 익혀버린다.

'커다란 단풍잎 빛깔의 두 손을 방티(큰대야) 속에 집어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입술만 잘근잘근 짓씹고 있던 엄마가 어느 순간 흑! 하는 소리를 냈다. 참고 참았던 울음을 가늘고 길게 뽑아냈다. 나는 엄마가 울면 진짜로 슬퍼진다. 삽시간에 세상 전체가 컴컴해진다.'

'하늘로 가신 울 엄마, 이제는 평안하셔야 할 텐데, 아직도 세상에 남겨 둔 자식 걱정에 펄펄 끓는 그 뜨거운 모정의 강을 홀로 아득히 건너가고 있는 중이신가......'

* 안녕, 엄마

폐암 말기에 병상에 누운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다시 2인실 병실 침대로 돌아와 눕자마자 검버섯이 손등에 가득 핀 손을 내게로 뻗었다.

'- 마, 막내야! 나, 날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다 데려다 다고......

- 집은 왜? 도대채 시골집에 누가 기다린다고 그렇게 집에 가시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 빈집이야.

- 아녀 아녀. 니 아부지가...... 있짜......나.

아버지는 이미 8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떻게 지금 그 집에 계실 수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감은 눈가에서 가늘게 넘쳐흐르는 눈물 줄기를 한동안 지켜봤다.


아......! 미련하기 짝이 없던 나는 그제야 엄마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우리 아버지도 생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마치는 것을 거부하셨다.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자신이 누워 자던 방에서, 자신이 덮었던 이불을 덮고 잠을 자듯이 영면하길 바라셨다.'

'나는 아버지가 엄마한테 평생 잘해 준 게 없다고 여겼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은신 거다. 머잖아 죽게 된다면 저승에서 남편인 아버지를 제일 먼저, 꼭 다시 만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고개가 꽉 꺽어졌다. 나는 한 손을 내 입을 틀어막았다. 핏덩이 같은 울음이 목젖 밑에서 울컥울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내 두 눈가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넘쳐 나왔다.'

--- <안녕, 엄마>를 읽는 내내 아련한 추억과 함께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엄마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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