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 사냥 -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샘터어린이문고 67
김송순 지음, 한용욱 그림 / 샘터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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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중국 연변의 '정암촌'에서 벌어지는 실감나는 이야기 <백호사냥>을 읽었다. 지금은 동물원에 가야 겨우 호랑이를 볼 수 있는데, 게다가 백호라니 얼마나 귀한 영물일까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정암촌은 장소만 바뀌었지 순사의 서슬퍼런 칼날 아래 각종 수탈을 당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렵게 농사 지은 것을 공출로 빼앗긴 마을 사람들은 용천에서 물을 끌어와서 벼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그래야 빚을 갚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빨리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을에 사는 성호는 정암산 날다람쥐라는 별명처럼 날렵한 소년으로,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한 강 포수를 따라다닌다.

마을 주민들은 정암산에 나타난다는 신령한 백호가 마을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서 물길을 만들고 있는 사이,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간 성호와 강 포수의 딸 미선은 일본 순사의 총에 맞고 쓰러진 아저씨를 구해 숨겨준다. 그 아저씨는 같은 동네에 살던 찬규 형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사에게 쫓기고 있었다.

순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지만, 성호네 가족은 찬규를 몰래 집으로 숨겨와 치료를 해준다. 그리고 강 포수는 일본 순사가 노리는 백호를 잡아주면서, 그 순간을 틈타서 성호에게 찬규 형을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긴다.

마을을 지켜주는 백호가 결국 독립운동을 하는 찬규 형을 탈출시켜주고 희생된 것이다.


마을에 벼동사를 지을 수 있는 물길이 생기고 모심기를 시작했고 단옷날에 다가오면서 정암촌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단옷날 찬규 형의 친구인 현태 형도 독립운동을 하려고 마을을 떠나고, 성호, 미선이와 범국이는 형의 떠나는 모습을 보려고 정암산에 올라갔다가 새끼 백호를 발견한다. 강 포수 말대로 새끼 백호는 산이 잘 키워줄 것이고, 새끼 백호는 자라서 마을을 지켜줄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한다.

- 중국의 충청도 정암촌을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마을로, 1992년 충북대학교 임동철 교수가 비로소 발견한다. 1938년 일본의 거짓선전에 속아 충북 청주, 옥천, 보은, 충주, 괴산의 농가 180여 호가 청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만주 왕청현에 정책해서 터를 잡았다. 그 중 80호가 정착했던 춘방촌 서백림툰을 충주에서 건너간 서홍범씨가 마을에 있는 정자바위의 이름을 따서 '정암촌'으로 바꾸자고 해서 정암촌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다.2000년에는 외교부와 충청북도의 노력으로 정암촌 이주민 1세대 32명이 60여 년 만에 고향인 충청북도를 방문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현재는 100호 정도 되는 마을에 조손 가정이 많다고 한다. 정암촌은 의미 있는 여행을 하려는 한국 관광객이 가끔 찾는 곳이라고 한다.

1920년대 어느 겨울,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의 상황을 만주 야소교(耶蘇敎) 전문학교의 쿡(W. T. Cook) 목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만주에 오는 조선 사람들의 고통은 심지어 그들의 불행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조차 완전히 묘사할 수가 없다. 겨울날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백의를 입은 말 없는 군중은 혹 10여 명, 혹 20여 명, 혹 50여 명씩 떼를 지어서 산비탈을 넘어온다. …… 많은 사람이 식량 부족으로 죽었다. 부인이나 어린아이뿐만 아니고 청년들도 동사했다. 남루한 옷을 입은 여자들은 신체의 대부분을 노출한 채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간다. 그와 같이 업음으로써 조금이라도 체온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다리는 옷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점점 얼어붙어서 나중에는 조그마한 발가락이 맞붙어 버린다. 늙은이들은 굽은 등과 주름살 많은 얼굴로 끝날 줄 모르는 길을 걷다가 나중에는 기진맥진해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한다. 노소강약을 막론하고 그들이 고향을 떠나오는 것은 모두 다 이 모양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파친코의 첫 문장이 생각난다.


#백호사냥 #역사동화 #초등학생추천 #도서추천 #동화책추천 #동화책 #어린이책추천 #샘터 @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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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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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욕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5분만 있어도 5년을 산 듯한 기분이 된다.

- 토머스 울프

데뷔작인 2011년작 《십만국》(The Hundred Thousand Kingdoms)으로 로커스상 데뷔작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2016년작 《다섯 번째 계절》을 시작으로 하는 '무너진 대지' 삼부작으로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전부 수상한 미국의 판타지·SF 소설가 N. K. 제미신 (N. K. Jemisin)의 <우리는 도시가 된다, THE CITY WE BECAME>는 뉴욕에 바치는 작가의 경의의 표시이다.

이 작품은 이제까지 작가가 쓴 모든 판타지 소설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조사가 필요했다고 한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이 사람들아. 뉴욕은 정말 더럽게 크단 말이야. 난 최선을 다했다고.'

뉴욕에 대한 이미지는 '뉴욕타임스' 와 거리의 대형 광고판이 전부인지라, 594쪽의 방대한 분량과 낯선 명칭들로 인해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 나는 도시를 살아간다

- 나는 도시를 노래한다.

- 대도시는 다른 모든 살아 있는 것들처럼 태어나고 성숙하고 노쇠하고 죽어간다.

- 나는 도시를 달린다. 빌어먹을 날마다 달린다.

- 나는 도시를 살아간다. 번창하는 이 도시는 나의 것이다. 이 도시의 훌륭한 화신(化身)인 내가 함께한다면 우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

이런 젠장

뭔가 잘못됐다.

* 이 뉴욕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두 개의 뉴욕은 사실상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한 세상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수십 대의 차량, 그리고 그가 아는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최소한 여섯 개는 있다. 그에 반해 다른 뉴욕은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는 풍경이 마치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재앙이라도 터진 것 같다.

"멋있네." 매니가 중얼거린다. 지금 겪고 있는 발작이 그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인지는 몰라도, 그는 이 이상한 뉴욕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다. 그런 지금 어디론가 가서, 무언가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이 이중의 아름다운 도시는 죽어 소멸해 버릴 것이다.

* 뉴욕, 뉴욕, 거대한 꿈의 도시

- 너무 많아,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아......

- 저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권력도 화려함도 아니라 고작해야 형편없는 일자리와 쥐꼬리만 한 봉급, 페미니스트와 유대인과 성전환 도착자 들과 까아아아암둥이들과 진보주의자들뿐이라는 걸 말이야.

* 최초의 우주엔 도시가 없었다

- 도시는 극악무도 한 거 맞아. 추악하고, 사람도 너무 많고 차도 너무 많지. 범죄자와 변태가 사방에 널려 있고, 그리고 환경에도 아주 나빠."

-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야. 살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것들을 죽여야 하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기에 우리를 위해 희생된 다른 모든 세계들에 감사해야 해. 그들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기에. 우리 세계 사람들은 물론 다른 세계를 위해서라도 아둥바둥 싸워서 살아남아야 하는 거야.

- 엄청나게 많은 다른 생물을 노예로 부린 덕에 네 차에 꿀을 넣어 마실 수 있는 거야.

* 세상 그 어디에도 여기에 비할 곳은 없지

- 유명 레퍼 제이지의 노래 'Empire State Of Mind' 의 가사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위대한 도시들> 2부작 중 1부로 2부는 <우리가 만드는 세계>이다.

우리의 도시 서울은 뉴욕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들에게는 세상 그 어디에도 비할 곳이 없는 도시 서울.

#황금가지 #우리는도시간된다 #N.K.제미신 #박슬라 #서평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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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엄마
김하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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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되었던 <국화꽃 향기>의 작가 김하인의 <안녕, 엄마>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막내인 김하인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엄마의 고단한 삶이, 힘든 시절을 살아온 우리 시대의 모든 엄마 모습을 보는 듯 했다.

* 엄마는 잠시라도 한가하게 앉아 계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셨지만 언제나 바쁘셨던 기억이 난다. 새벽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셔서 군불을 때시면서 방안도 따뜻하게 하시고, 아침밥도 준비하셨다.

작가의 어머니도 다르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언제나 농투사니('농부'를 낮춰 부르는 사투리)셨다. 고동색 몸빼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엄마는 시커먼 아궁이 앞에서 몽당빗자루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풍로를 돌리며 불을 때고 계셨다. 과일 껍질이 둥둥 떠 있는 구정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돈사로 걸어가 돼지 밥통에 부어 주시거나 아니면 해거름 녘까지 호미를 들고 드넓은 밭두렁을 기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잡초를 뽑고 계셨다.'

* '함창장사'의 아내

함창면민 씨름대회에서 3등으로 송아지를 상품으로 받아온 아버지는 함창장사로 불리었는데, 낮에는 순한 양이었지만 저녁이 되면 주막에서 술을 먹고 들어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셨다. 잠을 자다가도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오면 온 가족이 부리나케 장독대 뒤로 숨곤 했다. 그 순간 장독 밑바닥 가까이 놓여 있는 엄마의 푸른 맨발을 보면서 작가는 눈물을 흘린다. 장농 안에다가 보라색 보자기로 보따리 하나를 싸서 깊숙이 넣어두었다는 엄마의 고달픈 삶이 눈물겹다.

* 엄마의 갱시기(잡탕으로 끓여 낸 죽)

엄마가 해주시던 추어탕과 개떡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음식을 통해서 떠오르기도 한다. 작가의 엄마가 해주던 갱시기에 대한 추억이다.

'엄마는 오른손에 숟가락 하나만 들고 찬장 안에 있는 반찬 그릇을 집히는대로 끄집어낸다. 싸악 싹 비워서 솥 안에다가 마구 떨어넣는다. 썰어 놓은 김치포기, 신 김치며 마늘짱아찌, 먹다 남은 멸치조림, 깜장 콩자반, 씨래기무침, 시들어 빠진 채소 나부랭이며 바짝 말라붙은 파래, 눅눅해진 미역튀각 등등 찬장 안 반찬 그릇 안에 늘러붙어 있는 것들이라면 모조리 긁어서 솥 안에다가 내버리듯이 쏟아붓는다.'

어렸을 적 갱시기를 먹다가 혓바닥을 몇 번이나 데었던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갱시기를 거부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고향 집에 내려가면 엄마에게 간청하듯이 졸라 엄마표 갱시기를 얻어 먹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다.


* 엄마의 눈물

어렸을 적 누에고치에서 풀어내는 잠사(蠶絲)가 주수입원이었던 작가의 엄마는, 잠사 기술을 익히려다가 펄펄 끓는 물에 두 손 전체를 벌겋게 익혀버린다.

'커다란 단풍잎 빛깔의 두 손을 방티(큰대야) 속에 집어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입술만 잘근잘근 짓씹고 있던 엄마가 어느 순간 흑! 하는 소리를 냈다. 참고 참았던 울음을 가늘고 길게 뽑아냈다. 나는 엄마가 울면 진짜로 슬퍼진다. 삽시간에 세상 전체가 컴컴해진다.'

'하늘로 가신 울 엄마, 이제는 평안하셔야 할 텐데, 아직도 세상에 남겨 둔 자식 걱정에 펄펄 끓는 그 뜨거운 모정의 강을 홀로 아득히 건너가고 있는 중이신가......'

* 안녕, 엄마

폐암 말기에 병상에 누운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다시 2인실 병실 침대로 돌아와 눕자마자 검버섯이 손등에 가득 핀 손을 내게로 뻗었다.

'- 마, 막내야! 나, 날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다 데려다 다고......

- 집은 왜? 도대채 시골집에 누가 기다린다고 그렇게 집에 가시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 빈집이야.

- 아녀 아녀. 니 아부지가...... 있짜......나.

아버지는 이미 8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떻게 지금 그 집에 계실 수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감은 눈가에서 가늘게 넘쳐흐르는 눈물 줄기를 한동안 지켜봤다.


아......! 미련하기 짝이 없던 나는 그제야 엄마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우리 아버지도 생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마치는 것을 거부하셨다.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자신이 누워 자던 방에서, 자신이 덮었던 이불을 덮고 잠을 자듯이 영면하길 바라셨다.'

'나는 아버지가 엄마한테 평생 잘해 준 게 없다고 여겼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은신 거다. 머잖아 죽게 된다면 저승에서 남편인 아버지를 제일 먼저, 꼭 다시 만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고개가 꽉 꺽어졌다. 나는 한 손을 내 입을 틀어막았다. 핏덩이 같은 울음이 목젖 밑에서 울컥울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내 두 눈가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넘쳐 나왔다.'

--- <안녕, 엄마>를 읽는 내내 아련한 추억과 함께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엄마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안녕엄마 #김하인에세이 #국화꽃향기 #에세이추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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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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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는 MORE고 毛漁다.

나는 나를 남성이나 여성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있고 없고

그저 인간이다

"나는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누구든 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길 원치 않는다.

나는 그저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다.

나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싶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발레를 전공했던 모지민 작가의 에세이집 <털난 물고기 모어>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쓴 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일까 거칠고 적나라하다. 황인찬 시인은 그런 모지민 작가의 글을 자신이 본 글 중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글쓰기라고 표현한다.

* 나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아름다움

'어미 배 속에서부터 구더기를 씹어 먹고 세상이 규정한 성에서 조금 다른 색을 가지고 나온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기징역형 불행이었다. 유년기는 치욕으로 얼룩져 있다.'

어려서부터 춤추기를 좋아하고 머리에 무언가를 뒤집어쓰는 걸 좋아했던 작가는 두꺼운 철로 된 세숫대야 받침대에 머리를 간신히 집어넣었다가, 아빠와 여러 사람들이 톱으로 쇳덩어리를 썰어서 겨우 빠져나온 경험담도 남다르다.

'느그 아들은 참말로 희한하다. 저걸 뭔 염병한다고 뒤집어썼을끄나."

"그랑께야 저것이 커서 뭐가 될랑가 모르겄다." 그러나 아빠는 '너는 왜 다른 모시마들처럼 굴지 않느냐'고 단 한 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는, "나는 우리 지민이가 암시렇지도 않은디, 왜 사람들은 가시내냐 모시매냐 하는지 모르겠씨야."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움과

내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왜 다른지 생각해보았다.

* 드래그 아티스트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모지민 작가는 한예종 무용원 발레 전공 출신으로, 2000년에는 이태원 트랜스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드래그퀸(스커트, 하이힐, 화장 등 옷차림이나 행동을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이 되었다.

'처음으로 힐과 가발을 썼다. 이것이 내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겠지.'


2019년 6월 뉴욕에서 열리는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에 초대받아 뉴욕 전위예술의 메카 라 마마 실험극장 무대에서 공연했다.


2020년 여름, 살다 살다 처음으로 대낮에 누워보았다

편하고 좋았고

하루 종일 빈둥거려도 세상은 무사했다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척

외롭지 않은 척해 보았다

그런 허세도 있는 법


* 낮은 곳에서 힐을 신고 높은 곳에서 토슈즈를 신고

저는 무대에서 아주 잠시 번쩍거리기 위해 버티는 것 같아요. '쟁이'로 사는 건 웃기고 슬프고 고단해요. 또 어떤 순간은 숨 막히게 아름다워서 구름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쩌겠어요. 이번 생이 이 팔자라면 그 개 같은 운명에 백기를 들고 순리로서 살아가야지요.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고 처량하다 생각이 들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요.


2017년 5월 24일 시베리아가 고향인 남편 줴나(예브게니 슈테판)과 결혼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 모지민 작가는 23년째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삶은 다큐멘터리 '모어'로 제작되어 6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세상이 규정한 성과 다른 색을 가지고 태어난 모어의 아름답고 끼스러운 삶이

찬란하게 빛나기를!


#모어 #털난물고기모어 #모지민 #드래그퀸 #드렉퀸 #은행나무출판사 #책추천 #책 #끼 #그런날도있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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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헨치 1~2 - 전2권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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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이 마음을 움직인다.

'이 책을 자이루스에게 바칩니다.

천국에 가서도 당신 손은 알아볼 수 있어.'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헨치>의 작가 나탈리 지나 월쇼츠Natalie Zina Walschots는 '슈퍼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처럼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관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들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는데,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삼국지를 읽으면서 관우와 장비가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와 장팔사모(丈八蛇矛)를 휘두르면서 적군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는 장면을 읽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징집되었다가 어이 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의 운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빌런(악당, villain )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헨치(악당의 편에 서서 온갖 잡일을 하는 프리랜서, HENCH) 애나는 자신의 보스 E가 시장의 아들 제레미를 납치해서 협박하는 기자 회견장에서 들러리를 섰다가, 때마침 나타난 슈퍼영웅 슈퍼콜라이더에 의해 공중에 들렸다가 심각한 다리 골절을 입게 된다. 꼼짝할 수 없이 친구 준의 집에 혼자 있게 된 애나는 슈퍼히어로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사례를 분석해서 '부상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날 기자 회견장에 머무른 짧은 시간 동안 슈퍼 히어로는 우리 모두에ㅐ게서 도합 152년의 수명을 앗아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리 거지 같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시간이다. 스스로가 정의의 심판이며 악의 처단자라고 믿는, 망토 두른 개자식 한 명 때문에 우리의 시간이 송두리째 빼앗겨서는 안 된다.'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가며 마련한 건물을 히어로들이 아무 생각 없이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돌무더기로 전락했다는 사연'

'자신이 일으킨 인적 피해와 물적 피해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끊임없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히어로들의 기만성, 그리고 내가 가장 증오하는 슈퍼콜라이더. 그는 내 삶을 위태롭고 삭막하게 만든 재앙 그 자체였다.'

결국 애나는 '부상 보고서'를 눈여겨본 슈퍼 악당 레비아탄의 최측근이 되어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렇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이듯이 슈퍼악당의 최측근이 된 애나는 절친한 친구 준과 이별하게 된다.

"사람들은 위험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까 봐 두려워해. 알잖아, 폭력이 전명되다는 사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히어로들이나 그 조수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두려울 것 같지 않아?"

"왜죠?"

"우리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야."

나는 숨이 턱 막힌 듯한 소리를 냈다.


애나는 슈퍼히어로를 직접 상대하기 보다는 슈퍼히어로 주변의 취약한 점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공격을 전개한다.

슈퍼히어로 슈퍼콜라이더와 슈퍼악당 레비아탄의 대결, 슈퍼콜라이더와 그의 아내 퀀텀의 결별, 그리고 슈퍼콜라이더의 스승 닥터가 등장하여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은 흡사 서양판 무협지를 읽는 것 같이 흥미진진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계를 위해 악당 기지에서 일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겠지만, 악당을 물리친다고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사람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슈퍼히어로의 정당성 또한 의심스럽다.

악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악을 처단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저지르는

파괴와 살상 또한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작가의 관점에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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