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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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원숭이>는 우리 인류에 대한 동물학적 보고서이다. 하나의 동물이라면 허약하고 나약한 존재임에도 모든 만물의 위대한 지배자가 된 인간의 입지전적 위치를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이 아닌 순수한 동물학 관점에서 다루었다.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뒤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부터 이 책이 나온 해인 1967년까지 런던동물원의 포유류 관장을 지냈으며, 단 4주 만에 저술한 이 책은 2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1,0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50주년 기념판으로 나오면서 한국어판에는 우리나라 진화생물학자로 알려진 최재천 석좌교수와의 두 차례에 걸친 이메일 대담까지 실려 있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이나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까지 대부분의 인간 진화와 관련된 대중과학 저술서의 고전으로 털없는 원숭이가 이미 앞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게다가 모리스는 화가로서의 활동도 왕성하여, 그의 학문적 연구 저술활동과 나란히 이어져 개인전만 60회나 열고 그의 작품이 이기적 유전자의 표지가 된 사실은 그의 넘치는 예술적 재능을 그의 저서에서도 고스란히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다만 그가 그토록 관심을 갖고 평생에 걸쳐 연구해온 다른 동물종의 수준으로 인간이란 동물을 강의수준이 아니라 수다로서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고 소박하게 소감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너무도 뜨거웠다. 학자들은 초판에서 색인목록과 참고문헌이 빠졌다고 지적했고, 종교계는 인간을 모독한다는 주장을 하며 공격을 했다. 다른 진영에서는 동물학자가 사회학, 인류학 등 관련 없는 전문분야에 끼어들었다고 했다.


금기와 통제속에 가려진 성행위에 대한 노골적인 단어와 직접적 표현이 걸림돌이 되어 판매금지에 몰수, 불태워짐도 있었다지만, 대다수의 사회에서 일부다처제가 사라진 이유나 동성연애와 변태, 자위에 대한 인류사적 설명과 합리적 이해심, 해결 가능 입장들까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오늘날의 인류는 성적으로 가장 복잡한 털없는 원숭이다. 인류는 강한 성욕과 잦가지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으며, 한 쌍의 암수관계를 이루는 동물이다. 인간은 조상인 영장류에게서 물려받은 유산과 육식동물의 갖가지 특성들이 복잡하게 뒤썩인 동물이다.”


“ 현대 도시생활의 그럴듯한 이름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사냥하는’ 원숭이는 ‘일하는’ 원숭이로, ‘사냥터’는 ‘회사’로, ‘소굴’은 ‘가정’으로, ‘한 쌍의 암수관계’는 ‘결혼’으로, ‘짝’은 ‘아내’로 바뀌었지만, 본질은 똑같다.”


새와 털있는 동물들의 손질 습관을 우리 인간들의 몸손질과 대비하여 설명해낸 오늘날의 말의 발달과 애완견 사랑으로 이어지는 상황지배의 논리는 극적이기까지 하다.


“ 유인원에게는 입맛 다시기에서 서로의 털 손질로 우호적 관계가 강화되지만, 미소로는 무엇이 강화해줄까? 최초의 접촉이 시작된 이후에도 좀더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영장류의 털손질 같은 활동을 차용하여 다른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잠깐만 관찰해보면, 톨손질의 대용품은 말의 형태를 가진 발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몸손질 말하기는 칵테일 파티나 사교적 만남에서 볼 수 있는 무의미하고 정중한 잡담을 말한다. 날씨가 좋군요 라든가 최근에 무슨 책을 읽으셨습니까 같은 형태의 말하기가 여기에 속한다. 이 말하기의 기능으로 사회적 연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애완동물은 월씬 더 유혹적이어서 고양이털을 쓰다듬어 주거나 개의 이마를 긁어주고 싶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털없는 원숭이는 거의 없다. 애완동물의 털가죽은 우리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털손질 충동을 발산할 수 있는 배출구로서 더 중요하다.”


가벼운 사적대화가 동물들의 털손질을 본뜬 인간의 몸손질 말하기로 바뀌어 인간의 사회성을 드높이는 좋은 수단이 된다는 표현이 매우 그럴듯하다.

얼핏 생각하기에 인간의 동물성 속성을 드러냄으로 인간을 속물로 전락시킬 수 있으나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통해 반전의 묘미를 느끼면서 성찰의 입장에 서게 된다.


#털없는원숭이 #데즈먼드모리스 #문예춘추사 #내꿈소생카페 #내꿈소생서평단


* 내꿈소생 카페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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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 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힘이 되는 그림책 심리상담
김영아 지음, 달콩(서은숙) 그림 / 마음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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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5일 만에 갖게 된 안면기형과 열두 살 때 기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열두 시간에 걸치 대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김영아 작가의 <마음을 안아준다는 것>은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차마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말을 들었을 때, 독서치유상담가인 작가는 말로 위로하는 대신 그림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받은 멸시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암시하는 여교사의 이야기를 들은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정도로 죽는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 하나도 없겠네?' 누군가는 이렇게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은 바로 이런 것으로 죽는다. 남은 알 수 없는 것, 남은 이해해 주지 않는 것 때문에 죽는다. 유명 여배우가 자살하고 개그우먼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과 똑같은 잣대이기도 하다. 허무는 별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허무다.

작가는 서아프리카 가나 작가 제임스 애그레이의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그림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험상궃게 생긴 남자가 숲속에서 독수리를 잡아서 닭과 오리와 함께 키우면서 독수리는 닭으로 길러졌다. 어느 날 그곳에 들른 동물학자는 독수리를 날게 하려고 하지만 독소리는 닭의 세계로 돌아가 버리는데, 동물학자는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태양을 응시하도록 하면서 독수리의 정체성을 찾아준다는 내용이다. 그 책을 통해 감명을 받은 여교사는 삶의 의미를 되찾기 시작한다.

'그녀가 그림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과 기쁨은 한 마디로 자기 안에서 꽃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 <아름다운 실수>

남다른 스펙에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승진에서 탈락한 경험을 하면서 '삶 전체가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직장인에게는 미국의 그림작가 코리나 루이켄의 <아름다운 실수> 그림책을 권한다.

'처음엔 실수라고 낙인찍고 바라봤던 '점'! 그것이 나중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전환되는지, 큰 그림으로 확대된 그곳에서 내가 무턱대고 '실수'라고 치부했던 점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라고 했다.

'다행이다. 혹여 처음 시작을 잘못이라고 단정 지어 포기하고는 도화지를 구겨서 버리는 일이 종국에는 이 아름다운 그림을 마주할 기회조차 빼앗는 것임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 <우리가 잠든 사이에>

어렸을 적 희망 없는 가족의 삶을 떠나 27년간 연락을 안하고 살다가, 우연히 서류를 발급하다가 부모님의 사망사실을 알게 된 후, 극심한 혼란에 빠진 동백님에게 권한 영국 작가 믹 잭슨의 <우리가 잠든 사이에> 그림책은, 반복되는 누군가의 움직임과 그럼 움직임이 연대하고 연결되어 우리를 살 수 있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문제를 확대해서 전체를 부정해버리는 오류를 벗어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동백님에게는 중요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살았던 스무 살부터의 삶이 잘못되었고 의미 없었다고 하기에는 동백 님 '때문에' 귀한 학창 시절을 보낸 제자들이 있고 또 동료들이 있다. 그들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부모님께 인사하러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말하는 내게 그녀는 담백하게 웃으며 말한다.

"독하게" 마음먹고 고향 땅에 한번 가보려고요."

---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가슴 깊이 묻어 놓고 살아가는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의 가족으로 인해 받는 상처는 평생의 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내 마음을 안아주는 그림책이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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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 미스터리 - 어른들을 위한 엽기적이고 잔혹한 전래 미스터리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홍정기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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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추리문학상 신인상 수상작가인 닉네임 '엽기부족' 홍정기 작가의 전래 미스터리는 전래동화를 통해서 무한 엽기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원전 전래동화의 엽기적 잔혹성에 미스터리를 접목한 작가의 도발성이 놀랍다 못해 오싹하다. 일본과 대만 등에서도 나온 바 있으나, 한국의 전래동화 미스터리는 시도된 바가 없다고 한다. 다만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현대의 상황과 접목하거나 호러물로 공포화시킨 드라마 시리즈를 본듯하다. 드라마는 보통 사랑을 중간다리로 하여 미화되고 카타르시스적 눈물을 자아내나, 책에서 글로 보는 것은 상상 때문인지 보다 더 충격으로 다가온다.

* 콩쥐 살인사건

콩쥐를 죽이려다 미수에 그치고 종아리가 잘리니, 그것만으로도 섬뜩한데,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신으려다 의붓언니들이 발 앞뒤를 잘라냈다는 엽기적 서양동화의 원전처럼, 팥쥐가 자발적으로 미끼에 접근한다.

* 나무꾼의 대위기

선녀와 나무꾼 패러디. 거기에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속 산신령도 등장하지만, 이 신비로워 할 노인과 나무꾼은 우리가 익히 아는 성품의 소유자들은 이미 아니다. 15세 관람 불가 성인 동화다. 나무꾼은 왜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일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무서운 이야기로 전개되다니 흥미롭다.

* 살인귀와 식인귀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이 해와 달이니,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따온 이야기 같은데, 완전 다르다. 여기에 떡 팔러 먼 길 떠나 나타나지 않는 엄마는 호랑이에게 먹혔다는 옛이야기를 조금 섞었는데, 살인귀와 식인귀가 마주치니 누가 이길까. 둘의 아수라장 싸움결과가 두렵기만하다.

* 연쇄 도살마

밤마다 참기름을 바르고 가축의 생간을 먹던 여우 누이라는 동화에서 착상하여, 이야기는 늑대소년을 섞으며, 생각하지 못한 반전을 이끌어낸다. 집안에서 밤마다 닭과 소가 죽어나가는데 막내 예쁘장한 여동생 미호는 고기까지 좋아한다. 알 수 없는 섬뜩한 전개, 세 아들의 거동도 수상하다. 의문의 죽음과 사라짐은 왜일까.

* 스위치

혹부리 영감이 혹을 바꾸듯, 파란 눈의 백정 아들은 뜻밖에 뭐든 스위치가 가능한 능력을 얻지만 제대로 쓸 줄은 모르고, 하나하나 실험하며 배워 나가지만 잘은 모른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능력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잘 쓸 수 있을까. 거액의 복권이 당첨되었을 때 그 돈을 제대로 못 쓰고 탕진하듯 인생 전체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처럼 그러한 능력의 소유는, 결국 모든 것을 갖고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돌고 돌아 깨닫게 한다. 좋은 능력 앞에서도 이야기 전개는 섬뜩하고, 조금은 철학적 성찰을 주는 듯 색다르다.

작가는 전래동화에 엽기적 미스터리를 담아 글을 쓰자니, 그 이야기의 비약적 발전 가능성에 너무나 행복했다고 한다. 한 제목에 하나의 전래동화만이 담겨있지 않고, 어느 틈에 미처 알아채지 못한 여러 이야기가 혼합되어 있다. 이제 문학적 창의성은 전혀 새로운 시나리오의 탄생을 말하는 것에서, 알던 것을 조합하여 미끄러지듯 타고 넘어가는 파도타기 방식의 이야기 전개같이 소재를 적소에 배치하는 기교적 성과를 말하는 것 같다. 잔혹함을 성장통으로 이해하고 싶다.


매운 엽기 떡볶이와 함께 <전래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엽기부족' 홍정기 작가의 다음 작품이 보여줄 놀라운 무제한 엽기 상상력의 세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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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억 - 천의 제국을 만들다
서종식 지음 / 메이킹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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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골프장 등 레저업계에서 직장 생활을 한 서종식 작가는 <1527억>에서 조직 폭력, 살인, 사랑, 배신 등 거액의 돈을 둘러싼 인간의 적나라한 내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 조직 폭력배에서 천억 대 골프장 사장으로 변신

조직 폭력배의 밑바닥 인생에서 1,527억 명문 골프 클럽의 주인이 된 천두만과 그의 부하 박기대 그리고 골프장을 접수하려는 코스관리 용역회사를 가장한 신연신내파의 도전이 흥미롭다.

* 골프장을 접수하려는 또 다른 조직 폭력배

박광수는 신연신내파의 용역회사 직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정확하게 읽어주겠다. 그 종이에 적혀있는 숫자는 천오백이십칠억이다.” 대원들은 조용했다. 그들은 그 숫자의 의미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숫자의 의미를 설명하겠다. 천오백이십칠억원이란 일 년에 일억 원씩 1,527년간 쓸 수 있는 돈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의 51대 후손들까지 매년 일억 원씩 써도 된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가 접수하러 가는 골프장을 돈으로 평가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 1,527억 원을 손에 쥘 것이다!


감정평가액 1,527억 원의 골프장은 주인공 천두만이가 뒷골목 시절에 그의 오른팔을 잃어가면서까지 지켜준 평생의 부하, 박기대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일궈온 것인데 정말 새 발의 피 같은 골프장 용역회사를 가장한 조직 폭력배에서 접수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결국 골프장을 지키기 위해 2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초로의 천두만과 박기대는 격전의 한판을 위해 수십 명의 깡패들을 물리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다시 젊은 시절의 몸을 만들기 위해 몇 달을 보낸다.


오늘날 거부의 꿈을 이룬 60대 후반대의 자화상이라 할 천두만은, 동네 부자의 일을 봐주고 음식을 얻어오던 어머니와 오랜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비를 둔 보잘것없는 가족력에 팔 하나를 잃고 막을 내린 조폭인생이었다. 술주정뱅이를 거쳐 지난날 오직 돈이 생기는 대로 사 모은 땅 덕분에 신분이 급상승하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거액의 골프장 사장이 되지만 풍요 속에 무너지는 본성과 재혼에 따른 2세들의 얽힘 등이 복잡하게 얽혀들어간다.

* 충복 박기대의 배신

골프장 조성과 지분 다툼 속에서 그를 맹 추종하는 박기대에 의해 그의 동업자이자 옛 친구는 물론 재혼한 부인까지 살해되고, 암묵적 ‘형님’으로서의 묵인, 이어지는 진실 추격전, 스토리는 거의 400페이지에 육박함에도 아름다운 골프장 전경묘사와 의문의 만년필, 4색각자인 딸 그림 등을 중간중간 소품처럼 서술하는 방식을 통해 끝까지 궁금함을 가지고 읽게 만드는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팔 하나가 없는 술주정뱅이가 천억 대 자산가가 되는데 어찌 행운이 없었을까. 그 핵심에 충복 박기대가 있다. 그러나 천두만의 죽음에는 회유당한 충복 박기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순간, 박기대가 퍼뜩 제정신을 차렸다.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형님’은 그의 본성을 강력하게 일깨웠던 것이다. 뒤늦은 본성의 각성

“나는, 네가...네 등 뒤에 ...있을 때가, 제일...좋았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형님’의 등을 고의적으로 잠시 비웠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다는 듯이 ‘형님’은 아프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 상상을 초월하는 돈의 유혹

무일푼 조직폭력배에서 1,527억의 자산가가 되기까지 천두만은 친구를 살해하고 재혼한 아내를 살해한 부하의 살인을 묵인했다. 충복 박기대는 자신을 위해 한 팔을 잃은 두목 천두만을 위해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았지만 1,527억이라는 돈의 유혹에 흔들려 천두만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했다. 골프장 코스관리 용역회사를 가장한 조직 폭력배의 욕망은 말할 것도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상상을 초월하는 돈의 유혹은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배신의 유혹이기도 한 것 같다. 냉정하게 말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의 유혹에는 대부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상상할 수 있는 돈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쯤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메이킹북스 #1527억 #서중식소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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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일본 정독 - 국뽕과 친일, 혐오를 뺀 냉정한 일본 읽기
이창민 지음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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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평생 풀지 못할 숙제를 안겨주는 두 나라가 있다면 일본과 북한이 아닐까? 마냥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뜻 받아들일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반일과 친일 사이를, 그리고 반북과 친북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일본 도쿄공업대학교 사회공학과(현재 경영공학계) 교수로 근무한 이창민 한국외국어 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의 <지금 다시, 일본 정독>은 경제적 관점에서 국뽕과 친일, 혐오를 뺀 냉정한 일본의 읽기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 가깝고도 먼 나라

한 때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 일본에 관한 책이 유행했지만, 여전히 일본은 우리나라와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에 속한다.

* 일본의 저력 종합상사와 시니세(노포)

무역 중개가 본업이지만 필요하면 제당업이든 선물 거래든 가리지 않고 비즈니스를 확장해 간 20세기 초의 상사들, 결국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세상에 없던 그 무언가를 만들어 냈던 창조적인 상인혼이 바로 일본 경제가 가지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세계에서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이 가장 많은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그 숫자는 2019년 기준 무려 33,076개이며 창업한 지 200년이 넘은 기업도 1,340개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4대에 걸쳐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1896년 창업)이 가장 오래된 기업인데, 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서기 578년에 창업한 곤고구미는 무려 1,400년 동안 지속된,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진 노몬한 전투

러일전쟁(1904-1905년)에서 총검 백병전으로 승리한 일본은 총검 백병전을 최선의 전투방식으로 운용하였고, 1939년 최신식 소련군 전차로 무장한 소련과 맞붙은 일본은 여전히 총검 백병전으로 맞선다. 노몬한 전투는 '최신식 소련군 전차를 향해 화염병과 삽을 들고 달려든 일본군'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처절한 패배 뒤에도 일본군의 과거의 전투 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소련군보다 더 강한 병력과 화력을 자랑하는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도 일본군은 수십 년간 연마해온 총검 백병전을 고집하였다.

* 아무도 No라고 말할 수 없었던 임팔 전투

버마를 식민지로 정복했지만 임팔을 해발 2,000미터급의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접근하려면 100km 이상의 지옥 행군이 필요했는데, 독불장군 무타구치 렌야 사령관은 인도 진공론을 내세우며 무모한 도전을 선언한다. 결과는 전사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이 나온 참혹한 패배였다. 2015년 도시바의 분식 회계 사건과 2016년 미쓰비시자동차의 연비 실험 테이터 조작 사건에서도 No라고 말할 수 없는 경직된 조직 문화와 인적 네트워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인적 문화의 폐혜가 그대로 드러났다.

* 장기불황의 늪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 나라가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50년, 100년이 걸려도 쉽지 않을 것이다.'는 말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다.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일본은 좀처럼 헤어나기 힘들 정도의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반면, 우리나라는 2018년 세계에서 7번째로 30-50 클럽에 가입했다. 2021년 7월 국제 연합 무역 개발 협회(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기준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다. 일본에는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글로벌 중소기업이 일본 전체 기업의 99.7%, 고용의 68.8%, 부가 가치액의 52.9%를 차지하면서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완벽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 세계를 주름잡았던 일본 경제는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 전차를 상대로 총검 백병전으로 맞섰고, No라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와 인적 네트워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조직문화로 인해 그동안의 성공이 실패를 만드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 지금 다시, 일본 정독

한류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일본의 사례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일본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가깝고도 너무 먼 일본을 철저히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퇴(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 친일, 반일, 그리고 극일을 넘어선 일본과의 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일본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무시하기도 상대하기도 만만치 않은 거대한 산이다.

#더숲출판사 #지금다시일본정독 #이창민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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