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삼촌 -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연쇄살인범
김남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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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 부문 청년작가상을 수상한 김남윤 작가의 <철수 삼촌>을 읽으면서, 미국에서 가장 학비가 비싼 대학인 LA의 하비 머디 칼리지는 1인당 연간 학비가 1억 100만원이라는 최근 뉴스가 떠올랐다.

*기러기 형사 두일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한 중견 형사 두일은 아내와 자녀 둘을 캐나다로 보내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기러기 형사다. 하지만 형사 월급만으로 자녀들의 유학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다. 공무원 대출에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받았지만, 결국 사채업체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그리고는 정해진 수순처럼 사채업 사장 춘식이 경찰서까지 찾아오는 위기일발의 상황에 처한다.

야밤의 공터에서 춘식과 만난 두일은 아파트를 압류한다는 춘식의 최후통첩에 실랑이를 벌이다가 춘식을 밀치고 만다.

'춘식이 밀쳐지며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퍽!'

* 자칭 연쇄살인범 철수

"어지간히 급하셨나 봐요? 제 흉내를 다 내시고? 경찰이라도 살인을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겠죠?"

"진짜 사고였어!"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고!"

"그쪽 집에서 살고 싶어요. 실은 제가 다른 곳에서 사고를 쳐서 지금 경찰에 쫓기고 있거든요. 그래서 당분간 짱박혀서 눈 피할 곳이 필요한데, 경찰 집이면 딱 아니겠어요? 등잔 밑이 어둡다잖아요. 어느 쪽이 이득일지 잘 생각해보세요. 집의 방 한 칸만 내주고 말지, 통째로 사채업자에게 넘길지, 필요하면 콩밥 서비스도 드릴 수 있어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두일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자칭 연쇄살인범 철수와의 기막힌 동거가 시작되었다. 어리숙한 형사 두일에 비해 철수는 범죄학과 관련 전공서적을 탐독하는 프로였다. 철수가 집에 들어왔을 때 안방에 자물쇠를 설치하면서 경계하던 두일은 어느 새 사건해결에 철수의 도움을 받기까지 한다. 형사와 연쇄살인범이 적에서 동지로 변하는 건지 관계가 심히 의심스럽다.

* 의문의 노인 국환

철수가 밤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숨어서 뒤쫓던 두일은 철수가 다녀간 주택의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던 노인을 풀어준다. 그 순간 두일은 연쇄살인범 관련 자료를 검토했던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조언이 떠오른다. '조심하세요, 형사님. 이 인물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 철수 삼촌

형사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사채업자에게까지 손을 내밀었다가 불의의 사고까지 저지르게 되고, 외국 유학을 떠난 가족은 그 가족대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일시 귀국해서 철수를 만난 아이들은 철수를 삼촌이라고 따르면서 두일을 불안하게 한다.

연쇄살인범에게 인질로 잡힌 두일의 아들 민기는 상당히 침착했다.

"넌 내가 무섭지도 않아?"

"그러는 아저씨는요?"

"뭐?"

"아저씬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

"아저씨 자신이요."

"이 악마 같은 새끼! 죽여버릴 거야!"

울분에 찬 철수가 소리를 질렀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007년 25년으로 늘어났다가 2015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 수많은 미제 사건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고통과 범죄를 저지르고 법의 수사망을 피했지만 양심의 법정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을 가해자들의 고통을 비교할 수 있을까?

#북스타그램 #소설 #소설추천 #스릴러소설 #철수삼촌 #김남윤 #팩토리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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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의 거짓말
엘리자베스 케이 지음, 김산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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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케이의 데뷔작인 심리스릴러 <일곱 번의 거짓말>은 20년을 함께 지내온 마니가 남자 친구 찰스에 대해서 "우리 정말 천생연분인 것 같지 않니?"라고 제인에게 물었을 때 시작한다.

"응." 내가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

이것이 내가 마니에게 한 첫 번째 거짓말이었다.

우리 영화 올가미에서 시어머니는 연인처럼 지내던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집착과 광기를 드러낸다. 지금은 시집살이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예전에는 시집살이가 고추보다 맵다는 말도 있었다.

제인은 절친 마니에게 연인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다. 그런 마니에게 다른 사랑의 대상이 생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솔직했더라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우리 사랑을 희생했더라면, 찰스는 분명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올가미에서 집을 나가려던 아들을 말리려고 자해소동을 벌이다 끝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처럼, 제인의 광기는 늘어나는 거짓말과 함께 점점 심해진다. 올가미에서 아들에게 집착했던 것처럼, 제인도 마니가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더욱 집착하기 시작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인의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남편 조너선의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종말을 고하게 된다. 올가미에서 시어머니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더라면 그토록 집요하게 아들에게 집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제인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계속했더라면 마니와의 관계도 훨씬 자연스러웠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마니는 나의 두 번째 위대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제 난 그녀마저 잃은 느낌이다.'

남편을 잃고 더욱 마니에게 집착하게 된 제인은 자신을 향한 마음을 멀어지게 하는 마니 주변의 모든 것이 증오의 대상이 된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랑하는 것을 증오하는 심리는 어떤 것일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을 미워하고 그런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제인의 사랑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정답은 뻔해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스토킹을 저지르는 경우도 심각하지만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사랑하는 상대방과 그 주변 사람들을 해치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분명 사랑이 아닌 것 같은데, 피해자는 좋아하고 사랑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연인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집착이고 광기가 아닐까.

'어린 소녀일 때부터 알아온 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기까지 지켜본다는 건, 아름답기도 하면서 무척 이상야릇했다. 그 성장의 단계마다 나는 그녀를 보호했다. 맨 처음에는 부모로부터, 그 다음에는 남자친구로부터, 그 다음에는 상사로부터. 마지막으로 경멸스러운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늘, 심지어 지금도, 진실로부터.'

제인의 입장에서는 올가미에 등장하는 시어머니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결국 서로를 파멸에 이르는 것은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마치 모래알을 손에 움켜쥐려고 하면 할수록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랑도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지기만 한다.

'아버지는 늘 내게, 언젠가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조금 덜 상대를 사랑하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곤 했다. 그게 나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이제 와서 그러기는 너무 늦었다.'

사랑하는 마니을 차지하기 위해서 마니가 사랑하는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증오하는 제인과, 그런 제인으로부터 마지막 남은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려는 마니의 보이지 않는 심리전. 이미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문제 생기면 바로 전화해." 마니가 복도 끝으로 멀어지며 소리쳤었다.

"알았어." 내가 외쳤다. 문이 탁 닫혔다.

그게 나의 일곱 번째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소유냐 존재냐라는 관점에서 제인은 소유에 속하는 유형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부터 멀어지려 하면,

분노하지 않고 상대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

마니의 사랑을 빼앗은 제인의 거짓말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태복음 18장 21절-22절)

마니가 제인을 용서했다면, 그건 아마 여덟 번째 거짓말일 것이다.

#문학동네 #일곱번의거짓말 #엘리자베스케이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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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레이스의 비밀 - 그녀가 사라진 밤
리사 주얼 지음, 이경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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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심리 스릴러 소설의 대가 리사 주얼의 역작 <다크 플레이스의 비밀>을 다 읽고 나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더해졌다. 다 읽고 나니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노아를 갖게 된 탈룰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낯선 일이 아니다. 한동안 헤어졌다가 탈룰라의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아이 노아와 탈룰라를 책임지려는 잭의 존재가 부담스럽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어느 금요일 저녁 둘이서 어마 킴에게 아이를 맡기고 '밤 데이트'를 나간 탈룰라와 잭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를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노아는 별일 없죠?'라고 문자를 보냈던 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애매한 커플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는 다크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오래된 고택이다. 그 고택에는 다크 플레이스라는 명칭과 기묘하게 어울리는 탈룰라의 또 다른 동성 연인 스칼렛이 살고 있다.

탈룰라가 사라진 마을에 새로 살게된 추리소설 작가 소피는 끈질기게 두 사람의 실종사건을 파헤친다. 그러다가 소피는 사라진 두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반지 상자를 발견한다. 상자 안에는 금으로 된 약혼반지가 완벽한 상태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10대 미혼모 탈룰라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나타난 아이 아빠 잭의 집요한 구애와 둘의 갑작스러운 실종. 탈룰라는 다크 플레이스에서 평범하지 않은 매력을 풍기는 스칼렛에게 점점 빠져들어간다.

'오래전부터 다크 플레이스와 그 저택 근처의 숲을 연결하는, 영국 내전 중에 판 비밀 터널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이 저택에 살던 사람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나 출구에 대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랑했지만 그 감정이 변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철모르는 십대에 아이를 낳았지만 실제 마음은 또 다른 동성 연인에게 끌린다면. 실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말이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 저택이 반쯤 타버리는 바람에 설계도가 타버렸어. 이 집을 다크 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것도 다 그 화재 때문이야. 불이 난 후에 주위에 서 있던 나무들이 전부 새카맣게 타버렸거든."

내가 그런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싶다. 내가 탈룰라처럼 10대에 아이를 낳았는데 자신을 책임지겠다고 달라붙는 연인이 부담스럽기만하고 오히려 다른 동성연인에게 마음이 간다면? KBO 사무총장까지 역임했던 고 허구연 해설위원은 생전에 야구 중계를 할 때 '야구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즐겨 했다. 다크 플레이스를 읽으면서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사랑 아무도 모른다.

탈룰라가 자신의 몸으로 낳은 아이 노아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것처럼, 탈룰라의 엄마 킴이 사라진 딸 탈룰라를 애타게 찾는 것처럼 연인간의 사랑도 운명적이라면 좋을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화재가 나고 그 감정들은 새카맣게 타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제목처럼 어두운 심리 소설의 대가 리사 주얼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흥미로운 결말을 선사한다.


'스칼렛은 사랑할 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걸, 스칼렛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전부 잘못됐다는 걸 탈룰라는 안다.'

그런 스칼렛을 좋아한 탈룰라는 사랑을 알고 있을까?

사랑 참 어렵다. 그래서 사랑은 더욱 신비롭다.

#한스미디어 #다크플레이스의비밀 #리사주얼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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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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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이름도 '올제'야."

"카페 올제? 카페 올 때라는 사투리?"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올제는 '내일'의 순우리말이래. 오늘도 내일도 또 오시라는 뜻도 있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길 바란다는 의미도 있대. 그러데 더 멋진 건, 올제 앞에 쉼표가 찍혀 있다는 거야."

"내일은 반드시 오늘을 거쳐야 하잖아. 그러니 내일로 가기 전에 잠시 쉬어 가란 의미래."

<페인트>를 쓴 이희영 작가의 신작 <챌린지 블루>는 고 3 미대를 준비하면서 고 3을 앞둔 여고생 '한바림'의 갈등에서 시작한다.

"그림 그리기 싫어졌어요"

언제부터 그림이 좋아졌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럼 싫어진 계기 역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바림'은 빙판길에 미끄러져 그림을 그리는 손목을 다친다. 그리고 시골 이모집에 내려갔다가 산속에서 파란 티셔츠를 입은 아이'수'를 만난다.

"계절이 바뀌는 걸 변덕으로 보는 사람은 없어."

"새벽 푸름은 새로운 하루를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챌린지 블루' 어때?"

그럼에도 바림의 마음은 엄마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갈등으로 복잡하기만 하다. "차라리 지구가 망해 버려라."

"나 넘어질 거 알고 있었어. 휘청하는 순간 일부러 손을 짚었어. 그래야만......"

여행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이모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번역가 중에 말이야. 단어를 모르거나 해석이 안 돼서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어.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역자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거야. 늘 불안해. 내가 과연 이 느낌을 온전히 다 전달했을까? 혹여 원작자의 뜻을 오해한 것은 아닐까?"

"세상 모든 일에 정확한 공식, 명확한 답이 있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바뀔 때까지 기다려.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비단 '바림'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무엇일가 손에 잡히는 것은 없는데 주변의 기대나 지금껏 해왔던 것을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넘어지기까지 했을까?


"길치의 장점 중 하나가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있다는 거잖아.

너도 분명 더 많은 가능성을 만날 거야."

어렸을 때부터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의 내일은 어떤 빛일까? 하루 하루 바쁘고 정신 없이 살아가는 기성 세대의 모습 속에서 올제를 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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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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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 혹은 진실.

피카소의 키가 163센티미터에 불과하며 작고 못생겼으며, 미켈란젤로가 추남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물론 미술학도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에 대한 사실은 반쪽짜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전에 읽었던 윤단우 작가의 <여성, 신체, 공간, 폭력>이 무용계의 여성과 남성의 차별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윤희 작가의 <불편한 시선>은 여성의 눈으로 파혜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에 관한 내용이다.

* 위대한 여성 화가 나혜석과 프리다 칼로

요즘 위인전에 나오는 여성 미술가는 나혜석과 프리다칼로라고 한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미술가는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천경자 화백 뿐이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1768년에 설립된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도 알켈리카 카우프만과 메이 모저가 창립 회원이었지만, 요한 조파니의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이라는 누드화를 그리는 작품에서는 초상화로 벽에 걸려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남성들의 벗은 신체를 보는 것이 여성들의 그릇된 욕망을 자극하여 교양을 해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여성을 누드모델로 하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여성 화가는 미모에 대한 평을 받아야 했다. 베네치아에 가면 반드시 만나야 하는 화가로 유명했던 로살바 카리에라의 외모에 대한 지적은 그 후에도 여성 화가들이 숱하게 겪는 외모 지적에 대한 시작일 뿐이었다. 왜 남성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여성은 뛰어난 작품성보다는 외모로 평가받는 것일까.

* 내가 따먹어줄까?, 방금 이야기한 게 너야?

작가가 글을 쓴 계기 중 한 가지는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면서 여성들이 강제로 납치되는 장면이나, 어린 소녀들의 에로틱한 누드 작품을 볼 때 느꼈던 불편함 때문이었다. 왜 여성은 언제나 구경거리가 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림을 팔러 온 여성화가를 쳐다보는 시선을 그린 에밀리 메리 오즈번의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이 가난한 여성 화가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이라면, 메리 커셋의 <특별 관람석에서>는 오페라하우스의 특별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상류층 여성을 쳐다보는 남성을 그리고 있다. 이 남성의 옆자리에는 여성이 동행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폭력적인 시선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시선의 폭력성에 대해서 마네는 <올랭피아>에서 누드로 관객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로리 앤더슨은 <전자동 니콘(대상/거부/객관성)> 연작에서 길에 나선 앤더슨에게 수작을 걸어오는 남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가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맞대응했다. "그래. 씨발, 그럼 어쩔 건데?" 나는 니콘을 들고 그 남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오락가락, 혹시 비밀경찰인가? 찰칵.'

*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장치

미국의 사진 작가 낸 골딘의 1984년 작품 <구타당한 자화상, 베를린의 호텔에서>는 동거하던 남자 친구에게 폭행을 당했던 충격적인 사건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러한 사진을 작품으로 남긴 이유에 대해 낸 골딘은 "지난 기억을 미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작가의 <불편한 시선>도 지난 미술 작품을 미화하지 않기 위한 작업이 아닐까 한다.

* 훌륭한 어머니 신사임당, 나쁜 어머니 나혜석

신사임당은 생존 당시에 산수도가 극찬을 받아서 '화가 신씨'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이의 스승 어숙권은 신사임당을 안견 다음 가는 화가로 칭송할 정도였다. 그러나 유교적인 기틀이 확립된 17세기에 이르러 신사임당은 화가로서의 행적보다 '어머니'로서의 훌륭함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화가 나혜석은 <모()된 감상>이란 수기에서 "자식들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는 솔직한 표현을 사용하여 나쁜 어머니로 여겨졌다. 후에 남긴 글에서 나혜석은 "사남매 아이들아, 어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라고 고백한다. 저출산에 시달리는 현대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비난만 할 수 없는 심정이리라.

* 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

"내가 천사를 그려야 한다면 천사를 내 눈 앞에서 보여달라"고 했던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위해 기존 미술의 관습을 거부했다.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충격적인 작품 <세계의 기원>은 1866년에 그려졌음에도 100년이 넘도록 일부 소장가와 그 지인만이 조심스럽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소유했던 이는 시대의 사상가 자크 라캉이었다. 라캉은 이 그림 위에 다른 그림을 덮어 은밀하게 간직했지만, 그의 사후 부인이 오르게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일반에 기증되었다. 그 후에 발리 엑스포트는 <성기 패닉> 퍼포먼스나 주디 시카고의 <붉은 깃발>은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여성이 말하는 여성의 실제적 경험, 여성이 보여주는 여성의 성기는 남성이 기대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 마땅한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다

박영숙의 <미친년>은 '아니 술병과 재떨이가 굴러다니는 이 엉망진창의 바닥에 아이를 굴리다니 저런 미친년이 다 있나'하는 노여운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대개의 남성이 별로 고민하지 않지만 대개의 여성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에 대해, 그저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미친년'의 대열에 세워지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다. 정정엽은 <최초의 만찬2>는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만찬에 다시 초대된 여성들은 역사 속에 남은 유명한 여성이거나, 여성 예술가였다.

예술작품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성이 참정권도 없었던 시절의 미술작품에서 여성은 관음의 대상이거나 소외되었다. 이 작품은 여성 미술사를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이라는 10가지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과 불편함에 기반한 아름다움은 불편한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방대한 여성 미술사를 훌륭하게 정리한 <불편한 시선>을 읽으면서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글담출판사 #불편한시선 #이윤희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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