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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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 혹은 진실.

피카소의 키가 163센티미터에 불과하며 작고 못생겼으며, 미켈란젤로가 추남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물론 미술학도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에 대한 사실은 반쪽짜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전에 읽었던 윤단우 작가의 <여성, 신체, 공간, 폭력>이 무용계의 여성과 남성의 차별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윤희 작가의 <불편한 시선>은 여성의 눈으로 파혜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에 관한 내용이다.

* 위대한 여성 화가 나혜석과 프리다 칼로

요즘 위인전에 나오는 여성 미술가는 나혜석과 프리다칼로라고 한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미술가는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천경자 화백 뿐이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1768년에 설립된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도 알켈리카 카우프만과 메이 모저가 창립 회원이었지만, 요한 조파니의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이라는 누드화를 그리는 작품에서는 초상화로 벽에 걸려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남성들의 벗은 신체를 보는 것이 여성들의 그릇된 욕망을 자극하여 교양을 해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여성을 누드모델로 하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여성 화가는 미모에 대한 평을 받아야 했다. 베네치아에 가면 반드시 만나야 하는 화가로 유명했던 로살바 카리에라의 외모에 대한 지적은 그 후에도 여성 화가들이 숱하게 겪는 외모 지적에 대한 시작일 뿐이었다. 왜 남성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여성은 뛰어난 작품성보다는 외모로 평가받는 것일까.

* 내가 따먹어줄까?, 방금 이야기한 게 너야?

작가가 글을 쓴 계기 중 한 가지는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면서 여성들이 강제로 납치되는 장면이나, 어린 소녀들의 에로틱한 누드 작품을 볼 때 느꼈던 불편함 때문이었다. 왜 여성은 언제나 구경거리가 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림을 팔러 온 여성화가를 쳐다보는 시선을 그린 에밀리 메리 오즈번의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이 가난한 여성 화가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이라면, 메리 커셋의 <특별 관람석에서>는 오페라하우스의 특별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상류층 여성을 쳐다보는 남성을 그리고 있다. 이 남성의 옆자리에는 여성이 동행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폭력적인 시선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시선의 폭력성에 대해서 마네는 <올랭피아>에서 누드로 관객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로리 앤더슨은 <전자동 니콘(대상/거부/객관성)> 연작에서 길에 나선 앤더슨에게 수작을 걸어오는 남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가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맞대응했다. "그래. 씨발, 그럼 어쩔 건데?" 나는 니콘을 들고 그 남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오락가락, 혹시 비밀경찰인가? 찰칵.'

*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장치

미국의 사진 작가 낸 골딘의 1984년 작품 <구타당한 자화상, 베를린의 호텔에서>는 동거하던 남자 친구에게 폭행을 당했던 충격적인 사건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러한 사진을 작품으로 남긴 이유에 대해 낸 골딘은 "지난 기억을 미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작가의 <불편한 시선>도 지난 미술 작품을 미화하지 않기 위한 작업이 아닐까 한다.

* 훌륭한 어머니 신사임당, 나쁜 어머니 나혜석

신사임당은 생존 당시에 산수도가 극찬을 받아서 '화가 신씨'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이의 스승 어숙권은 신사임당을 안견 다음 가는 화가로 칭송할 정도였다. 그러나 유교적인 기틀이 확립된 17세기에 이르러 신사임당은 화가로서의 행적보다 '어머니'로서의 훌륭함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화가 나혜석은 <모()된 감상>이란 수기에서 "자식들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는 솔직한 표현을 사용하여 나쁜 어머니로 여겨졌다. 후에 남긴 글에서 나혜석은 "사남매 아이들아, 어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라고 고백한다. 저출산에 시달리는 현대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비난만 할 수 없는 심정이리라.

* 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

"내가 천사를 그려야 한다면 천사를 내 눈 앞에서 보여달라"고 했던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위해 기존 미술의 관습을 거부했다.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충격적인 작품 <세계의 기원>은 1866년에 그려졌음에도 100년이 넘도록 일부 소장가와 그 지인만이 조심스럽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소유했던 이는 시대의 사상가 자크 라캉이었다. 라캉은 이 그림 위에 다른 그림을 덮어 은밀하게 간직했지만, 그의 사후 부인이 오르게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일반에 기증되었다. 그 후에 발리 엑스포트는 <성기 패닉> 퍼포먼스나 주디 시카고의 <붉은 깃발>은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여성이 말하는 여성의 실제적 경험, 여성이 보여주는 여성의 성기는 남성이 기대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 마땅한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다

박영숙의 <미친년>은 '아니 술병과 재떨이가 굴러다니는 이 엉망진창의 바닥에 아이를 굴리다니 저런 미친년이 다 있나'하는 노여운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대개의 남성이 별로 고민하지 않지만 대개의 여성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에 대해, 그저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미친년'의 대열에 세워지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다. 정정엽은 <최초의 만찬2>는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만찬에 다시 초대된 여성들은 역사 속에 남은 유명한 여성이거나, 여성 예술가였다.

예술작품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성이 참정권도 없었던 시절의 미술작품에서 여성은 관음의 대상이거나 소외되었다. 이 작품은 여성 미술사를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이라는 10가지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과 불편함에 기반한 아름다움은 불편한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방대한 여성 미술사를 훌륭하게 정리한 <불편한 시선>을 읽으면서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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