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22.8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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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울어주고 싶은 마음

EBS 다큐멘터리 <명의> 작가가 700편이 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깨우친 것은 누가 명의인가가 아니다. 어떤 말이 명의의 말인가 하는 것이다. 하여 내가 저의한 명의는 내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무릎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아프지 않게 해드릴게요." 단 두 마디였다. 정형외과 의사 인용 교수의 진료실에 눈물이 떨어졌다. (양희, EBS <명의> 작가)

* 엄마는 울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딸은 교통사고로 몸의 반 이상의 면적에 중화상을 입었다. 딸은 앞으로 수백 번의 수술을 받는다 해도, 아무리 아픔을 참고 견뎌도 사고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얼굴과 몸을 갖게 되었다. 쪼그라든 목 피부 때문에 고개도 들 수 없었고 척추까지 휘었다. 손가락도 잃었다. 엄마는 그런 딸의 손과 발이 되어주어야 했다. 밥을 일일이 떠먹여주어야 했고, 세수도 시켜주고, 옷도 입혀주고, 화장실도 같이 가야 했다. 아픈 것을 참고 견디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스물 세 살의 딸을 두고 엄마는 눈물짓지 않았다. 엄마는 울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울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엄마 인생이랑 내 인생이랑 바꿀 수 있다면, 엄마가 좀 바꿔줄 수 있어?"

언젠가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대답했다.

"그럼! 바꿀 수만 있다면 엄마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바꿔주고 싶어."

엄마는 이 애틋한 말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했지만, 딸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더 이상 아무 말도 잊지 못했다.(이지선)

* 굿바이 전나무

나무를 목신처럼경배하던 내가 나무를 베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던 전나무였다. 높이가 20미터, 추정 수령이 100년. 그래서 베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대문 안쪽 축대에 금이 가고 균열이 심해져도 버텼지만, 아랫집에서 태풍에 나무가 자신의 집 쪽으로 쓰러지면 인명사고가 날 수 있다는 말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가족 같은 전나무를 베었다.

아침 일찍 시작된 나무 베기는 밤이 되어서야 끝나서 둥그런 그루터기만 휑하니 남았다. 그루터기에 앉아 가만히 나이테를 만져본다. 나무가 겪었던 온갖 고뇌, 아픔 그리고 행복과 환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좁은 나이테는 힘들었던 한 해를 보여주고 풍성하고 굵은 나이테는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음을 말해준다. 밤이 깊어간다. 나이테를 만지는 내 손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김동률, 서강대 교수)


내가 사는 지역에는 고속도로 휴게소로 연결되는 쪽문이 하나 있다. 자차도 없고, 면허도 없는 내게 걸어서 휴게소에 갈 수 있는 쪽문의 존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사실 먹는 음식보다도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는 게 더 좋았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차분히 앉아 생각에 잠기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 되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늘도 난 고속도로 휴게소로 간다. 물론 차 없이 두 발로 걸어서.

--- 샘터 8월호 주제는 '눈물'이다. 사랑하는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도저히 살 수 있는 상황 같지 않으니 이제 밥을 먹이는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다시 밥을 떠 딸의 입에 밀어 넣어주면서 울 수 조차 없었다는 사연은 감히 그 심정을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눈물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지만 지극한 사랑은 눈물마저도 넘어서는가보다.

혈액암을 앓던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몸을 가까이 굽혀 "식사 잘 하셔야 해요."라는 말에 희미하게 들린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마음속에 간직한 번동의 슈바이처 홍종원 왕진의사의 사연도 마음을 울린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한, 울수 조차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여전히 살아볼 만하다.

#샘터 #월간샘터 #잡지 #매거진 #8월잡지 #월간지 #잡지추천 #물방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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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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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모인들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로스쿨에 들어가서 변호사 시험을 치르던 아들이 2번 변호사 시험에 낙방하고서 귀농을 하겠다고 한다면 한숨이 아니라 두숨 세숨이 터질 것만 같다.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는 10년 차 농부이자 엄마인 조금숙 작가와 귀농을 꿈꾸는 아들 선무영 작가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다. 엄마 조금숙 작가의 말처럼 요즘은 연하장도 안 나온다는 세상에 도시에 사는 아들과 시골에 사는 엄마가 사계절을 주고 받은 그 편지를 읽는 내내 내 마음도 함께 움직였다.

*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어머니께)

로스쿨에 들어갈 적에는 시골 마을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군요. 그래도 달라진 것은 변호사에서 농부로 '직함'이 바뀐 것밖에 없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재밌는 일을 찾아서 하고자 합니다. 농사를 지어 부자 되기는 어려워도, 부지런한 농부가 굶을 일은 없습니다. 변호사라면 귀농 생활이 한결 편했겠지만, 직함이 귀농에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죠.

* 귀농이라니 한숨이 터진다(작은 아들에게)

너는 도시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내려오고 싶다니, 한숨부터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엄마의 시골 생활은 초기 뇌경색이던 할머니께서 치매 증상을 보이시면서 갑작스럽게 괴산에 집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선뜻 반기지 못하는 엄마 마음을 알겠니. 든든한 자격증 하나 따서 오면 어떨까 싶은데. 그래도 그간 해온 법 공부가 아쉽지 않겠니. 아직 늦지 않았으니 학원에라도 의지해보면 어떨까.

시골 마음에 살더라도 농사늘 짓지 않는 귀촌. 좋지. 은퇴할 때까지 도시에서 열심히 살다가, 퇴직금 받아서 시골 땅에 집 짓고, 한적하니 연금 받으면서 말아. 엄마는 너에게 이런 귀촌을 권해주고 싶다. 누군가는 꼭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서도, 아들딸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게 부모 마음이다.

시골살이는 '리틀 포레스트'가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이란다.

* 우리가 꿈꾸는 삶에 붙는 이름은 중요치 않습니다(어머니께)

"변호사가 될 줄 알았던 사위기 농부가 되겠다니! 이 결혼은 반대다!" 하고 하셔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장모님은 제가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고 할 때도 '잘해보라'며 다시 따뜻한 밥을 해주셨습니다. 그간 고생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지요.

제가 생각하는 시골은 '가족'이고 '건강'입니다. 시골에 사니는 부모님 걱정하며, 매달 보내는 용돈으로 죄스러움을 씼고 싶지 않습니다. 10년 차 소농인 어머니의 어려움이 제 어려움이죠. 멀찍이서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빈자리를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언제고 떠나실 적에 엉엉 울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가까이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프시지 않고, 늘 즐겁게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 네가 와서 봄이구나(작은 아들에게)

너에겐 시골에 가고자 하는, 간절하게 원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늠해보고 있으니, 말리는 일이 무색해졌다. 아들의 인생에 관여하고자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부끄럽기까지 하구나.

부모 된 우리가 늙어왔기에 너희들이 그만큼 장성한 거 아닌가 생각한다. 섭섭해하지 말거라. 늙어가는 것이 서럽지 않고 너희가 잘 살아주는 것이 한결 고맙단다.

* 청년이 언제든 농촌에 올 수 있다면 좋겠다

아빠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들이 귀농하면 '농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먼저가 되고, 그다음 청년들의 장점을 살려 농촌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창업 지원책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괴산에서 아빠가 씀)

*내년에 어떤 씨앗을 어디에 심을까, 가슴 벅찬 고민입니다(어머니께)

제 삶은 좋든 싫든 이렇게 변화를 맞았습니다.때로는 살기 위해서, 때론 더 나아지기 위해서 맞이한 변화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척박하지 않은 곳이 어딨겠습니까. 도시도, 시골도 살아내기 퍽퍽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하 하는 곳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바쁘네요.

* 이제 너희를 맞을 준비흘 할 때가 된 것 같다(작은 아들에게)

삶을 향기롭게 하려면 용기가 꼭 함께해야 하는 것 같아. 도시에서는 가까이 살아도 가까운 게 아니지만, 시골은 그렇지 않아. 어서 네가 내려와서 가까이 살면 좋겠다는 마음이 언뜻 들었다.

--- 취향대로 사는 사람에게 척박함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아들과, 귀농이라는 말에 한숨부터 터진다는 엄마는 결국 서로의 진심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먹고 살기 위해서 행복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현실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 귀농보다는 귀촌을 권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따뜻하다.

아, 나는 귀촌이 하고 싶다.

귀촌이라니!


#그편지에마음을볶았다 # 조금숙 #선무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4기 #하니포터4기_그편지에마음을볶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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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계절 2 - 어느 교수의 전쟁 잊혀진 계절 2
김도형 지음 / 에이에스(도서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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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단국대학교 수학과 김도형 교수의 <잊혀진 계절>은 1995년 작가가 KAIST 재학 중에 처음 신흥종교단체를 접하게 된 후로, 그 교주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2009년까지 14년 동안 이단 종교와 사투를 벌인 기록이다.

* 벌거벗은 가짜 임금님의 나라

선생 주변의 본부 MS(정명석의 집에 같이 사는 여자들)며 보고자, 교역자, 크고 작은 부서장 등 선생 주변에 키가 크고 반반하게 생긴 여자들이, 한 명의 예외 없이 온통 선생의 섹스 파트너였다. 정명석이 무슨 행동을 해도, 아무리 놀라고 아파도 발설하면 나와 내 가족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질 것 같았다. 그곳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였다.

---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브리서 13장 4절)

* 성폭행 피해자의 죽음

어느 성폭행 피해자가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JMS 목사라는 자가 그 피해자의 집에 문상을 가는 체하며 찾아가선는, 죽은 피해자의 일기장을 훔쳐다가 불에 태워서 증거를 없애 버렸다는 증언도 있었다. 피해자가 성 행각 때문에 목숨을 끊었는데도 JMS는 자기들의 만행을 숨기는 데 급급한 것이다.

--- 간음하지 말라. 살이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로마서 13장 9절)

*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의 SEX교와 음란한 사교주

대전지검이 출국금지를 해제해 줌으로써 정명석의 성범죄가 대만, 말레이시아를 거쳐 중국 본토로 확산되었다. 이후로는 일본, 홍콩, 다시 중국 본토로 정명석이 중국에서 체포되기까지 자그마치 7년간 이어졌다.

2002년 10월, 일본의 주간지 <Weekly Post>는 표지에 '한국의 SEX교가 일본에 상륙했다'라고 게재하며 연 5주 동안 정명석의 일본 내 성폭행 행각을 보도했다.

2003년 6월 정명석은 신분증도 없는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체포 즉시 구속되었다. 바로 다음 날, 정명석은 '음란한 사교주'라는 타이틀로 홍콩의 일간지 <태양보> 일면 톱을 장식하였다.

* 이성을 잃어버린 광신도들

재판 후, 항소심 담당 공판 검사는 김도형과 김형진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명석보다 그 변호인들이 더 미워! 어떻게 인간들이 그럴 수 있나? 해도 해도 너무하더구먼."

지금도 JMS 교단에는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있다. 서울대학교에도 JMS 신도 교수가 있으며,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인하공업전문대학 등 다양한 학교에 산재해 있다. 그중 한 명은 중앙대학교의 학장까지 마친 사람인데, 이 사람은 1999년 JMS 사건이 이슈화 되었을 당시, 성폭행 피해자의 가족에게 전화를 하여, 그분(정명석)이 인성으로 그런 것(강간)이 아니다. 신성으로 그의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고 지껄이기도 하였던 인간이다.

---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태복음 12장 34절)

* 대법원 확정판결 징역 10년

2009년 2월 10일 항소심 선고 기일 재판장은 피고 정명석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였고,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 독사의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누가복음 3장 7절)

*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저지른 성폭행

성범죄로 징역 10년 형을 치른 정명석 사이비 교주는 변함이 없다.

- JMS 정명석, 출소 4년 만에 또다시 여신도 성폭행 혐의…경찰 조사(2022. 7. 24. 데일리안),

- '성폭행 혐의 피소' JMS 정명석 추가 소환조사 받아(2022. 8. 10. 연합뉴스)

---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태복음 25장 40절)

정명석과 함께 활동한 초창기 기독교복음선교회(JMS, Jesus Morning Star) 창업 멤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명석은 1만 명 강간이 목표라고 평소 자신의 포부를 밝혀왔다고 한다. JMS Mx Sx.

#잊혀진계절 #김도형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에디터김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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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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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지파괴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는 천지파괴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도 잠시 사라진 것 같다. 출간 후 공개된다고 하니, 아마 다른 레이어에서 짜잔 하고 나타날 것 예정인가보다.

'세상의 네 개의 레이어로 만들어져 있대요.
가장 아래쪽 레이어는 지구 표면이에요. 그 위의 레이어에는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살고 있어요. 바로 그 위에 숨겨진 레이어가 있어요.'

'딜리터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1퍼센트뿐이야. 어릴 때부터 뭐든 만지면 잃어버리고 깨버리고 망가뜨리는 사람들ㅇ이야. 그걸 능력으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지.'

딜리터(deleter)들은 마음만 먹으면 천지창조도 없었던 걸로 할 수 있다. 하느님이라도 별 수 없다. 지우는 건 인간들이 최고다. 지구가 그 증거다. 나무와 풀과 온갖 생명체가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지워진다.(딜리터 묵시록 중에서)

* 이기동(딜리터)
그런 거 들어보셨습니까? 인터넷 장의사, 잊혀질 권리. 그런 거의 오프라인 버전입니다. 지우고 싶은 것을 의뢰하면 제가 가서 도와드립니다.

* 더스트맨(딜리터)
물건을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게 기분 좋은 일인 줄 알아? 살인 현장에 있는 증거들을 지우는 게 기쁜 일인 줄 알아? 뺑소니치고 도망간 남자의 뒤처리하는 게 즐거운 일인 줄 알아?

* 강치우(딜리터/소설가)
소설가는 관찰하는 사람이에요. 관찰의 핵심이 뭔지 알아요?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겁니다. 내가 드러나면 관찰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어요. 나를 버리고 상대를 온전히 지켜볼 수 있을 때 관찰이 완성되거든요. 소설가 중에 잘생긴 사람이 거의 없죠?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내가 만진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건 진짜 힘들어요. 처음에는 보고도 믿기 힘들었어요. 사랑하면 가질 수 있어야지. 사랑하면 더 많이 생겨야지, 안 그래요? 사랑하면 다 가져가버려요. 나중에는 무엇도 사랑하지 않게 돼요."

* 조이수(픽토르)
저는 레이어가 보여요. 볼 수 있어요. 딜리터는 물건을 사라지게 할 수 있죠. 저는 사라진 물건을 볼 수 있어요.

* 소하윤
소설가이자 딜리터인 강치우의 여자친구 소하윤은 교통사고로 가족이 죽고 난 일년 후 실종된다. 교통사고로 가족이 죽고 난 다음부터 소하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 사람은 천국에 가 있을 거야. 거기 가면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강치우와 헤어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가제본에는 의뢰서가 동봉되어 있다. 소위 딜리팅 의뢰서 2통이 들어있다. 한 통은 이기동 딜리터에게 보내는 의뢰서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은 물건이 있습니까?
다른 한 통은 강치우 딜리터에게 보내는 심각한 의뢰서다. '당신이 지우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일단 믿음일 갖고 상상해본다. 어떤 물건을 지울까? 그래 빚진 증거를 다 없애면 좋겠다. 이왕 일을 벌였으니 기왕이면 국가 채무에 관한 자료를 다 지워버렸으면 정말 좋겠다.

그 다음에 누구를 지워야할까? 솔직히 돌아오게 하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지우고 싶을 정도의 사람은? 아 있다. 러시아에 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살인마들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다. 덧붙여서 만약에 가능하다면 세상에 있는 심각한 질병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환경오염도 사라졌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가만 생각해보니 약간 슬퍼진다.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사라졌으면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현실은 함께 살아야한다. 너무 힘들다.

#딜리터 #딜리터사라지게해드립니다 #자이언트북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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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 (리커버) -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 아들과 엄마의 17년 성장기
마쓰나가 다다시 지음, 황미숙 옮김, 한상민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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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 전문가인 다테이시 미쓰코는 아들 훈이(가명)의 생후 3개월부터 매일 열 권의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영재교육을 시도했다. 그런데 훈이는 알레르기 피부염에 이어서 낯을 가리지 않으면서 반응 속도가 느리더니 생후 18개월쯤이 되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에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훈이가 자폐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분통을 터뜨린다.

* 발달장애아의 부모가 된다는 것

발달장애아의 부모는 누구인가. 아이에게 '엄마' 소리를 듣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은 사람들, '보통'의 평범한 삶이 꿈인 사람들, 그들이 발달장애아의 부모다.

* 평생 낫지 않는 증상

훈이의 자폐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엄마는 다른 병원들을 찾아가지만 진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처음에 진단을 내렸던 의사를 다시 찾아갔을 때 의사가 한 말.

"일 년 만에 받아들이신 거면 빠른 편입니다." 엄마는 자폐증이 평생 낫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 현관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

매일 아침 여덟 시면 훈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현관에서 훈이를 담임 교사에게 인계한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에 데리러 가면 훈이는 현관에 웅크리고 있다. 담임은 "오늘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아침부터 계속 여기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엄마는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 이대로 찾지 못하면 좋겠어

대형 가전판매점에 갔다가 훈이를 잃어버린 엄마는 4층 매장 전체를 다 찾다가 건물 밖으로 나가서 아이를 찾기 시작한다. 그곳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시부야였다. 번화가답게 도로는 인파로 넘쳐났다. '이 속에서 찾아내야만 한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먹구름처럼 마음속으로 퍼졌다.

'이대로 찾지 못하면 좋겠어......"

* 자폐증을 받아들이다

부모 모임에서 만난 베테랑 엄마는 말한다. "저는 아이의 장애를 늦게 알았어요. 알고 나서도 그 장애를 인정하지 못했지요. 가능하면 일반 아이들과 같아지기를 바라면서 아이에게 무리하게 요구했어요. 나중에 우리 애처럼 2차 장애를 겪지 않게 해주세요. 아드님의 특성에 맞게 양육하시면 돼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미래는 지금보다 더 비참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면한 것이다. 엄마로서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장애를 수용하고 나아가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던 셈이다.

'이 아이의 세계를 부정하면 안 된다. 훈이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을 통째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훈이는 더더욱 마음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니고 있던 방과후 서비스 직원 두 사람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예식에는 방과후 서비스에 참여하는 장애 아이 수십 명이 초대되었다. 새로운 장소가 낯선 탓에 울며 소리치는 아이도 많았다.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우는 아이도 있었다. 자폐 아이는 이런 장소를 어려워한다. 물론 방과후 서비스에서 일하는 일하는 신랑 신부가 아이들을 초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기회조차 없으면 이 아이들은 사회를 엿볼 수가 없다.

예식은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여 매우 소란스러웠다. 시끄럽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가 아이들은 이해하고 있었기에 누구하나 조용히 하라며 야단치지 않았다.

--- 읽어가는 내내 가슴이 저려온다.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과 아픔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아픈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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