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멘터리 <명의> 작가가 700편이 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깨우친 것은 누가 명의인가가 아니다. 어떤 말이 명의의 말인가 하는 것이다. 하여 내가 저의한 명의는 내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무릎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아프지 않게 해드릴게요." 단 두 마디였다. 정형외과 의사 인용 교수의 진료실에 눈물이 떨어졌다. (양희, EBS <명의> 작가)
* 엄마는 울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딸은 교통사고로 몸의 반 이상의 면적에 중화상을 입었다. 딸은 앞으로 수백 번의 수술을 받는다 해도, 아무리 아픔을 참고 견뎌도 사고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얼굴과 몸을 갖게 되었다. 쪼그라든 목 피부 때문에 고개도 들 수 없었고 척추까지 휘었다. 손가락도 잃었다. 엄마는 그런 딸의 손과 발이 되어주어야 했다. 밥을 일일이 떠먹여주어야 했고, 세수도 시켜주고, 옷도 입혀주고, 화장실도 같이 가야 했다. 아픈 것을 참고 견디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스물 세 살의 딸을 두고 엄마는 눈물짓지 않았다. 엄마는 울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울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엄마 인생이랑 내 인생이랑 바꿀 수 있다면, 엄마가 좀 바꿔줄 수 있어?"
언젠가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대답했다.
"그럼! 바꿀 수만 있다면 엄마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바꿔주고 싶어."
엄마는 이 애틋한 말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했지만, 딸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더 이상 아무 말도 잊지 못했다.(이지선)
* 굿바이 전나무
나무를 목신처럼경배하던 내가 나무를 베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던 전나무였다. 높이가 20미터, 추정 수령이 100년. 그래서 베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대문 안쪽 축대에 금이 가고 균열이 심해져도 버텼지만, 아랫집에서 태풍에 나무가 자신의 집 쪽으로 쓰러지면 인명사고가 날 수 있다는 말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가족 같은 전나무를 베었다.
아침 일찍 시작된 나무 베기는 밤이 되어서야 끝나서 둥그런 그루터기만 휑하니 남았다. 그루터기에 앉아 가만히 나이테를 만져본다. 나무가 겪었던 온갖 고뇌, 아픔 그리고 행복과 환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좁은 나이테는 힘들었던 한 해를 보여주고 풍성하고 굵은 나이테는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음을 말해준다. 밤이 깊어간다. 나이테를 만지는 내 손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김동률,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