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 - 진동선의 포토에세이
진동선 지음 / 비온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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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없는 사람은 항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또는 가보고 싶지만 용기를 낼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산다. 나도 그렇다. 일상에 지치고 삶이 단순하다고 느껴질 때면 두 눈을 감고 나를 향해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이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라 생각한다. 그럼 한결 나아진다.
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 참 고마운 책이다. 살아가면서 동경해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생겼으니 말이다. 해질녘 바다에서 불어 오는 바다내음이 한 줄기 빛으로 화하는 황혼과 함께 내 가슴속을
흔들어 놓는다. 그것이 바로 쿠바라는 곳이다. 진동선 작가의 시선과 그리고 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쿠바는 충분히 나의 용기 없음을 탓하게 한다. 살면서 쿠바에 한번쯤 가볼 수 있을까? 머나먼 타국이고 거리상으로도 너무나 먼 나라 쿠바. 과연 나는 쿠바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고 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을까?


쿠바는 색의 나라다. 그리고 시간이 멈추어 버린 곳이다. 색과 시간은 묘한 공생관계를 이루며 쿠바를 표현한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쿠바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사람의 일은 뒤로 미뤄 놓고 보이는 그대로의 쿠바를 느껴보자. 쿠바의 색은 파랑과 빨강이다. 하지만 그 색들은 빛 바랜 파랑과 빨강이다. 소위 말하는 빈티지 함? 이라고 할까? 낡고 낡음 속에서 그 색들은 더욱 편안함을 준다. 바로 쿠바 사람들의 색이다. 잘 산다고 하는 나라 일수록 색깔이 진하다. 조금만 낡으며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아니면 부셔버리고 다시 짓고는 한다. 요즘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살다 보니 지저분함을 참지 못한다.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색깔인 것을... 그렇게 우리는 쿠바와 같은 시간의 아름다움을 져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여유도 없이 오직 성공만을 위해서 나를 혹사 시키고 내 주위의 사람을 실망 시키며 사랑할 자격을 갖춘 내 자신에게 육체적인 욕망만 안겨준다. 하지만, 쿠바의 색은 여유로움과 사랑을 말한다. 푸른 바다를 항상 바라보며 시간의 욕망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쿠바 사람들이야 말로 파랑이고 빨강이다. 말레콘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사랑이다. 그건 바로 항상 꿈꾸던 이상형에 대한 향수와 비슷하다. 말레콘 방파제에 그대와 앉아서 저 바다를 같이 바라 본다면 어찌 이 한 세상이 각박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쿠바를 떠올리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 생각난다.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쿠바의 춤이 무엇이다 말할 수 없고 쿠바의 음악이 무엇이다 말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쿠바가 가진 매력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건 바로 영화화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잡지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개봉 소식을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까지는 쿠바 하면 미국과 적대적인 나라 또는 2차 대전 후 미,소가 대립 하던 시절 쿠바가 적잖은 희생을 했다는 것 정도? 아마도 우리나라에 가장 크게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야구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네들이 어찌 그리 야구를 잘 하는지 모르지만 아마야구 최강이라고 한다. WBC와 올림픽으로 우리나라에 친숙해 져버린 나라 쿠바. 그리고 쿠바는 헤밍웨이의 제 2의 고향이다. 그의 소설들이 쿠바에서 집필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진동선 작가는 헤밍웨이의 발자취도 뒤 따른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헤밍웨이가 쿠바에 그렇게 오래 살았는지는 몰랐다. 헤밍웨이 하면 노인과 바다가 떠오르는데 그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쿠바 바닷가 정경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쿠바 하면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혁명전사 체다. 체 게바라...모터사이클다이어리라는 영화로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까지 체를 알게 된다. 체는 사회주의 운동의 대표 혁명가이다. 그런 체가 죽어 묻힌 곳이 쿠바다. 그가 없었다면 쿠바가 미국의 그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체는 젊은 혁명가와 사상가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나는 풍경 사진도 좋지만 인물 사진도 좋아한다. 쿠바가 시간이 멈추어 버린 곳이라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가난하게 살지만 다른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보다 휠씬 인생이 여유로워 보인다. 부라는 것은 상대급부적인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우린 쿠바에 가보기도 전에 쿠바를 잊어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피곤에 지쳐 눈이 감길 때 쿠바의 바다를 쿠바의 색깔을 쿠바의 빛 바램을 생각하며 안식을 얻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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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문 2009-04-17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라짱님.. 축하합니다.ㅋㅋㅋ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김연수 외 지음 / 작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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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단편이 좋아요? 아님 중편? 또는 장편?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느 소설이든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쓰지 않는 소설은 없다.
하지만, 글쓰기를 배울 당시에 단편이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단편은 버림의 미학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만 명작이 나온다고 하였다.
오늘의 소설은 작가가 선정한 소설 8편을 수록하고 각 편에 대한 논평이 첨부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옴니버스식 단편 소설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 접해본 단편 소설집들은 신춘문예나 이상문학상 수상자들의 글들이다.
아니 솔직히 몇 권 접해 본적이 없다.
아직 문학에 대한 이해나 소견이 짧아서 그런지 너무 어려운 단어나 철학이 담겨 있으면 침울해 지기 쉬워서 그런가 보다.
내가 아는 작가는 누가 있지? 황석영 작가? 신경숙 작가? 아님 뭐 누가 생각나지?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나는 이렇게 모르기도 하고 존경하는 작가가 없다.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지만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들 중 유일하게 김연수 작가만 알뿐이다. 사실 김연수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서 이 소설을 손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뭐가 문제지? 사실 나는 김연수 작가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가 가장 어려웠다. 쉽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쉬운데 아직 나의 이해력으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소설의 내용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단편이라는 특색에 맞게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김연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무얼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이지? 그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큐티클"이라는 작품으로 넘어갔다.


"큐티클"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이다. 한 직장여성의 단편적인 일상을 소설화 한 것인데 여성의 직장 생활에 관한 스트레스나 또는 사치에 대해서 아주 섬세하게 표현 되어있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이지 알면서 남들이 하니까. 라는 생각으로 따라하게 되는 네일샵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이 안쓰럽다. 세상살기 참 각박하다. 남들보다 잘 하지는 못해도 비슷하게는 가야지. 그게 세상살이 아닌가? 그래도 결국엔 맘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성 내면의 심리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단편소설이었다.


김태용 작가의 "쓸개"는 참 제목 그대로 씁씁한 소설이다. 작가 내면 또는 세상을 바라 보는 관점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아주 짧은 독립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랄까? 죽을지 알면서 달려 드는 불나방 같은 것이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서 주저 앉고 마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건강이 악화되어 쓸개를 잘라 버린 한 남자가 엉망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죽음을 향해 치닫는 소설.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게 했다.


박민규 작가의 "절" 이라는 단편은 정말이지 유머러스 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무척이나 좋아했던 무협 소설 주인공들이 살아 나온 것 같지만 또 그런 소설이 아니다. 단어나 주인공의 이름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기이한 행동들은 무협소설의 그것과 닮았지만 사실 현시대에 대한 비판이다. 오로지 법과 금전의 부로만 성공 가치를 따지는 세속 사람들 속에 200살이 넘은 무협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그리고 세속에 점점 동화되어가는 그들을 통해 작금의 물질 만능 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아마 오늘의 소설에 실린 단편 중에 가장 위트 넘치는 소설이 아니었나 한다.


윤이형 작가의 "스카이 워커"는 새롭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나보다 나이는 어린 작가지만 역시 작가는 작가다. 특이한 소재로 시작하는 스카이 워커. 핵전쟁 후 살아 남은 인류가 용신을 믿으며 예배 의식의 한 부분으로 트렘벌린을 하는데 트렘벌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봉봉 이라는 기구를 타고 공중제비를 하는 것이다. 봉봉을 모르면 곤란한 이야기지만 어릴적 무척이나 좋아했던 놀이 기구라서 주인공과 감정이입이 저절로 되는 듯 하다. 이 소설은 바로 획일화 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획일화된 교육제도와 주입식 성공 주의가 나은 어두운 현실들. 오로지 물질적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획일화된 사람과 조금이라도 틀린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소외 된다. 주인공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예배 의식 중 의도된 틀린 동작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지쳐가는 현대인들이 꿈꾸는 일상 탈출이 아닐까?


이장욱 작가의 "고백의 제왕"은 음침하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현시대는 상실의 시대다. 조금만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육체적 원인보다 정신적 원인으로 더욱 많이 죽어 갈 것이다. 그 이유는 더욱 세분화 되는 세상 속에서 점점 개인은 소외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 소외는 대화의 단절을 놓게 되고 그 단절은 바로 죽음으로 가게 하는 우울증을 놓기 때문이다. 고백의 제왕은 대학 시절부터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나 신변의 일들을 친구들에게 고백하는 그런 친구다. 세상에는 때론 고백해서 좋을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다. 고백의 제왕 곽은 그런 부분이 없다. 대학 시절 후에 모두들 친구 곽을 멀리 하게 되지만, 알고 보면 다들 한번씩 만나서 그의 고백을 듣거나 자신의 고민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곽의 고백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상실의 시대에서 대화의 소중함이나 자신의 문제점을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대한 고찰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인석작가의 "스페인 난민 수용소"는 영천이라는 지역에 난민 수용소가 생기면서 생겨난 일들과 주인공의 의식 변화와 행동들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방어적이 되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난민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생겨나는 난민들과 난민 폭동으로 인해서 어머니가 죽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은 과격한 민족학생운동의 리더가 되게 하였으며 그의 행동은 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며 결국 자신도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지금의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작가는 이런 의도로 소설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또는 남들을 적대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한유주 작가의 "재의 수요일"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요일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스에 불어를 배우기 위해 온 유학생의 이야기다. 그녀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을 하지 않았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모두가 부정적인 단어들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니다라는 주제보다는 없음을 주제로 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꼭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바로 일상에서 오는 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일탈을 원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 나지 않는다.


각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서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처음 생각과 달리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장편소설의 장점도 있지만, 간결하면서도 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편의 장점도 중요한 것 같다. 오랜만에 나를 즐겁게 하는 소설들을 본 것 같아서 행복하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 대한 노고에도 깊이 고개 숙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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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CULTURA 2009.봄 - 제13호
작가 편집부 엮음 / 작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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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쿨투라 라는 책을 평생 못 접해 볼 수도 있다.
나도 영화 매거진같이 책 소개를 해주는 전문잡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제작사의 홍보의도로 출판물이 많이 나오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쿨투라를 처음 받았을 때 책을 홍보하는 잡지류로 생각했다.
그런데 쿨투라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종합 문화 비평서적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비평에 관해서는 익숙하지 않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비평을 읽게 되면 괜히 쉽던 문학이나 음악 또는 영화가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아서 머리 쓰는 일을 사람들은 많이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비평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다.
내가 읽는 소설, 내가 읊조리던 시, 내가 듣던 음악 그리고 내가 보았던 영화들이 이런 의미와 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다고 해야하나?


쿨트라 봄호를 잠깐 소개 하자면 시,소설,음악,영화,연극에 관하여 각각 1편의 비평들이 수록되어 있고 세태에 대한 비평과 문화 소식이 게재되어 있다.
오늘의 영화,시,소설이라는 책을 읽어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쿨투라는 오늘의 영화,시,소설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한편을 뽑아서 작가와 인터뷰를 하고 그 작품에 대한 비평을 수록했다.
문학만 놓고 보자면 우리는 평생 작가와 조우할 인연이 없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면 혹시나 유명작가의 펜 사인회라도 가볼 요량이지만 지방에 사는 나에게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냥 이 작가가 유명하구나. 아님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고 혼자 상상하곤 말아 버린다. 그래도 쿨투라를 보면서 작가의 직접적인 생각이나 의도를 들어보는 재미가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잘 몰랐지만 최근에 이름을 굉장히 많이 듣게 된 김연수작가의 취미도 알 수 있었고 그 취미가 그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새삼스럽다.
솔직히 아직 문학에 대한 이해력이 많이 부족한 나는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말이다.


세태에 대한 비평의 본명도 꽤나 재미있었다.
요즘의 비평은 비평이 아니라는 말도 많이 있다.
특히 음악이라는 장르에서는 아이돌 그룹이 브라운관이나 라디오를 점령한지 오래 되었다.
세월이 가면 문화도 그 시대에 맞추어서 변하기 마련이다.
원래 음악이라는 것이 내가 듣고 싶으면 군가라도 좋기 마련 아닌가?
어느 누구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 내리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너무 섹슈얼이나 비쥬얼만을 보는 음악 세태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음악성이라고 눈곱 만큼도 없으면서 뮤지션이라고 떠들어 대니 말이다.
그들은 뮤지션이 아니라 댄서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뮤지션은 음악가다. 나는 신세대 아이돌이라고 해서 다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음악이 단순하고 볼품 없을지 모르지만 싱어송라이터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대부분 인정해 주는 편이다. 이렇게 생각이 복잡해 짐으로 인해서 비평을 즐겨 보지 않는지도 모른다.
제2회 쿨트라 신인 문화평론상을 주목해서 보았다.
사실 문화평론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관심이 있었던가?
그런데 중요한 쟁점은 그 주제가 내가 알고 있는 연극이라는 점이다.
정확이 이야기하면 그 연극을 본 것은 아니지만, 원작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웹툰 만화가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연극이다.
강풀 작가의 특색은 다른 웹툰 만화가와 달리 준비기간을 철저히 가지며 스토리 라인을 완벽하게 구축한다는 점이다.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영화,드라마,연극으로 많이 변모하고 있다. 특히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70대 노인 4명의 황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친구와 그 웹툰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남자라고 못 울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만큼 깊이 있는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그런 원작을 연극으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지금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갑준씨의 평론은 정말 가슴에 들어오는 면이 있었다.
원작을 보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문화적 측면의 평론이 더해지니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비평을 잘 모른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또는 음악을 듣고 비평을 하고 싶어도 성격상 어렵다.
내가 과연 다른 사람의 작품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특히 책 서평을 할 때에 가장 많이 겪는 혼란은 바로 혹평에 관한 부분이다.
때론 내가 너무 칭찬만 해서 출판사 홍보 도우미가 아닌가 하는 회한이 들 정도니 말이다.
논평 혹은 비평의 세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크나큰 축복이 아닌가 한다.
이런 논평과 비평이 존재해야만 나를 즐겁게 하는 문화가 더욱 발전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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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전찬일 외 지음 / 작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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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애인과의 데이트 코스일 수도 있고 친구와 시간 때우기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영화광이라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유명하다니까 한번쯤 볼 수도 있다.
물론 TV에서 하는 영화 말고 극장에 몸소 발걸음을 해서 보는 영화를 이야기 한다.
나도 영화광에 속하는 편이다.
이것 저것 안 따지고 잘 보는 편인데 요즘은 영 바빠서 보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내 손에 들게 된 오늘의 영화라는 책을 보게 된다.
사실 요즘은 영화보다 책에 더 빠져 산다.
과연 이 책은 어떤 내용일까? 예전에 비디오 가게에 놓여 있던 영화 가이드 같은 책일까?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영화 비평을 위한 책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말은 곧 영화뿐만 아니라 감독의 성향과 철학적 의미 그리고 스크린에 대한 열정을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극장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 (나를 포함한)은 영화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 영화는 예술성에서 호평을 받지만 흥행은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감독의 의지가 그대로 담겨 있기에 철학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도 어렵지만 어렵사리 보게 되더라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아직 나의 소양이 부족한 탓일까? 그럼 비평가들은 어떻게 영화를 바라 볼까?
나는 영화를 볼 때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
단 따지는 것은 스토리의 진행과 배우들의 연기력 정도? 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올 때면 그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오늘의 영화에서는 배우나 스토리의 비평보다는 감독의 생각이나 능력을 평가한다.
그리고 비평은 다분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수긍이 가는 부분도 많이 있다.
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
그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느냐?
왜 이 영화가 유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까?
바로 일반인과 비평가들이 영화를 보는 관점이 틀리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예로 매우 재미있게 봤던 영화 추격자에 대해서 비평가는 이야기 한다.
공권력의 나태함과 부재,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하는 여자, 그리고 주인공의 내면을 내다보는 관점을 이야기해 보자.
나도 추격자는 재미있게 봤다. 시작과 동시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긴장감과 범인을 오픈해 놓고 잡아가는 과정, 그리고 예상과 달리 매춘을 하던 여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부분들은 내가 느끼는 부분들이고 보통의 관객들이 느끼는 수준이다.
하지만, 비평가는 역시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
전직 형사이지만 타락한 주인공이 범인을 잡아야 하는 상황은 지금 현실에서 공권력의 나태함을 나타내고 이를 비웃듯 범인은 살인을 자행한다. 그리고 우리는 몸을 팔아서 사는 여자를 가장 천시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바로 사회 가장 저층에 존재하는 약자들의 희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비평가의 주관일 수도 있다.
그 주관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너무 비평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이것 저것 현실에 빗대어 너무 따지다 보면 그 영화의 본래의 의도나 재미는 사라진다.
나는 그래서 영화의 스토리 조차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오늘의 영화처럼 영화에 대한 비평이 있는 책을 읽어 본다면 그 영화에 대한 이해가 십분 더 발휘 될 것 같다.
이 책에 있는 영화의 절반도 보지 못했지만, 비평가들의 비평과 이해가 어느 정도 전해지는 느낌이다. 더 재미있고 또 흥행도 하고 관객들의 호응도 좋은 영화들이 많이 쏟아졌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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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애드립의 힘 - 스누피 처세철학
히로부치 마스히코 지음, 이양 옮김 / 종이책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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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 세대라고 하면 바로 지금의 30대가 아닌가 한다.
물론 슐츠의 스누피는 굉장히 오래 전에 그려진 만화이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아마도 20년 정도 전이 아닌가 한다. 물론 더 오래 전에 소개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기억에 스누피는 초등학교 시절에 등장했다.
스누피의 그림이 없는 곳이 없었다. 지우개를 비롯한 학용품과 껌 종이에도 있었고 잡지책에서도 많이 본 것 같다. 물론 피너츠라는 제목으로 소개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피카츄나 원피스 같은 만화가 더 인기 있지만 나의 기억속에는 착한 소년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더 크게 각인 되어있다.
그런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애드립의 힘이라는 책으로 나에게 다가 왔다.
책을 읽는 시종일관 이 만화가 이렇게 철학적이었어? 라는 놀라움이 생겼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애드립의 힘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대인 관계에서 우의를 점 할 수 있고 좀더 서로에게 나은 관계를 유지 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해석이 담겨 있다.
단지 4컷 만화를 만화 그 자체로 받아 들인다면 생각의 사고는 멈추어 버리지만, 저자의 의도대로 슐츠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게 된다면 피너츠는 굉장히 철학적인 만화가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얼마나 깨닫고 있을까?
수없이 쏟아지는 성공서적들을 보고 있자면 대화의 중요성이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독단적이고 추진력을 갖추거나 일에 대한 끊임 없는 동기부여와 노력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라고 역설하는 책들도 많이 있지만 시대의 흐름은 변화하고 있다.
뛰어난 리더일수록 대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무미건조한 업무상의 대화 말고도 위트 넘치는 유머로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 줄 안다.
학생시절에는 잘 모르지만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우리는 대화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된다. 직장 상사나 후배들과의 대화에서 항상 대화에 동참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동참하게 되더라도 꼭 큰 목소리로 대화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화의 주제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데 있다. 회의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도 소위 우리가 말하는 삼천포로 빠지기 때문이다. 나는 똑똑하지 않다. 하지만, 회의 시간에 삼천포로 빠지면 곧 잘 이야기의 주제를 환기 시켜주는 경향이 있다. 세상 모든 관계에서 대화는 중요하다. 대화가 단절되거나 오해가 생기면 크나큰 불신이 생기고 관계에서 금이 가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면서 중요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애드립의 힘을 강조한다.
우리는 애드립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다. 음악에서 애드립은 곧 즉흥 연주이다. 정확한 용어는 아니지만 청음을 한 후 그 코드에 맞춰서 내 연주를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바로 잼(오브리.째즈) 즉 애드립이라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애드립은 곧 째즈 실력으로 가기 때문이다.
대화에도 애드립이 필요하다. 누군가 화가 나서 말을 할 때도 그 화를 웃음으로 넘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애드립 대화의 힘이다. 회사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다. 출근이나 퇴근 시간 혹은 휴식 시간에 굉장히 웃긴 이야기를 잘 해 주는 편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절대로 남을 비방하면서 하는 유머는 유머가 아닌 것이다. 꼭 남의 허물을 꼬집어서 웃기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언젠가 나의 허물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위트 넘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좋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있고 또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 들일 줄 아는 센스가 있다. 하지만 고지식하거나 유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힘이 든다.


저자는 말한다. 어떻게 애드립의 힘을 키울 수 있을까?
바로 독서와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다. 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특히 영업을 주로 하는 사람은 자기가 판매하는 물건에만 해박해서는 위험하다. 고객이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얼른 파악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후에 영업을 하면 그만큼 대화가 부드러워 진다. 독서나 세상사에 관심이 없이는 이런 애드립은 힘이 든다. 생각하기 나름이기는 하지만 어느 개그 프로나 유행어가 떠돌 때 애써 관심 없을 필요는 없다. 남들이 그 유행어를 할 때 나도 적절하게 받아주는 센스가 필요한 것이다.


솔직히 슐츠의 만화만 보고 그의 철학적인 의미를 다 찾아내긴 힘이 든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내가 그런 철학적 지식이나 또는 지식을 원할 때는 그 의미가 크게 다가 오지만 아무런 생각을 하기 싫을 때는 그 어떤 좋은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이나 충고를 곁들이게 된다면 그 의미가 새삼 달라진다.
한번에 보고 책장에 꽂아 두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생각이 날 때마다 한 컷씩 보고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차피 인생에 있어서 대인관계는 한번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스승은 바로 경험.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슐츠의 피너츠에 대입해 보면 더 큰 의미로 와 닿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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