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쿨투라 CULTURA 2009.봄 - 제13호
작가 편집부 엮음 / 작가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쿨투라 라는 책을 평생 못 접해 볼 수도 있다.
나도 영화 매거진같이 책 소개를 해주는 전문잡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제작사의 홍보의도로 출판물이 많이 나오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쿨투라를 처음 받았을 때 책을 홍보하는 잡지류로 생각했다.
그런데 쿨투라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종합 문화 비평서적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비평에 관해서는 익숙하지 않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비평을 읽게 되면 괜히 쉽던 문학이나 음악 또는 영화가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아서 머리 쓰는 일을 사람들은 많이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비평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다.
내가 읽는 소설, 내가 읊조리던 시, 내가 듣던 음악 그리고 내가 보았던 영화들이 이런 의미와 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다고 해야하나?
쿨트라 봄호를 잠깐 소개 하자면 시,소설,음악,영화,연극에 관하여 각각 1편의 비평들이 수록되어 있고 세태에 대한 비평과 문화 소식이 게재되어 있다.
오늘의 영화,시,소설이라는 책을 읽어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쿨투라는 오늘의 영화,시,소설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한편을 뽑아서 작가와 인터뷰를 하고 그 작품에 대한 비평을 수록했다.
문학만 놓고 보자면 우리는 평생 작가와 조우할 인연이 없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면 혹시나 유명작가의 펜 사인회라도 가볼 요량이지만 지방에 사는 나에게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냥 이 작가가 유명하구나. 아님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고 혼자 상상하곤 말아 버린다. 그래도 쿨투라를 보면서 작가의 직접적인 생각이나 의도를 들어보는 재미가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잘 몰랐지만 최근에 이름을 굉장히 많이 듣게 된 김연수작가의 취미도 알 수 있었고 그 취미가 그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새삼스럽다.
솔직히 아직 문학에 대한 이해력이 많이 부족한 나는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말이다.
세태에 대한 비평의 본명도 꽤나 재미있었다.
요즘의 비평은 비평이 아니라는 말도 많이 있다.
특히 음악이라는 장르에서는 아이돌 그룹이 브라운관이나 라디오를 점령한지 오래 되었다.
세월이 가면 문화도 그 시대에 맞추어서 변하기 마련이다.
원래 음악이라는 것이 내가 듣고 싶으면 군가라도 좋기 마련 아닌가?
어느 누구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 내리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너무 섹슈얼이나 비쥬얼만을 보는 음악 세태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음악성이라고 눈곱 만큼도 없으면서 뮤지션이라고 떠들어 대니 말이다.
그들은 뮤지션이 아니라 댄서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뮤지션은 음악가다. 나는 신세대 아이돌이라고 해서 다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음악이 단순하고 볼품 없을지 모르지만 싱어송라이터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대부분 인정해 주는 편이다. 이렇게 생각이 복잡해 짐으로 인해서 비평을 즐겨 보지 않는지도 모른다.
제2회 쿨트라 신인 문화평론상을 주목해서 보았다.
사실 문화평론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관심이 있었던가?
그런데 중요한 쟁점은 그 주제가 내가 알고 있는 연극이라는 점이다.
정확이 이야기하면 그 연극을 본 것은 아니지만, 원작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웹툰 만화가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연극이다.
강풀 작가의 특색은 다른 웹툰 만화가와 달리 준비기간을 철저히 가지며 스토리 라인을 완벽하게 구축한다는 점이다.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영화,드라마,연극으로 많이 변모하고 있다. 특히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70대 노인 4명의 황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친구와 그 웹툰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남자라고 못 울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만큼 깊이 있는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그런 원작을 연극으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지금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갑준씨의 평론은 정말 가슴에 들어오는 면이 있었다.
원작을 보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문화적 측면의 평론이 더해지니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비평을 잘 모른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또는 음악을 듣고 비평을 하고 싶어도 성격상 어렵다.
내가 과연 다른 사람의 작품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특히 책 서평을 할 때에 가장 많이 겪는 혼란은 바로 혹평에 관한 부분이다.
때론 내가 너무 칭찬만 해서 출판사 홍보 도우미가 아닌가 하는 회한이 들 정도니 말이다.
논평 혹은 비평의 세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크나큰 축복이 아닌가 한다.
이런 논평과 비평이 존재해야만 나를 즐겁게 하는 문화가 더욱 발전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