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김연수 외 지음 / 작가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단편이 좋아요? 아님 중편? 또는 장편?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느 소설이든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쓰지 않는 소설은 없다.
하지만, 글쓰기를 배울 당시에 단편이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단편은 버림의 미학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만 명작이 나온다고 하였다.
오늘의 소설은 작가가 선정한 소설 8편을 수록하고 각 편에 대한 논평이 첨부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옴니버스식 단편 소설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 접해본 단편 소설집들은 신춘문예나 이상문학상 수상자들의 글들이다.
아니 솔직히 몇 권 접해 본적이 없다.
아직 문학에 대한 이해나 소견이 짧아서 그런지 너무 어려운 단어나 철학이 담겨 있으면 침울해 지기 쉬워서 그런가 보다.
내가 아는 작가는 누가 있지? 황석영 작가? 신경숙 작가? 아님 뭐 누가 생각나지?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나는 이렇게 모르기도 하고 존경하는 작가가 없다.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지만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들 중 유일하게 김연수 작가만 알뿐이다. 사실 김연수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서 이 소설을 손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뭐가 문제지? 사실 나는 김연수 작가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가 가장 어려웠다. 쉽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쉬운데 아직 나의 이해력으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소설의 내용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단편이라는 특색에 맞게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김연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무얼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이지? 그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큐티클"이라는 작품으로 넘어갔다.


"큐티클"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이다. 한 직장여성의 단편적인 일상을 소설화 한 것인데 여성의 직장 생활에 관한 스트레스나 또는 사치에 대해서 아주 섬세하게 표현 되어있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이지 알면서 남들이 하니까. 라는 생각으로 따라하게 되는 네일샵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이 안쓰럽다. 세상살기 참 각박하다. 남들보다 잘 하지는 못해도 비슷하게는 가야지. 그게 세상살이 아닌가? 그래도 결국엔 맘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성 내면의 심리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단편소설이었다.


김태용 작가의 "쓸개"는 참 제목 그대로 씁씁한 소설이다. 작가 내면 또는 세상을 바라 보는 관점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아주 짧은 독립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랄까? 죽을지 알면서 달려 드는 불나방 같은 것이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서 주저 앉고 마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건강이 악화되어 쓸개를 잘라 버린 한 남자가 엉망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죽음을 향해 치닫는 소설.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게 했다.


박민규 작가의 "절" 이라는 단편은 정말이지 유머러스 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무척이나 좋아했던 무협 소설 주인공들이 살아 나온 것 같지만 또 그런 소설이 아니다. 단어나 주인공의 이름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기이한 행동들은 무협소설의 그것과 닮았지만 사실 현시대에 대한 비판이다. 오로지 법과 금전의 부로만 성공 가치를 따지는 세속 사람들 속에 200살이 넘은 무협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그리고 세속에 점점 동화되어가는 그들을 통해 작금의 물질 만능 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아마 오늘의 소설에 실린 단편 중에 가장 위트 넘치는 소설이 아니었나 한다.


윤이형 작가의 "스카이 워커"는 새롭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나보다 나이는 어린 작가지만 역시 작가는 작가다. 특이한 소재로 시작하는 스카이 워커. 핵전쟁 후 살아 남은 인류가 용신을 믿으며 예배 의식의 한 부분으로 트렘벌린을 하는데 트렘벌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봉봉 이라는 기구를 타고 공중제비를 하는 것이다. 봉봉을 모르면 곤란한 이야기지만 어릴적 무척이나 좋아했던 놀이 기구라서 주인공과 감정이입이 저절로 되는 듯 하다. 이 소설은 바로 획일화 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획일화된 교육제도와 주입식 성공 주의가 나은 어두운 현실들. 오로지 물질적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획일화된 사람과 조금이라도 틀린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소외 된다. 주인공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예배 의식 중 의도된 틀린 동작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지쳐가는 현대인들이 꿈꾸는 일상 탈출이 아닐까?


이장욱 작가의 "고백의 제왕"은 음침하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현시대는 상실의 시대다. 조금만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육체적 원인보다 정신적 원인으로 더욱 많이 죽어 갈 것이다. 그 이유는 더욱 세분화 되는 세상 속에서 점점 개인은 소외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 소외는 대화의 단절을 놓게 되고 그 단절은 바로 죽음으로 가게 하는 우울증을 놓기 때문이다. 고백의 제왕은 대학 시절부터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나 신변의 일들을 친구들에게 고백하는 그런 친구다. 세상에는 때론 고백해서 좋을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다. 고백의 제왕 곽은 그런 부분이 없다. 대학 시절 후에 모두들 친구 곽을 멀리 하게 되지만, 알고 보면 다들 한번씩 만나서 그의 고백을 듣거나 자신의 고민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곽의 고백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상실의 시대에서 대화의 소중함이나 자신의 문제점을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대한 고찰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인석작가의 "스페인 난민 수용소"는 영천이라는 지역에 난민 수용소가 생기면서 생겨난 일들과 주인공의 의식 변화와 행동들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방어적이 되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난민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생겨나는 난민들과 난민 폭동으로 인해서 어머니가 죽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은 과격한 민족학생운동의 리더가 되게 하였으며 그의 행동은 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며 결국 자신도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지금의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작가는 이런 의도로 소설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또는 남들을 적대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한유주 작가의 "재의 수요일"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요일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스에 불어를 배우기 위해 온 유학생의 이야기다. 그녀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을 하지 않았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모두가 부정적인 단어들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니다라는 주제보다는 없음을 주제로 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꼭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바로 일상에서 오는 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일탈을 원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 나지 않는다.


각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서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처음 생각과 달리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장편소설의 장점도 있지만, 간결하면서도 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편의 장점도 중요한 것 같다. 오랜만에 나를 즐겁게 하는 소설들을 본 것 같아서 행복하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 대한 노고에도 깊이 고개 숙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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