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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
김쿠만 지음 / 허블 / 2025년 3월
평점 :
#도서제공

그 재미없는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어. / p.13
이 책은 김쿠만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예전에 작가님의 <레트로 마니아>라는 작품을 읽었다. 내용 자체는 많이 흐릿해졌지만 느낌만큼은 여전하다. 알 듯 말 듯 조금 애매한 소설. 결코 내용이 애매하다는 게 아니라 재미있으면서도 조용히 흐르는 작품들이었다.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것 또한 애매모호해서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어쨌거나 느낌이 강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신작 발간 소식을 듣고 읽게 되었다. 일부러 어떤 정보도 찾지 않았다. 그냥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IT 기업 직장인들에 대한 이야기인가?'라는 나름의 내용 유추만 했을 뿐이다. 사실 지방 사람이기 때문에 판교는 <응답하라 1994> 속 성동일 가족이 이사가는 신도시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그 느낌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상상의 나래로 펼친 이야기이다.
소설집에는 총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들은 시간을 관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의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현재의 상황을 드러내기도, 더 나아가 미래를 고민하기도 한다. 거기에 SF 소설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다. 예를 들면, 우주에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가수의 노래가 들린다거나 자율 주행이 익숙한 시대에서 핸들을 돌리는 자동차가 있다거나 하는 등의 소재들이 흥미로웠다.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언급했던 것처럼 작품마다 시간의 흐름이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작품집이 단편이기에 별개로 본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참 신경이 쓰였다. 지극히 사적인 기준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250 페이지 전후로 알고 있는데 대략 세 시간 정도 소요가 되었다. 퇴근 시간 이후에 자기 전까지 몰입해서 읽다 보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남쪽 바다의 초밥>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초밥은 로봇 팔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런데 몇 가지 특이한 기준을 갖춘 초밥 장인이 있다. 남쪽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로 초밥을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한 손으로만 초밥을 만든다. 그것도 양쪽 손이 모두 있음에도 말이다. 누군가는 그에게 의문을 가지지만 꿋꿋하게 가르침을 따른다.
현재의 상황과 맞물려 강하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초밥을 만드는 로봇이 익숙하다는 설정도 흥미롭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편견에 대한 사적인 생각이었다. 초밥을 한 손으로 만드는 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왜 그 자체를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특별한 시선으로 보는 것일까. 가장 흔한 예시인 '왼손잡이'가 머릿속에 남았다. 나 역시도 왼손을 더 많이 쓰는 양손잡이 사람 중 하나로서 많은 말들이 떠올라 연관을 짓게 된 것 같다.
여전히 애매모호함을 느꼈지만 전작보다는 많은 감상을 주었던 작품집이었다. 읽는 내내 인간의 다양한 면을 AI나 로봇의 이야기를 빌어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인간이기에 '아, 나도 짜증난다.'라고 느끼는 지점이 있었고, 반대로 인간이기에 '이래서 인간이지.'라는 느낌 또한 받았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와닿은 지점이 하나 있었다. '아, 인간 참 어렵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