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라는 계절
김의경 지음 / 책나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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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이네, 순식간이야. / p.19

내일이면 벌써 입동이라고 한다. 2022 년의 제야의 종소리를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 계절이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삼 개월씩 끊어서 보면 11월은 아직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입동이 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거나 칼바람의 날씨에 옷차림이 조금씩 바뀌어질 때, 또는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떨어져 나무에 가지가 더 많이 보일 때 새삼스럽게 겨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똑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이렇게 계절을 느끼는 것을 보면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같은 하루라고 한다면 계절의 변화나 시간의 흐름도 인지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이렇게 새로움을 찾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는 행복 중 하나이지 않을까. 

이 책은 김의경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표지부터가 사계절을 너무나 직관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에 눈길이 갔던 책이었다. 원색의 강렬한 표지도 시선을 잡아끌기는 하지만 이렇게 심플함이 더욱 눈길이 가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 제목 자체가 주는 편안함도 좋았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님의 일상에서 힐링과 공감을 느끼고 싶어 선택하게 된 책이다.

에세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일간지에 연재된 이야기를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다섯 개의 챕터를 가지고 저자가 경험하면서 느낀 감정들과 각 계절에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한 페이지 반에서 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편들이 구성되어 있다. 한번에 후루룩 읽기에도 좋았겠지만 시간이 나거나 생각이 날 때마다 조금씩 나눠서 읽었고 이 또한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두 편이 가장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사람 사이의 화학 반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글이다. 장애인 활동 보조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던 경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코디네이터는 장애인과 활동 보조인을 매칭하는 업무를 하는데 내용에 나온 것처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것이 하나의 모험이며, 어떻게 묶는지에 따라 관계가 극과 극이 될 수 있기에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 산불을 보면서 활동 보조인을 기다릴 장애인들의 구조 손길이 눈에 그려져 심장이 철렁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아무래도 사회복지를 전공했기에 상황과 감정 자체가 너무나 공감이 되었던 글이었다.

두 번째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중학생 때 왜 어른의 날이 없는지에 대한 토론을 했던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생각 자체가 귀여웠다. 어린이였을 때에는 당연히 어린이를 위한 날이 있기 때문에 어른들의 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궁금증을 가질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래서 태어나서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생각이어서 웃으면서 읽었다. 그러다 당시 한 학생의 이유를 들으니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라는 정의를 누가 내릴 수 있을까. 아이들보다 못된 행동을 하는 염치 없는 어른들의 모습과 어른이 되면 지금 이 시절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묘하게 오버랩이 되었다.

엄마가 자는 동안에 카페의 어른들과 친구를 맺었던 귀여운 한 아이의 이야기와 셀프 빨래방에서 글이라는 수단으로 좋은 말들을 주고받았던 얼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전체적으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사이에서도 아르바이트생에게 자신의 기분을 풀고자 했던 못된 어른의 이야기로 잠깐 인상을 찌푸리게 된 이야기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햇빛이 비치는 이야기들이어서 적어도 에세이 안에서는 계절은 늘 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음마저 따스해졌다. 에세이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일상에서 힐링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공감을 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행복해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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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정온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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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끝내는 사람들의 하루는 대부분 고난하다. / p.124

이 책에 대한 몇 번의 글을 적으면서 다른 책의 리뷰를 적을 때와 다른 점이 눈에 보여 신선하면서도 당황스럽다. 아무래도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자살 예방에 관련된 단체의 전화번호가 상단에 기재되어 있다. 이는 꼭 블로그뿐만 아니라 관련 카페에 글을 게시할 때에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아무래도 나이를 가리지 않고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러한 글 자체가 꼭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책은 정온샘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만 보면 SF의 향기가 묘하게 풍기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요즈음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인 자살과 연관을 지었다는 측면에서 나름의 현실감도 와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너무 막연하게 상상력을 요구하는 SF 소설보다는 현재의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내용을 더욱 선호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회영이라는 인물은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회영의 어머니는 자살을 방지하는 '이지은 법'을 만들게 했던 인물이다. 국가에서는 자살을 하는 사람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법을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이지은 법이고, 어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그 법의 이름인 이지은이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회영은 이러한 가정사를 숨기면서 어둠을 가지고 살았는데 어머니의 친구인 생명보호처 처장의 추천으로 생명보호처 TF팀의 일원으로서 근무하게 된다.

회영이 하는 일은 자살했다는 알림이 오면 이를 막는 일이다. 특정 하드웨어를 작동시켜 30 분 전으로 타임리프를 하게 되고, 이를 붙잡아 재판을 받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보호처의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또한 금지된 업무이기도 하다. 그렇게 99 명의 사람들을 살렸던 TF팀은 한 사람의 돌발 사건으로 좌천이 되거나 업무 중지가 되는 등 위기를 겪는다. 이 상황에서 회영은 하드웨어의 새로운 기능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어머니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위험을 무릅 쓰고 타임 리프를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특히, 가족을 잃고 난 이후 남은 사람들에 대한 아픔이나 생활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읽었기 때문에 전부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회영의 마음은 크게 공감이 되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자살 원인이 자신이 태어난 것에 있었다는 죄책감이나 어머니 삶에 대한 안타까움 등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하나하나 마음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 순수한 의도로 업무에 임하는 남 팀장님과 희태의 사명감과 다른 부채 의식으로 보였다. 아마도 자살하려는 이들을 구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어머니를 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약간 뾰족한 의문이 하나 들었다. 소설에서는 자살을 막는 것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데 이를 죄로 치부해 개인의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한 문제이다. 선진국 유럽에서는 약물을 통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들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게 되면 그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나 베르테르 효과로 인한 모방 자살 등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기에 자살에 대한 예방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생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듯이 사 역시도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통한 심정, 남은 사람들에 대한 정신적인 아픔 등 누군가가 떠난 이후의 감정은 개인과 가족들의 몫일 텐데 국가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노역이라는 처벌을 내릴 수 있을까. 이를 심판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머리로 공감할 수 없었다.

스토리 자체로 본다면 그렇게 어렵게 읽히지 않았음에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쩌면 자식이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점에서 조예은 작가님의 다른 단편집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다. 안타까운 어머니가 아닌 더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회영의 마음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어머니를 둔 한 명의 자식의 입장으로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졌던 소설 내용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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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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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발견됐을 때에도 누가 이렇게 치를 떨었으려나. / p.47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들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발전 속도에 맞는 또 다른 직업이 생성되고 있다. 그 많은 직업들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직업들을 제외하면 뇌리에 박히는 직종이 많지 많은데 신선하면서도 생각을 깊게 하게 만들었던 직업군들이 몇 가지 있다. 대부분 유퀴즈를 통해 만나게 된 새로운 직종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유품정리사와 특수 청소 전문가였다. 장례지도사나 법의학자 등의 직업들은 어느 정도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두 직종은 유퀴즈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추세에 따라 생겨난 직종이기는 할 텐데 강하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인터뷰를 하신 분들의 태도였던 것 같다. 사실 이름만 들으면 조금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릴만한 직종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들을 진심을 담아서 정리해 주신다는 생각과 종사자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쓸쓸한 길을 비추어 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마에카와 호마레의 장편 소설이다. 그동안 읽었던 죽음에 관련된 직종 이야기들은 비소설이었다. 관찰자의 시점이거나 종사자 개인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들이었는데 이를 소설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궁금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감정이나 생각은 비소설이 훨씬 더 와닿기는 했지만 소설로 보는 느낌은 또 다를 것 같았다. 소설에서 오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고자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와타루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이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한 술집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옷차림에 향을 풍기는 사사가와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지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와타루가 사사가와의 옷에 실례를 저지르면서 인연이 되어 사사가와가 대표로 있는 데드 모닝의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게 된다.

데드 모닝은 특수 청소 회사로 고독사를 한 사람들의 공간을 청소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처음 갔던 장소에서 와타루는 고약한 냄새와 집주인의 무례한 말투, 조금은 직설적이고 까칠한 가에데라는 인물 등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이를 거절하려고 하지만 그것 또한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이야기는 의뢰를 받은 현장들에서의 일들을 각각 다루어 전개가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데드 모닝이라는 회사 이름에 대한 순수한 의문이었다. 소설에서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데드(Death)와 모닝(Morning)이라는 단어의 조합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데드는 마지막을 뜻하고, 모닝은 시작을 말하는 건데 어떻게 이게 하나로 모여서 회사 이름을 지을 수 있을까. 특수 청소 회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산뜻했다. 이와 반대로 회사의 사무실은 어둠으로 가득찬 환경이었기에 더욱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삶의 마지막을 보냈던 누군가의 공간에 새로운 시작을 불어넣어 준다는 의미라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리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인상 깊게 보았던 점인데 와타루와 사사가와의 성장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별하게 꿈도 없이 해파리처럼 살아가는 청년의 불안함이 와타루에게 보였기에 이에 대한 부분은 공감이 되었지만 데드 모닝에서 근무했던 아르바이트생으로서의 와타루의 성격은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아들의 산악용 신발을 거부하는 어머니께 끝까지 이를 안겨 주려고 했던 내용이나 사사가와의 어둠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했던 행동들이 조금 오지랖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타루가 현장에서 조금씩 자신이 아닌 타인을 인정하는 모습들을 보여 주면서 이게 안 좋은 것이 아닌 서툴었기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사실로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와타루가 사람을 좋아했기에 보였던 행동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한, 사사가와 역시 냉정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사사가와의 사연 자체가 너무나 공감할 수 있었고, 그의 잘못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와타루의 성장보다는 사사가와의 성장이 더욱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밖에도 중요한 상황에서 고민의 방향을 잡아 주었던 가에데의 역할은 참으로 멋있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마냥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아서 읽는 내내 밝은 마음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극적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체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집주인 또는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아파하지만 이를 삼키는 어머니, 가족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형 등 다양한 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자 이웃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소설에서는 뻔한 클리셰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 역시 너무 현실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도 평범한 이야기가 가진 힘은 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이야기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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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형제들
아민 말루프 지음, 장소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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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 p.109

어느 순간부터 리뷰를 적을 방향을 생각하면서 적는 습관이 생겼는데 책을 읽고 나서도 가닥이 잡혀져 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작가의 의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이다. 전에 언급했던 듀나 작가님의 작품들이 대부분 이런 경우다. 아무래도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결점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스스로 의심을 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게 된다.

두 번째는 생각했던 부분과 전혀 다르게 철학적인 의미를 지니는 경우다. 어떻게 보면 철학 도서를 읽을 때처럼 리뷰를 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줄거리, 인물의 성격 등을 가지고 철학적인 내용을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느낀다. 과연 이렇게 적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이 또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 읽으면서 큰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중간에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혼란스럽다.

이 책은 아민 말루프의 장편 소설이다. 초대받지 않은 형제들이라는 제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도 있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박경리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이다. 노벨문학상처럼 누구나 아는 상이 아니면 대부분 한국적인 이름의 상들은 한국 작가들이 많이 받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누가 봐도 외국 이름의 작가라고 하니까 관심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세계문학상이라는 상 이름만 봐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텐데 편견이 곧 호기심의 원인이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이라는 인물은 대서양에 위치한 안타키아라는 섬에 거주한다. 아버지께서 섬 전체를 구입하면서부터 집안의 소유가 되었는데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그곳에서 화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유일한 주민일 줄 알았던 알렉은 거주민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브라는 삼십 대의 여성이었으며, 소설가라고 한다. 그곳에서 알렉은 라디오에서 들리는 이상한 신호로 세계의 위기를 알게 된다. 이를 기회로 에브와 친해지게 되며, 안타키아 섬 거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공과 오래된 친구인 모로를 통해 인간보다 더욱 발전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만나고 이들과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 읽으면서 철학적인 내용에 많이 당황스러웠던 소설이었다. 갑자기 아가멤논을 비롯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으며, 블랙아웃을 일으키거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들을 보면서 그들을 마치 종교처럼 따르는 인간들의 모습이 참 알 수 없는 감정을 들게 했다. 가벼운 내용의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어지럽게 했다. 과연 이렇게 위대한 능력을 가진 자들을 의지하게 되었을 때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피해와 결과는 어떻게 된 것일까. 소설의 내용 중간마다 화자인 알렉으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이러한 메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명 발전의 무서움을 인지시켜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섬 사람들은 병을 낫게 만드는 모습이 곧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과 질병이라는 이름을 지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한 아이러니가 되는데 이를 지운다면 과연 사람들을 삶을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 것일까. 극중 위대한 능력을 지닌 엠페도클레스의 일원이었던 아가멤논도 이를 우려하면서 빨리 철수할 것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물론, 소설에 등장한 이유는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근본적인 이유는 비슷한 결이라고 보였다.

에브의 모습은 다소 위험하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전형적인 맹목적인 믿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알렉과 모로 등의 인물은 각자의 이유로 이를 철학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거나 우려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섬 사람들 역시 상황에 따라 이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엠페도클레스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믿음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은 어느 이들이 떠올라서 경계의 필요성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물론, 정치적인 흐름에 따라 이동했던 섬 사람들 역시도 위험했다.

리뷰의 방향성을 잡는 것이 어려운 책 중 하나였다. 철학적인 물음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 의료 발달과 발전으로 하루하루 달라지는 세상을 보면서 소설의 이야기가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죽음이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답은 잘 모르겠다.

철학적인 여운이 남는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거기에 페이지 수도 얇기 때문에 술술 읽혔다.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생각 거리를 만들고 싶거나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만족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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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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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의 상징이 귀신을 제압하는 부적이 된다. / p.84

어렸을 때에는 은행 광고를 많이 보았다면 중학교 이후로부터는 생각보다 저축 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광고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저절로 CM송을 따라서 부를 만큼 노래도 참 인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이러한 친근함을 주는 광고가 개인의 부채를 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들이 나왔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은 차무진 작가님의 단편집이다. 부제의 라이프 앤 데스 단편집과 다른 제목이어서 눈길이 끌었다.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거기에 대부 업체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라니 말이다. 단편집 제목 중 하나가 이 제목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내용이 참 궁금해졌다. 

단편집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관통해 총 여덟 편의 소설이 등장한다. 구전으로 듣는 듯한 먼 시대의 이야기에서부터 지금 들어도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배경에서 죽음을 표현하는데 묘하게 느껴지는 소설이 있고, 너무나 생생하게 공감이 되는 소설도 있었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부 소설은 읽으면서 뭉클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일부 소설에서는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참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마포대교의 노파와 아폴론 저축은행이라는 작품이 가장 뇌리에 남았다. 마포대교의 노파는 자살이 많이 일어나는 마포대교를 감시하는 두 경찰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살을 동요하게 만드는 노파를 감시해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박 경사와 김 순경이 등장하는데 박 경사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인물이다. 경찰 내에서도 왕따인 인물이었는데 마포대교를 감시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의 파트너로 김 순경이 자원한다. 박 경사는 사실 귀신이 보이는 인물이었고,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반드시 다리에서 뛰어내린다는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이후 박 경사의 능력으로 확인을 해 보니 사실이었고 김 순경은 이를 막을만한 묘책을 세워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김 순경의 아이디어로 관부의 상징이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부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김 순경의 모습을 보면서 직업적인 열정이 느껴졌지만 가장 크게 와닿은 포인트는 박 경사의 비밀과 사건의 전말에 대한 감정이었다. 노파의 모성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코미디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전개가 되었는데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서 뭔가 이름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다. 아들 또는 딸이라는 생각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지키지 않았을까 싶다.

표제작인 아폴론 저축은행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첫째 아들은 아픈 상황이며,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빚을 지고 있다 보니 택시 기사로 겨우 먹고 살고 있는 듯하다. 빚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결국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이를 포기한다. 그렇게 절망에 살고 있던 어느 날 남자의 택시에 한 노인이 손님으로 탄다. 그 노인은 이상한 이야기를 남기면서 아폴론 저축은행으로 남자를 인도했다. 거기에서는 빚을 빌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은행에서 상담을 받고 보니 남자에게 9 억 5 천만 원을 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나중에 남자에게 10 억의 돈이 들어올 예정이며, 미리 돈을 준다는 것이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소설 내용이었다. 미래에서 받을 돈을 미리 받을 수 있다는 소재 자체가 참 독특했다. 사람의 한치 앞도 모르는 미래에 돈이 어디에서 나올 줄 알고 이를 예상해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일까. 거기다 남자의 경우에는 도저히 돈이 나올 구석이 없었다. 처음부터 뭔가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결말을 보고 참 많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남았다. 과연 나에게 미래의 돈 10 억을 미리 끌어서 빌려 준다고 하면 수락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난 이후 나의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그동안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었던 소나기가 떠올랐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엄마를 기다리는 두 아이의 이야기, 라면과 떡볶이에 빠진 과거 옛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 전혀 죽음이 떠오르지 않는 주제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부제 그대로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집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새삼스럽게 느꼈다. 전체적으로 소설은 무거우면서도 가라앉는 느낌을 주었다. 

책을 덮으면서 삶과 죽음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죽음이라고 하면 조금은 멀게 느껴졌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게 무엇일까.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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