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사의 사랑
이순원 지음 / 시공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 가을이었다. / p.302

작은 일에 크게 놀라거나 긴장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세상 무서운 게 참 많은 편이다. 좀비나 귀신이 나오는 영화, 뱀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피가 터지는 현장을 다룬 뉴스 보도까지 개인적으로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 영상으로 넘쳐난다. 무서움을 느끼는 것과 불호의 문제는 또 별개의 영역이므로 용기를 내서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나면 내리 며칠은 긴장하면서 보낸다. 

그 중 하나가 박제에 대한 공포이다. 요즈음은 흑역사나 악성 댓글들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니 그 의미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머리에 박힌 박제라는 단어는 조금 무서우면서도 서늘한 느낌을 준다. 특히, 드라마나 프로그램으로 잘 사는 집 거실에 부엉이나 사슴 머리 등 박제 동물을 장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다 찰나의 순간에 그 박제된 눈을 마주치게 되면 그렇게 무서울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은 기억속에서 박제 동물에 대한 그림은 흐릿해졌지만 그 서늘함만큼은 언제든 다시 떠오를 정도로 너무 선명하다. 겁이 많은 성격이 어디 안 간다고 느낀다.

이 책은 이순원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박제사라는 직업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처음에는 박씨 성을 가지고 제사의 직위를 가진 고전 이야기로 예상했었다. 박제사라는 하나의 단어가 아닌 박 제사로 읽혔던 것이다. 줄거리를 보니 박제 관련 업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소 생소한 직업이지만 박제사와 사랑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박인수는 과거에 장례지도사 조수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현재는 박제사를 하고 있다.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내용도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다. 박인수는 일을 끝나고 오전에 퇴근해 씻던 중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를 발견한다.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내뿐이기에 이를 따졌지만 아내는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내는 자살을 하게 되었고, 박인수는 아내의 죽음을 몰고 간 남자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은 아내의 휴대 전화에 찍힌 두 개의 연락처와 그로부터 이어지는 아내의 죽음,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고자 노력하는 박인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차분한 박인수의 마음에 의문이 들었다. 보통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 본능에 가까운 울분 또는 분노를 표출하기 마련인데 아내에게 임신테스트기에 대한 내용을 따져서 물을 때부터 아내의 유골을 강가에 뿌리는 순간까지 너무나 차분했다. 박인수의 성격도 그렇지만 추리하는 스타일 자체도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고자 감정적으로 해결하는 편이라기보다는 차분하고도 조용하게 이성적으로 차근차근 밟아가는 스타일이었다. 분노로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아닌 그저 말 그대로 찾겠다는 의미로만 읽혀졌다. 심지어 아내의 휴대 전화로 문자를 남긴 한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예의 바르게 대화를 나누었으며, 만난 이의 심정까지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박인수는 왜 아내의 죽음을 몰고 간 이를 찾으려고 했을까. 

또한, 박인수를 대하는 아내 동생의 행동도 이상하리만큼 의심이 갔었다. 박인수에게 아내의 휴대 전화를 얼른 정지시키라는 종용을 하는데 그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내의 죽음을 마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오지랖이 넓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중간에 이르러서는 아내를 죽인 사람이 동생이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피를 나눈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박인수에게 그런 예의 없는 발언들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 부분이 너무 과했던 것 같다.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말이 등장하면서부터 분노와 함께 추리의 틀이 깨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사실 박인수의 생각처럼 죽은 아내의 휴대 전화에 문자와 전화를 거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했었던 터라 결말에 대한 충격이 컸다. 아내 동생의 행동으로 상반된 결말을 맞았기에 그들에 대한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한, 사건의 진범이나 원인을 파헤치는 내용이 아닌 아내의 발자취를 이해하기 위해 추리하려는 느낌을 주는 묘한 소설이었다. 그 안에서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자기 인생을 희생했던 아내가 아닌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아내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박인수도 이처럼 느꼈을 듯하다.

읽는 내내 제목의 뜻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었다. 박제사인 박인수의 사랑은 무엇일까. 아내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열정적인 사랑도 아닌 듯했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게 아내를 향한 것인지 박제에 대한 업을 향한 것인지조차도 흐릿했다. 소설의 틀은 아내의 죽음을 향하고 있지만 박제사라는 직업에 박인수의 생각도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서늘했지만 굳이 조금의 열정적인 부분을 찾는다면 아내를 향한 사랑보다는 박제사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에서 이를 이해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나름대로 박제사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어렴풋이 해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읽었던 추리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격정적인 복수에 가득찬 남편의 추리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그것보다 더 깊은 마음을 가진 남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던 소설이었다. 뭔가 마음이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이 흩날리는 겨울을 연상하게 했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푸른 빛과 같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