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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양세화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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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합해 본 바로 이곳은 감정과 관련된 세계였다. / p.19
주위에서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람이어서 감정 따위는 없는 AI 로봇이라는 소리를 하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하루도 되기 전에 월드컵 16강 소식에 몰래 눈물을 짓기도 했다. 나름 애국심이 차올랐던 것 같다. 애초에 이성적인 인물이었다면 이런 일에 눈물은커녕 반응 자체도 없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베이스의 분노를 비롯해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의 바다는 늘 폭풍우를 치고 있지만 왜 주위 사람들은 나를 평온한 사람으로 보고 있을까. 단지 그렇게 표시가 나지 않았던 것뿐일까. 이게 나에게는 새로운 미스터리이자 고민이다. 생각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이기도 하다. 무던한 편에는 누구보다 평온한 삶을 유지하지만 태풍처럼 크게 요동칠 때가 더 많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 책은 양세화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 자체가 군더더기없이 깔끔했다. 아마도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는 가장 짧은 제목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보다 감정의 폭풍을 몰고 올 것 같은 간결한 제목에 그렇지 못한 평온한 표지라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과 표지로 선택하는 일이 생각보다 잦아지고 있는 편인데 그러한 바뀐 성향 때문에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도담이라는 인물은 취업 준비생으로서 힘든 삶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어떤 사람을 따라가다 자신이 느끼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도달한다. 감정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로 텅빈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일하는 것은 똑같으나 별사탕으로 통용이 되고, 끈끈이로 별사탕을 만들어 감정이 채워지면 현실로 다시 갈 수 있는 세계이다. 도담은 그곳에서 앤이라는 친철한 사람을 만나고, 조금은 사회와 격리된 용이라는 아이를 만난다.
처음에는 도담이라는 인물이 마치 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항상 보이는 불합격의 메일이 주는 자괴감이 그랬다. 주위에서 애정 어린 위로를 해 준다고 하지만 그 몇 줄의 글이 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며칠은 끙끙 앓으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도담이 울었을 때에는 나 역시도 그랬다. 이런 마음으로 도담에게 더욱 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감정이 텅빈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감정적이라는 세계는 뭔가 새롭다고 느껴졌다. 사실 대한민국의 사회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더욱 앞서고 있다고 느끼다 보니 더욱 흥미로웠다. 관리자, 앤 등 감정적이라는 곳에 있는 인물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느껴졌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감정이 비어 있는 도담이 감정적에 들어가면서 조금은 바뀌는 모습들을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가장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사실 별사탕을 비롯해 다른 장치들이 있음에도 감정적이라는 세계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이기도 했다. 특히, 앤과 지용이 떠나는 순간과 사회와 격리된 용의 모습이 그랬다. 분량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용이 가진 경계심이 풀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감정에 대한 소재만 빼고 보자고 하면 살고 있는 세상과 비슷했다. 새로운 사람을 경계하는 것부터 마음을 주었던 인물이 세계로 돌아가는 것까지 말이다.
감정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야기는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주었다. 소설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이성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용 자체는 술술 읽혀졌지만 감정 자체에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