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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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이의 유대는 공기보다 가벼웠다. / p.77

영상 매체 원작 소설이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무래도 영상과 활자를 비교해서 보는 재미를 크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모르는 작품이어도 시선이 고정되는데 이미 영상으로 봤던 작품이라면 더욱 몰입한다. 머릿속에 명장면들이 펼쳐지면서 이를 글로 다시 느끼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온다.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중에도 그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게 병이라면 병인 듯하다.

이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 소설집이다. 책을 고른 이유는 가장 눈에 들어온 영화 한 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추천을 많이 받아서 보았던 캐롤이었다. 영상미가 뛰어난 작품을 좋아하는 터라 인상이 강하게 남았는데 소설로 읽기 위해 당시 구매까지는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방치하다 결국 중고 서점에 팔았던 기억이 있다. 캐롤의 작가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을 읽고 취향에 맞는다면 캐롤도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읽게 되었다.

책에는 몇 장 정도의 소설부터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소설까지 다양한 분량의 소설 총 열여섯 편이 실려 있다. 인상에 깊게 남는 작품도 있었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작품도 있었다. 특히, 초반에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꽉 막힌 결말을 선호하는 편이기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마무리 방식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읽으면서 물음표를 내내 달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스타일을 인지한 이후부터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초반에 실린 작품보다는 중후반에 실린 작품에 마음이 갔다. 그 중에서도 <시드니 이야기>, <영웅>, <달팽이 연구자> 세 작품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꽤 흥미로웠다. <시드니 이야기>는 시드니라는 이름을 가진 거미 이야기이다. 시드니는 매일 파리만 주는 어머니께 반찬 투정을 하다가 독립을 선언해 다른 곳으로 떠난다. 떠나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시드니에게 파리를 주었는데 젊음의 패기인지 그것조차도 거부하면서 큰 거미줄을 친다. 먹이를 기다리고 있던 시드니에게 사건이 펼쳐 진다. 수록된 작품 중에서 짧은 분량의 소설인데 공감은 가장 크게 되었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해피엔딩이 아닌 불완전한 준비로 부모님을 떠나갔던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독립을 그렇게 바라던 어린 시절 생각도 들었다.

<영웅>은 시골로 취업한 한 가정 교사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가진 광적인 병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음에도 광기에 사로잡힐 것이라는 불안함을 가지고 시골의 한 부자 저택으로 취업한다. 그곳에서는 두 아이와 친절한 부모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정 교사를 하면서 무엇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돌본다. 주인공은 광기를 경계하면서도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가장 섬뜩했던 작품이었는데 처음에는 주인공의 마음이 와닿았다. 가족이 없는 자신에게 일거리와 돈, 거처를 제공하는 고용주에게 충분히 감사함을 느끼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반에 이르러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서 과연 의사의 말이 진짜인지 의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행동이 곧 돌이킬 수 없는 연극 무대을 꾸미는 배우처럼 느껴졌는데 이상하게 현실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 연구자>는 달팽이를 키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달팽이가 교미하는 모습에 반해 서재에서 달팽이를 키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달팽이에게 집중해 교미를 보거나 연구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가족들은 밟게 되거나 냄새가 난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결국에는 이 또한 포기했다. 결국 서재가 곧 달팽이의 방이 되었다. 주인공의 일이 많아지면서 달팽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아내는 서재를 들어가보라는 말을 한다. 아이돌이나 책 등 무언가에 미친듯 몰두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광기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특히, 결말이 참 충격적이었는데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성공의 초석이 되기도 하지만 작품을 읽고 나니 이성까지도 지배가 된다면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교훈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밖에도 신비로우면서도 어두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파멸과 욕망, 광기 등의 어두운 면을 확 이끌거나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어서 여러 의미로 인상적이었다. 원래 어두운 소설 자체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철학적인 물음과 인간에 대한 질문들이 소설 곳곳에 녹아 있어서 좋았다. 어둡다고 해서 무조건 우울하지 않다는 증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상상력이 활자로 표현된다면 이 소설이 떠오르게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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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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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비행기를 타고 이륙한 적은 없다. / p.10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점에서 동갑이거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과 공감 형성이 더 잘 되다 보니 친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에 주변 친구들 중에는 동년배가 많다. 거의 동갑 친구들이 대다수이기도 하다. 서로 힘든 고민이나 신세한탄을 같이 털어놓으면서 연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낄 때가 많아 그만큼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가장 친한 사람들을 보자면 동년배와 한참 거리가 멀다. 특히,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상사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료 등 연배가 다른 분들과 어울릴 일이 많다. 회사 이야기를 터놓는 상대만 보더라도 어머니 연세 또래의 상사와 위로 열 살 정도 많은 입사 동기가 그렇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지는 않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회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눈다는 측면에서 가족과 더욱 가깝다. 그것 또한 하나의 친구이지 않을까.

이 책은 매리언 크로닌의 장편 소설이다. 줄거리에 압도되어 고른 책인데 청소년기를 보내는 한 사람과 노년기를 보내는 한 사람의 우정이 궁금했다. 친구 사이에서는 나이가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산이 꽤 오래 변화하는 차이라면 조금은 거리감이 들지 않을까. 두 사람의 진정한 우정이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레니로 시한부 환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인식하는 시한부와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정보가 없으면 평범한 청소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과 행동에 거침 없이 솔직하다. 신부에게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난처한 질문을 던질 줄 알고, 간호사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레니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또 다른 주인공은 마고로 아픈 노년의 인물인데 연세에 비해 당차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생각보다 활동적이기도 하다. 마고 역시도 레니 못지 않게 과거가 있는 인물로 누구보다 레니를 끔찍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레니와 마고는 병원 미술실에서 만난 인연을 계기로 친구가 된다. 도합 백 살의 친구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같이 이루기로 한다.

처음에는 레니의 상황에 몰입하면서 읽었다. 겉으로 보면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간호사의 도움 없이는 성당에 계시는 신부님을 만나러 가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아프다는 내용에 마음이 아팠다. 특히, 초반에 성당 신부님께 왜 죽어가야 하는지 묻는다거나 하나님은 왜 대답을 해 주시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따지는 모습은 참 공감이 되었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시한부의 삶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청소년 환자라고 하지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져서 더욱 안타깝게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마고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단순하게 레니와 마고가 병이 있다는 공통점 외에도 참 많은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니가 느꼈던 그리움 또는 외로움, 마고가 느꼈을 죄책감 등 과거에 있었던 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감정 자체가 하나로 묶인 듯한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마치 오래 만난 친구처럼 서로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는 모습들은 뭔가 모르게 뭉클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보면서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이라는 작품이 많이 떠올랐다. 아마 그 소설의 주인공인 지연이 그 나이 그대로 돌아간다면 새비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곧 레니와 마고의 사이처럼 되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물론, 밝은 밤은 4대로 이어지는 가족 역사의 이야기라는 점이 큰 틀 자체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밖에도 인물들은 레니의 진심을 알아 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는 레니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대답해 주었던 성당 신부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직업 의식이 조금 부족한 듯 보여도 항상 레니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신규 간호사, 나중에는 다른 인연으로 만나 마고와 레니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계약직 직원까지 누군가 보면 철이 없다고 느낄 청소년 레니에게 소중한 인연들이 되어 주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친구를 만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를 향한 진심만 있다면, 그리고 마음을 열 수 있다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로 다시 증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의 우정만큼은 한겨울을 녹이기에 뜨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로 추운 겨울에 읽게 되어서 더욱 다행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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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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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은 인생에도 '뒤로 가기' 버튼이 있었으면 싶어요. / p.153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책 리뷰를 하면서부터 책의 저자이신 작가님들께 많은 자극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예전에 비해 책 집필에 대한 허들이 낮은 편이거나 책을 집필하신 분들께서 유튜브 매체로 진출하시는 사례가 많다 보니 또 다른 이미지로 만나 뵙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차이가 느껴지면서도 그게 또 반갑기도 하다.

이 책은 김소영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누군가는 방송인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CEO이자 서점 주인으로 더욱 익숙한 분이다. 뉴스나 매체로 자주 등장하셨다고 하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예전에 읽었던 일본 서점 관련 에세이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할 정도로 익숙한 분이기에 이번 에세이에도 큰 기대를 했다.

이 책은 책발전소 북클럽을 진행하시면서 보냈던 편지 모음이다. 개인적으로 읽었던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 금정연 작가님의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를 비롯해 그동안 읽고 싶었던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김겨울 작가님의 책의 말들,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 등 흥미로운 책의 이야기와 저자의 이야기들이 적절하게 어울려 읽는 재미가 있었다. 두껍지 않은 페이지에 문체 자체도 어렵지 않어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슬아 작가님와 남궁인 작가님의 서간체 에세이인 <우리 사이의 오해가 있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두 분 다 알고 있는 분이기는 하지만 두 분의 편지 에세이가 나왔다는 사실은 책발전소 홈페이지를 구경하다 알게 되었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라는 김연 시인의 시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저자의 생각과 어울러진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평범한 서간체가 아닌 서로를 놀리면서 진행되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서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밖에도 에리카 산체스의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를 읽으면서 착한 누군가의 역할을 하고자 고군분투했던 이들을 위로하는 이야기, 금정연 작가님의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에 등장하는 맘충에 관한 의견 등 저자의 생각들이 하나하나 공감이 되었다. 사실 크게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일부 결말이 중요한 책이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야 될 부분이 있을 경우에는 미리 참고할 수 있게 관련 내용을 명시해 두었는데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두 권을 제외한 다른 도서는 처음 보았기에 스포일러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미리 읽기 전에 조심해야 될 부분을 알려 주어서 좋았다.

덕분에 좋은 책들을 많이 알 수 있었으며, 저자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마치 전작의 에세이를 읽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제목처럼 무뎌진 감정을 가진 이들에게 또는 일상의 지친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어떻게 보면 특별한 사건이나 일들이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 책들의 이야기에 몰입되어서 큰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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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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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요정이 있다. / p.89

이 책은 이유리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늘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트리플 시리즈 보자마자 바로 관심을 가지게 될 정도로 믿고 보는 시리즈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유리 작가님의 전작이었던 브로콜리 펀치에 대한 추천을 너무 많이 받았다. 읽을 책이 많은 관계로 아직 도전은 해 보지 못했지만 신작에 트리플 시리즈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도전을 해 보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세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첫 작품이자 표제작이었던 <어떤 것들의 세계>는 주인공인 고양이라는 인물이 저승사자를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승에서는 현실에서 기억한 사람이 사라진다면 그들도 저승에서 떠나게 되는데 이승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영혼 결혼식을 해 주셔서 저승에서 남편이 생겼다. 천주안이라는 인물이었다. 주안의 사연을 들으면서 저승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더 나아가 천주안의 옛 연인을 같이 찾아가 주기까지 했다.

두 번째 작품이었던 <마음소라>는 과거 한 커플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양고미는 남도일이라는 대학 동기에게 마음소라를 선물받는다. 마음소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선물을 주면 다른 사람에게 양도가 불가능한 물건이다. 또한, 다른 이는 들을 수 없다. 남도일은 양고미에게 고백하면서 마음소라를 건넨다. 양고미는 처음에 조금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결국은 남도일의 마음소라를 받고 풋풋한 연애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연애 기간이 오래 지나 그들도 이별을 했다. 양고미는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한 상황에서 남도일의 아내에게 전화가 왔고, 마음소라를 돌려 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세 번째 작품인 <페어리 코인>은 주인공인 화자가 데리고 있는 요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자는 고조모 때부터 불멸이었던 요정을 데리고 살고 있다. 먹이부터 행동까지 어떻게 보면 애완 동물보다는 수월하게 키울 수 있었는데 화자 내외는 부동산 사기로 거액의 돈을 날릴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중 화자 남편의 친구의 제안으로 요정을 활용해 대국민 사기를 치자는 말을 듣게 된다. 분명 요정을 깊이 생각하던 화자는 이해가 안 되거나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이를 수락한다.

전체적으로 사랑스러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한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와닿았다. 에세이에서 더욱 저자의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었다. 첫 번째 작품에서 영화 코코가 떠오르기도 했었다. 물론, 코코는 가족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사라지게 되고, 이 작품에서는 가족 외의 인물이 기억하면 된다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게임을 통해 이를 유지하고 있는 양미와 전 애인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주안의 마음이 공감되었다.

그밖에도 마음소라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설정이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스스로에게 이입되어 마음소라를 준다면 호기심에 한두 번 듣다가 이를 안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기에 오해와 싸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고미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되어 무너진 순간을 애초에 피했을 듯하다. 세 번재 작품을 보면서 가장 이해가 안 되기는 했지만 해설을 보면서 어렴풋이 저자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트리플 시리즈에서 흔하지 않게 에세이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마음속에 있는 여러 저자들이 모여 나누는 회의가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묘하게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저자는 왜 사람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의제를 가지고 여러 자아들이 펼치는 이야기와 다른 주제를 다루는 또 다른 자아들까지 읽는 내내 참 재미있었던 것 같다.

역시 트리플 시리즈는 명불허전이다. 물론, 이는 나의 기준으로 그렇다. 사실 브로콜리 펀치 작품의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고민이 되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게 되었고, 시간이 될 때 꼭 읽고자 다짐할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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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양세화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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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합해 본 바로 이곳은 감정과 관련된 세계였다. / p.19

주위에서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람이어서 감정 따위는 없는 AI 로봇이라는 소리를 하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하루도 되기 전에 월드컵 16강 소식에 몰래 눈물을 짓기도 했다. 나름 애국심이 차올랐던 것 같다. 애초에 이성적인 인물이었다면 이런 일에 눈물은커녕 반응 자체도 없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베이스의 분노를 비롯해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의 바다는 늘 폭풍우를 치고 있지만 왜 주위 사람들은 나를 평온한 사람으로 보고 있을까. 단지 그렇게 표시가 나지 않았던 것뿐일까. 이게 나에게는 새로운 미스터리이자 고민이다. 생각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이기도 하다. 무던한 편에는 누구보다 평온한 삶을 유지하지만 태풍처럼 크게 요동칠 때가 더 많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 책은 양세화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 자체가 군더더기없이 깔끔했다. 아마도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는 가장 짧은 제목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보다 감정의 폭풍을 몰고 올 것 같은 간결한 제목에 그렇지 못한 평온한 표지라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과 표지로 선택하는 일이 생각보다 잦아지고 있는 편인데 그러한 바뀐 성향 때문에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도담이라는 인물은 취업 준비생으로서 힘든 삶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어떤 사람을 따라가다 자신이 느끼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도달한다. 감정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로 텅빈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일하는 것은 똑같으나 별사탕으로 통용이 되고, 끈끈이로 별사탕을 만들어 감정이 채워지면 현실로 다시 갈 수 있는 세계이다. 도담은 그곳에서 앤이라는 친철한 사람을 만나고, 조금은 사회와 격리된 용이라는 아이를 만난다.

처음에는 도담이라는 인물이 마치 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항상 보이는 불합격의 메일이 주는 자괴감이 그랬다. 주위에서 애정 어린 위로를 해 준다고 하지만 그 몇 줄의 글이 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며칠은 끙끙 앓으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도담이 울었을 때에는 나 역시도 그랬다. 이런 마음으로 도담에게 더욱 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감정이 텅빈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감정적이라는 세계는 뭔가 새롭다고 느껴졌다. 사실 대한민국의 사회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더욱 앞서고 있다고 느끼다 보니 더욱 흥미로웠다. 관리자, 앤 등 감정적이라는 곳에 있는 인물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느껴졌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감정이 비어 있는 도담이 감정적에 들어가면서 조금은 바뀌는 모습들을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가장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사실 별사탕을 비롯해 다른 장치들이 있음에도 감정적이라는 세계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이기도 했다. 특히, 앤과 지용이 떠나는 순간과 사회와 격리된 용의 모습이 그랬다. 분량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용이 가진 경계심이 풀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감정에 대한 소재만 빼고 보자고 하면 살고 있는 세상과 비슷했다. 새로운 사람을 경계하는 것부터 마음을 주었던 인물이 세계로 돌아가는 것까지 말이다.

감정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야기는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주었다. 소설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이성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용 자체는 술술 읽혀졌지만 감정 자체에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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