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
산다 치에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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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니까. / p.11

클리셰는 매운 음식과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매운 음식을 못 먹는 나에게는 떡볶이가 딱 그렇다. 이미 알고 먹으면서도 매운맛에 호되게 당해 금방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러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에는 어김없이 떠오른다. 맵다는 사실도, 못 먹으면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도 전부 알고 있으면서 또 떡볶이를 주문해 먹다 계속 그 과정을 반복한다. 

예상이 가는 이야기이지만 자꾸 찾게 된다. 즐겨 보는 드라마에서도 그런 클리셰가 자주 등장한다. 부모님의 반대, 외부의 압력으로 만나자마자 이별, 서로 엇갈리는 길, 연인의 불치병 등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상상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말이다. 설 연휴에도 그런 드라마 연속 방송에 빠져 살았다. 한동안 독서에 집중하느라 그 드라마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었다. 그렇게 설 연휴에는 단 한 권의 책도 끝내지 못했다. 클리셰가 뻔히 드러나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이 책은 산다 치에의 장편 소설이다. 보자마자 최근 인기를 얻었던 한 소설이 떠올랐다. 꽤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소설이었는데 읽지 못했다. 이후 스핀오프로 발간된 후속 작품을 읽었는데 줄거리에서부터 그런 내용이 느껴져서 고르게 된 책이다. 연애 소설이 주는 묘미가 있기에 알면서도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리나는 보석병을 앓고 있다. 보석병은 심장에 종양이 생기는 병을 뜻한다. 종양이기는 하지만 희귀해 크기를 키워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가치가 오른다고 한다. 심장에 생기는 보석과 같은 존재이다. 리나는 보석병을 치료해도 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된다. 수술이 다가오는 순간에 자신의 종양을 키워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 그렇게 리나는 남은 시기에 사랑과 우정을 둘 다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병원 근처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쇼타라는 이름의 한 남자 아이에게 고백한다. 또한, 미사토라는 이름의 친구를 사귀게 된다. 리나가 원하던대로 미사토와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쇼타와 풋풋한 사랑을 이어간다. 아무런 방해물이 없을 것 같던 리나의 사랑에 금이 갈 일이, 우정을 의심할만한 일이 생겼다. 그 안에서 리나는 생각이 바뀌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야기는 쇼타와 리나의 시선에서 일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흘러가는 내용은 생각했던 그대로이다. 읽지 않았던 그 소설이 머릿속으로 재생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자 주인공은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남자 주인공은 그런 여자 친구를 보면서 힘들어하거나 함께 아파한다. 또한 미래를 약속하기도 한다. 중반까지 읽었을 때의 느낌은 역시나 떡볶이를 먹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연애 소설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에서 표현되는 클리셰의 연속. 그러나 이렇게 작품으로 다시 보니 나름 반갑다는 느낌도 들었다. 예상할 수 있었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중반에 넘어가고 결말이 드러나면서부터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해서 중반부터는 다시 돌아가서 읽었던 것 같다. 추리 소설도 아닌 결말에서 당황스러움을 느낀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뻔한 결말로 수렴이 되겠지만 말이다. 너무 클리셰로 시작해 흔하게 끝난다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그 지점은 나름 신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나의 시한부 인생이 참 안타깝다 느껴지면서 진정한 우정의 의미와 사랑을 찾아가고 각성하는 이야기가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 그냥 생각했던 것처럼 미사토에게 우정을 느끼고, 쇼타에게 사랑을 경험하면 되지 않았을까. 미사토의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바람이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느꼈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 순간에는 이기적이어도 됐을 텐데 말이다. 리나의 생각을 고쳐 주려고 하는 미사토의 어른스러움은 본받을만했다. 리나는 진정한 우정을 의심했을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것 또한 진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리셰가 뻔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주 찾게 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다. 안 봐도 비디오이겠지만 정작 보게 되는 나처럼 말이다. 읽는 내내 리나에게 이입했고, 미사토처럼 누군가에게 든든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했다. 익숙한 느낌이 좋았던 그런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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