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박철화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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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이 있다는 건 믿어요. / p.30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기가 빨리는 순간이 있다. 작년에 큰 인기를 얻었던 '지구 오락실'에서 한 출연자가 이 프로그램을 끊어서 본다는 내용의 댓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댓글에 누구보다 크게 공감을 했고, 지인들과 한참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했었다. 나와 같은 내향형의 지인들은 수긍했었던 반면, 외향형의 동생은 출연진들과 함께 저렇게 놀고 싶다고 부럽다고 했다. 같은 배에 나온 자매도 이렇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다. 즐겨 보는 유튜버의 인생 소설이자 가수인 장재인 님께서 언급했던 책이어서 되게 궁금했다. 사실 주변에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적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화장법에 큰 관심이 없다. 사실 화장 자체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로서 흥미 요소 하나 없는 제목인데 묘하게 끌렸다.

소설은 공항에서 연착을 기다리는 제롬 앙귀스트에게 낯선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남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안 그래도 연착이 되는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났던 제롬은 옆에서 자꾸 말을 거는 텍셀이라는 남자가 거슬린다. 불편한 심기를 계속 어필했음에도 텍셀은 제롬 옆에 붙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네덜란드에서 온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며,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서 말이다. 제롬은 내내 불편한 상황에서도 텍셀의 이야기를 툭툭 반응해 준다. 내용은 그것이 전부다. 물론, 후반부에 이르러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말이 벌어진다.

읽는 내내 제롬보다 더 불편함을 느꼈다. 우선, 극강의 내향형에게 가장 고역이었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전제부터가 성사될 수 없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그 상황이 기가 빨리는 수준으로 힘들었다. 제롬은 그나마 텍셀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거나 비판을 보이는 등의 태도를 보이지만 속으로는 제롬을 만류하고 싶었다. 차라리 무반응이 더 나았을 법했다.

거기에 텍셀의 과거 행동들도 참 불편했다. 처음에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가지고 범죄자라고 칭해서 어이가 없어서 웃겼던 것 같다. 그러다 점점 범죄의 수위가 올라갔고, 텍셀은 강간과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내부에는 적이 없다는 제롬의 생각과 신념에 훈수를 두는 꼴이라니 실제 상황이었다면 속으로 비속어를 내뱉지 않았을까. 텍셀이라는 인물 자체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 것이 더 이상했다. 

불쾌한 감정으로 읽으면서도 제롬과 텍셀의 티키타카는 참 웃기면서도 흥미로웠다. 여자를 쫓아가는 상황 중에 핫도그를 먹었다는 텍셀의 말에 소시지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제롬의 말이라든지, 텍셀이 집착하는 여자의 반응에 반대말 찾기처럼 여자를 높여 주는 부분이라든지 풍자하는 핑퐁 대화가 그나마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소설에 몰입할 수 있는 매력을 주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불쾌함으로 시작해 난해함으로 끝났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장세니즘이나 신의 존재를 논하는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상적이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하나, 좋아하는 취향과 거리가 있었다. 그 부분은 참 아쉬웠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이런 내용을 말하니 인생 책이면서 흥미롭게 읽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책의 세계는 참 넓고도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부정적인 느낌을 주었던 소설이었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기반 지식이 충족이 된다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아마도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난 이후에 나중에 다시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어떤 의미로든 뇌리에 크게 박혔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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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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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출신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 p.127

지인들과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만들지는 않는다고 표현하는 편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비밀이 곧 하나의 자신의 방처럼 느껴져서 간직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느끼는 입장이지만 의도적으로 비밀을 생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괜히 남에게 내가 가진 패를 들췄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일이 있기에 그저 말을 아낄 뿐이다. 그게 비밀이라고 한다면 비밀을 잘 만든다고 해야 될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비밀도 곧 숨겨진 돈과 같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책은 우샤오러의 장편 소설이다. 꽤 오래 전부터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많이 보았던 표지 중 하나였다. 궁금했던 소설이었는데 아무래도 도가니라는 영화를 너무 강렬하게 봤던 터라 더욱 관심이 갔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스릴러 추리 소설이라면 따지지도 않고 바로 마음이 동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판옌중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판옌중은 누가 봐도 부럽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재벌의 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으며, 직업 자체도 변호사라는 점에서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재벌 가문과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이혼했으며, 이후 딸의 학원에 다니는 우신핑이라는 강사와 재혼했다. 우신핑은 전 부인과 다르게 자신의 과거와 속내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점에서 판옌중은 우신핑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다 우신핑이 사라지면서부터 이야기는 다른 부분으로 흘러간다. 판옌중은 사라진 아내를 추적하던 중 자신에게는 말하지 않은 휴가를 매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자신에게 말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진실에도 직면한다. 판옌중이 알지 못했던 우신핑의 과거와 사건들, 우신핑이 사라지게 된 이유 등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로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판옌중의 시선으로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우신핑의 현재 상황에 대한 추측과 판옌중의 감정이 우선적으로 먼저 와닿았다. 갑자기 가족이 사라진 상황에서 알고 있던 사실이 전부 뒤집어졌다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 등 그야말로 판옌중의 입장에서는 정신이 나가지 않은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 와중에도 변호사라는 직업에 맞게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자 노력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신핑의 행방을 쫓는 긴장감 자체가 뭔가 소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중반에 이르러 사회적인 이슈와 묶이는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것 또한 다른 의미로 몰입도를 높였다. 사건 자체가 화가 났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화차와 도가니라는 영화 자체가 어떻게 보면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으면서 두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분노 포인트를 결합시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온전히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과 어른들의 헛된 욕망과 무책임으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점이 참 깊은 분노로 이어졌다. 자신들의 방법으로 이를 지키려는 행동과 자신들에게 해를 가하고 있는 어른들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옹호하는 입장을 가진 이들을 보면서 그것 또한 참 안타깝다고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벌어진 사건이 대비되는 내용이었다. 우신핑의 과거 사건은 현재 판옌중의 친구인 추궈셩의 아들 사건으로부터 연결된다. 대신 우신핑은 과거 피해자의 입장이었다면 추궈셩의 아들은 가해자로 지목이 되는 입장이었다는 점이다. 판옌중은 친구의 사건을 도우면서도 이 부분을 비교하게 되는데 읽는 내내 대비가 참 머릿속에 깊게 그리고 오래 남았다. 과연 추궈셩의 아들은 억울하게 몰린 또 다른 피해자라고 보는 것이 맞을까.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 등 사회적으로 어두운 면을 잘 그려냈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렇게 받은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점을 다시금 소설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니 추리 스릴러 라는 장르가 아닌 사회적인 이슈에 경종을 울리는 소설로서 읽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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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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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머니 제발 적당히 하세요. / p.60

고부 관계는 늘 평행선을 달릴까. 아직 미혼이다 보니 시어머니를 둔 적이 없는 나로서는 참 궁금증이 생긴다. 기혼한 친구들이나 동생, 엄마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고부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일하는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볼 때마다 겉으로는 가족이지만 속으로는 남인 관계처럼 보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피 하나 안 섞인 남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가키야 미우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결혼하지도 않았고, 시어머니는 없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는 크게 관심이 갈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공감이 될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별과 죽음에 대한 따뜻한 위로라는 말에 시선이 닿았다. 시어머니는 없지만 어머니는 있으니 그 지점에서는 나름 공감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이별과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자녀이기에 호기심이 들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모토코라는 이름의 오십 대 여성이다.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남편과 자녀를 둔 일반적인 가정의 기혼자이기도 하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유품 정리를 하기 위해 두 달 정도의 시간동안 청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 자체는 크게 특별하지는 않지만 모토코의 심리 묘사 위주로 흘러간다.

읽는 내내 모토코 입장에서 흐름을 따라갔던 것 같다. 그래서 초반에는 모토코가 크게 공감이 되었고, 비슷한 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일정 부분은 시어머니와 같은 면도 있었다. 특히, 시어머니는 집에 이것저것 물건들을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내 입장에서는 책이 가득 모아진 책장을 자연스럽게 쳐다보게 되었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모토코는 시어머니의 이런 부분을 원망했었는데 괜스레 필요도 없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비교에 대한 내용이다. 모토코는 청소하는 내내 시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와 비교한다. 죽을 사람은 산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누구보다 마음에 새기면서 자신을 청소의 길로 이끈 시어머니를 원망한다. 죽을 때가 되어 주변을 정리했던 자신의 어머니는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는데 시어머니는 왜 그러냐는 것이다. 어머니를 대단하게 느끼는 것도, 존경스러운 마음을 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거나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신격화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나중에 시누이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 이야기에서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어머니의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인간적인 면모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고, 모토코가 조금 답답하게 보였다.

두 번째는 모토코의 두 가지 면모에 대한 내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토코에게 보였던 감정 중 하나가 양면성이었다. 이러한 내용이 모토코뿐만 아니라 나중에 시어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깨달음에서도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부분에서도 등장하는데 가장 크게 관통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 옆집에 사는 사나에라는 인물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주는 호의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또한, 물건을 모아두는 시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집을 처분하겠다는 동생 내외의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낀다. 사람이라는 게 늘 양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모토코와 이야기를 통해 인식시켜 주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과거의 모습이 없었는지 반성함과 동시에 경계해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시어머니의 따뜻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참 위로가 되었던 이야기이지 않았나 싶다. 모토코와 시어머니의 추억을 가족과의 추억으로 대신해서 공감과 여운을 느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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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블루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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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의외로 나쁘지 않아. / p. 322

대한민국 땅덩어리가 참 좁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 중 하나가 연으로 맞닿아 있는 경우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같은 학교를 나온 동문이었거나 동향 출신이었던 적이 꽤 많았다. 특히, 지방에서 태어나 타지로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유독 이렇게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알고 보니 초등학교 후배인 경험도 있었다. 직접 얼굴을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참 나도 모르는 반가움이 앞선다.

이렇게 인연으로 묶인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움이 들지만 부정함의 원인이 된다면 그것은 또 달라진다. 그럴 때는 인연인이라는 게 원망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동향이니, 동문이니, 친척이니 여러 인연의 끈을 빌미로 제안을 해 오는 경우가 그렇다. 원래 스스로의 힘을 뭔가 해내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손길을 이유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그만큼 자존심이 상한다. 특히, 취업과 승진에서 능력이 아닌 라인을 잘 타서 올라간다면 잘해서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연이 닿아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허탈감이 지배할 것 같다. 그래서 누구보다 연으로 묶이는 일들에 조금 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오승호의 장편 소설이다. 줄거리를 보자마자 마을에서 부정한 일이 있었지만 경찰서와 관공서 등 공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집단들이 똘똘 뭉쳐 이를 숨겼다는 내용의 뉴스 기사가 몇 개 떠올랐다. 이러한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닌 생각보다 종종 벌어지는 일로 느껴지는데 그런 면에서 현실감을 느꼈던 것 같다. 뉴스 기사를 볼 때에도 많이 어이가 없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소설로 표현되는 게 궁금했다. 특히, 뉴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추리나 스릴러의 긴장감도 기대가 되었다.

소설은 요지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요지는 서른 살의 인물로 야구를 하다가 이를 포기하고 경찰이 되었다. 야구 선수로서 반짝 두각을 드러내다 트라우마가 생길 실수로 고향을 떠났는데 이후 십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이후 고향에 있는 파출소로 배치를 받았다. 그가 그곳에 자원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사라진 동기 니가하라를 찾기 위함이었다. 인상 좋은 파출소장과 비열한 웃음을 지닌 아키미스, 농땡이가 취미인 고스게, 그밖에도 파출소를 집처럼 드나들면서 남편과의 불화를 호소하는 세쓰코 할머니, 술에 만취해 폭력을 저지르는 모리 할아버지 등 조금은 의심스러우나 살인 사건조차 발생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동기의 실종과 이후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초반에는 대한민국의 한 동네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든 있을 법한 인물들이었다. 사람 좋게 잘 챙겨 주시는 파출소장님, 조금은 의심이 드는 동료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마을이 그렇다. 파출소 직원들과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듯했다. 뭐든지 나서게 되는 게 또 시골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풍경일 테니 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군 단위의 작은 동네에서 일을 했었기에 그런 기억도 새록새록 나기도 했었다.

점점 사건들이 벌어지면서부터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살인 사건은 두 번 등장하는데 범인은 도저히 누군지 읽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지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도 가장 먼저 관심이 갔던 요주의 인물은 아키미스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서 형사에게 옮겨가기도 했었다. 도저히 머리로는 동네에서 꽤 유명 인사였던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을 찾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그만큼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 

범인을 찾는 것과 별개로 동네의 이야기도 참 흥미로웠다. 동네에 있을 수 있는 이해 관계와 세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요지는 재개발과 관련해 양쪽으로부터 압박과 청탁이 들어온다. 차라리 정답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부분이었다면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닐 텐데 그것 또한 아니다 보니 고뇌하는 모습이 참 공감이 갔다. 그밖에도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마을 주민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와중에 답답함을 느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요지의 심리 상태였다. 사실 요지는 자신에게 흑역사 그 이상의 실수를 했던 과거 때문에 고향을 등한시했다. 심지어 그러한 이유로 형과 관계가 안 좋기도 했다. 가족들이 아픈 상황에서도 고향을 방문하지 않을 정도라면 얼마나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런 요지가 다시 동네로 오게 되었던 이유가 단순하게 자신의 동기를 찾기 위한 것이었을까. 내내 의문이 남았다. 물론, 결말에 이르러 답을 찾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동네가 아닌 스스로를 미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추리 소설이기는 하지만 요지 스스로 자신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마을의 폐쇄성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이라고 보여졌다. 소설의 현실성과 흥미가 크게 와닿았고,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추리의 재미와 동시에 묵직한 건더기가 남았던 이야기를 보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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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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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보다 내가 싫다. / p.136

보통 감동과 여운, 현실 세계와 맞물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많이 얻는 편인데 추리 소설은 개인적으로 약간 결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처음에는 사회파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도, 읽을 때마다 여운과 감동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마 처음부터 생긴 습관 때문이지 않을까. 장르마다 읽는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런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즈음은 그래도 온전히 추리에 몰입해 읽으려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현실 세계를 반영한 추리 스릴러 소설을 조금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약간 기묘한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서 나름 재미를 느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추리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겠지만 건더기보다는 읽는 순간 자체의 재미도 나름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 소설집이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보았던 책 표지 중 하나가 백광이었다. 결말에 놀라지 않았다면 환불해 주겠다는 출판사의 이벤트와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들의 후기 등 사실 그때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작가와 작품이었는데 계속적으로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백광도 소장하고 있지만 단편집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번 신작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총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자신을 죽인 아내가 다른 곳에서 같은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 바람을 피우고 있는 아내를 살인 사건의 범죄자를 추리하는 이야기까지 조금은 흔하다고 느낄 수 있는 소재이지만 하나같이 어두우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집중하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아홉 편의 소설 중 <이중생활>과 <열린 어둠>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인상적이었다. <이중생활>은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마키코라는 인물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슈헤이와 밀회를 하고 있다. 주변의 만류와 거액의 돈을 제시해 헤어지자고 고하는 슈헤이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계속 붙잡는다. 그러면서 데쓰오라는 은행원과 연애를 하고 있다. 슈헤이의 아내인 시즈코는 둘의 관계를 눈치채게 되었고, 마키코를 복수하고자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데쓰오와 잠자리를 가진다. 데쓰오는 누구보다 마키코에게 진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마키코가 시즈코와 데쓰오의 관계를 알게 되자 슈헤이 부부를 죽이겠다는 복수 계획을 세워 데쓰오와 실천한다. 

처음에는 인물 관계가 참 복잡하다고 느껴졌다. 가장 어려워 했던 고전 소설 중 하나가 떠오를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결말을 보자마자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물 관계 이해에 급급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더욱 와닿았다. 더불어, 복수 자체가 참 다른 의미로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미키코라는 인물이 가장 공감이 되었으며, 그녀가 하는 복수의 이유 자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키코처럼 복수를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조금 신중하게 생각할 것 같다.

표제작인 <열린 어둠>은 두 사람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폭주족 학생들과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마사는 마더라고 불릴 정도로 학생들과의 신뢰가 두터운 교사이다. 폭주족 중 한 명인 노리코가 갑자기 급한 목소리로 마더 선생님을 호출했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폭주족 아이들의 아지트를 찾아가면서 시작한다. 그곳에는 폭주족의 리더인 다카기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외부의 침입 흔적이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폭주족 내부에 살인을 저지른 학생이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추리를 한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벌어진 또 다른 교사의 살인 사건과 연관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한다.

전체적으로 제목에 맞는 어둠이라는 키워드에 맞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내용 중 가장 밝은 분위기였던 소설이었다. 물론,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 특성상 밝게 진행이 된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마더인 마사 선생님과 폭주족 아이들의 사이에서의 모습들이 너무나 좋았다. 누군가는 폭주족 아이들을 문제아 취급하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겠지만 마사는 아이들 자체를 인정해 주는 듯했다. 경찰은 믿지 못해도 마사를 믿는다는 게 흥미로웠다. 제목에서의 어둠이라는 표현은 살인 사건과 관련된 어떠한 특징에 대한 의미라는 사실이라는 점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읽으면서 추리 스릴러 소설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결말 역시도 납득이 가능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었기에 크게 의문이 든다거나 붕 뜨지 않아서 좋았다. 이번 작품 역시도 렌조 미키히코의 장편 소설 백광 출간 때와 마찬가지로 "출간 기념 반전에 놀라지 않거나 재미없으면 100% 환불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이벤트를 진행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어떻게 보면 큰 리스크가 있는 이벤트를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추리 스릴러 소설의 초보 단계인 독자 입장에서 충분히 재미있었던 소설이었다. 단편집을 읽고 나니 렌조 미키히코의 다른 장편 소설인 백광 역시도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읽는 순간의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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