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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범죄라는 이름의 재난 앞에 소중한 이들의 다정함을 지켜내고자 하는 것, 그러한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족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는 것. / p.9
아마 여러 책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직업인들의 에세이를 선호하는 편이다. 남형석 기자님의 <고작 이 정도의 어른>과 김민철 카피라이터님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은 아직까지도 애정하는 내 최애 에세이이고, 올해에는 황석희 번역가님의 <오역하는 말들>을 상반기 베스트로 꼽는다. 다른 직종이지만 같은 직업인들에게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명사 에세이는 고민하지만 직업인의 에세이는 바로 읽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검사이신 정명원 작가님의 에세이다. 예전에 판사님이신 박주영 작가님의 <어떤 양형 이유>를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중 한 분인 정지우 작가님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드문드문 법조인들의 에세이도 골라 읽었다. 올해 인문학 도서로 김웅 작가님의 인문학 도서를 읽었지만 검사의 에세이는 처음이다. 그래서 기대가 되었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다. 너무나 당연한 문장이기는 하지만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검사로서 살아오신 소소한 에피소드가 주요 내용이다. 그 안에는 비주류 검사로서 느꼈던 직장 내 불리한 관습이 담겼고, 범죄의 형량으로 정할 수 없는 사사로운 인간의 인생사가 드러나기도 했다. 검사라는 직업으로서 마주했던 일상들이 고스란히 문자로 드러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술 읽혀졌던 이야기다. 딱히 상상력을 요구하는 에피소드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냥 보통 평범한 이들의 작고 소중한 일화라는 점에서 크게 이해 유무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는 책이었다. 이러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조금씩 텀을 주고 읽었다. 300 페이지가 조금 넘었는데 오전 네 시간을 꼬박 투자했다.
개인적으로 <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이라는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검사의 술자리에는 관습이 있고, 작가님께서는 이 관습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계신다. 당시 감기 증상이 있으신 작가님께서는 가장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셨다. 그러다 높은 자리에 앉으신 분께서 작가님만 그 관습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하셨고, 이후 소규모의 술자리를 앞두고 관습을 따를 것인지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많이 공감이 되면서도 흥미로웠던 이야기다. 사실 나 역시도 이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높으신 분께 술잔을 따라드리는 것. 그동안 다녔던 직장에서는 상사분께 술잔을 드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이번 직장에 와서 이에 대한 불편한 잔소리를 들었다. 술잔 하나에 충성도나 존경심을 담을 정도로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솔직히 답답함이 싹 씻기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법조인의 에세이를 종종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직업을 들으면 딱딱하고 경직된 형태가 머릿속에 남는다. 그런데 가장 나쁜 이들을 만나는 작가님이신데 선한 일의 대표주자인 복지 현장에서 근무하는 나보다 인간적이신 분이었다.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 어쩌면 지금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아, 나도 이런 직업인이 되어야지. 이렇게 오늘도 인류애가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