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왕의 방패 - 제16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1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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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지킨다. / p.31

이 책은 이마무라 쇼코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번 주말에는 일본 작가의 작품만 내리 세 작품을 읽었다. 그런데 그게 또 나쁘지는 않았다. 다 나름대로 각기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작품들이어서 좋았다. 그동안 일본의 역사적 배경을 다룬 작품에 취약했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작품들도 다른 독자들에 비해 재미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름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아예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서 고른 작품이 이 작품이었다.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이는 교스케이다. 성 건축 장인이었던 교스케는 가족을 두고 한 성 건축 장인 겐사이를 따라 길을 나선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30 대가 된 교스케를 후계자로 지명한다. 겐사이에게는 피가 섞인 친척이 있음에도 교스케를 높게 보았던 것이다. 교스케는 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총을 만드는 장인 레이지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교스케를 이기고자 한다. 새왕이라고 불리는 성 건축 장인과 총을 만드는 장인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반적으로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페이지 수가 700 페이지가 넘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두껍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포스트잇에 적힌 담당 편집자님이자 사장님의 문구를 읽고 두께를 보니 장난이 아니라는 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걱정만큼이나 일본 역사적인 지식도 어느 정도는 인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디게 읽혀졌다. 이틀에 겨우 완독이 가능했다. 보통 흥미가 없으면 중간에 책을 덮는데 손에서 놓기 싫은 스토리가 꽤 버티게 만들었다. 지식은 부족했지만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웠다.

초반에는 읽는 내내 직업이 헷갈렸다. 분명 인지한 바로는 교스케는 성을 건축하는 장인이었다. 더 자세하게 언급하자면 성벽의 돌을 운반하거나 쌓는 사람이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면서 '교스케가 병사인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구전으로 기술을 전달하는 부분이나 의뢰로 성벽을 쌓는 부분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직업을 인지하다가 어느 순간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을 읽으면 혼돈이 왔다. 과연 단순하게 직업인으로서 업무를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일을 한다고 하기에는 목숨을 걸고 과도하게 충성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후반부를 지나 편집자 후기를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장인 정신이자 하나의 직업 정신의 일부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일 그대로 성벽만 쌓고 물러나면 좋겠지만 요즈음 의미로 본다면 애프터 서비스 중 하나로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에 전쟁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교스케의 마음도 온전하게 와닿았다. 과연 이를 직업적인 정신이 아니라면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온전히 이해가 되고 나니 뭔가 이 작품 자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모순이라고 불리는 창과 방패의 싸움에 초점을 맞춘다면 실망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이기는 사람과 진 사람이 생길 텐데 이를 말하는 작품이라면 너무 뻔하지 않을까. 그 이상으로, 또는 다른 의미로 와닿았던 작품이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여운을 주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결말과 스토리가 너무나 취향에 맞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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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드네의 목소리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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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 p.13

이 책은 이노우에 마기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항상 언급하지만 출판사에 신뢰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믿고 읽는 작가가 된 '나카야마 시치리' 또는 '고 가쓰히로' 등 추리 스릴러 장르에 그렇게 흥미가 없었던 독자에게 새로운 매력을 알게 해 주었던 작품들이 꽤 많았다. 그것도 많이 알려진 작가가 아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새로운 작가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취향을 견고하게 해 주었다. 출판사에서 신작이 나와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하루오라는 인물이다. 현재는 드론 회사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는데 형을 안타까운 사고로 보냈다는 점이다.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불가능'이라는 단어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다른 이들은 안 되었을 때에도 과감하게 포기하는 반면, 하루오는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미련하게 자신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하루오가 배리어 프리 그 이상의 무장애 도시인 'WANOKUMI'의 건물을 방문한다. 지상에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시설이 있고, 지하에는 공장과 교통편, 문화시설 등이 입주해 있는 최첨단 건물의 개막식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 갑자기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면서부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건물 지하에 삼중 장애를 가진 나카가와가 있다는 점. 나카가와를 구하기 위해 최신 드론을 이용해 구조할 계획을 세우면서 하루오가 투입된다. 과연 절체절명의 위기 안에서 하루오는 나카가와를 무사히 구조할 수 있을까.

어려우면서도 쉽게 읽혔던 작품이었다. 드론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기계를 설명해 주는 내용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거기에 보이지 않는 지하 공간을 상상하는 일 또한 하나의 난관이었다. 물론, 그림으로 설명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림을 보면서 하루오가 처한 상황과 나카가와의 위치를 세세하게 상상하는 게 조금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의 몰입도가 높아서 등장인물들만 보고 읽다 보니 흐름을 이해하는 데 수월했다. 대략 두 시간에 모두 완독이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장애에 대한 시선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언급했던 것처럼 나카가와는 세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나카가와를 장애 여부가 진짜로 맞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도지사의 조카이니 이게 하나의 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사실 주변에서 너무 익숙하게 봤던 일들이어서 나카가와의 행동에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 내용을 읽으면서 '아, 이 부분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배리어프리라는 개념이나 중복 장애 등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익숙하고도 친근한 소재여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가 결말에 이르러 더욱 큰 여운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는 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따뜻함을 느꼈다. 알면서도 당한 느낌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당하는 기분이 그렇게까지 기분이 상하지 않았던, 오히려 기분이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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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 달달북다 7
예소연 지음 / 북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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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감당해야 할 것들. / p.18

이 책은 예소연 작가님의 단편소설이다. 항상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시리즈인 듯하다. 지금까지 발간된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모두 읽었다. 물론, 그 안에서 취향에 맞는 작품들도 있기는 했지만 솔직하게 실망했던 작품들도 있다. 굳이 나누자면 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습관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번에 하이틴을 주제로 세 편이 공개된다고 알고 있는데 신작이 나와서 또 이렇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서동미라는 인물이다. 아버지께서는 멀리 나가 계시고, 어머니와 유치원생인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동미가 살고 있는 집은 열악하다. 아랫층 가게에서는 동미네 집으로 음식물을 버려서 항상 그 냄새가 교복에 배어 있고, 학교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간다. 그렇게 열정적인 아이도 아닌 것 같다. 그런 동미가 학교 문제아 명태준에게 찍힌 이석진과 얽히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항상 100 페이지 이내의 작품이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작품 역시도 그렇다. 80 페이지여서 전작보다 조금 더 얇은 편이어서 그런지 체감상 더욱 후루룩 읽혔다. 한 삼십 분 정도를 예상하고 시작했는데 다 읽고 시간을 보니 십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아마 그냥 쉬는 시간만 있어도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는 양이지 않을까 싶다.

하이틴 소재라고 해서 많은 예상을 하면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소재만 알았을 때에는 김혜윤 배우와 로운 배우 주연의 <어쩌다 발견한 하루> 스타일의 작품이지 않을까 예상했고, 표지의 MP3를 보았을 때에는 최근 종영했던 김지원 배우와 김수현 배우 주연의 <눈물의 여왕> 아역 부분이 떠올랐다. 그런데 막상 읽으니 생각했던 결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이었다. 어디에서 본 이야기인 듯 너무 익숙했지만 또 어떤 드라마의 내용일지 상상한다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보았던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재벌과 하층민의 학교물 스토리라고 하기에는 재벌이 드러나지 않았고, 활기찬 학생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이들이 그렇게까지 통통 튀고 발랄한 이미지는 아닌 듯하다. 읽는 내내 어디에선가 볼 수 있는 기시감이 느껴졌지만 막상 찾을 수 없는 답답함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다 보니 그것 또한 몰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현실감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학생으로서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아련한 첫사랑이나 설레는 이성 간의 미묘한 감정일까. 그렇다고 작품 내에서 크게 로맨스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냥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취향의 문제를 따지자면 애매한 호 정도인 듯하다. 여운이 남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술술 읽으면서 풋풋한 과거를 추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막상 적고 보니 사람에 따라서 밍숭맹숭한, 상상력이 약점인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결말이어서 그게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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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오서 지음 / 씨큐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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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리실 역은 삼랑진, 삼랑진역입니다. / p.74

이런저런 마음 아프고 힘든 상황 속에서 감기까지 제대로 걸려 쉬는 날만 되면 잠에 들기 바쁘다. 그래도 책은 지속적으로 읽어야 하니 어떻게든 손에 쥐고 있기는 하지만 집중력이 예전만 못하다. 분명 체력이 있을 때 읽었더라면 인생 책으로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을 이야기도 요즈음은 깊은 생각보다는 그냥 넘기는 식으로 읽는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다. 체력이 책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책은 오서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이럴 때 다시 독서 습관을 원래 상태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다. 아직 감기가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고, 약의 기운에 책을 읽는 중이기는 하지만 초기에 비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활자를 읽을 기운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인 힐링 소재를 가진 작품들을 찾다가 신작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창화라는 인물이다. 일은 잘하지만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이방인처럼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끝까지 반대했지만 권력에 눈이 먼 상사의 지시로 진행했고, 억울하게 일의 독박을 써서 퇴사하게 되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미정을 만난다. 미정 역시도 회사생활이 녹록치 않았던 인물이었고, 비슷하게 고향인 삼랑진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렇게 고향으로 향하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화에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부산으로 내려온 이후로도 미정과 삼랑진을 떠올렸다. 그리고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을 행동에 옮긴다. 그것은 바로 삼랑진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단순하게 여행 목적이었는데 삼랑진역 옆에 있는 사진관 건물을 구입해 정착하기에 이른다. 삼랑진 사람들은 물론이고, 창화의 친구마저도 그를 미쳤다고 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삼랑진에 카페를 연 창화에게 봄날이 올까. 미정과 창화는 삼랑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술술 읽혔던 작품이었다. 아마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훨씬 공감이 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가를 나와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에게도 충분히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300 페이지 정도의 작품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는데 그만큼 몰입을 할 수 있었던 소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충분히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일들이 창화와 미정, 그리고 미정의 동생에 이르기까지 인물들로 하여금 나타난다는 점이 참 공감이 되었다. 업무보다 더 힘든 사내 정치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생계를 위해 포기하게 된 꿈 등 그들의 말 하나하나가 거울을 들여다 보는 듯했다. 특히, 창화가 미정의 동생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행복하다.'라는 이야기를 한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창화의 말처럼 후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창화는 그렇게 잘 풀리는 인물은 아니었는데 삼랑진에 와서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게 약간 비현실적인 면으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이기에 충분히 흘러갈 수 있는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그 지점이 '그래. 가상의 세계는 맞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행복하고도 평화로웠다는 점에서 힐링 장르의 매력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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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모양
이석원 지음 / 김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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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p.20

이 책은 이석원 작가님의 에세이다. 십 년 전에 <보통의 존재>라는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당시에는 좋은 감정으로 와닿았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재독했을 때에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조건 좋은 감정에서 나쁜 감정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간 시간만큼 상황이 달라지면서 같은 책도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기억이 선명해서 이번 신작 소식을 듣고 읽게 되었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졌다. 아버지의 병고로 벌어지는 가족 간의 이야기와 어머니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다. 아버지께서는 코로나에 걸리셨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코로나와 독감 백신을 동시에 맞으셨다고 한다. 지병인 당뇨가 있으셨는데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갑자기 연명치료를 생각해야 될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 빠지셨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의 갈등과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 담겼다. 또한, 오십이 넘은 작가님께 큰 영향을 미쳤던 분이 어머니이신데 그동안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유년 시기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에세이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너무 현실감 있게 와닿았던 책이어서 페이지 넘기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읽었다. 십 년 전에 읽어서 조금 낯설게 느껴질 법도 했을 텐데 오히려 익숙한 느낌으로 하나하나 페이지를 넘겼다. 300 페이지 정도의 적당한 두께의 책이었는데 한 시간 반 정도에 모두 완독이 가능했다. 두 시간짜리 라디오를 들으면서 읽었는데 채 그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보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욱 인상적으로 남았다. 읽는 내내 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공감이 되었던 파트이기도 하다. 매주마다 면회 기간에 중환자실 앞에서 아버지의 면회를 기다리던 모습,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연명 치료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병실에서 환자 배드 손잡이에 묶여 있던 아버지의 손 등 마치 작년 봄에 있었던 우리 가족의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그 순간의 이별을 준비하는 작가님의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생각과 감정들이 더욱 하나하나 강렬하게 와닿았다.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버지이지만 순간순간 시간이 흘러가면서 느꼈던 애틋함이 활자를 읽으니 다시금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어머니께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하지만 지금은 폭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양육 방식을 가지신 분인 듯하다. 작가님의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편이기도 하다. 과연 나라면 작가님의 상황에서 어머니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읽었다. 아마 애증보다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연을 끊고 살지 않았을까. 작가님 스스로도 '스톡홀름 증후군'을 언급하셨는데 활자로 읽는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어머니의 방식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좋게 말하자면 냉정하고, 나쁘게 말하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띠지에 적힌 '나와 꼭 닮은 어느 가족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문구가 유독 와닿았던 에세이였다. 그만큼 동질감이 느껴졌다. 부모님을 보내지 않는 자식은 없을 것이고,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안 받는 자식 또한 없을 것이다. 작으면 작게, 크면 크게 부모님께 상처를 받지 않은 자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작가님의 슬픔과 내가 경험했던 슬픔의 모양은 다르겠지만 자식의 입장으로서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많은 공감을 받았던, 그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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