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
구라치 준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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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남은 사람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 p.11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무뎌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과거에는 징그럽거나 더러운 것, 그리고 무서운 것을 아예 쳐다도 보지 못했던 어린이 중 한 사람이었다. 뱀, 귀신, 좀비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호불호가 명확한 것들에서 극강의 불호를 소리쳤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고 강산이 두세 번 바뀌다 보니 보기 싫기는 해도 그래도 그럭저럭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찾아서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구라치 준이라는 작가의 연작소설집이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으로만 따지면 돈 주고 구매하지 않을 부류에 속한 책이다. 우선, 표지에서부터 아마 처음으로 놀라고, 제목에 당황했을 것이다. 시체로 놀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이야, 막걸리야 라는 멘트를 날리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이유는 출판사 신간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늘 중상 이상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었기에 이번 신작 기대가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네 편의 작품이 등장한다. 워크샵에서 좀비의 습격을 받은 동아리 부원들, 스스로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세 남자, 오두막에서 동반 자살의 형태로 발견된 두 남녀, 강가에서 발견된 시체에서 낯선 어느 한 부위 등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시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소설의 도입부는 시체를 바라보는 타인의 눈과 생각으로부터 진행된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우선, 연작소설집이기는 하지만 따로 끊어서 보더라도 크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각자의 이야기처럼 보여졌다. 그래서 부담이 없었던 소설집이었다. 안 그래도 많이 움직이게 되는 시기였는데 중간에 쉬었다 다시 책을 손에 쥐더라도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부분은 관심과 흥미를 끈다는 측면에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끊어서 읽기는 했지만 대략 세 시간 전후면 충분히 완독이 가능할 정도의 수준이다.

마지막 작품에서 드러나는 연결성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읽는 내내 연작소설집보다는 단편소설집에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부 다를 뿐만 아니라 통하는 세계관 또한 없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언급한 것처럼 시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인데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연작소설의 범주에 속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다 결말에서의 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덤이었다.

사실 장르 소설에서 드러나는 트릭을 읽으면서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을 죽이고 사고를 쳐?'라는 이성이 툭 튀어나왔다. 허무맹랑한 근거는 아니었지만 그 인물을 죽이겠다는 열망이 아니고서야 굳이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것 같았다. 적어도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너무나 위험 부담이 많이 따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가볍게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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