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 전건우 장편소설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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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를 설명하는 데 그것만큼 적확한 단어는 없었다. / p.12

이 책은 전건우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공포를 주제로 한 앤솔로지 소설집에서 꽤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고, 최근까지도 앤솔로지 단편으로 많이 보게 되는 작가님이다.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던 때가 많았던 터라 장편소설에 대한 기대가 컸다. 덕분에 고민의 여지도 없이 선택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프로파일러 최승재와 리퍼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마이다. 둘이 대치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잔인한 수법과 시그니처조차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하는 리퍼였다. 그 안에서 증거를 찾아 잡아낸 최승재는 그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게 두 사람에게 번개가 내렸다. 허망하게 두 사람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사망한다.

그렇게 사망한 줄만 알았던 최승재가 일어난 곳은 어느 병원의 영안실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 것이다. 그것도 살인 용의자인 우필호라는 이름의 남자로 말이다. 세상은 죽은 시체가 살아난 사건으로 도배가 되었고, 그가 일하던 경찰서는 그 시체의 주인공이 살인 용의자라는 사실로 뒤집어졌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면서 다른 몸으로 환생하는 리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작품들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의 이슈와 연관 짓는 편이었는데 이 작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인공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들을 활자로 읽으면서 액션 영화를 보는 듯 머릿속으로 그리는 시간으로도 부족했다.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닌 어떻게 보면 오리지널 스릴러 장르의 매력이 극대화된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가볍게 읽다 보면 책장이 넘어가는 페이지터너였던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참으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스릴러 장르에 맞게 주인공인 최승재가 경찰에게 잡히지 않도록 도망 다니는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과연 리퍼가 어떤 인물로 환생할지에 대한 고민과 기대감으로 책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더운 여름에 딱 맞는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었고, 폭염이 쏟아지는 이 날씨를 날릴 정도로 시원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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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이름의 숲
아밀 지음 / 허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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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시작되었다. / p.9

이 책은 아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올해 '여성'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 작품집에서 작가님의 단편을 처음 읽었는데 너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의 내용과 마음의 느낌이 그대로 잔상으로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용이나 여운들이 남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작품들은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신작이 궁금해졌다.

소설의 주인공은 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등학생이다. '가상현실 저항증자'라는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는 인물이면서 다른 팬들에 비해 좋아하는 가수를 만날 수 있는 폭도 좁은 듯하다. 특히, 숲이 가상현실로 아이돌과 함께 식사한다거나 만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편곡하는 취미로 즐기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숲이 좋아하는 가수이자 인기 많은 아이돌인 이채라는 인물이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다수의 억압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상현실로 팬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이면으로는 매니저의 감시 하에 체중 조절을 해야 한다. 폭식으로 많이 먹기라도 하면 여러 개의 눈들이 살찐 사실을 캐치해낸다. 그것을 악성 댓글로서 표현하고, 그것을 본 이채는 스스로에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를 가한다. 이야기는 이 둘이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뭔가 남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상현실을 비롯해 SF적인 요소들이 먼 미래를 나타내는 듯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만큼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용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술술 읽혀지고 스토리가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과 맞닿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 책장을 넘기는 게 조금 더디게 느껴졌다. 감정적으로 와닿는 게 큰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첫 번째는 아이돌 산업의 기이함이다. 이는 작가의 말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비인간적인 부분들이 많이 느껴졌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는 점과 인격 모독에 가까운 상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대중에게 보이는 걸로 소득을 얻는 직업인이기는 하지만 그 위에 인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예인 당사자의 자유는 억압하면서 사랑과 관심, 걱정이라는 방패막 아래에서 아무렇지 않게 손과 입으로 쓰레기를 내뱉는 사람들을 과연 한 명의 대중으로 보는 것이 맞을까. 그 지점은 생각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두 번째는 학교 폭력이다. 사실 아이돌 산업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숲이 받는 상황 자체에서 학교 폭력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조금 나오는 이야기에서 잔인함을 느꼈다. 특히, 다온이라는 인물이 숲에게 가하는 행동들이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났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따돌림을 시킨다거나 신체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 또한 무겁게 와닿는다.

전체적으로 여러 생각들이 들다 보니 머리가 어지럽게 남았던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께서 여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역시 여자 아이돌 팬이었던 사람으로서 가수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폭력적으로 와닿지는 않는지, 또는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맞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고, 그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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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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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특정한 건널목에 여러 사람이 몇 번씩이나 침입하는가? / p.23

이 책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소설이다. 주변에서 '제노사이드'라는 작품이 꽤 재미있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올해 그 책을 구매해서 읽을 시기를 고민하던 중에 신작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이 향하게 되어 선택했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들었던 작가의 작품이기에 설렘과 기대감이 들었다.

소설은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으로부터 시작한다. 갑자기 한 사람이 뛰어드는 듯한 모습을 보고, 기관사들이 긴급 정지를 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막상 보면 그곳에서는 실체가 없었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마저도 없었다. 그야말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은 마쓰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쓰다는 과거 신문사에서 유능한 기자였지만 현재는 여성 잡지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2년 전에 아내를 잃고, 그리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신문과 잡지의 차이가 크다 보니 재계약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큰 실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편집장의 명령으로 심령 특집 기사를 맡게 되는데 대부분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제보였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마쓰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제보가 바로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의 유령 이야기이다. 초반에는 사진 기술을 이용한 허구 제보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제보자들이 두 명이나 되었으며, 기술로 조작하기에는 그렇게까지 능력이 없는 사람인 듯했다. 결국 마쓰다는 이 제보를 토대로 건널목에 등장하는 유령 사건을 찾아나서기로 하는데 하나의 살인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마쓰다는 살인 사건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역시 주변의 추천만큼이나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던 작품이었다. 공간적 배경부터 등장하는 인물까지 지금까지 보았던 일본 작품들과 다르게 단순하다고 느껴졌다. 보통 이름을 외우지 못해 큰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았는데 마쓰다와 주변 인물들 이름이 금방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상상력이 부족해도 바로 상상해서 장면화시킬 정도로 너무 쉽게 읽혀졌다.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

개인적으로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마쓰다가 가진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나 중년 남성이 가지고 있는 무력감,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정함을 너무나 잘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울컥했다. 사실 마쓰다가 그렇게까지 직업 정신이 투철한 인물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건널목의 유령에 목숨과 돈을 버리면서까지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정의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심령 기사만 써도 될 사람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절실하게 와닿았다.

반면, 뉴스 사회 면에 자주 등장하는 정제계와 어두운 곳과의 유착 관계를 주제로 파헤친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와닿았다. 사회에 권위 있는 자가 그래도 양심이나 교양, 상식까지도 갖췄으면 좋았을 텐데 한 마리의 짐승처럼 본능에 매달려 자신의 명성을 그르치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몇 가지 사건들이 스쳐서 지나가기도 했다. 마쓰다의 어깨를 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적어도 저런 인간들보다는 정의로우면서도 상식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대를 하면서 읽었던 작품인데 그 예상을 뛰어넘는 만족을 주어서 좋았다. 취향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감성까지 건드린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고 싶다.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작가와 작품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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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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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은 의도적이었을까. / p.16

이 책은 해리슨 쿼리와 매트 쿼리의 장편소설이다. 역사 소설이 최근 사이에 연달아 읽었다고 한다면 여름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호러 스릴러 장르가 아닐까 싶다. 현재 읽고 있는 소설 역시도 비슷한 계열의 작품이며, 가장 최근에 구매한 작품 역시도 스릴러 계열의 일본 소설이다. 자연스럽게 손이 가게 되다 보니 이 작품을 알게 되었고,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해리와 사샤 부부이다. 도시를 떠나 인적조차 드문 산간의 신혼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커다란 빌딩보다는 산과 호수가 있는 지역으로 오히려 평화롭게만 느껴진다. 과거 전쟁에 참여한 해병대 출신의 해리는 생활비가 정부 차원에서 지급이 되고, 사샤는 비대면으로 충분히 업무 처리가 가능한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이사하는 게 크게 무리는 없었다.

행복한 일만 가득 벌어질 것 같은 부부에게 유일한 이웃인 댄과 루시라는 노부부가 등장한다. 서로 의지하면서 좋은 관계로 발전하면 좋겠지만 댄과 루시는 해리와 사샤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곳에는 악령이 있고, 봄에는 빛이 보일 때 벽난로의 불을 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해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오히려 댄과 루시를 쫓아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진짜로 빛이 보였고, 벽난로에 불을 피우자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계절마다 악령에 대한 의식을 달리 하기에 이른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답답함과 기분 나쁜 마음이 공존했다.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한 인물에 대한 의문으로 인해 남은 감정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이자 증오가 남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여름에 읽기에 딱 좋았다. 공포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인물은 주인공인 해리이다. 악령에 대한 의식을 치르기는 하지만 뭔가 모르게 분노에 휩싸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성격상 하라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고,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측면에서 화가 솟구쳤다. 단전에서부터 분노를 부르는 인물이었다. 초반에는 단순하게 악령을 믿지 않겠다는 반항심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그러나 중반부에 이르면서 해리의 그런 행동들이 어떻게 보면 과거 트라우마로부터 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해 많은 이들을 죽였고, 잔인한 상황들을 겪었던 인물이다. 전쟁에 동원된 소년병들이 나중에는 그 자체를 놀이로 즐기면서 죄책감보다는 쾌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게 오버랩이 되었다. 해리가 했던 일들이 어떻게 보면 그런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 면죄부가 된다거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그나마 추측은 가능했다.

일상과 맞닿은 공포감이라고 해서 현실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라는 예상을 하고 읽었는데 그것보다는 더 큰 차원의 인간이 가진 악에 대해 집중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더 만족스러웠다. 현실을 생각할 수 있는 작품도 좋아하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 관심이 많기에 기분 전환과 더불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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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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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옮겨 붙는 순간 바다에서 불길이 치솟는 착시가 일어난다. / p.25

이 책은 김숨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요즈음 의도하는 바는 아니지만 역사를 다룬 작품들을 고르게 되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고, 더 최근에는 대만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읽었다. 그 맥락으로 흐름을 이어가고자 선택하게 된 책이다.

소설의 배경은 해방 직후의 부산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이 차지하고자 쑥대밭을 만들기에 이른다. 한반도에 있는 사람들은 전국 팔도에서 아래에 위치한 부산으로 모이게 되는데 그 이유도 참 가지각색이다. 전체적으로 당시 어려운 민중들의 삶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다.

참 여러 가지로 책장이 쉽게 넘겨지지 않은 작품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시처럼 느껴져서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을 들었고,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의 삶이 너무 기구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토리 자체는 너무나 머릿속으로 그려져 이해는 쉬운데 마음에 와닿다 보니 이러한 감정들이 페이지를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감정적으로는 너무 버거웠다.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석분이나 천복이 등 이름이 있는 인물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인물들에게는 이름이 붙여져 있지 않다. 붙이더라도 그냥 훅 지나갈 정도로 비중이 있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뭔가 물 흐르는 듯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감정을 담아서 읽었던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찾자면 두 가지 이야기를 들 수 있을 듯하다. 첫 번째는 딸 해옥을 찾는 이야기이다. 조선인들을 태운 배는 이미 도착했다고 하는데 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사람은 둘째 딸 해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고향 땅을 밟은 이들 사이에서 배에 탔다고 했던 딸이 안 보였을 때의 부모 심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마음 깊게 남았다.

두 번째는 백 씨의 이야기이다. 백 씨는 가족들과 함께 히로시마로 징용을 갔다 온 가장이다.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진 날, 백 씨는 그곳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끔찍한 모습의 아내 시신을 보게 된다. 원자 피폭이 된 상태인 것이다. 백 씨는 혼자 갔다가 올 것을 왜 가족과 함께 갔는지에 대한 스스로 한탄을 하는데 이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면서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라는 점에서 당시 민중들의 비극적인 삶을 바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왔을 때의 아쉬움, 가족들이 사라지거나 사망했을 때의 비통함, 더 나아가 하루하루 더 끝이 안 보이는 절망감, 그 안에서 느꼈을 답답함 등 너무나 각자의 사정들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활자에 녹여져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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