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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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자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p.137

이 책은 오승호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우선, 큰 도시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소재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대한민국으로 친다면 아마 수도인 서울과 비교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상상을 해 보니 끔찍할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로 펼쳐질지 그 지점이 가장 기대가 되었다.

또한, 오승호 작가님의 작품인 <라이언 블루>를 재미있게 읽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유대 관계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었고, 이러한 부분이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작가님 신간이라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기대 요소이기도 했다. 나오키상 후보작이었다는 것까지 두꺼운 페이지 수의 걱정보다는 설렘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은 한 주정뱅이가 자판기에게 발길질을 하고, 가게 직원에게 소란을 피워 경찰서로 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주정뱅이는 중년의 연배에 누가 봐도 아저씨라고 보일 정도로 추레한 모습을 하고 형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주정뱅이의 이름은 스즈키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폭탄이 3 회 떨어질 것이며, 그 이후에는 도쿄 곳곳이 폭발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단순 주취자의 행패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 사건이었고, 술에 취한 사람의 허풍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한 형사의 사건과 죽음이 드러나고, 도쿄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등 또 다른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진다. 처음에 스즈키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도로키 형사의 고뇌, 스즈키와 두뇌 싸움을 펼치는 형사들의 숨 막히는 심리전이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만큼 술술 읽혀져서 좋았다. 전작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었는데 이번 작품 역시도 그랬다. 똑같이 경찰이라는 직업이 등장하지만 전작이 시골 경찰의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도시 경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읽는 내내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경찰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딱히 겹치는 부분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매력을 느꼈고, 다른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이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도도로키 형사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도도로키 형사는 존경받는 한 형사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조직 내에서 무시당하는 현장을 눈으로 목격한 인물이다. 사실 그 형사는 경찰이라는 집단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깎게 만든 원인 제공자였고, 누가 봐도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조직 내에서 무시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도로키는 그 형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묘한 말을 남기면서 은근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과 윤리, 그리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악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너무나 잘 그려졌다.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 스즈키가 도도로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도도로키에게 연민이 갔다.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못된 마음이 있을 텐데 나 역시도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음을 다 잡을 때가 있다 보니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그밖에도 보통 범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스즈키의 설정, 스즈키와 담당 형사의 퀴즈, 이를 추리하면서 해결했을 때의 쾌감, 나이 또래가 비슷한 두 형사 사이에 그려진 긍정적이지만 미묘한 열등감, 사건 중간마다 그려진 인류애 등 다양한 감정들이 참 좋은 느낌으로 와닿았다. 단순한 추리와 스릴러가 아닌 그 안에 내포된 인간의 심리를 그렸는 점에서 더없이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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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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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 p.13

어렸을 때에는 사회과부도를 보는 게 취미 중 하나였다. 쉬는 시간이나 휴일이 있으면 무조건 지도부터 보는 게 당연하다고 느낄 정도인데 부모님께서는 지구본을 사 주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여서 2D 평면으로 보는 지도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만큼 그렇게까지 지도를 볼 일이 없지만 지리를 찾아야 하는 일이면 무조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킬 정도로 애용하고 있다. 심심하면 3D 형태의 지도로 아무도 모르는 곳을 보는데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보는 지도 보는 방법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이어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트래비스 엘버러의 지리학에 대한 도서이다. 지도를 통해 역사를 알려 주는 책은 종종 봤었는데 인류의 흑역사를 다루었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어차피 우리가 배우는 역사들은 대부분 인간이 걸어오는 길이기에 지도로 표현하는 흑역사가 궁금해졌다. 특히, 그동안 멀리 했었던 세계사와 좋아하는 지리의 조합이니 더욱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잊혀진 곳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도태가 된 곳, 영광을 누렸다가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 등 다섯 파트로 나누어 총 마흔 곳의 폐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때 문화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장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처음 듣는 지명들이 많았지만 자세하게 설명된 그림 지도를 보니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사진에 실린 폐허들의 사진도 인상 깊었다. 녹이 슬거나 무너진 장소를 사진으로 보니 마음이 이상하게 답답했다. 한때는 영광을 누리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장소였을 텐데 말이다. 사람이나 장소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답답함이 들지 않았을까.

읽으면서 제목에 대한 의문이 따라왔다. 인간들의 생각과 결정에 의해 장소가 버려졌다는 점에서 인류의 잘못된 선택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사실 인류의 흑역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내용 자체가 인류의 잘못보다는 지금은 폐허가 된 장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초반에는 장소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 중반에 이르러 제목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한순간의 실수로 크리스털 팰리스는 불에 소실이 되었고, 당시 규범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타락적인 존재로 보고 정신병원에 가두었다. 또한, 히틀러는 자신의 뿌리일지도 모르는 이들을 비인간적으로 말살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무지, 실수, 차별, 폭력성 등으로 씻을 수 없는 역사들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인류가 저지른 과거만큼은 그 장소에 남았다. 그것만큼 더 확실한 인류의 흑역사는 어디에 있을까. 흥미로움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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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보 이판사판
리사 주얼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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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주얼의 전작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로서 이번 작품이 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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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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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임무는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잊지 마라. / p.268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에 비슷한 연령대의 지인들끼리 3D 업종은 가지 말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 당시에는 열심히 해서 전문직을 가지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은 딱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 같은 직종에서 만난 이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는 3D 업종에서 일해."라는 말을 나누고 있다. 나름 자격증까지 있는 전문직이지만 세상의 잣대는 또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 책은 이얼 프레스의 노동학에 관련된 도서이다. 더티 워크라는 제목에 관심이 갔다. 내용을 예상할 수 없었는데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오물을 처리한다거나 흔히 말하는 더러운 일을 하는 직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교도소 교도관, 도살장 노동자, 드론 전투원, 시추선 노동자라는 네 가지 직업이 등장한다. 물론, 마지막에 실리콘밸리의 연구원의 사례가 나오지만 이는 네 가지 직업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제외하고 보면 그렇다. 이들은 비윤리적이면서도 불결한,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한다. 또한, 백인이 아닌 다른 유색 인종들이 종사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저자는 이 직종의 노동자와 가족들을 취재하면서 무엇보다 이러한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고 있다.

생각과 다른 내용이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읽는 내내 인덱스를 안 붙인 곳이 없을 정도로 꽤 인상 깊게 읽었다.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미국의 직종에 한정이 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르게 와닿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티 워크 노동자는 어떠한 직종이 있을지 나름 고민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아마도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다른 직종도 많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교도소 교도관과 드론 전투원의 사례는 조금 의외로 다가왔다. 교도소 교도관은 정신 병동에 한정되었는데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재소자들을 향한 학대와 뜨거운 물 고문 사건을 보았던 교도소 심리 상담 직원들은 큰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분명 비윤리적인 일이었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걸린 업이기에 이들은 대부분 함구했으며, 이를 제기한 직원들은 오히려 교도소를 떠나야 했다. 처음에는 교도소 교도관이 왜 더티 워크에 속해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내용을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단순하게 교도소 교도관들의 개별적 문제가 아닌 이렇게 만드는 사회의 문제도 짚어주었기에 더욱 인상 깊었다. 읽으면서 돌봄 직종의 문제들이 떠올랐다.

또한, 드론 전투원은 크게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드론과 더티 워크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싶었는데 책에서 나오는 내용은 전쟁 중에 드론으로 표적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쟁에 투입된 병사들과 비슷한 종류의 PTSD를 얻게 되는 듯했고, 큰 문제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기술 발전으로 생긴 새로운 직업이어서 흥미로움과 결국 이렇게 더러운 일들은 백인이 아닌 소외받는 유색인종이 행한다는 점에서 답답함이 들었다.

노동이라는 성스러운 일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었다는 점에서 참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3D 업종에 대한 멸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동의 윤리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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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닮았다 -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연대기 사이언스 클래식 39
칼 짐머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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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면서 경험한 무시무시한 일은 대개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일어났다. / p.9

지금은 부정하지 않지만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듣기 싫었다. 적어도 학창시절의 기억속에 있는 아버지는 누구보다 예민하신 분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가부장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름 자녀들에게 하는 유머는 그저 불편하기만 했고, 왜 그렇게 말을 무뚝뚝하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모습이 참 싫었고, 그런 모습에 투덜대면 그게 곧 부녀 간의 말다툼으로 번졌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지금 아버지와 나를 다 아는 어른들, 그리고 가족들은 아버지의 모습과 판박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무던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예민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말투도 참 무뚝뚝하다고 한다. 같은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 오히려 되묻는 경우도 많았다. 이십 대 시절에는 아버지와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삼십 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인정하고 산다.

이 책은 칼 짐머의 과학 도서이다. 학창시절에 생물 과목을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큰 관심이 갔다. 유전학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지식들을 다시 되새기고, 또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하게 된 책이다. 그 지점이 가장 기대가 되었다.

읽는 내내 조금 어려우면서도 쉬웠다. 우선,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 다르게 800 페이지가 넘는 양장본의 책이기 때문에 손목에 가해진 힘만큼이나 부담감이 들었다. 거기다 소설도 아닌 비소설의 과학책이라니. 아무리 생물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졸업한 이후로는 배운 적이 따로 없던 터라 기대감만큼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러나 과학책은 과학책이다. 아무리 쉽게 기술한다고 해도 용어들에 대한 낯선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학교 다닐 당시에 배웠던 멘델의 법칙과 우생학 등의 이야기가 반가우면서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부분은 근친혼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혈통을 유지하고자 근친 관계에서 번식을 해 자녀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들은 없었던 희귀한 질환들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예시로 드러나는 게 합스브루크 턱이다.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기는 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지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다른 외부 종과 번식하는 이유는 더욱 강해지기 위함이었을 텐데 말이다.

자신의 딸의 유전병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책의 도입부터 전체적으로 참 인상 깊었던 책이었다. 과학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800 페이지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힘들었지만 그만큼 유전학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재미있고 또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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