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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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 p.13

어렸을 때에는 사회과부도를 보는 게 취미 중 하나였다. 쉬는 시간이나 휴일이 있으면 무조건 지도부터 보는 게 당연하다고 느낄 정도인데 부모님께서는 지구본을 사 주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여서 2D 평면으로 보는 지도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만큼 그렇게까지 지도를 볼 일이 없지만 지리를 찾아야 하는 일이면 무조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킬 정도로 애용하고 있다. 심심하면 3D 형태의 지도로 아무도 모르는 곳을 보는데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보는 지도 보는 방법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이어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트래비스 엘버러의 지리학에 대한 도서이다. 지도를 통해 역사를 알려 주는 책은 종종 봤었는데 인류의 흑역사를 다루었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어차피 우리가 배우는 역사들은 대부분 인간이 걸어오는 길이기에 지도로 표현하는 흑역사가 궁금해졌다. 특히, 그동안 멀리 했었던 세계사와 좋아하는 지리의 조합이니 더욱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잊혀진 곳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도태가 된 곳, 영광을 누렸다가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 등 다섯 파트로 나누어 총 마흔 곳의 폐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때 문화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장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처음 듣는 지명들이 많았지만 자세하게 설명된 그림 지도를 보니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사진에 실린 폐허들의 사진도 인상 깊었다. 녹이 슬거나 무너진 장소를 사진으로 보니 마음이 이상하게 답답했다. 한때는 영광을 누리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장소였을 텐데 말이다. 사람이나 장소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답답함이 들지 않았을까.

읽으면서 제목에 대한 의문이 따라왔다. 인간들의 생각과 결정에 의해 장소가 버려졌다는 점에서 인류의 잘못된 선택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사실 인류의 흑역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내용 자체가 인류의 잘못보다는 지금은 폐허가 된 장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초반에는 장소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 중반에 이르러 제목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한순간의 실수로 크리스털 팰리스는 불에 소실이 되었고, 당시 규범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타락적인 존재로 보고 정신병원에 가두었다. 또한, 히틀러는 자신의 뿌리일지도 모르는 이들을 비인간적으로 말살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무지, 실수, 차별, 폭력성 등으로 씻을 수 없는 역사들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인류가 저지른 과거만큼은 그 장소에 남았다. 그것만큼 더 확실한 인류의 흑역사는 어디에 있을까. 흥미로움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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