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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피플 ㅣ 상상초과
김구일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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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제로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p.18
예전부터 계속 좋아했던 작가님들의 작품을 읽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새로운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때면 뭔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아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 오른다. 그게 취향에 맞았을 때에는 그야말로 완벽하다. 선호 작가님의 리스트에 올리고 신작을 무조건 기다리게 되는 한 사람의 팬이 된다. 독서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작년부터 시작해 기억에 남는 작가님들의 이름이 꽤 많은 편이다.
이 책은 김구일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종종 신진 작가 공모전 작품들을 읽는 편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모전 작품들을 섭렵하는 것은 아니고 줄거리를 보고 흥미로운 소재들을 골라서 읽는데 작가님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리를 방황하는 소년들의 생존기를 다루었다는 내용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관련 직종에 종사하다 보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로라는 열다섯 살의 남자 청소년이다. 꽤 오랜 시간동안 거리 생활을 해온 듯한데 도둑질을 해 판 물건으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인물이다. 제로 옆에는 원이라는 이름의 친구, 그리고 투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두 친구는 많이 아프다. 특히, 투는 투약을 하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위험한 병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가족 그 이상으로 의지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 곁에는 늘 엄마와 같은 존재의 자영이라는 인물이 있다.
어느 날, 자영이 나타나지 않자 세 사람은 찾으러 나가기 이른다. 투가 맞아야 하는 약이 다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밖에 나오지 말라는 자영의 말을 지킬 수 없었다. 자영을 찾아가던 중 그녀가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또한, 자신들이 보통 평범한 인간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영은 사실을 전하며, 제로의 엄마를 찾아가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그 세 사람에게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자영이 사라졌으며, 윤철이라는 이름의 낯선 사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짧은 페이지 수에 문체 자체도 단순한 편이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제로, 원, 투의 비밀 자체가 SF 장르의 특징으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전문적인 과학적 지식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청소년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이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청소년 소설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에 집중을 하면서 읽었다. 첫 번째는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우선, 유전적으로 다른 임무를 띄고 태어났다는 점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세 명의 청소년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아니다. 그러나 가정 환경의 문제, 사춘기 시절의 혼란스러움 등 다양한 이유로 불안정한 청소년들의 심정이 무엇보다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온전히 양육자의 케어를 통해 올바르게 성장할 청소년들이 거리에 내몰려 불안하게 보낸다는 것 자체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두 번째는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명의 청소년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태어난, 조금은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서두에 언급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과연 올바른 유전자를 위해 또 다른 무언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 자격이 인간에게 있느냐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제로, 원, 투는 좋은 유전자를 받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부모의 욕심과 이기심, 유전자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고자 하는 한 박사의 삐뚤어진 야심으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들도 어쨌거나 하나의 생명일 텐데 과연 세 친구들의 삶과 죽음을 일개 인간들이 선택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예전에 읽었던 청소년 대상 SF 소설이 하나 떠올랐다. 비교적 쉽게 읽혔던 것과 다르게 묵직하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어서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데 이 작품이 딱 그랬다. 사회적인 문제들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 뭔가 무겁게 내리앉은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