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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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미줄 안에서 살아남도록 허락을 받는다. / p.12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고딕 소설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도 호러 장르의 영화는 일절 보지 않는 편인데 활자로 느끼는 분위기도 부정적인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고딕 소설은 놀이공원에서 절대 가지도 않을 귀신의 집과 비슷하다. 이는 아마 겁이 많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무섭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 책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집이다. 그렇게 고딕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왜 읽었냐고 묻는다면 여성이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줄거리들이 현실감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여성이기에 등장인물들의 사건들이 나름 피부로 와닿지 않을까. 추리 장르의 소설도 현실과 맞닿아 있는 줄거리라면 누구보다 좋아하는 독자이기에 이 지점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총 네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여성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보통의 여성보다는 무언가 고민이나 사건을 가졌다. 사실 소설에서 고민이나 사건이 없다면 이야기 전개가 안 될 듯하지만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는다. 그게 남편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살고 있는 사회일 수도 있다.

고딕 소설이기에 긴장감이나 공포는 물론이며, 말할 수 없는 축축한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늪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긴장감에 몰입이 되어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해하면서 읽었다. 그러다 중반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 받고 있는 감정을 느꼈는데 이는 아마 주인공 개인이 아닌 상황이나 배경 등의 조금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크게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먀오 다오>라는 작품과 <환영처럼: 1972>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먀오 다오>라는 작품에는 마오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청소년이지만 조금 조숙한 느낌을 주는 여자 아이이다. 그래서 학교의 남학생들은 그녀에게 성적으로 수치심을 줄 수 있는 괴롭힘을 자행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재혼해 떠나고 그 자리에는 의붓아버지인 패리스가 채운다. 패리스 역시도 마오에게 성적 학대를 일삼는데 기댈 곳 없는 마오에게는 먀오 다오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환영처럼: 1972>에 등장하는 앨리스는 남자 친구인 사이먼의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 이후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앨리스에게 철학과 교수인 롤런드가 등장한다. 앨리스는 임신을 쉽게 밝힐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또 의지할 수 있는 롤런드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롤런드는 순수한 도움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그 역시도 앨리스를 "여성"으로서의 숨겨진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 작품은 성이라는 주제를 공통적으로 풀어낸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하나로 묶어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먀오 다오의 마오에게는 청소년 시기의 부모의 성적 학대를 떠올리게 했다. 상황에 놓인 마오의 모습과 학대를 받는 들고양이들의 모습들이 겹쳐서 보였고, 그게 더 나아가 동물 학대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학교에서 조숙한 친구들에게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던 일부 친구들을 보았기에 이 지점은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환영처럼: 1972는 먀오 다오보다 더욱 더 직설적인 느낌을 받았다. 상황에 대한 묘사들도 노골적으로 와닿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앨리스가 임신 여부를 불안하게 그리는 장면이었다. 매달 하는 월경을 기다리는 듯했는데 이는 주변에서 너무도 익숙하게 보고 또 들었던 사실들이었다. 또한, 아이를 출산해 양육할 수 없는 자격이나 능력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앨리스의 심정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으며, 현실적인 문제에 붙잡혀 불순한 의도를 거절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느꼈던 공포와는 조금 달랐다는 측면에서 고딕 소설의 거부감은 없었던 작품이었다. 오히려 여성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었으며, 조이스 캐럴 오츠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조금씩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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