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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훔친 여자
설송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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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 가는 저세상은 봄인가 보다. / p.7
종종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북한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수도인 평양은 출입증이 있는 국민에게만 허용이 된다는 점부터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내용들까지 하나하나 마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유럽이나 미국의 이야기들도 대한민국 사회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적어도 자유가 보장이 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보다는 가깝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설송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띠지에 있는 문구가 조금 인상 깊게 다가와 선택하게 된 책이다. 북한의 이미지와 최근 인기를 얻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 작품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진 탓이다. 북한은 개인의 자산이 통제되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미묘한 간극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은 봄순이라는 이름의 여성의 1998년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15년에 숨을 거두었던 봄순이 1998년으로 돌아간 회귀물이다. 마음에 두고 있던 우진 오빠는 1998년에 사망했는데 봄순에게 다가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영문을 모르던 봄순은 알고 보니 자신이 1998년도로 돌아갔음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생활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새터민 패널의 이야기로만 듣던 사람이기에 초반에는 조금 읽는 것이 더디었다. 특히, 회귀물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활자보다는 드라마나 영화 등의 영상 매체로 익숙했기에 이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일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스토리 파악이 되면서부터는 그동안 잘 몰랐던 북한의 과거와 현재를 이렇게 문자로 읽는 것이 낯섦보다는 신기함으로 다가와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생활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온 반면, 의외의 지점에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게 바로 여성이었다. 우선, 봄순은 철욱이라는 이름의 남편과 아이를 두고 있었다. 철욱은 그저 콧대만 높은 신분의 사람인데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나 돈을 벌 수 있는 능력, 살아가겠다는 의지조차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부인을 잘못 들인 탓으로 돌렸다. 물론, 봄순의 가정사가 원인이 되었던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욱의 핑계로 느껴졌다.
이 지점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에게 탓을 돌린다거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여자의 팔자가 세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초반에는 우진과 봄순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가정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와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눈초리를 보내던 주변 여성들의 모습들도 씁쓸했다.
신분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성별에 대한 차별까지 있는 환경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당당하게 성공하는 봄순의 모습은 통쾌했고 다른 의미로 생각이 많아졌다. 거기에 자신보다 더 잘난 봄순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남편의 방해로 더욱 힘들었을 법도 한데 봄순은 이를 보란듯이 이겨냈다. 무엇보다 그런 악조건과 현실 속에서 이겨낸 봄순의 의지와 능력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보면서 많은 배울 점을 찾았다.
북한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회귀물이라는 매치 자체가 조금 신기하면서 낯설었지만 오히려 색다른 조합이었기에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새로움과 회귀물이라는 저자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그 지점이 참 매력적이고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