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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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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게임은 인생 자체였다. / p.208
나의 인생을 마치 게임처럼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 요즈음 들어서 종종 하게 되는 생각이다. 게임의 캐릭터는 그래도 최소한 생명 세 개 정도는 주는데 나도 그렇게 주었으면 좋겠다. 실수를 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인생이 실패한 것 같을 때 등 새로 태어나고 싶은 순간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리셋을 눌러 시작되는 것. 가능만 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이 책은 개브리얼 제빈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님의 이름을 출판사 유튜브를 통해 처음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님이자 편집자님의 추천 도서 중 하나가 섬에 있는 서점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서점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참새이기에 바로 구입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읽게 되었다. 거기에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요즈음 하는 생각과 연결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관심이 갔다.
소설의 주인공은 샘과 세이디이다. 샘은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고, 세이디는 암에 걸린 언니를 두었다. 둘은 어린 시절 병원의 오락실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세이디와 샘은 게임이라는 공통관심사가 있었고, 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샘과 나눈 이야기들을 간호사에게 말하자 대단히 놀랐다. 알고 보니 샘은 말을 하지 않아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였다. 간호사의 구미 당긴 제안에 수락한 세이디는 샘과 이야기를 하는 대가로 봉사시간을 얻는다. 이를 알게 된 샘은 세이디에게 욕하면서 인연이 끊어지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샘은 하버드에, 세이디는 MIT에 입학한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세이디를 본 샘은 반가워했다. 당시에는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샘은 세이디를 찾아가 게임을 같이 만들 것을 권유한다. 샘과 세이디, 그리고 샘의 룸메이트인 마크스까지 의기투합해 이치고라는 게임을 만들었고, 큰 흥행을 거둔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제 2의 이치고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새로운 게임들을 런칭했다. 이 세 사람이 게임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정사, 그리고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임을 주제로 했기에 나름 호기심을 가지고 선택했지만 두께가 생각보다 너무 두꺼워서 처음에는 걱정했던 작품이었다. 보통 그 정도 페이지 수를 가진 소설이라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나누어서 읽었을 텐데 걱정이 기우에 불과할 정도로 푹 빠져서 읽었다. 다섯 시간 정도에 완독했으며, 휴대 전화의 사진첩에는 인상적인 문장을 찍은 사진으로 가득했고, 책에는 인덱스가 줄 세워서 붙여 있었다. 특별하고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큰 사건들은 없었지만 그들의 인생사 하나하나가 참 인상 깊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샘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샘은 유대인 아버지와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이민자 1세의 조부모님으로부터 양육되었다. 거기에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불편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과 장애로 인한 주변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섣불리 하지 않은 것도 이에 대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꽤 오랜 시간을 지낸 세이디도 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마크스의 경우에는 같은 동양권의 부모님을 두었다는 측면에서 조금 편해서 드러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를 가로막는 마음 깊은 곳의 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게임에 전부를 걸었던 것은 적어도 샘이 그곳에서만큼은 보통 인물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기억에 남는 내용 또한 많았다. 이치고처럼 아무리 죽고 육체의 손상을 입더라도 다음 날 되면 말짱해지고 싶다고 표현한 부분은 공감이 되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것을 마치 짐처럼 이고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기에 아침이 되면 그 짐마저 리셋이 되어 말짱하게 리셋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치고가 그렇게 부럽고 또 부러웠다. 그러면서 샘과 세이디는 각자의 삶이 참 팍팍했기에 더욱 비교가 되기도 했다.
또한, 샘이 할아버지인 동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참 울컥했다. 샘은 다른 인물과 다르게 사랑한다는 표현에 서툰 인물이다. 세이디와 마크스는 친구와 연인을 막론하고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샘은 괜히 성질을 낸다거나 자리를 피하는 듯했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사랑한다고 말하자 샘 역시도 대답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로 보였으며, 그 의미가 닳을 때까지 반복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사실 부끄럽다는 이유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한 사람으로서 후회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읽으면서 많이 울컥했고, 또 그만큼 마음으로 많이 울었던 작품이다. 최근 여러 이유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는데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소설속 이들은 게임으로부터 살아갈 원동력을 얻었지만 나는 샘과 세이디, 마크스의 이야기를 통해 팍팍한 매일을 버틸 수 있는 용기와 위안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한동안 이 작품의 여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