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이 막 어두워질 참이고, 나는 홀로 정글에 있다. / p.20

한참 호기심이 왕성해 동물을 좋아할 시기에는 동물의 왕국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사자와 호랑이, 고래와 상어 등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동물들이 등장하니 신기했다. 물론, 실제로 본다면 무서워서 부모님 뒤로 숨었겠지만 어쨌거나 브라운관 너머의 동물들은 나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니 참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때는 커서 사파리 여행을 가는 게 커다란 꿈이었다. 혼자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어른이 되면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장래희망을 묻는다면 과학자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그러나 성인이 되어 지금 똑같은 질문을 듣게 된다면 사파리는 전혀 예상에도 없을 것이다. 세상이 더 무섭지만 아직 경험하지 않은 사파리는 그만큼 무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삶도 정글이지만 그곳도 정글이다.

이 책은 로라 콜먼의 에세이이다. 사실 퓨마와 치타를 구분하는 법조차 모르는 동물의 문외한이다. 차라리 시베리안 허스키와 아메리칸 말라뮤트를 구분하는 게 더 쉬울 정도로 개는 좋아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야생의 동물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무서운 동물이라고 각인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과 퓨마가 친구가 된다는 내용이 참 흥미롭게 와닿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인간의 안전은?'이라는 물음이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 선택하게된 책이다.

저자는 영국에서 무료한 삶을 보냈다. 어느 하나 정착한 직업이 없이 여러 일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 같았는데 뭐 하나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볼리비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생츄어리 자원봉사자 공고를 보고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츄어리는 보호소 같은 개념으로 보이는데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구역을 뜻한다. 그동안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그것도 즉흥적으로 자원봉사자로서 그곳에 머문다.

생츄어리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갑자기 소리를 내면서 돼지가 뛰쳐나오고, 흔히 말하는 푸세식 변기의 위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자는 공간마저도 원숭이들과 함께 보내고, 거머리를 비롯한 다양한 벌레들이 사람들의 피를 노린다. 또한, 담당하게 된 동물은 와이라라는 이름의 퓨마이다. 지금까지 본 적도 없던 맹수를 산책시키게 된 것이다. 어차피 짧게 머물 계획이기는 했지만 비위생적인 주변 상황과 와이라를 본 순간 하루라도 빨리 생츄어리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왜 돌아가지 못하고 연장했을까. 돌아갔지만 왜 다시 이곳을 오게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다. 저자는 생츄어리에서 원숭이, 새, 퓨마 등 다양한 동물들과 교감을 한다. 같이 잠을 자기도 하고, 밥을 먹고, 더 나아가 볼일을 볼 때에도 동물들이 옆에서 본다. 모든 것을 다 본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무섭게 느껴졌던 동물들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고, 여러 이유로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울기도 했다. 그러나 약간 의아한 점은 그런 동물들에 비해 막상 와이라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는 것이다. 와이라는 저자를 물어버린다거나 으르렁대는 등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자의 일방적인 짝사랑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환경이다. 이 책에서는 환경을 보호하자는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메시지는 다루지 않는다. 그저 생츄어리에서 벌어진 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심지어 저자의 감정과 생각이 담기기도 하지만 환경에 대한 부분에서만큼은 최대한 절제한 듯 보였다. 생츄어리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다. 나라의 발전은 좋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어 동물들의 터전인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기에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성을 느꼈다.

드라마틱하게 '나와 와이라는 친구가 되었어요.'라는 메시지로 와닿았다면 오히려 소설의 이야기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가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으로 생츄어리에서의 자원봉사로 찾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부분, 환경보다는 동물에 대한 사랑 하나로 비위생적인 생츄어리를 잊지 못하는 부분들이 흥미로우면서도 인상 깊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과 동물의 교감, 그리고 더 나아가 교감으로 인간이 변화되는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안 변합니다. / p.51

여러 리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는 사람 중 하나이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인간은 선함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언제부터 가늠할 수는 없지만 성악설로부터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는 선보다는 악이 더 유리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론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적은 없다.

이 책은 임야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책의 제목만 보고 처음에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분야의 도서인 줄 알았다. 과연 선과 악은 유전이 될까. 개인적인 경험을 따지고 보면 유전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선악을 받았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 부분은 형제자매와 비슷한 편일 텐데 그것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성향 자체가 반대다. 선악을 보는 시야 역시도 서로 다르다. 그렇다 보니 제목만 보고 호기심이 들어 선택한 책이다.

소설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는 부인을 잃었고, 곧 추운 툰드라의 어느 지역으로 떠난다. 어머니인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떠나는 지역이 어머니께서 살았던 도시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리센코 후작은 추위에 강한 형질을 만들기 위해 20년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홀로드나야라는 마을을 만들어 남자 250명, 여자 250명과 함께 생활하는데 이들은 매일 얼음이 있는 시냇물에서 시간을 버티고 이를 못 참았을 시에는 식사를 배급받지 못한다거나 과한 처벌을 받는다.

어머니는 리센코 후작으로부터 기적이라는 호칭을 받을 정도로 애정을 얻는 인물이었다. 누군가는 추위를 견디다 또는 배가 고파서 죽음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었는데 어린 나이의 어머니는 이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신체 조건이 좋은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되자 남자와 여자를 강제로 결혼을 시켜 출산을 하게 만들었고, 태어난 아이들도 예외없이 추위에 노출시켰다. 그러나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어머니 역시도 과거에 두 아들을 그렇게 보냈다. 어머니께서 홀로드나야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리센코 후작을 비롯한 인간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참 인상 깊게 남았다. 첫 번째는 인간의 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리센코 후작의 성질은 그야말로 인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잔인했다. 연구자로서 이론을 증명해 나라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업적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방법이 너무 잘못되었다. 중후반부에 이르러 리센코의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밖에 남지 않은 듯했다.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너무 불편했고, 홀로드나야의 성장한 인간들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두 번째는 악의 유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인간의 악한 본질만 드러난 줄 알았다. 이게 무슨 유전의 이야기인지 싶었다. 유전이라고 한다면 차가움에 강하게 발현되는 형질 정도 되지 않을까. 악과 유전 사이의 관계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후반부를 지나 결말을 보는 순간 뒷통수를 크게 얻어 맞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반전 소설로 착각하기까지 했는데 제목이 바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공간적 배경이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라는 점과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해 생각보다 더디게 읽혀졌지만 주제 자체는 참 흥미로웠다. 특히, 역사적 배경과 유전에 대한 이론이 접목되다 보니 비전문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악의 유전학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뭔가 심오한 느낌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녀들의 들뜬 심정을 그때 이해했다. 동료 의식. / p.62

원래는 전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독서를 꾸준히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이상하게 읽게 된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작품부터 제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작품, 더 나아가 현대인들이라면 겪는 직장에서의 소소한 전쟁을 다룬 작품들까지 생각보다 재난과 전쟁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만큼 소재도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 책은 아이사카 토마의 장편소설이다. 단순한 전쟁 이야기라면 아마 읽지 않았을 텐데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내용인 듯처럼 보여서 읽게 되었다. 소녀들이 왜 총을 들게 되었을까. 읽으면서 마음은 아플지언정 이상하게 내용이 궁금해졌다. 또한, 책을 읽기 전에 드물게 원서에 대한 내용을 검색했는데 조사를 하고 보니 더욱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라피마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소련과 독일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약혼까지 할 친구와 살고 있던 세라피마는 한순간에 터전을 잃었다. 매일 보던 같은 동네 주민들은 죽었다. 심지어 어머니마저도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세라피마는 독일군들에게, 어머니와 집을 불태운 이리나라는 여성에게도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리나는 훈련학교 분교에서 교관을 맡고 있는 인물인데 재능이 있는 여성들을 저격병으로 키우는 임무를 맡고 있다. 세라피마의 모습을 보자 그녀를 자신이 있는 훈련학교로 데리고 간다. 세라피마는 사냥을 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총을 쏘는 것에는 소질이 있었던 것이다. 여러 훈련들에 참여한 뒤, 저격병으로서 독일군들과 싸우는 사건들과 같이 활동했던 저격병들과의 연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전쟁 소재, 그리고 두꺼운 페이지 수, 소련과 독일 전쟁에 대한 지식의 부족함 등 기대가 되는 만큼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가지고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혀서 좋았다. 당시 상황을 언급하는 용어들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만큼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편이어서 시대적 배경이 낯선 독자들에게도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두 가지 지점이었다. 첫 번째는 <인간의 잔혹성>이다. 세라피마는 훈련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생명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 점점 감정에 무뎌져 간다. 특히, 훈련 중 소를 죽이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과 별개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등장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많이 놀랍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적군을 해치웠다는 승리감이 그들에게는 먼저 다가온 듯했다. 전쟁은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두 번째는 <여성들의 연대>이다. 이는 읽기 전부터 기대했던 부분이었는데 무엇보다 작품에서 잘 드러난 듯해서 인상 깊었다. 초반에 분노로 가득찼던 세라피마는 훈련학교에서 똑같이 가족을 잃은 동병상련 동지들을 보면서 변화가 찾아온다. 총을 든 이유가 바뀐 것이다. 적군과 이리나를 죽이기 위해 들었다면 가면 갈수록 같이 있는 동지를, 더 나아가 여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해 서로 의지하면서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이겨내는 동지애가 너무 아름답게 그려졌다.

더불어, 전쟁과 총이라는 키워드가 여성과 묶인다는 게 가장 흥미롭게 와닿았다. 사실 두 키워드는 남성 화자가 말하는 상황들을 작품으로 많이 접했는데 이렇게 여성이 총을 쏘고,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전달해 주는 것. 아마 같은 여성으로서 더욱 인물 하나하나에 이입이 되어 스토리가 더욱 잘 와닿았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무서움을 느꼈다.

그동안 교과서로도 몰랐던 독일과 소련 전쟁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조금 흥미롭게 읽었다. 페이지 수가 술술 넘어가는 것에 비해 머리나 몸은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 자리에 하나하나 여운이 남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소녀들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전쟁이라는 그 위험한 곳에 내몰렸는지,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등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공평한 게임은 인생 자체였다. / p.208

나의 인생을 마치 게임처럼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 요즈음 들어서 종종 하게 되는 생각이다. 게임의 캐릭터는 그래도 최소한 생명 세 개 정도는 주는데 나도 그렇게 주었으면 좋겠다. 실수를 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인생이 실패한 것 같을 때 등 새로 태어나고 싶은 순간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리셋을 눌러 시작되는 것. 가능만 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이 책은 개브리얼 제빈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님의 이름을 출판사 유튜브를 통해 처음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님이자 편집자님의 추천 도서 중 하나가 섬에 있는 서점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서점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참새이기에 바로 구입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읽게 되었다. 거기에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요즈음 하는 생각과 연결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관심이 갔다.

소설의 주인공은 샘과 세이디이다. 샘은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고, 세이디는 암에 걸린 언니를 두었다. 둘은 어린 시절 병원의 오락실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세이디와 샘은 게임이라는 공통관심사가 있었고, 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샘과 나눈 이야기들을 간호사에게 말하자 대단히 놀랐다. 알고 보니 샘은 말을 하지 않아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였다. 간호사의 구미 당긴 제안에 수락한 세이디는 샘과 이야기를 하는 대가로 봉사시간을 얻는다. 이를 알게 된 샘은 세이디에게 욕하면서 인연이 끊어지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샘은 하버드에, 세이디는 MIT에 입학한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세이디를 본 샘은 반가워했다. 당시에는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샘은 세이디를 찾아가 게임을 같이 만들 것을 권유한다. 샘과 세이디, 그리고 샘의 룸메이트인 마크스까지 의기투합해 이치고라는 게임을 만들었고, 큰 흥행을 거둔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제 2의 이치고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새로운 게임들을 런칭했다. 이 세 사람이 게임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정사, 그리고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임을 주제로 했기에 나름 호기심을 가지고 선택했지만 두께가 생각보다 너무 두꺼워서 처음에는 걱정했던 작품이었다. 보통 그 정도 페이지 수를 가진 소설이라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나누어서 읽었을 텐데 걱정이 기우에 불과할 정도로 푹 빠져서 읽었다. 다섯 시간 정도에 완독했으며, 휴대 전화의 사진첩에는 인상적인 문장을 찍은 사진으로 가득했고, 책에는 인덱스가 줄 세워서 붙여 있었다. 특별하고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큰 사건들은 없었지만 그들의 인생사 하나하나가 참 인상 깊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샘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샘은 유대인 아버지와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이민자 1세의 조부모님으로부터 양육되었다. 거기에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불편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과 장애로 인한 주변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섣불리 하지 않은 것도 이에 대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꽤 오랜 시간을 지낸 세이디도 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마크스의 경우에는 같은 동양권의 부모님을 두었다는 측면에서 조금 편해서 드러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를 가로막는 마음 깊은 곳의 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게임에 전부를 걸었던 것은 적어도 샘이 그곳에서만큼은 보통 인물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기억에 남는 내용 또한 많았다. 이치고처럼 아무리 죽고 육체의 손상을 입더라도 다음 날 되면 말짱해지고 싶다고 표현한 부분은 공감이 되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것을 마치 짐처럼 이고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기에 아침이 되면 그 짐마저 리셋이 되어 말짱하게 리셋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치고가 그렇게 부럽고 또 부러웠다. 그러면서 샘과 세이디는 각자의 삶이 참 팍팍했기에 더욱 비교가 되기도 했다.

또한, 샘이 할아버지인 동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참 울컥했다. 샘은 다른 인물과 다르게 사랑한다는 표현에 서툰 인물이다. 세이디와 마크스는 친구와 연인을 막론하고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샘은 괜히 성질을 낸다거나 자리를 피하는 듯했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사랑한다고 말하자 샘 역시도 대답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로 보였으며, 그 의미가 닳을 때까지 반복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사실 부끄럽다는 이유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한 사람으로서 후회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읽으면서 많이 울컥했고, 또 그만큼 마음으로 많이 울었던 작품이다. 최근 여러 이유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는데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소설속 이들은 게임으로부터 살아갈 원동력을 얻었지만 나는 샘과 세이디, 마크스의 이야기를 통해 팍팍한 매일을 버틸 수 있는 용기와 위안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한동안 이 작품의 여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