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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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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들뜬 심정을 그때 이해했다. 동료 의식. / p.62
원래는 전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독서를 꾸준히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이상하게 읽게 된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작품부터 제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작품, 더 나아가 현대인들이라면 겪는 직장에서의 소소한 전쟁을 다룬 작품들까지 생각보다 재난과 전쟁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만큼 소재도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 책은 아이사카 토마의 장편소설이다. 단순한 전쟁 이야기라면 아마 읽지 않았을 텐데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내용인 듯처럼 보여서 읽게 되었다. 소녀들이 왜 총을 들게 되었을까. 읽으면서 마음은 아플지언정 이상하게 내용이 궁금해졌다. 또한, 책을 읽기 전에 드물게 원서에 대한 내용을 검색했는데 조사를 하고 보니 더욱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라피마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소련과 독일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약혼까지 할 친구와 살고 있던 세라피마는 한순간에 터전을 잃었다. 매일 보던 같은 동네 주민들은 죽었다. 심지어 어머니마저도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세라피마는 독일군들에게, 어머니와 집을 불태운 이리나라는 여성에게도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리나는 훈련학교 분교에서 교관을 맡고 있는 인물인데 재능이 있는 여성들을 저격병으로 키우는 임무를 맡고 있다. 세라피마의 모습을 보자 그녀를 자신이 있는 훈련학교로 데리고 간다. 세라피마는 사냥을 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총을 쏘는 것에는 소질이 있었던 것이다. 여러 훈련들에 참여한 뒤, 저격병으로서 독일군들과 싸우는 사건들과 같이 활동했던 저격병들과의 연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전쟁 소재, 그리고 두꺼운 페이지 수, 소련과 독일 전쟁에 대한 지식의 부족함 등 기대가 되는 만큼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가지고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혀서 좋았다. 당시 상황을 언급하는 용어들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만큼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편이어서 시대적 배경이 낯선 독자들에게도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두 가지 지점이었다. 첫 번째는 <인간의 잔혹성>이다. 세라피마는 훈련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생명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 점점 감정에 무뎌져 간다. 특히, 훈련 중 소를 죽이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과 별개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등장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많이 놀랍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적군을 해치웠다는 승리감이 그들에게는 먼저 다가온 듯했다. 전쟁은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두 번째는 <여성들의 연대>이다. 이는 읽기 전부터 기대했던 부분이었는데 무엇보다 작품에서 잘 드러난 듯해서 인상 깊었다. 초반에 분노로 가득찼던 세라피마는 훈련학교에서 똑같이 가족을 잃은 동병상련 동지들을 보면서 변화가 찾아온다. 총을 든 이유가 바뀐 것이다. 적군과 이리나를 죽이기 위해 들었다면 가면 갈수록 같이 있는 동지를, 더 나아가 여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해 서로 의지하면서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이겨내는 동지애가 너무 아름답게 그려졌다.
더불어, 전쟁과 총이라는 키워드가 여성과 묶인다는 게 가장 흥미롭게 와닿았다. 사실 두 키워드는 남성 화자가 말하는 상황들을 작품으로 많이 접했는데 이렇게 여성이 총을 쏘고,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전달해 주는 것. 아마 같은 여성으로서 더욱 인물 하나하나에 이입이 되어 스토리가 더욱 잘 와닿았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무서움을 느꼈다.
그동안 교과서로도 몰랐던 독일과 소련 전쟁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조금 흥미롭게 읽었다. 페이지 수가 술술 넘어가는 것에 비해 머리나 몸은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 자리에 하나하나 여운이 남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소녀들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전쟁이라는 그 위험한 곳에 내몰렸는지,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등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