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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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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안 변합니다. / p.51
여러 리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는 사람 중 하나이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인간은 선함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언제부터 가늠할 수는 없지만 성악설로부터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는 선보다는 악이 더 유리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론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적은 없다.
이 책은 임야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책의 제목만 보고 처음에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분야의 도서인 줄 알았다. 과연 선과 악은 유전이 될까. 개인적인 경험을 따지고 보면 유전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선악을 받았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 부분은 형제자매와 비슷한 편일 텐데 그것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성향 자체가 반대다. 선악을 보는 시야 역시도 서로 다르다. 그렇다 보니 제목만 보고 호기심이 들어 선택한 책이다.
소설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는 부인을 잃었고, 곧 추운 툰드라의 어느 지역으로 떠난다. 어머니인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떠나는 지역이 어머니께서 살았던 도시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리센코 후작은 추위에 강한 형질을 만들기 위해 20년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홀로드나야라는 마을을 만들어 남자 250명, 여자 250명과 함께 생활하는데 이들은 매일 얼음이 있는 시냇물에서 시간을 버티고 이를 못 참았을 시에는 식사를 배급받지 못한다거나 과한 처벌을 받는다.
어머니는 리센코 후작으로부터 기적이라는 호칭을 받을 정도로 애정을 얻는 인물이었다. 누군가는 추위를 견디다 또는 배가 고파서 죽음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었는데 어린 나이의 어머니는 이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신체 조건이 좋은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되자 남자와 여자를 강제로 결혼을 시켜 출산을 하게 만들었고, 태어난 아이들도 예외없이 추위에 노출시켰다. 그러나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어머니 역시도 과거에 두 아들을 그렇게 보냈다. 어머니께서 홀로드나야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리센코 후작을 비롯한 인간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참 인상 깊게 남았다. 첫 번째는 인간의 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리센코 후작의 성질은 그야말로 인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잔인했다. 연구자로서 이론을 증명해 나라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업적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방법이 너무 잘못되었다. 중후반부에 이르러 리센코의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밖에 남지 않은 듯했다.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너무 불편했고, 홀로드나야의 성장한 인간들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두 번째는 악의 유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인간의 악한 본질만 드러난 줄 알았다. 이게 무슨 유전의 이야기인지 싶었다. 유전이라고 한다면 차가움에 강하게 발현되는 형질 정도 되지 않을까. 악과 유전 사이의 관계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후반부를 지나 결말을 보는 순간 뒷통수를 크게 얻어 맞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반전 소설로 착각하기까지 했는데 제목이 바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공간적 배경이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라는 점과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해 생각보다 더디게 읽혀졌지만 주제 자체는 참 흥미로웠다. 특히, 역사적 배경과 유전에 대한 이론이 접목되다 보니 비전문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악의 유전학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뭔가 심오한 느낌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