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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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 전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 p.13

이 책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장편소설이다.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독자이지만 주제로 한 작품들은 나름 취향에 맞았던 기억이 있다.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식이 등장하게 된다면 조금 더디게 읽혀지기는 해도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꽤 만족스러웠다. 이 작품 역시도 출판사 소개에 흥미가 생겨 선택하게 된 책이다.

소설은 열일곱 살의 여자 아이가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여자 아이는 아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독실하게 하느님을 믿고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둘째 언니인 리아는 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가족들과 멀어진다. 이후 시간이 흘러 첫째 언니의 아들 마테오와 만났는데 그동안 몰랐던 사실과 함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체적으로 아나를 죽인 범인을 쫓는 과정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종교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호하다 보니 꽤 많은 기대를 했다. 결론적으로는 그 기대를 충족시켰다. 소설의 첫 문장이었던 "나는 30년 전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 수 있었다. 내용 자체도 술술 읽을 수 있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까지 거슬릴 정도의 번역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번역체 자체에 둔감한 독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단 한 가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로 그렇게까지 가족, 그리고 개인이 풍비박산이 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로 간접적인 경험이 쌓이기는 했지만 단순한 믿음을 넘어선 광적인 믿음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새삼스럽게 피부로 와닿았다. 그마저도 종교를 향한 깨끗한 믿음이 아닌 인간의 더러움을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게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잊고 푹 빠질 수 있는 오락 위주의 추리 스릴러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스위치가 딱 켜질 수 있는 작품 역시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많은 생각과 함께 스펙터클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로 재미까지 잡았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꽤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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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스펙트럼
신시아 오직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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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숄은 마법의 숄이었다. / p.13

이 책은 신시아 오직의 소설집이다. 아예 처음 읽게 되는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사실 내용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숄과 관련된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 역시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단순하게 느낌대로 읽게 되었다. 기대보다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강했다.

소설은 크게 두 편이 실려 있다. 첫 작품인 <숄>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로사와 그의 딸인 마그다, 그리고 조카 스텔라. 목적지도 없이 어디론가, 그것도 오랜 시간을 가고 있는 듯한데 이 상황이 자의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마그다는 어린 아기로 등장하는데 숄로 돌돌 말려 있는 상태로 숄의 모서리를 쪽쪽 빨고 있다. 마그다의 존재를 들키면 안 되는 상황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그렇게 마그다는 죽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인 <로사>는 전편에 등장했던 마그다의 엄마 로사의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 주카 스텔라와 미국으로 건너 왔으며, 그곳에서 로사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그다의 존재가 드러날 때 차마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로사는 그 시간에 멈춰서 살고 있는 듯하다.

얇은 페이지 수를 가진 작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금방 읽을 것이라 예상했다. <숄>은 채 몇 장이 되지 않았고, <로사> 역시도 백 페이지 내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생각이 그저 오만했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들이 너무나 비극적인 것도 모자라 참혹하다 느껴졌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곳,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 그리고 자신의 피붙이도 지킬 수 없는 곳. 그곳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은 학교 다닐 시기에 교과서 한 페이지 정도로 간단하게 배우고 지나갔던 터라 그 실상을 피부로 인식한 적은 없었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단지 그 비극적인 현실을 벗어났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남은 이들은 평생 그 상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트라우마는 남는다는 점이 너무 와닿았다. 어디까지나 독자라는 제 3자의 시선이기에 제한적이겠지만 말이다. 읽는 내내 한 번 완독으로는 끝낼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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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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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분석이나 충고 따위 하지 않고 말없이 나를 지지해주는 면을. / p.107

작가나 작품에 크게 편견을 가지지 않지만 유독 내 머릿속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성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거나 화자가 너무 남성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평들을 자주 보았다. 그 부분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면 이미 몇 편의 작품을 읽었겠지만 불호에 가까운 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작품들은 늘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 전, 자주 시청했던 북 크리에이터님의 영상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에 대한 의견이 아직까지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작가님을 좋아하고 싶지 않은데 작품을 읽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이야기인 것으로 기억한다. 요즈음 언어로 번역하면 '입덕 부정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작가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머릿속에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의견을 아직까지도 왜 이렇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후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작가님의 신작 소식을 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신작에 대한 기대평이나 줄거리는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시간이 될 때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 영상에서 많은 크리에이터분들께서 이 작품에 대해 호평을 남기셨고, 호기심이 들었다. 2024년이 되기 전에 마지막 책으로 선택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열여덟 살의 남자 고등학생이다. 작품에서는 '나'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에세이 대회에서 '너'라고 불리는 한 살 연하의 여고생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주된 이야기 소재는 소녀가 그리고 있는 벽이 있는 도시였다. 원래 사는 곳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것이다. 거기에 지금 있는 자신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엉뚱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를 믿었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너는 갑자기 어느 순간에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네가 말했던 그 도시로 들어가게 되었고, '꿈 읽는 이'라는 호칭을 받아 도서관에서 일했다.

그 안에서 그림자와 나의 어느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시점은 바뀌어 세월이 흘렀다. 나는 성인이 되어 한 출판유통사에서 근무한 직장인이었는데 도서관과 관련된 일을 알아보던 중 산간 지역의 작은 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곳에는 고야스라는 이름의 전 관장과 프로페셔널한 소에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오는 M 소년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고야스의 비밀, 그리고 M 소년과 그 도시와의 관계성들이 등장하고, M 소년도 사라진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히는 스타일의 작품이 아니기에 무척 혼란스러운 상태로 읽었던 것 같다. 거기에 상상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다 보니 작품에서 드러난 도시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게 조금은 어려웠다. 거기에 공간과 시간이 갑자기 바뀌어서 이 지점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읽게 되면서 주변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들을 조금씩 보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묘하게 빠져들었다.'라는 내용이 가장 크게 공감이 되었다. 두꺼운 페이지 수부터 부담되는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두 가지 지점을 생각했다. 첫 번째는 그림자의 의미다. 초반에 열여덟 살의 내가 도시에 들어가면서 그림자를 버려야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바깥에 있는 자신은 그림자, 여기에 있는 것이 자신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물음표가 떠올랐다. 과연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 자기 자신, 또는 자아, 그것도 아니라면 겉에서 보이는 나의 껍데기. 많은 답변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중후반부에 본체와 그림자가 표리일체라고 말하는 고야스의 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두 번째는 벽의 의미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벽을 넘는다. 열여덟 살의 나와 그림자가 단어 그대로 도시의 벽을 넘기도 하지만 현재의 내가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연고가 없는 도서관 관장으로 이직하는 것으로 벽을 넘었다. 고야스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는 것이 하나의 벽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읽는 내내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바꾸어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항상 부딪히는 한계이지 않을까 싶었다. 선택의 순간에서 가로막는 하나의 벽으로 보였다. 이들은 불확실함과 주변 사람들의 우려보다는 도전을 택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살았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간다. 그 지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서두에 언급했던 북 크리에이터님의 말이 그렇게 공감이 되었다. 드물게 작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들었던 사람으로서 좋은 감정보다는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읽었던 작품이었는데 많은 여운이 남았다.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벽에 부딪히고 도전하라는 조언을 이렇게 아름답고도 거대한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작품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편견이라는 벽을 허물 수 있었다. 내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작품을 도장깨기를 해야겠다는 계획과 함께 그림자를 잃지 않는, 그리고 벽을 깨트리고 나아갈 수 있는 스스로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이 리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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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살인 첩혈쌍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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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주인공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관심이 갑니다. 특히, 첩혈쌍녀 전작 역시도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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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유괴 붉은 박물관 시리즈 2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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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저를 기억해 주세요. / p.11

이 책은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소설집이다. 전작이었던 <붉은 박물관>이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미제 사건들의 증거품들을 관리하는 곳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소재 자체도 신선했고, 추리를 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이야기로 발간된 신작에 대한 기대도 컸다.

소설집에는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붉은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사에코와 사토시가 그대로 등장하며, 사토시가 함께 조력해 관장인 사에코의 추리에 따라 사건이 해결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각각의 사건들은 크게 연관성이 없는 편인데 그저 사에코와 사토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전작에서 느꼈던 재미가 조금 더 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이 초반에는 조금 어색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라고 보여졌는데 사에코의 추리 스타일을 기다릴 줄 아는 사토시의 여유가 더욱 와닿았다. 조금 더 술술 읽혀지기도 했고, 몰입도 또한 좋아진 듯하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전작보다는 이번 작품이 조금 더 취향에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죽음을 10으로 나눈다>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붉은 박물관에 있었던 파일 중 하나인 토막 시신 사건을 다시 조사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느 날, 한 부부가 각자 다른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아내는 전차로 뛰어들어 자살했으며, 남편은 열 조각으로 토막이 난 상태에서 살해가 되었다. 당시에는 미제 사건으로 넘겨졌으며, 현재는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이다. 사에코는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섯 작품 모두 결말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는데 이 작품은 유독 기억에 남았다. 처음에는 시체가 토막이 난 부분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게 어려웠는데 읽는 내내 궁금했던 점은 왜 그렇게 토막을 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름 하나하나 사건들을 추리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유일하게 맞혔다. 그래서 더욱 성취감 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밖에도 <기억 속의 유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무엇인지 모를 부모와 자녀 사이의 끈끈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황혼의 옥상에서>라는 작품으로 다시금 편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추리 장르의 매력을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너무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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