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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오서 지음 / 씨큐브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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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실 역은 삼랑진, 삼랑진역입니다. / p.74
이런저런 마음 아프고 힘든 상황 속에서 감기까지 제대로 걸려 쉬는 날만 되면 잠에 들기 바쁘다. 그래도 책은 지속적으로 읽어야 하니 어떻게든 손에 쥐고 있기는 하지만 집중력이 예전만 못하다. 분명 체력이 있을 때 읽었더라면 인생 책으로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을 이야기도 요즈음은 깊은 생각보다는 그냥 넘기는 식으로 읽는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다. 체력이 책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책은 오서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이럴 때 다시 독서 습관을 원래 상태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다. 아직 감기가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고, 약의 기운에 책을 읽는 중이기는 하지만 초기에 비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활자를 읽을 기운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인 힐링 소재를 가진 작품들을 찾다가 신작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창화라는 인물이다. 일은 잘하지만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이방인처럼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끝까지 반대했지만 권력에 눈이 먼 상사의 지시로 진행했고, 억울하게 일의 독박을 써서 퇴사하게 되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미정을 만난다. 미정 역시도 회사생활이 녹록치 않았던 인물이었고, 비슷하게 고향인 삼랑진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렇게 고향으로 향하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화에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부산으로 내려온 이후로도 미정과 삼랑진을 떠올렸다. 그리고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을 행동에 옮긴다. 그것은 바로 삼랑진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단순하게 여행 목적이었는데 삼랑진역 옆에 있는 사진관 건물을 구입해 정착하기에 이른다. 삼랑진 사람들은 물론이고, 창화의 친구마저도 그를 미쳤다고 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삼랑진에 카페를 연 창화에게 봄날이 올까. 미정과 창화는 삼랑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술술 읽혔던 작품이었다. 아마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훨씬 공감이 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가를 나와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에게도 충분히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300 페이지 정도의 작품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는데 그만큼 몰입을 할 수 있었던 소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충분히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일들이 창화와 미정, 그리고 미정의 동생에 이르기까지 인물들로 하여금 나타난다는 점이 참 공감이 되었다. 업무보다 더 힘든 사내 정치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생계를 위해 포기하게 된 꿈 등 그들의 말 하나하나가 거울을 들여다 보는 듯했다. 특히, 창화가 미정의 동생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행복하다.'라는 이야기를 한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창화의 말처럼 후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창화는 그렇게 잘 풀리는 인물은 아니었는데 삼랑진에 와서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게 약간 비현실적인 면으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이기에 충분히 흘러갈 수 있는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그 지점이 '그래. 가상의 세계는 맞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행복하고도 평화로웠다는 점에서 힐링 장르의 매력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