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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모양
이석원 지음 / 김영사 / 2024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p.20
이 책은 이석원 작가님의 에세이다. 십 년 전에 <보통의 존재>라는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당시에는 좋은 감정으로 와닿았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재독했을 때에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조건 좋은 감정에서 나쁜 감정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간 시간만큼 상황이 달라지면서 같은 책도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기억이 선명해서 이번 신작 소식을 듣고 읽게 되었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졌다. 아버지의 병고로 벌어지는 가족 간의 이야기와 어머니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다. 아버지께서는 코로나에 걸리셨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코로나와 독감 백신을 동시에 맞으셨다고 한다. 지병인 당뇨가 있으셨는데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갑자기 연명치료를 생각해야 될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 빠지셨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의 갈등과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 담겼다. 또한, 오십이 넘은 작가님께 큰 영향을 미쳤던 분이 어머니이신데 그동안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유년 시기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에세이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너무 현실감 있게 와닿았던 책이어서 페이지 넘기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읽었다. 십 년 전에 읽어서 조금 낯설게 느껴질 법도 했을 텐데 오히려 익숙한 느낌으로 하나하나 페이지를 넘겼다. 300 페이지 정도의 적당한 두께의 책이었는데 한 시간 반 정도에 모두 완독이 가능했다. 두 시간짜리 라디오를 들으면서 읽었는데 채 그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보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욱 인상적으로 남았다. 읽는 내내 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공감이 되었던 파트이기도 하다. 매주마다 면회 기간에 중환자실 앞에서 아버지의 면회를 기다리던 모습,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연명 치료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병실에서 환자 배드 손잡이에 묶여 있던 아버지의 손 등 마치 작년 봄에 있었던 우리 가족의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그 순간의 이별을 준비하는 작가님의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생각과 감정들이 더욱 하나하나 강렬하게 와닿았다.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버지이지만 순간순간 시간이 흘러가면서 느꼈던 애틋함이 활자를 읽으니 다시금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어머니께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하지만 지금은 폭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양육 방식을 가지신 분인 듯하다. 작가님의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편이기도 하다. 과연 나라면 작가님의 상황에서 어머니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읽었다. 아마 애증보다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연을 끊고 살지 않았을까. 작가님 스스로도 '스톡홀름 증후군'을 언급하셨는데 활자로 읽는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어머니의 방식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좋게 말하자면 냉정하고, 나쁘게 말하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띠지에 적힌 '나와 꼭 닮은 어느 가족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문구가 유독 와닿았던 에세이였다. 그만큼 동질감이 느껴졌다. 부모님을 보내지 않는 자식은 없을 것이고,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안 받는 자식 또한 없을 것이다. 작으면 작게, 크면 크게 부모님께 상처를 받지 않은 자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작가님의 슬픔과 내가 경험했던 슬픔의 모양은 다르겠지만 자식의 입장으로서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많은 공감을 받았던, 그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