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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 없는 사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백수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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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틀림없이 앙드레가 훗날 책 속에 인생이 적힐 비범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 중 한 명일 거라고 은밀히 생각했다. / p.23
인간 관계에 관심도, 유대 관계에 대한 집착도 없는 편이어서 뭐든 혼자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 생각들이 아마 이십 대 후반까지도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즈음 들어 조금 가치관들이 변하고 있다. 막상 그렇게 외롭다는 느낌보다는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내가 모르는 '둘도 없는 사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억도 떠올리게 된다.
남들에게 언급하면 조금 긴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같은 학교를 꽤 오랫동안 같이 다녔던 한 살 아래 자매가 성장기의 '둘도 없는 사이'가 아닐까 싶다. 친구도 24시간 내내 붙어 있을 일이 없을 텐데 자는 공간마저도 같으니 그야말로 척하면 척, 모르는 게 없는 그런 사이로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그리고 조금 떨어지게 고등학교 2년을 보냈다. 이후 각자의 살 길을 찾아 떠나면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가장 그 한 문장에 부합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 책은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프랑스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독서모임 선정 도서로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어서 대충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와 파격적인 계약 연애를 했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보니 아직도 뇌리에 남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 두 사람 사이의 쿨하고도 매력적인 연애 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소설이 발간되었다고 해서 관심이 생겨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시몬 드 보부아르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보다는 올해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의 작가님의 번역이라는 점이 더욱 기대가 되었던 지점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실비라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발령으로 이사를 오게 된 실비는 그곳에서 앙드레라는 이름의 또래 친구를 만난다. 실비와 달리 앙드레는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편이었는데 실비와 앙드레는 금방 친해졌다. 앙드레의 집안 분위기는 보수적인 것을 넘어선 통제적이어서 실비는 이러한 환경에서 힘들어하는 앙드레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필사적인 반대에 떠나보냈으며, 여성으로서 요구되어지는 사회적 규범에 맞춰 살아갔다.
어렸을 때에는 당차게 지내왔던 앙드레는 점점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으로 자신을 억제했고, 실비는 이를 벗어나 조금이나마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이 지점에서 실비와 앙드레는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관계이자 우정 그 이상의 인간적인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점점 우정을 깊어나간다. 결론적으로 앙드레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조금 어렵게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하는 가치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 두 사람이 존재했던 그 시절만큼 종교적인 의미로 억압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읽는 내내 '뭘 이렇게까지 여성을 간섭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아마 이는 평생 가도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해서 짧은 페이지 수이지만 완독이 오래 걸렸다.
앙드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실비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억압이 만들어낸 마음의 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앙드레는 정숙함을 요구하는 여성의 가치관으로 통제되어 온 사람이었는데 그 결과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많은 아픔을 느꼈다는 점에서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게 죄가 아니라는 어느 드라마의 명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지점이 가장 답답했다.
두 사람의 운명과 우정의 이야기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과연 살아가면서 이렇게 무언가를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앙드레와 실비의 이야기를 통해 통제보다는 자유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더욱 강하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어려웠지만 그만큼 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읽는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