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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구시키 리우 지음, 곽범신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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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 p.5
이 책은 구시키 리우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가족의 일로 매일 긴장감으로 하루를 보내다 보니 한동안 책을 손에 쥘 수 없었다. 스스로 견디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아 최근에 다시 의식적으로 독서를 하고 있는데 어려운 책들보다는 흥미 위주로 하나씩 다시 습관을 잡아가고 싶어 선택한 책이다. 이런 생각 정리에는 역시 일본 작가의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 가장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겐이라는 이름의 사형수가 암으로 죽게 되면서부터 현재 시점으로 시작된다. 겐은 30년 전 아동 납치 살인 사건으로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이요와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때 당시 경찰로 근무했던 세이지는 이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재수사할 수 없었고, 현재는 경찰 은퇴를 한 상태이다. 겐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손자와 손자 친구까지 함께 이 사건을 다시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각처럼 술술 읽혔던 작품이었다.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는 기본적으로 흡입력이 좋아야 된다는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이 딱 그렇다. 400 페이지가 넘는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꽤 두껍다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읽고 나니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사실 일본 소설 특징 중 하나인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점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비교적 일치하는 편이어서 수월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진범의 정체이다. 세이지를 비롯한 사건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와 진범이 아이들을 납치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이 번갈아 서술되어 있는데 읽는 내내 진범이 신경 쓰였다. 장르 소설에서는 너무 뻔한 긴장감인 걸 알면서도 유독 이 작품이 주는 압박감이 심했다. 마치 안개처럼 느껴진 듯했다. 등장 인물 하나하나 진범이라는 생각으로 의심하면서 읽었다. 후반부에 이르러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진범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었다.
두 번째는 영웅화이다. 결말까지 읽고 난 이후의 감정은 그저 소름이 돋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 소름의 원인이 진범의 정체도 아니고, 사건을 쫓는 이들의 끈기도 아닌 영웅화에 있었다. 읽으면서 세이지가 믿는 정의와 억울한 누명을 쓴 겐과 이요에 대한 연민이 들었는데 에필로그에서 드러난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분명 세이지가 헀던 행동들은 옳고 또 필요한 일이었는데 그것이 또 다른 악의 씨앗이 된다는 점을 느끼면서 과연 이러한 선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그동안 매체로 보았던 많은 사건들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흥미 위주로 선택한 책이었기에 그 지점은 충분히 충족되었다. 거기에 지극히 사적인 취향인 사회파 미스터리까지 같이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사실 작가의 의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인데 읽으면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마저 주었다. 깊이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는 느낌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