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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존엄보장센터 ㅣ 함께 읽는 소설
남유하 외 지음, 김애연 외 엮음 / 서해문집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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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하며. / p.39
인간뿐 아니라 살아 있다면 무조건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생물의 존엄을 위해 노력을 하는지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나와 주변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대로 실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존엄을 보장해 주는 국가 기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정부 관계 부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키고자 복지 제도와 인권에 대한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지만 존엄만 따지고 보면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연관성을 찾는다면 국가인권위원회 정도일까.
이 책은 SF 작가들의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제목 자체가 눈에 들어왔다. '국립존엄보장센터'라는 기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을 할까. 이것 또한 상상속에서 존재하는 다른 세계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 이외에 다른 의미들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존엄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보고 싶었다.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두었던 책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서평단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국립존엄보장센터>는 국립존엄보장센터에 들어온 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노인이 되면 생존세를 내야 하는데 세금을 낼 수 없는 저소득층의 노인의 경우에는 국립존엄보장센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주인공인 노인 역시도 폐지를 줍는 등 어려운 생계를 이어가지만 생존세를 체납해 국립존엄보장센터에 들어온다. 그곳에서는 유니폼으로 환복 후 여러 문화 시설을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24 시간 타이머가 돌아가는 시계를 채워준다. 주인공은 그 안에서 다양한 노인들을 보게 된다.
두 번째 소설인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불노불사의 약인 이터너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노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술을 마시고 공원 벤치에서 잠이 들던 중 애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만난다. 애나는 아직 나이가 어려 이터너티를 맞지 않았고, 주인공은 나이가 들어 이터너티를 맞는 의미가 없어 맞지 않았다. 주인공은 애나에게 이터너티의 부작용과 진실을 말해 준다.
세 번째 소설인 <친절한 존>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선동은 존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말동무는 물론이고, 일정을 알려 주는 등 항상 선동의 옆에는 존이 있다. 존은 늘 친절하게 선동을 대했으며, 선동은 존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른다. 존과 함께 나간 공원에서 어떠한 사건을 겪게 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존에 대한 신뢰감을 더욱 더 깊이 느끼는 계기가 된다.
네 번째 소설인 <인간의 이름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을 반대하는 학생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차녹주는 로봇 파괴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로봇을 파괴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배우기는 하지만 로봇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애완 로봇까지 망가트리는 문제아이며, 상담 시간을 받았다. 어느 날 학교에 교무부장 선생님이 부임해 상담을 받으면서 생각의 전환을 맞이한다.
다섯 번째 소설인 <유일비>는 동영상 매체를 보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효성은 유일비 사이트에서 라이브 영상을 많이 보는 편이다. 거기에서 매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높은 첨탑을 안전 도구도 없이 오르는 사람 등 다양한 스트리머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이가 자고 있는 영상을 자주 보는 편이다. 다른 영상들과 달리 구독자가 별로 없는 영상인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들어오고 효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효성에게 부탁 하나를 한다.
얇은 두께에 청소년을 위한 SF 소설집이어서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작품을 읽으니 인간의 존엄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 등 조금은 깊은 주제의 소설이어서 문체와 별개로 생각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죽을 권리마저도 박탈당한 저소득층 노인에 대한 문제, 인공지능에 지배되는 인간, 인간의 죽음이 과연 축복인지에 대한 내용들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도 내용 자체는 청소년 시각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상상이나 읽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내용들도 좋았지만 마지막에 실린 대담에 대한 내용들이 참 인상 깊었다. 단순하게 사람들이 왜 SF를 좋아하는지뿐만 아니라 왜 청소년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렸는데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SF 하면 우주를 포함한 이야기들을 봤는데 사실 현실감이 없다는 이유로 그동안 등한시했었다. 이렇게 리뷰를 남기기 시작하면서부터 SF 소설을 읽게 된 입장으로서 SF가 공상 소설이 아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소설이라는 말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마 짧은 시간에 SF 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SF를 즐겁게 읽는 법이라는 주제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SF에 관한 책 내용을 언급하면서 낯선 과학 용어에 집착하지 말고, 세계관이나 구조에 무게를 두어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SF 소설을 읽으면 거의 내용의 절반은 날린다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한다. 특히, 예전에 읽었던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경우에도 과학적 지식들은 전부 다 날리고, 순수하게 주인공의 서사 위주로만 이해를 했었다. 그래도 결국에는 큰 감동을 느꼈는데 이 내용을 보면서 부족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책을 등한시해서 독해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부모님께서 크게 간섭을 하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책 읽는 것을 독려하셨다. 주변 친구들만 봐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부모님들께서는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성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가져다 버린다는 내용도 봤다. 나의 과거만 보더라도 언어 영역만큼은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늘 중상위권을 달릴 수 있었던 이유가 독서라는 취미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느낄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독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성적에만 집착해 교과서와 문제집만 보는 현대 시대가 답답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이렇게 함께 읽는 소설을 통해 조금이나마 독서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