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존엄보장센터 함께 읽는 소설
남유하 외 지음, 김애연 외 엮음 / 서해문집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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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하며. / p.39

인간뿐 아니라 살아 있다면 무조건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생물의 존엄을 위해 노력을 하는지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나와 주변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대로 실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존엄을 보장해 주는 국가 기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정부 관계 부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키고자 복지 제도와 인권에 대한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지만 존엄만 따지고 보면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연관성을 찾는다면 국가인권위원회 정도일까.

이 책은 SF 작가들의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제목 자체가 눈에 들어왔다. '국립존엄보장센터'라는 기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을 할까. 이것 또한 상상속에서 존재하는 다른 세계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 이외에 다른 의미들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존엄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보고 싶었다.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두었던 책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서평단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국립존엄보장센터>는 국립존엄보장센터에 들어온 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노인이 되면 생존세를 내야 하는데 세금을 낼 수 없는 저소득층의 노인의 경우에는 국립존엄보장센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주인공인 노인 역시도 폐지를 줍는 등 어려운 생계를 이어가지만 생존세를 체납해 국립존엄보장센터에 들어온다. 그곳에서는 유니폼으로 환복 후 여러 문화 시설을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24 시간 타이머가 돌아가는 시계를 채워준다. 주인공은 그 안에서 다양한 노인들을 보게 된다.

두 번째 소설인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불노불사의 약인 이터너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노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술을 마시고 공원 벤치에서 잠이 들던 중 애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만난다. 애나는 아직 나이가 어려 이터너티를 맞지 않았고, 주인공은 나이가 들어 이터너티를 맞는 의미가 없어 맞지 않았다. 주인공은 애나에게 이터너티의 부작용과 진실을 말해 준다.

세 번째 소설인 <친절한 존>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선동은 존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말동무는 물론이고, 일정을 알려 주는 등 항상 선동의 옆에는 존이 있다. 존은 늘 친절하게 선동을 대했으며, 선동은 존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른다. 존과 함께 나간 공원에서 어떠한 사건을 겪게 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존에 대한 신뢰감을 더욱 더 깊이 느끼는 계기가 된다.

네 번째 소설인 <인간의 이름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을 반대하는 학생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차녹주는 로봇 파괴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로봇을 파괴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배우기는 하지만 로봇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애완 로봇까지 망가트리는 문제아이며, 상담 시간을 받았다. 어느 날 학교에 교무부장 선생님이 부임해 상담을 받으면서 생각의 전환을 맞이한다.

다섯 번째 소설인 <유일비>는 동영상 매체를 보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효성은 유일비 사이트에서 라이브 영상을 많이 보는 편이다. 거기에서 매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높은 첨탑을 안전 도구도 없이 오르는 사람 등 다양한 스트리머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이가 자고 있는 영상을 자주 보는 편이다. 다른 영상들과 달리 구독자가 별로 없는 영상인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들어오고 효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효성에게 부탁 하나를 한다.

얇은 두께에 청소년을 위한 SF 소설집이어서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작품을 읽으니 인간의 존엄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 등 조금은 깊은 주제의 소설이어서 문체와 별개로 생각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죽을 권리마저도 박탈당한 저소득층 노인에 대한 문제, 인공지능에 지배되는 인간, 인간의 죽음이 과연 축복인지에 대한 내용들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도 내용 자체는 청소년 시각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상상이나 읽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내용들도 좋았지만 마지막에 실린 대담에 대한 내용들이 참 인상 깊었다. 단순하게 사람들이 왜 SF를 좋아하는지뿐만 아니라 왜 청소년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렸는데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SF 하면 우주를 포함한 이야기들을 봤는데 사실 현실감이 없다는 이유로 그동안 등한시했었다. 이렇게 리뷰를 남기기 시작하면서부터 SF 소설을 읽게 된 입장으로서 SF가 공상 소설이 아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소설이라는 말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마 짧은 시간에 SF 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SF를 즐겁게 읽는 법이라는 주제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SF에 관한 책 내용을 언급하면서 낯선 과학 용어에 집착하지 말고, 세계관이나 구조에 무게를 두어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SF 소설을 읽으면 거의 내용의 절반은 날린다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한다. 특히, 예전에 읽었던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경우에도 과학적 지식들은 전부 다 날리고, 순수하게 주인공의 서사 위주로만 이해를 했었다. 그래도 결국에는 큰 감동을 느꼈는데 이 내용을 보면서 부족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책을 등한시해서 독해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부모님께서 크게 간섭을 하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책 읽는 것을 독려하셨다. 주변 친구들만 봐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부모님들께서는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성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가져다 버린다는 내용도 봤다. 나의 과거만 보더라도 언어 영역만큼은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늘 중상위권을 달릴 수 있었던 이유가 독서라는 취미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느낄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독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성적에만 집착해 교과서와 문제집만 보는 현대 시대가 답답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이렇게 함께 읽는 소설을 통해 조금이나마 독서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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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 - 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애도 모임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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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크닉을 떠난다. / p.42

뉴스에서 죽음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나의 동년배인 사람들의 죽음일 경우에 더욱 감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며칠 정도는 묘하게 우울감이 자리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더욱 공감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임상심리학자이신 고선규 작가님과 다섯 명의 자살 사별자들의 대한 도서이다. 자살의 심각성을 많이 느낀다. 아무래도 미디어를 통해 한국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니 더욱 경각심을 가지는데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연히 책을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고 구매했었다. 기회를 보다 여행을 동행할 책으로 골라서 읽게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분들은 신청과 개별 상담 등을 통해 다섯 명을 선정되었고,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다. 애도 모임의 리더인 원이는 2018년에 남동생을 잃었다. 민이는 2019년에 오빠를 잃었고, 과중한 업무로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이는 2015년에 여동생을 잃었으며, 여동생을 자살로 이끈 우울증을 알고 싶었다. 영이는 2019년에 아버지를 잃었고, 몸이 안 좋으신 어머니의 간병으로 지쳤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경이는 2019년에 언니를 잃었으며, 유일하게 자살한 이후의 모습을 봤다.

자살 사별자라는 용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남은 가족들의 심리부검면담을 한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흔히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시체를 부검을 한다는 것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었지만 심리부검면담은 처음 들어서 생소했다. 고인을 기억하거나 보내는 방법뿐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차원에서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인에 대한 감정들을 다루는 면담을 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다섯 명의 사람들이 담담하게 어떤 상황에서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되었는지 서술된 부분에서 참 마음이 아팠다. 산에 오르다 내려오는 길에, 학교에서 공부하다, 엄마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새벽에 잠을 자고 있다가 등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던 그 시간에 들었다고 한다. 과연 나라면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그저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은 느낌으로 표현이 가능할까.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눈앞이 아득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우리나라 사회가 자살 사별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여기에 나오는 자살 사별자들 중에서도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의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자살이라고 하면 뒷말이 나오기 때문이겠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텐데 말이다. 사실 이유가 그렇게 중요할까. 이러한 부분은 인식이 조금 바뀌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가족의 옷을 전부 없애거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볼 때마다 떠오르기 때문에 조금은 멀리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가족의 옷을 입고 다니고, 누군가는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후회스럽다고도 했다. 각자 사람에 따라 애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일괄적으로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중간에 샤이니에 대한 임상심리학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나오는데 큰 공감이 되었다. 저자는 샤이니의 활동이 무엇보다 반가웠다고 한다. 상처와 슬픔을 안고도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고, 고인을 잊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느꼈다는 것인데 이는 샤이니의 팬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살 사별자들에게도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샤이니의 팬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타격이 있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동년배이기도 하고, 데뷔 때부터 매체를 통해 봤던 아이돌 그룹이었기 때문에 내적인 친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충격을 많이 받았고 한동안 우울했었다. 더이상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못 듣는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샤이니의 컴백이 반가웠고, 노래 자체에서 희망을 느껴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플레이리스트에서 자주 듣는데 이러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사실 처음에는 자살 사별자들의 이야기에 울컥할 때가 많아서 이 책을 가져온 것을 후회했었다. 여행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울 수는 없지 않은가.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면서 읽었는데 점점 페이지를 넘길수록 지금 읽게 된 게 다행이었다. 마음이 무겁고 슬프기는 했지만 마냥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책이었다. 다섯 명의 자살 사별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힘과 용기가 느껴졌다. 큰 아픔을 겪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 일상을 잘 살고 있다고, 고인을 지우지 않아도 오롯이 기억하면서 이겨내고 있다는 말이 나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다.

꼭 가족과 친구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응원했던 연예인들 역시도 어떻게 보면 소중한 존재이기에 아마 우리 모두 자살 사별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나에게는 하나의 큰 방패막이 되어 주었다.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남은 이들을 위한 이야기들이 인상 깊게 남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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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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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 / p.598

내 또래의 주변 사람들은 어렸을 때 여름 캠프의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제복의 로망을 주었던 아람단과 걸스카우트 등의 활동이,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주변인들에게는 여름성경학교가 그랬다. 나는 여름 캠프를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게 체험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동아리 여름 캠프가 처음이었다. 넓은 범위에서 여름 캠프였지만 사실은 농촌 봉사 활동 중 하나로 1박 2일로 떠났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츠지무라 미즈키의 장편 소설이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몽환적인 표지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는 구절이었다. 백골 시체의 주인공을 파헤치는 스릴러적인 요소와 더불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해 줄 이야기가 기대가 되었고, 삼십 년이라는 시간을 둔 우정의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카와 노리코라는 두 아이이다. 미카라는 목차가 있어서 처음에는 미카의 시점으로 전개가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다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미카의 과거를 독자에게 알려 주기 위함으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미카보다는 노리코의 시선과 감정 위주로 묘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 역시 미카보다는 노리코 시점으로 이해하면서 읽었다.

노리코는 학교에서 조금은 아웃사이더 부류의 4학년의 여자 아이이다. 외로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던 중 친구인 유이의 제의에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함께 참여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유이의 주변 친구들과 새로 만난 친구들까지 같이 어울리면서 학교와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오히려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지도 선생님들을 보면서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큰 호감을 느낀다.

거기에서 미카를 만난다. 미카는 미래학교에 합숙하고 있는 아이로, 노리코와 동갑이다. 노리코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일을 도와 주고, 여러 이야기들을 같이 나누면서 둘은 친해진다. 미카는 어른스러운 면이 있기는 했지만 묘하게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아이인 듯하다. 그러면서 노리코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는 말을 건네고, 노리코는 이를 수락하며 두 번의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참여한다. 이후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노리코는 변호사가 되었다. 뉴스에서 나온 미래학교에 관한 보도와 발견된 백골 사체의 존재를 알고, 노리코에게 의뢰된 사건을 통해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백골 사체가 미카가 아니기를 바란다.

읽으면서 백골 사체의 주인공을 찾는 스릴러적인 요소보다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생각보다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고발적인 요소를 더욱 느꼈다.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가족과 갈등을 유발하는, 또는 가족과 연을 끊게 만드는 류의 보도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아마 내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카와 노리코의 우정보다는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류애를 상실하게 만드는 이야기여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면서 즐기는 게 성장에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으면서 같이 즐길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도시의 아이들은 자연에서 자유를 느낄 시기에 학원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공부에만 열중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데 이게 어른들의 어떠한 목적과 만나면 말이 달라진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닌 일부 어른들의 사상이나 관념 등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교육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이 소설이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분명 노리코는 미래학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성인이 된 후 미래학교에 대한 안 좋은 보도가 나오면서도 가족에게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일은 없었다고 대변한다. 의도는 어찌 되었든 미래학교에 근무했었던 선생님들은 겉으로 보기에 누구보다 친절하게 아이들을 생각하는 듯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책임감을 아이들에게 회피하면서 이중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부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조금 세게 생각하면 이것이 아동 학대인가, 라는 생각까지 닿았다.

노리코의 시선에 따라 백골의 시체가 부디 미카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백골 시체가 누구일지 궁금해지는 마음이 모였던 소설이다. 염원과 호기심이 뒤섞인, 조금은 애매모호한 느낌이었다. 또한,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미래학교의 아이들도, 어른의 잘못된 사상과 관념에 세뇌가 되어 사회에서 낙오된 아이들도, 어른들의 비겁함에 책임감을 가지게 된 아이도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내가 예상하고 있었던 마음 졸이는 스릴러도, 마음을 녹이는 진한 우정도 한몫 차지했지만 그것보다는 조금은 무겁고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이어서 660 페이지의 두꺼운 분량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없었다. 단지 어른들의 그 이기적인 마음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빛 좋은 개살구 격의 미래학교를 통해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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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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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와 영원 사이에는 정말이지 작은 차이밖에 없다. / p.382

종종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가 있다. 멍하게 하늘을 봤는데 별이 있는 풍경이라든지, 여행지에서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라든지, 산에서 돌아다니는 청설모나 다람쥐의 움직임이라든지 등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그림들을 갑자기 보게 되면 자연 자체를 인상 깊게 보고 자연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리처드 파워스의 성장 소설이다. 사실 표지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줄거리만 보고 습지의 소녀를 주제로 한 소설이 떠올랐다. 축축한 습지의 모습을 잘 묘사해서 나에게도 참 인상 깊은 작품이었는데 비슷한 결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심이 생겼다. 보면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우주생물학자인 아버지 시오와 동물 보호 운동권자인 어머니 엘리사 사이에서 태어난 로빈이라는 남자 아이다. 여러 정신과 의사들에게서 자폐 또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를, ADHD라는 증세가 있다고 듣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난폭하면서도 예민한 행동과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말을 구사해 학교에서도 낙인 찍힌 문제아 중 하나이다. 특히, 이러한 행동들은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서부터 더욱 심해진다.

덕분에 시오도 학교에 가게 된 날이 많은데 아들의 문제 행동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고자 같이 여행을 가거나 신경을 연구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로빈의 문제 행동이 감소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는 하지만 과거 어머니의 말과 행동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로빈은 우주를 찾는 아버지와 동물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상했던 소설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주인공의 성별부터 주변 환경이 달랐지만 두 주인공 모두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낙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는 점과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점,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 준다는 점이 비슷했다. 과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예상했던 소설은 생물학의 느낌을, 이 소설은 천문학의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비슷한 결로 인상 깊었고 또 만족하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로빈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소설에서는 로빈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민하면서도 정신 세계가 독특한 아이로 비춰진다. 갑자기 멸종 위기종인 동물을 그려 파머스 마켓에 판매하겠다고 하거나 운전하다 동물을 친 아버지께 화를 낸다거나 하는 행동들을 보면 섣불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로빈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이해하지 못해 놀리고, 어른들은 로빈을 방임하거나 학대한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위협한다. 사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로빈의 행동들이 조금 답답하면서도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으면서 로빈에게 공감과 동화가 되었다. 로빈은 그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했던 말과 행동들이었다.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과 가치관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읽으면서 우주와 자연에 비유한 로빈의 말과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특히, 완벽한 사람은 없다면서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시오가 엘리사였다면 로빈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한 말인데 완벽함이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거나 봤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던 부분이다.

또한, 주인공인 로빈의 성장뿐 아니라 아버지인 시오의 성장도 볼 수 있었다. 로빈은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갔으면 하는 아버지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런데 일침이 직설적이면서도 상처를 주는 말들이 아닌 뭔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보통 아홉 살 된 아들이 아버지를 가르친다면 유교 사상에 따라 버릇 없는 자식이 되었을 텐데 시오는 로빈에게 배우기도 하고, 그를 그대로 인정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인 시오도 로빈을 통해 아버지로서, 우주생물학자로서, 사람으로서 조금씩 커가는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맑음과 사랑이 넘치는 로빈을 보면서 나는 세상에 많이 찌든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로빈처럼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할 생각은 들지 않았으며, 매일 세상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다 보니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오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로빈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또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과장을 섞는다면 2022 년 인생의 책이, 현실적으로는 2022 년 상반기 최고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는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던 소설이었고, 마지막에는 울컥할 정도로 큰 감동을 주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홉 살 로빈이라는 소년이 준 여운과 선물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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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숨겨진 환자들 - 당신이 모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재구성
미켈 보르크-야콥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와사랑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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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질병과 달리 삶은 늘 죽음으로 끝난다. / p.214

전공 과목에서 심리학 이론을 배울 때마다 프로이트가 끼친 영향에 대해 강조할 때가 많다. 융도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같이 연구하다 틀어져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론을 발표했었고, 에릭슨의 이론 역시도 프로이트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조금 더 펼쳐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지금에서 보면 프로이트 이론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여러 심리학 이론을 배우다 보면 영향력이 꽤 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은 38 명의 프로이트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도서들을 많이 봤지만 거기에서도 프로이트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가끔은 철학 이야기에서도 프로이트가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전공에서는 세부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항상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뭔가 프로이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지 않을까.

38 명의 환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충격적이었다. 아무래도 프로이트 이론 자체가 성으로 수렴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련 언급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을 경시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수업을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사례로 보게 되니 새삼스럽게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치료 사례들이 담긴 이야기, 환자들의 일대기가 담긴 내용들이어서 흥미로웠다.

38 명의 환자들은 대부분 잘 사는 유지 집안의 자제들이었고, 미술이나 문학 쪽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신경증적인 증상을 보이고, 모르핀이나 알코올 등의 중독을, 성적인 문제 행동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어렸을 적에 받았던 성적인 충격으로 인해 드러난 증상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약물을 주입하거나 분석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처방과 분석으로 호전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환자들 중에서 프로이트의 딸이자 같은 정신분석학을 연구했던 딸 안나 프로이트와 프로이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의외라고 느껴졌다. 프로이트의 아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안나 프로이트의 문제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성적인 행동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로이트에게 분석을 맡기기도 한다. 사실 나라면 아버지께 나의 문제적인 부분을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러운 일이어서 다른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은 프로이트를 믿고 의지했지만 독자이자 제삼자의 시선인 나에게는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프로이트의 분석이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과에서 볼 문제와 원인을 정신분석학에서 찾는 것도, 경미한 정신적인 문제도 과하게 진단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변비의 원인도 과거 어린 시절 성적인 충격을 받아서 그렇다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분석은 정신적인 문제 행동을 보인 이유가 어머니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듣고 충격을 먹었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뭔가 어이가 없었다. 또한, 계속 성관계를 하라는 처방도 당황스러웠다. 아마 지금의 처방이었다면 돌팔이 의사라고 SNS에 도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들 중에서도 환자의 가족들이나 환자가 프로이트를 돌팔이 의사로 칭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사실 돌팔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에게는 터무니없는 진단처럼 느껴졌다.

당시 보수적인 시대상으로 동성애를 하나의 정신병으로 진단해 말도 안 되는 처방을 내리는 내용도 있었다. 오죽하면 프로이트는 동성애라면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었다고 한다. 동성애가 정신병에서 나온 게 비교적 최근의 일이어서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동성애자가 된 이유를 과거 성적인 문제에서 찾는다는 발상은 조금 말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프로이트는 38 명의 환자들을 가명까지 쓰면서 숨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극비 보안인 것처럼 재산과 명성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에 대한 정신 병력들이 하나의 흠이 된다는 생각에 이를 보호한 것일까. 아니면 프로이트의 실패를 숨기기 위해 했던 일일까. 후자라고 하기에는 가명을 쓴 서신에서 자신의 오진이나 과오를 인정하지 않거나 다른 이유로 돌리는 등 자신의 분석에 대해 후하게 평가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진료 기록이지만 말이다.

보면서 다시금 프로이트 이론의 비판을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성적인 부분에 집착해 이유를 찾으려고 했고, 어린 시절에 너무 몰입해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정신적인 문제 자체가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쉽게 호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악화되어, 또는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프로이트 이론의 명암 중 어두운 면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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