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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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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와 영원 사이에는 정말이지 작은 차이밖에 없다. / p.382
종종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가 있다. 멍하게 하늘을 봤는데 별이 있는 풍경이라든지, 여행지에서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라든지, 산에서 돌아다니는 청설모나 다람쥐의 움직임이라든지 등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그림들을 갑자기 보게 되면 자연 자체를 인상 깊게 보고 자연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리처드 파워스의 성장 소설이다. 사실 표지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줄거리만 보고 습지의 소녀를 주제로 한 소설이 떠올랐다. 축축한 습지의 모습을 잘 묘사해서 나에게도 참 인상 깊은 작품이었는데 비슷한 결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심이 생겼다. 보면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우주생물학자인 아버지 시오와 동물 보호 운동권자인 어머니 엘리사 사이에서 태어난 로빈이라는 남자 아이다. 여러 정신과 의사들에게서 자폐 또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를, ADHD라는 증세가 있다고 듣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난폭하면서도 예민한 행동과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말을 구사해 학교에서도 낙인 찍힌 문제아 중 하나이다. 특히, 이러한 행동들은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서부터 더욱 심해진다.
덕분에 시오도 학교에 가게 된 날이 많은데 아들의 문제 행동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고자 같이 여행을 가거나 신경을 연구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로빈의 문제 행동이 감소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는 하지만 과거 어머니의 말과 행동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로빈은 우주를 찾는 아버지와 동물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상했던 소설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주인공의 성별부터 주변 환경이 달랐지만 두 주인공 모두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낙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는 점과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점,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 준다는 점이 비슷했다. 과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예상했던 소설은 생물학의 느낌을, 이 소설은 천문학의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비슷한 결로 인상 깊었고 또 만족하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로빈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소설에서는 로빈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민하면서도 정신 세계가 독특한 아이로 비춰진다. 갑자기 멸종 위기종인 동물을 그려 파머스 마켓에 판매하겠다고 하거나 운전하다 동물을 친 아버지께 화를 낸다거나 하는 행동들을 보면 섣불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로빈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이해하지 못해 놀리고, 어른들은 로빈을 방임하거나 학대한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위협한다. 사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로빈의 행동들이 조금 답답하면서도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으면서 로빈에게 공감과 동화가 되었다. 로빈은 그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했던 말과 행동들이었다.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과 가치관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읽으면서 우주와 자연에 비유한 로빈의 말과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특히, 완벽한 사람은 없다면서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시오가 엘리사였다면 로빈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한 말인데 완벽함이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거나 봤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던 부분이다.
또한, 주인공인 로빈의 성장뿐 아니라 아버지인 시오의 성장도 볼 수 있었다. 로빈은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갔으면 하는 아버지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런데 일침이 직설적이면서도 상처를 주는 말들이 아닌 뭔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보통 아홉 살 된 아들이 아버지를 가르친다면 유교 사상에 따라 버릇 없는 자식이 되었을 텐데 시오는 로빈에게 배우기도 하고, 그를 그대로 인정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인 시오도 로빈을 통해 아버지로서, 우주생물학자로서, 사람으로서 조금씩 커가는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맑음과 사랑이 넘치는 로빈을 보면서 나는 세상에 많이 찌든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로빈처럼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할 생각은 들지 않았으며, 매일 세상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다 보니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오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로빈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또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과장을 섞는다면 2022 년 인생의 책이, 현실적으로는 2022 년 상반기 최고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는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던 소설이었고, 마지막에는 울컥할 정도로 큰 감동을 주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홉 살 로빈이라는 소년이 준 여운과 선물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