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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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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 / p.598
내 또래의 주변 사람들은 어렸을 때 여름 캠프의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제복의 로망을 주었던 아람단과 걸스카우트 등의 활동이,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주변인들에게는 여름성경학교가 그랬다. 나는 여름 캠프를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게 체험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동아리 여름 캠프가 처음이었다. 넓은 범위에서 여름 캠프였지만 사실은 농촌 봉사 활동 중 하나로 1박 2일로 떠났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츠지무라 미즈키의 장편 소설이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몽환적인 표지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는 구절이었다. 백골 시체의 주인공을 파헤치는 스릴러적인 요소와 더불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해 줄 이야기가 기대가 되었고, 삼십 년이라는 시간을 둔 우정의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카와 노리코라는 두 아이이다. 미카라는 목차가 있어서 처음에는 미카의 시점으로 전개가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다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미카의 과거를 독자에게 알려 주기 위함으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미카보다는 노리코의 시선과 감정 위주로 묘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 역시 미카보다는 노리코 시점으로 이해하면서 읽었다.
노리코는 학교에서 조금은 아웃사이더 부류의 4학년의 여자 아이이다. 외로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던 중 친구인 유이의 제의에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함께 참여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유이의 주변 친구들과 새로 만난 친구들까지 같이 어울리면서 학교와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오히려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지도 선생님들을 보면서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큰 호감을 느낀다.
거기에서 미카를 만난다. 미카는 미래학교에 합숙하고 있는 아이로, 노리코와 동갑이다. 노리코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일을 도와 주고, 여러 이야기들을 같이 나누면서 둘은 친해진다. 미카는 어른스러운 면이 있기는 했지만 묘하게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아이인 듯하다. 그러면서 노리코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는 말을 건네고, 노리코는 이를 수락하며 두 번의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참여한다. 이후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노리코는 변호사가 되었다. 뉴스에서 나온 미래학교에 관한 보도와 발견된 백골 사체의 존재를 알고, 노리코에게 의뢰된 사건을 통해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백골 사체가 미카가 아니기를 바란다.
읽으면서 백골 사체의 주인공을 찾는 스릴러적인 요소보다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생각보다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고발적인 요소를 더욱 느꼈다.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가족과 갈등을 유발하는, 또는 가족과 연을 끊게 만드는 류의 보도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아마 내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카와 노리코의 우정보다는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류애를 상실하게 만드는 이야기여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면서 즐기는 게 성장에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으면서 같이 즐길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도시의 아이들은 자연에서 자유를 느낄 시기에 학원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공부에만 열중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데 이게 어른들의 어떠한 목적과 만나면 말이 달라진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닌 일부 어른들의 사상이나 관념 등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교육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이 소설이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분명 노리코는 미래학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성인이 된 후 미래학교에 대한 안 좋은 보도가 나오면서도 가족에게 미래학교 여름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일은 없었다고 대변한다. 의도는 어찌 되었든 미래학교에 근무했었던 선생님들은 겉으로 보기에 누구보다 친절하게 아이들을 생각하는 듯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책임감을 아이들에게 회피하면서 이중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부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조금 세게 생각하면 이것이 아동 학대인가, 라는 생각까지 닿았다.
노리코의 시선에 따라 백골의 시체가 부디 미카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백골 시체가 누구일지 궁금해지는 마음이 모였던 소설이다. 염원과 호기심이 뒤섞인, 조금은 애매모호한 느낌이었다. 또한,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미래학교의 아이들도, 어른의 잘못된 사상과 관념에 세뇌가 되어 사회에서 낙오된 아이들도, 어른들의 비겁함에 책임감을 가지게 된 아이도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내가 예상하고 있었던 마음 졸이는 스릴러도, 마음을 녹이는 진한 우정도 한몫 차지했지만 그것보다는 조금은 무겁고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이어서 660 페이지의 두꺼운 분량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없었다. 단지 어른들의 그 이기적인 마음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빛 좋은 개살구 격의 미래학교를 통해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