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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무음에 한하여 ㅣ 아르테 미스터리 14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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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안다고. / p.146
무음보다는 일상의 백색소음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듣기 싫은 휴대 전화의 소리들은 무조건 무음으로 해두기는 하지만 보통은 일부러 소음을 듣는 편이다. 너무 고요하면 뭔가 모르게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빗소리 ASMR을 듣거나 리뷰를 적을 때 라디오를 들으면서 적는 일들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족들은 왜 혼자 있는 집에 TV를 켜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소음은 오히려 나에게 득이 된다.
이 책은 오리가미 교야의 일본 추리 소설이다. 약간 부족한 능력을 가진 탐정 이야기라는 게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소설 안의 탐정들은 거의 완벽했다. 비상한 능력과 논리적인 추리로 의뢰받았던 사건들을 해결했다. 물론, 다소 부족한 능력이 있기는 했겠지만 나의 편견에 있는 탐정들은 그야말로 완벽한 능력을 가진 직업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능력을 가진 탐정이 이겨내는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마노 하루치카는 불륜 의뢰를 받는 탐정이다. 그에게는 영혼이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탐정으로서는 이득이 될 수 있는 능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영혼에게 소리를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이 그저 눈으로 보이기만 하기 때문에 능력만 보면 조금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하루치카 옆에는 법률 사무소의 변호사 친구인 구치키로부터 두 가지의 살인 사건에 대한 의뢰를 받는다. 하루치카가 원하는 분야의 의뢰이기 때문에 수락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건은 기리쓰구라는 자산가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의뢰이다. 이 의뢰는 기리쓰구의 딸인 사쿠라코가 요청한 것으로, 만날 때까지는 의식이 있었던 아버지께서 그날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산 상속 배분에 대한 불만과 조카를 의심한다. 하루치카는 기리쓰구의 영혼을 보기 위해 집에서 잠을 자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사건은 가사노라는 한 남자의 시신을 찾아달라는 의뢰이다. 가사노의 부인인 도모코가 요청하였는데, 사실 부부 사이는 원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험 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시신이 없어 이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모코는 가사노가 자살했다고 추측했는데 아무래도 회사가 큰 빚을 지고 있기에 동기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모코의 이런 행동을 의심했지만 영혼을 보면서 다른 가능성들을 찾는다.
사실 읽으면서 하루치카에게 탐정으로서의 면모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다소 부족한 능력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추리하는 것 역시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영혼을 보는 상황 역시도 남이 보면 이상하다고 오해할 수 있을 행동이며, 공간적인 제약이 걸리기까지 했다. 상황과 장소 등의 환경이 모두 매치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 하루치카가 자랑할 수 있는 능력은 부지런함과 수용성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치카는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닌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시신을 찾기 위해 장비를 구입해 야밤에 산을 오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회사에서 뭔가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기리쓰구의 손자이자 사쿠라코의 조카인 가에데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가에데는 중학생인 소년인데 영혼을 보는 하루치카에게 호기심을 가진다. 그리고 하루치카의 단점을 꼬집기도 하고, 사건에 대한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 어린 아이에게 훈계를 듣는다는 것도 그렇고, 탐정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가에데의 말을 깊이 생각해 사건의 방향성을 찾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것 또한 큰 능력이지 않을까.
두 사건이 예상과 다른 결말로 끝나는 것도 나에게는 새롭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는 추리 소설의 초수이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던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이기 이전에 다소 부족한 탐정의 발전하는 이야기로 보였다. 눈에 띄게 영혼을 보는 능력이나 탐정 실력이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직업인으로서 생각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장 소설 마니아인 내 기준에서는 취향에 맞는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하루치카와 가에데의 상호보완 관계가 기대되기도 했고, 가에데가 조수로서 하루치카와 함께 사건들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랐는데 옮긴 이의 말로 일본에서는 다음 시리즈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에서도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하루치카와 가에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치카와 가에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으로 반가울 것 같다.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