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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 이야기
양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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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영혼이 아닌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재우는 일. / p.38
사전적 의미로 무생물은 생물이 아닌 물건이라는 뜻으로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은 돌과 물, 흙 따위를 일컫는 단어이다. 책의 제목만 보고 이야기를 상상했을 때 묘하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이 딱 떠올랐다. 어렸을 때에는 변신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되면서 나름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이었다.
이 책은 양지윤 작가님의 소설로 제목 그대로 무생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그레고리 잠자의 모습이 떠올라 관심이 생겼던 작품이다. 어느 날 일어났더니 무생물이 되었던 사람의 이야기. 물론, 그레고리는 벌레라는 생물로 변신이 되기는 했지만 한국판 변신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책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출판한 책 한 권도 크게 히트하지 못한 사람인 듯하다. 그런데 주인공이 갑자기 하루 아침에 무생물로 변한다. 집에 있는 냉장고, 변기, 침대 등 무생물이 생물로 변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가방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새로 변신한 남자를 만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변기를 나폴레옹으로 묘사하는 등 의인법이 잘 느껴졌다. 또한, 여기에서도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에 비유한 내용도 나온다. 내내 읽으면서 성인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와 비유하는 이야기들이 딱 아이들 수준에 맞는 동화 수준으로 읽기 수월했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었기에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사실 주인공이 스스로 무생물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혼란이 들기도 했다. 무생물은 생각도,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는데 주인공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소설의 주인공이기에 감정과 사건을 전달해야 하는 측면에서 무생물이지만 생물처럼 표현이 되어야 하겠지만 무생물처럼 느껴지는 포인트는 없었다. 오히려 제목의 무생물 이야기는 물건들이 곧 주인공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목차의 무생물 이야기는 냉장고, 변기, 노트북 등 주인공이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들이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냉장고가 자신들의 이름 앞에 '우리'라는 말을 붙여주지 않았다거나 침대가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야기들이 뭔가 새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사람의 호칭 앞에 우리를 붙이는 것은 흔하지만 물건 앞에 붙이는 것은 참 어색하고도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들이 나에게 왜 다정하게 말해 주지 않느냐고 타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논하고, 사람이라는 생물 자체를 성찰하는 주인공의 독백들이 생각할 수 있는 질문과 해답을 주었다. 내가 마치 그레고리 잠자가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변신은 가족과의 관계와 책임감에,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간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게 큰 차이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내 읽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부터 사전적인 용어의 의미까지 생물과 무생물은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있지만 진짜 생물과 무생물은 뭐가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놓고 철학적이지는 않지만 인간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나에게는 너무 무거운 소설이었으나 사람으로서 나아가는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