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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테일 ㅣ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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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하나가 무슨 힘이 될까 싶지만 그래도 한 줌의 위로라도 되었으면 한다. / p.233
올해 봄에 읽었던 고전 재해석 소설이 나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주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고전 동화를 뭔가를 바꿔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현대로 재해석이 된다면 어떻게 변할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상상력의 한계와 지극히 단편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확대가 되지는 않았다.
이 책은 다섯 명의 작가님들께서 함께하신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개인적으로 박서련 작가님과 심너울 작가님의 팬이면서 민지형 작가님의 전작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주변 지인들과 토론의 장을 펼쳤던 사람으로서 안 고를 수가 없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다섯 작품 모두 고전 동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서미애 작가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민지형 작가님 '신데렐라', 전혜진 작가님 '숙영낭자전', 박서련 작가님 '당나귀 가죽', 심너울 작가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했다. 숙영낭자전과 당나귀 가죽의 경우에는 안 읽은 동화였기 때문에 새로움을, 다른 동화들은 내용을 알고 있어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상민과 양희 오누이의 이야기이자 가정폭력에 단면을 다룬 작품이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오누이는 귀가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배고픔에 지쳐 양희가 보채기 시작하자 상민은 김밥을 만든다. 그러던 중 집으로 아버지가 찾아왔다.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먹고 오누이를 노렸지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던 이야기. 어렸을 때에는 호랑이의 무서움만 생각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가정폭력을 한 아버지와 그 안의 남매로 생각하다니 첫 번째로 놀랐고, 두 번째로 소름이 돋았다. 소설이기 때문에 약간의 허구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가정폭력의 잔혹함을 기사나 현장에서 보고 들었기에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대기업의 인사팀 팀장을 맡고 있는 성훈과 인턴들에 관한 작품이다. 기업의 지침으로 면접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습 전형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면접 합격자들 중에서 기업 간부의 딸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팀의 팀장들은 금수저의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성훈은 그것에 관심이 없지만 인사팀에 배정된 리라라는 인턴에게 관심이 가면서 호감을 표시한다.
신데렐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금수저 남편에게 시집을 가서 팔자를 펴는 여자 주인공이자 드라마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 소설을 그것을 비틀어 남자가 금수저 와이프를 맞이하고자 인턴들에게 호감을 사는 늑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드라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는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통쾌한 느낌을 받았다. 겨우 성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말이다.
<수경-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출산하기 위해 한국의 시댁을 찾은 수경과 그를 보필하는 여자 희원, 시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수경은 미국에서 한국 남자 현중을 만났고, 결혼을 약속하며,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현중의 정체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글로벌 기업의 자제였다. 출산할 때까지는 한국에 있자는 현중의 제안에 따라 왔지만, 그는 논문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미국에 있기로 한다. 한국에서 희원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한, 알 수 없는 꿈을 꾸게 된다. 시댁이 불편함을 떠나서 뭔가 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숙영낭자전이라는 이야기를 모른다. 재벌이 나오는 막장 드라마의 향기를 느끼면서 읽게 되었는데 가장 새로움을 느꼈던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고전의 분위기가 잘 보이기도 했었다. 현중이 살고 있는 집부터 수경이 꾸는 조선시대의 꿈까지 읽는 내내 고전과 현대가 연결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숙영낭자전을 읽고 다시 재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대기업의 이사인 채나연을 둘러싼 죽음을 찾는 작품이다. 어느 날부터 배우, 정치인 등 유명인 남성들이 심근경색이라는 질환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저 남자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이 채나연 이사를 찾아오는데 주인공은 채나연 이사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그녀를 아는 사람으로서 절대 살인할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한다.
추리 소설의 특성을 띄고 있기도 해서 나름 재미있었던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왜 남성들이 죽는 것인지, 채나연 이사가 진짜 죽인 것인지, 경찰은 왜 찾아오는지 등 사망 사건을 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누가 봐도 채나연이라는 사람은 원한을 살 법한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인데 말이다. 결말을 보고 나니 납득이 되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중수 이상의 독자라면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을 것 같다.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린 한 SNS 유저와 전직 과거를 지닌 국회의원 비서의 이야기이다. SNS에 대통령이 신체를 개조하는 퍼리라는 글이 올라온다. 글을 올린 유저는 대통령과 같은 대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며, 당나귀 귀로 개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증거 사진을 올렸다. 민심은 대통령의 지지율로 증명이 되었으며, 상대 정당에서는 대통령을 공격한다. 그러던 중 대통령의 정무수석이 국회의원 비서를 찾아와 SNS 유저의 정체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현대와 가장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첫 번째 작품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아픈 이야기라고 하면 이 작품은 지금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위험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대통령 우상화나 신격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한다. 정치에 대한 가치관이나 신념, 정치인들의 공약이나 사실 관계를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일. 대단히 위험한 일인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다른 의미의 대쪽같은 신뢰를 보이는 비서를 보고 있자니 답답하면서도 가장 큰 공감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역시 고전을 재해석하는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느꼈다. 전에 읽었던 소설이 SF 상상력으로 나에게 재미를 주었다면 이번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더불어 가정폭력이나 무조건적인 정치 지지, 신데렐라 스토리 등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점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역시 고전과 현대를 막론하고 소설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