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시 속 인형들 1 안전가옥 오리지널 19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차피 진짜 나는 거기 없어. / p.78

SF 소설을 읽으면서부터 조금은 현실적으로 가까운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로봇과 인간이 친구가 되는 내용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에게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영화도 그렇다. 흔히 말하는 사이버 도시들이 막연하게나마 그려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경희 작가님의 사이버펑크 장르의 SF 연작 소설이다. 전작 소설 중 하나에 대한 내용을 지인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조상님의 제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너무 인상 깊어서 작가님 소설이 궁금했다. 평택이 나에게는 첨단처럼 뭔가 사이버틱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평택 특별자치구역이다. 미래의 메가 시티로 과학 기술을 사용에 크게 제재가 없는 지역. 또한, 중앙 부처의 치안과 다르게 운영되는 지역. 덕분에 중앙에서 일하는 지역검찰청의 검사와 평택 자치 정부의 경찰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사이버 범죄들과의 싸움으로 정신이 없는 곳이다.

주인공은 평택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진강우 검사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민간 조사사 주혜리이다. 이 둘이 주측이 되어 평택 특별자치구역에서 벌어지는 첨단 기술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검사이면서도 자리에 앉아 서류를 보는 것보다 직접 뛰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 진강우는 무슨 사건이 생길 때마다 주혜리를 불러 함께 사건을 처리하고자 한다. 그런 진강우가 귀찮으면서도 그의 부탁이라면 늘 응한다.

총 다섯 편의 연작 소설과 에필로그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과 <트윈 플렉스>가 가장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여서 공감이 되었다.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은 공공임대 메가빌딩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노인들 중 정부에서 제공한 의체를 받은 노인들에게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 성향이 바이러스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진강우와 주혜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수가 아닌 첨단 기술이 포함된 의체라는 게 조금 새롭게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읽으면서 보니 저소득층 노인들의 문제들을 보고 있으니 그 새로움은 잊혀지고 답답함이 올라왔던 이야기였다. 전공을 공부하면서 저소득층에게 현물과 현금으로 제공했을 때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문제점이 내용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아마도 더욱 현실감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트윈 플렉스>의 주인공 원현수는 어렸을 때부터 성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어머니로부터 엄하게 자라오다 트윈 플렉스라는 시술을 통해 원현정이라는 새로운 신체를 만들었다. 정신은 원현수 하나로, 육체는 원현수와 원현정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원현수는 그런 원현정을 학대했고, 법정에 서게 된다.

주인공인 원현수에 대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여성의 삶을 살고 있는 원현정에게 느끼는 질투심과 사회적인 인식으로 자신의 심리적인 성을 거부당하는 느낌, 생물학적인 성과 심리적인 성이 다름에서 오는 혼란 등 최근 대두되었던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이슈들과 맞물려 조금은 심각하게 보게 되었던 내용이었다. 물론,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원현정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동 자체는 면죄부가 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동성애에 대한 소설들은 많이 접했는데 시스젠더와 트렌스젠더를 다루는 소설이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읽으면서 현실감을 느꼈던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의체를 사용한다는 설정과 트윈플렉스라는 새로운 도플갱어를 만나는 기술, 복제 인간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 소재 자체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기도 하겠지만 내가 대한민국 어느 땅에 묻히기 전까지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이유는 저소득층의 복지 문제와 매체로 인기를 얻는 인플루언서의 도를 넘는 조작 행동, 성 소수자의 이슈, 대기업의 횡포 등 소설에서 진강우와 주혜리가 해결하는 사건들이 지금 살고 있는 세계랑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마냥 SF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이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재미보다는 답답함을 자주 느꼈다. 나에게는 참 불편한 진실을 주었던 소설 이야기들이었다.

반면, 진강우와 주혜리 콤비의 사건 해결 능력은 인정할만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끝까지 고구마만 먹은 채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답이 없는 평택 특별자치구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정의를 불태운 진강우와 혼자서 진강우에 대한 욕을 하면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주혜리가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사이다가 비처럼 쏟아지는 쾌감도 느껴졌다. 현실처럼 둘이 살고 있는 평택 특별자치구역 또한 살만한 세계구나.

연작으로 이어질 다음 샌드박스 시리즈가 기대된다. 첨단 기술 안에서 무엇이든 다 되고 있으나 그게 곧 천국이자 지옥인 세상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다. 2080년 메가시티 평택에서 2020년의 현재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평점 :
절판



진실을 밝혀내는 것만이 정의는 아니야. / p.248

그동안 드라마를 보지 않다가 최근에 입소문으로 뜨고 있는 한 드라마를 챙겨서 보고 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변호사로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를 남기는데 이 대사가 나에게 크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내 머리는 땡 하고 때리고, 내 마음은 짠 하고 울렸다.

말은 어눌하고 행동은 어색할 수 있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다는 말. 장애에 큰 관심을 가지고 관련 도서를 읽고 있지만 나에게는 마음에 와닿았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라는 점보다 변호사로서의 마인드가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유즈키 유코의 추리 소설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법정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독서 시점이 겹쳤다. 그래서 더욱 더욱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법률 미스터리는 처음 읽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돈보다는 재미를 먼저 생각하는 사가타라는 변호사와 쇼지라는 신입 검사이다. 둘을 대결 구도로 잡는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호텔에서 치정 관계로 인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나이프와 현장 상황 등 모든 증거들이 피의자를 향하고 있다. 동기부터 증거까지 모든 증거가 범인을 향하고 있어 법정으로 따로 힘을 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가타는 피의자의 변호인이, 쇼지는 피해자의 검사로서 자리를 함께한다.

모든 증거들이 피의자를 향하고 있어도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애청자로서, 과거에 들었던 인상 깊은 사건으로 아무리 증거가 명확한다고 해도 다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의심을 가지고 봤다. 사가타는 재미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정의로운 변호사, 쇼지는 권력에 찌든 검사로 생각했었다. 표면으로는 치정이라는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사건이 등장하면서 뻔한 스토리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사가타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변호사로서 보기에 그렇게 무게감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법정이 열리기 전날에 술을 마시고, 설렁설렁 하는 것처럼 보이는 변호사. 의뢰인을 생각해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적어도 겉모습은 그렇다.

중반에 이르면서부터 사가타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변화되었다. 쇼지는 권력에 찌들지 않은 검사였지만, 사가타는 원래 생각했던 것처럼 정의로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소신과 주관을 가지고 검사로서의 커리어를 멈추고 변호사로 출발했다. 거기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그 부분이 나에게는 인상 깊었고, 주인공인 사가타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의뢰인을 지켜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지만 그와 별개로 인간성을 보이는 부분을 말이다.

보면서 이런 방법으로 처벌할 수 있겠구나, 하는 사가타의 신념과 센스를 보았다. 그러면서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아마 내가 법조계에 있었다면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해 평등하지 못한 변호사나 검사가 되었을 듯하다. 내 마음이 이끌이는 감정에 휘둘려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아서 법조계에 종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책을 덮으면서 사가타와 같은 변호사만 있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더욱 공평하고, 법은 평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의 임무를 지키면서도 부정한 일에 대한 단죄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 무조건 판타지스러운 결말이 아닌 현실적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속이 뻥 뚫려서 좋았다. 나에게는 부조리한 현실을 벗어나 사이다를 마신 것과 같은 시원함을 안겨 주었던 소설이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 변호사가 바라본 미디어 속 소수자 이야기
백세희 지음 / 호밀밭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균열은 바로 독자들로부터 시작된다. / p.212

드라마와 예능, 더 나아가 매체를 보면서 소수를 비하하거나 웃음거리의 소재를 느낄 때마다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 건강한 웃음을 전달해도 될 일을 가지고 꼭 누군가를 깔아뭉개야 되는지 말이다. 또한, 작은 불편함을 넘어 내가 와닿는 지점을 느낄 때면 나 역시 무언가의 비주류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도 있다.

가장 불쾌감을 느끼는 순간은 매체에서 보이는 지방에 대한 무시가 가시적으로 보일 때이다. 예를 들면 인생 드라마라고 자부할 수 있는 응답하라 1994에는 서울 출신 등장 인물들이 지방 사람들을 무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MT 상황 중에 시골 사람들은 손을 잘 딴다거나 부모님께서 전부 농사를 짓는 줄 아는 그런 류의 무시 말이다. 여수에도 삼성과 GS 등의 대기업은 있다. 그들은 서울 사람들처럼 쌀을 구매해서 먹기도 한다. 다를 게 하나 없다.

이 책은 변호사이자 작가인 백세희 작가님의 소수자에 대한 사회학 도서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책 중 하나이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미디어에서의 소수자 이야기와 주류인 분야에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한 시각을 듣고 싶었다. 이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각 챕터의 시작은 아무개 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아무개 씨는 보통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그 사람은 이 세상의 주류이자 평범한 사람이다. 서울에 살고, 젊은 성인이고, 한국 사람이며, 남성이고, 비장애인이자 정규직 근로자, 이성애자인 사람. 지금 나열한 특징만 보자면 어느 부분으로 묶더라도 비주류보다는 주류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다. 아무개 씨는 미디어와 사람들 사이에서 등장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이 표현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후 저자는 미디어 속에서 펼쳐지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1장의 <아무개 씨는 서울에 삽니다>, 다른 소수자들보다 깊은 이해와 생각을 필요했던 부분은 6장의 <아무개 씨는 정규직 근로자입니다> 부분을 들 수 있다. 1장은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디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는 비주류로 분류가 되는 사람이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공감이 되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사투리를 고치는 것부터 시골을 힐링과 피난처로 다루는 영화와 서울 공화국이라는 별칭을 다루는 상경에 대한 내용들까지 다룬다.

표준어와 사투리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으로서 늘 미디어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을 촌스럽게 바라보는 시각이 늘 못마땅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더 파고 들었다는 점에서 큰 공감이 되었다. 녹두꽃의 주인공은 왜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를 쓰는 것일까. 전봉준의 고향은 전라북도인데 말이다. 또한,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은 시골에 내려와서 힐링을 느낀다. 사실 시군 단위에 있는 지인들도, 지방 광역시 단위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보면 서울특별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산다. 시골이 왜 힐링인가.

6장은 양가적 감정이 들었던 부분이다. 을 중의 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세 가지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경비원, 가사도우미, 배달노동자. 개인적으로 경비원과 가사도우미에 대한 부분은 깊은 생각이 필요했다. 경비원은 늘 잡일을 하면서 입주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머슴이었다. 가사도우미는 영화에서 약간 선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진 직업이다. 읽으면서 돌이켜보니 나 역시도 가사도우미에 대한 영화는 전부 빨간 딱지가 붙일 정도로 성적인 묘사를 하는 대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과 몇 년 전의 경비원을 향한 갑질과 이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이슈가 크게 온라인과 오프라인들 달궜음에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사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반대로 배달노동자에 대한 부분은 약간 생각이 다르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배달노동자에 대한 비하 단어를 언급하면서 매체에서도 배달노동자는 배운 게 없어서 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에 편견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한 부분에는 공감이 가는 바이기는 하지만 불과 어제만 해도 좌회전 신호에 경적을 내면서 직진을 했던, 조금만 늦었어도 큰 사건을 봤을 일들이 떠올랐다. 저자의 주장처럼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이 절실하겠지만 이러한 위험천만한 난폭운전은 배달노동자 각자의 안전 인식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여성에 대한 꽃뱀 서사, 발달장애인을 순수한 바보형 또는 천재로 우상화되는 서사, 결혼이주여성은 무조건 고부갈등의 원인제공자로 보는 미디어 등 항상 편견과 차별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봐왔지만 얕게 봐왔다는 내 시선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저자의 말처럼 책을 읽은 독자 중 한 명으로서 차별과 편견에 대한 균열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주었던 책이었다. 납작하고 투명하게 표현된 소수자들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열 번째 여름
에밀리 헨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해냄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주치지만 결코 연결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 p.426

좋아하는 드라마인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리즈와 가장 보고 싶은 드라마인 그해 우리는에서의 등장 인물들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자인 시리즈들은 감독님과 작가님이 같기에 비슷한 부분들이 많겠지만 후자까지 넓히면 친구에서 연인이라는 포지션이 바뀐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자 내용도, 등장 인물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이를 관통하는 것은 친구 사이. 사실 여기에 언급하지 않더라도 많은 드라마 클리셰 중 하나가 그렇다.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현실에서도 큰 찬반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과연 이성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드라마를 질리게 본 덕후의 의견으로는 무조건 후자다.

이 책은 에밀리 헨리의 로맨스 소설이다. 드라마 클리셰 중 하나인 친구에서 연인으로 라는 모토에 맞는 소설이어서 관심이 갔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는데 거기에 드라마 요소가 있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소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동성만 모인 학교와 동성 비율이 높은 전공을 한 탓에 이성 친구가 하나도 없다.)

소설의 주인공은 파피와 알렉스이다. 파피는 잡지사에서 여행에 관한 기사를 적는 사람이며, 알렉스는 학교 교사이다. 직업뿐만 아니라 자유분방한 파피와 조금은 너드 스타일에 가까운 알렉스는 공통점이 없다. 대학교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십 년이라는 세월을 알고 지낸 친구 사이. 그렇게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은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내왔다. 심지어 둘은 상대의 연인과 함께 4:4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휴가만큼은 꼭 같이 보냈다. 그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휴가를 뽑는다면 둘이 함께 다녔던 이국적인 여행지에서의 휴가를 말할 수 있지만,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서 2 년간 보지 못하다 파피의 제안으로 여름 휴가를 간다.

전체적으로 파피의 입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파피는 알렉스를 이성적인 감정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이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 표현하지 못했다. 괜한 알렉스의 여자 친구에게 신경을 쓰기도 했고, 둘이 있는 순간에는 남몰래 연인 관계로서의 둘을 상상하기도 했다. 연락이 뜸했던 그 시기에도 파피는 알렉스를 생각했고, 그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다. 보는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마음이 간질간질한 짝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보면 서로의 연인 입장에서는 놀랄만한 관계여서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나의 연인이 매년마다 이성과 여행을 떠난다는 가정을 하면 이별을 날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할까. 개방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라면 수긍하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자라서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용납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아마 전쟁터에서도 십 년 지기 친구 둘이 있다면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둘은 공통점이 하나 없지만 가장 좋은 게 합이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알렉스가 파피와 만나면 상황극을 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파피는 알렉스를 만나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사람 관계에서는 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둘에게는 결정적인 합이 맞았기 때문에 다른 취향과 성향을 가졌어도 십 년 간의 우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정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제주 파도 소리 ASMR로 들었는데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꽤 두꺼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에 후루룩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치정극 하나 없이 잔잔하게 전개되어서 보는 내 마음도 편안했다. 어떤 누군가는 뻔한 스토리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게 또 로맨스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두 친구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 여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이 오페라의 유령에 관한 실화이다. / p.530

뮤지컬과 연극을 본 적이 손에 꼽힌다. 아무래도 수도권과 거리가 먼 지역에 거주하다 보니 문화생활이 기회가 제한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관심이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에게는 첫 연극이 고등학교 수능 끝난 이후였고, 뮤지컬도 대학교 때 처음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유명한 뮤지컬의 원작 소설이다. 이름만 들은 정도일 뿐 내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원래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 소설을 찾아 보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 책도 궁금했다. 어떤 내용이기에 뮤지컬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 호기심과 관심이 들었다. 소설로 감동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한 오페라 극장에서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문 이후로 극장의 직원이 죽기도 하고, 신임 오페라 감독들로부터 편지가 날라오기도 한다. 5번 박스석을 비우고,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내라고 하며, 심지어 직원 인사에 관여도 한다. 신임 오페라 감독들은 이를 무시했다. 그러자 오페라의 유령이 무대를 지배하거나 사건을 만들어 극장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또 다른 주인공인 크리스틴과 샤니 자작이 있다. 크리스틴은 주연 배우의 건강상의 문제로 대타를 서면서 사람들에게 눈에 띈다. 샤니 자작인 라울 역시도 크리스틴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공연 이후 크리스틴을 몰래 쫓아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알 수 없는 남자의 소리와 크리스틴의 대화를 듣는다. 라울은 대화를 듣고 오해할 뿐만 아니라 질투라는 감정에 휩싸여서 크리스틴에게 더욱 집착한다. 크리스틴은 마음이 있기는 하나,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한다.

처음 접한 뮤지컬 명작은 추리 소설 같기도, 공포 소설 같기도,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한 어느 중간의 애매한 느낌을 주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정체를 추측하면서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전환되어 스릴러와 공포를 느꼈다. 그러면서 크리스틴과 라울의 관계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펼쳐지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재미있으면서도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배경적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서양 소설 특유의 헷갈리는 인물 이름들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읽어온 소설들에 비해서는 주요 인물들이 단순한 편이어서 크게 헷갈리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 부분에서 소설의 상황과 내용에 온전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머리로는 오페라의 유령의 정체를, 감정선은 크리스틴과 라울의 이야기에 더 몰입이 되었다.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고, 인사권에 관여하고, 비싼 자리를 비우라고 하고, 무대를 지배하는 등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저지르는 일들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페라의 유령이 극장을 관리하는 고위직도 아니지 않은가. 능력이 있으니 마음대로 극장을 휘두르겠다는 것 자체가 나의 생각과 결이 다르다고 느꼈다.

반면, 크리스틴과 라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내 취향에 너무 맞는 내용이었다. 물론, 라울의 말도 안 되는 집착과 크리스틴의 우유부단함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크리스틴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이었기에 라울부터 오페라의 유령까지 남자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을까. 매력에 대해 상상하면서 읽었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들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외모적인 문제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크리스틴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에게 내재된 결핍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기도 했다.

아무래도 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이기에 읽는 내내 뮤지컬의 무대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장면을 상상할 때도 배우가 연기를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마치 내가 뮤지컬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의 두 감독이 이야기 나누는 내용들은 마치 콩트처럼 느껴졌다. 한 줄기의 유머였다.

이 소설을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본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의 한계로 놓친 부분들, 원작을 토대로 해석되는 이야기들을 시각으로 다시 느끼고 싶다. 아마 글로서 느끼는 감정보다 더욱 배가 되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소설을 읽었으니 뮤지컬과 다른 부분을 비교하는 재미도 놓칠 수 없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