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여 안녕 - 기후 위기 최전선에 선 여성학자의 경이로운 지구 탐험기
제마 워덤 지음,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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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다면 말이다. / p.281

환경에 대한 기사를 읽다 보면 빙하가 녹으면 수면이 상승해 지구 면적의 부분이 사라진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더 나아가 가까운 나라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이 수면에 잠기고 말 것이라는 문장이 나오기도 한다. 크게 실감하지는 않지만 막상 생각을 해 보면 무섭다고 느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나라와 지역이 어느 순간 없는 땅이 된다면 참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이 책은 빙하를 연구하고 계시는 제마 워덤의 빙하에 대한 도서이다. 환경을 생각하게 되면서 고르게 된 책이다. 조금 머리로 깨닫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사실 지구 온난화의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기 때문에 환경을 생각해야겠다는 각성이 된다. 그러나 빙하는 아무래도 너무 먼 존재라고 인식을 하고 있다. 빙하에 대해 알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더욱 환경을 실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저자는 빙하학이라는 전공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빙하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구에 존재하는 빙하를 직접 보고, 연구하면서 있었던 일들과 업적, 느꼈던 감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환경학, 지구학 등은 그래도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듣기는 했지만 빙하학 자체는 아예 초면인 학문이어서 생소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다. 

사실 빙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빙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들이 생각보다 자세하게 등장해서 어렵게 느껴졌다. 지구과학이나 환경 관련 전공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쉽거나 친숙한 내용이겠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지구과학과 거리를 두었던 터라 약 십 몇 년 전의 지식을 꺼내느라 조금 애를 먹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어려움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중간이 넘어가면서부터 빙하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물론, 빙하의 풍경보다는 빙하를 연구하는 내용 위주로 기술이 되어 있기에 풍경을 상상하는 일은 어려웠다. 빙하 풍경에 대한 감탄보다는 빙하에서도 생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특히, 빙하 역시도 화학적 기억을 한다는 점이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물이 화학적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구성하는 물질 등을 알면 물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점인데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 자체가 인상 깊었다. 그 외에도 빙하 하면 대한민국 세종 기지가 있는 남극만 알고 있었는데 그린란드와 코트디예라 지역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환경보다는 빙하에 중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히말라야 산맥과 코트디예라 지역의 이야기를 보면서 중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경우에는 물 부족 국가 중 하나인 파키스탄을, 코트디예라 지역은 안데스 산맥을 주거지로 삼고 있는 원주민들의 식수가 된다. 오염이 된다면 건강에도 치명타를 줄 수 있는데 후자인 코트디예라는 흘러나온 물이 오염이 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먹을 것을 줄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먹이를 찾으러 온 펭귄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참 안타까웠다. 결국 그 펭귄은 시체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마지막 내용에 빙하와 인간이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빙하가 갑자기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빙하에 대한 사실들도 새로웠지만 저자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마음이 아프면서도 도전 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어머니께서 투병을 하실 때, 아이를 잃는 순간과 뇌에 종양이 생겨 힘든 시간을 겪었던 시기에도 저자는 빙하로 떠났다. 빙하 연구를 할 때도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았다. 특히, 수술이 끝난 이후에는 체력이 저하된 상황에서도, 빙하에서 육식인 북극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연구를 해왔다. 저자에게는 또 하나의 고향이 빙하인 것처럼 느껴졌다. 빙하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무언가에 미친 적이 있었는지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까지 빙하와 북극곰이라고 하면 C사의 탄산음료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별 생각도 없이 말이다. 그저 귀엽다고 느껴졌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까우면서도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빙하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가까운 자연이면서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협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존재. 직접적으로 환경을 지키자는 말보다 빙하학자의 진정성을 가진 탐험기가 묵직하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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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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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존을 이겼다는 의미야. / p.173

유독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서점이 자주 등장한다. 인생 책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소설들 중에 두 권이나 서점을 주제로 하고 있다. 거기에 에세이 중에서도 서점을 주제로 하는 책도 있다. 이 정도면 서점을 맹목적으로 사랑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전생에 서점 주인이었지 않았을까. 서점은 곧 힘이자 힐링의 공간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이 책은 가와카미 데쓰야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부터가 서점이 등장한다.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기는 일본의 서점이니까 다르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거기에 서점 실화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힐링 소설이기에 더 큰 기대가 되기도 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리카라는 직원의 성장기이다. 고야바시 서점의 유미코 사장을 만나게 되면서 직업인으로서의 고민과 해답을 찾고,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업무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중간에 유미코 사장이 서점을 하게 된 이유와 서점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70년 된 실제 동네 서점의 내용이다. 

주인공인 리카는 일본에서도 꽤 크다고 자부할 수 있는 출판유통회사에 취업을 하게 된다. 그동안 큰 회사 위주로 취업을 준비했지만 출판유통회사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이다. 거기에 책과 거리가 멀고, 설상가상으로 집인 도쿄와 멀리 떨어진 오사카 지부의 영업팀으로 발령이 난다. 그저 리카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 투성이다. 낯선 타지에서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하는 와중에 나름 크다면 큰 실수를 저지른다. 서점을 돌던 중 인기 도서를 적게 가져다 주었다는 서점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물류 부서의 동기에게 부탁해 임의로 그 도서를 구했던 것이다. 물론, 신입이기 때문에 열정을 가지고 선의의 행동으로서 한 일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상사에게 묻지 않고 한 일이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서러운 마음을 상사가 있는 자리에서 표출했다. 부장은 리카에게 고야바시 서점에 갔다 오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의문을 가진 채 고야바시 서점의 유미코 사장을 만난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리카라는 인물에서 평소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점이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목표보다는 그저 큰 기업의 취업을 먼저 생각했었다. 막상 회사에 취업하고 나서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물 흐르듯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리카가 유미코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 자신을 낮추는 '저 같은 건'이라는 말버릇을 보인다거나 단점을 먼저 생각하는 등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과거와 오버랩이 되었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동질감을,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는 모습이 곧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서점 주인 유미코의 일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는 점이다. 고바야시 서점은 다른 서점과 다르게 우산을 판매하는 일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점과 우산의 조합이 조금은 낯설게 보였다. 아마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리카에게 우산을 판매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인상적이었다. 우산을 만든 CEO의 인터뷰를 보고 판매를 결심하였다는 점이다. 우산을 만드는 업체도 서점으로 온 손님 숫자를 눈으로 보면서 우산 판매에 대한 회의적인 의사를 보였지만 유미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플리마켓이나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우산을 판매했다. 그 외에도 동네 서점의 한계상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획기적인 시도를 한다거나 직접 고객을 찾아가서 책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거나 다른 동네 서점과 연대해 발전하려는 노력 등에서 누구보다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미코의 열정과 자부심, 통찰력이 부러우면서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카의 성장을 응원하면서 유미코의 색다른 관점에 많은 교훈을 얻었다. 특히, 서점에서 하는 이벤트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고객들에 대한 내용을 말하면서 유미코는 리카에게 쉽게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장감이나 흥미를 주었다는 점에서 그 부분을 이겼다는 칭찬을 해 준다. 거기에 책에 대해 잘 모른다는 리카의 단점이 곧 이벤트를 할 때에는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는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 분명 같은 내용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갉아 먹는 독이, 성장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 또한 유미코가 고바야시 서점에서 많은 업적을 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노하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속 리카의 모습이 개인적인 이야기로만 느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삶이라는 큰 바다에서 의미도 모른 채 일 또는 무언가의 파도에 휩쓸려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어쩌면 불안한 현재를 살고 있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본다면 공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리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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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한 날들 안전가옥 오리지널 20
윤이안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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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오지랖이 문제다. / p.29

지구 온난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올해 여름을 겪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중이다. 폭염과 열대야로 하루하루 온난한 날씨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온난한 것보다 불쾌하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위를 잊기 위해 씻고 나와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등에 땀이 흐를 때를 느낄 때면 허무한 마음까지 든다. 

이 책은 윤이안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환경과 관련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학이나 과학, 환경학 등 비소설 계열의 서적으로 많이 접했다. 그래서 소설로 표현한 환경은 또 어떻게 와닿을지 궁금했다. 물론, SF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더욱 직설적으로 환경 문제를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화음이라는 인물은 에코 시티 평택에서 카페 일을 하고 있다. 평택은 친환경과 관련한 도시로서 에코포인트제 등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이 정해져 있어 이를 다 사용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정책 등이다. 카페에서도 분해할 수 있는 컵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환경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화음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우선, 자동차를 타면 멀미가 심한 탓인지 구토를 하게 되어 자전거로 이동한다. 그리고 능력이 하나 있는데 식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식물 주변에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식물을 통해 화음에게 들리는 것이다. 거기에 오지랖 넓은 성격까지 시너지를 보이면서 화음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사건이나 일을 처리해 주는 역할이 되었다. 그러던 중 식물학자이자 탐정으로 일하고 있는 이해준과 만나 사건을 해결하게 되면서 부업으로 탐정사무소의 일까지 떠맡게 된다.

소설이 각 다른 사건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의 큰 사건 뒤에 하나씩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화음과 해준의 사건 해결이 주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읽다 보면 깊은 생각에 잠기거나 답답함을 느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딸을 구하기 위해 조사하거나 잃어버린 반려동물의 유골함을 찾던 중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유나 일들이 등장하면서 혼란스러웠다. 또한, 한 남자의 죽음을 찾을 때에도 그랬다. 그러나 읽는 내내 결말을 향해 갈수록 현실의 아픈 단면들이 하나하나 마음을 할퀴었고, 왜 안 좋은 결과들이 약자들을 향해 가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은 비단 소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늘상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결국 피해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에코 시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변두리의 약자였다.

보통 환경 문제라고 하면 지구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한다. 나 역시도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 온난화가 가속화된다거나 수면이 높아지는 등의 내용을 책을 통해서 자주 접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환경을 파괴했을 때 인간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서 다루는 환경 문제가 자동차 매연이나 쓰레기 등 국민들이 행동하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히려 환경보다는 정직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환경을 파괴된다면 가장 먼저 이를 받는 것은 부자보다는 서민, 서민보다는 약자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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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 지하철 앤솔로지
전건우 외 지음 / 들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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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의 도는 약자를 돕고 정의를 실현하며 나라를 지키는 데 있다. / p.19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주요 대중교통 수단인 지역에 살다 보니 서울에 놀러갈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렇게 복잡한 지하철을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탈까.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잘 활용해서 목적지에 간다고 해도 가끔 엉뚱한 길로 새서 잘못 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가면 늘 하나의 신고식처럼 그렇게 실수를 한다. 마치 미로처럼 꼬불꼬불 얽혀 있는 지하철 지도를 보고 있으면 나의 머리가 엉킨 실타래가 된 듯하다.

심너울 작가님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라는 단편집에는 지하철에 대한 소설 한 꼭지가 등장한다. 아마 그 책의 리뷰에서도 적었던 것처럼 지방 사람이라서 경의중앙선 도착 시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다 보니 수도권에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봤었다. 모두가 크게 공감을 했었는데 여전히 체감이 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지박령 유령이 나오면서 말이다. 나중에 서울에 가게 되면 경의중앙선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화가 더 날 것 같다.

이 책은 지하철을 주제로 한 일곱 편의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지하철을 한 달에 한 번 이용할까 말까 한 지방 사람으로서 크게 와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하철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실린 책이어서 궁금했다. 서울에서의 내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감대가 약간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앤솔로지 소설 자체를 좋아하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총 여섯 분의 작가님께서 집필하신 일곱 편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지하철을 잘 몰라서 헤매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로웠다. 실제 호선이나 역 이름이 나오는 소설의 경우에는 가늠이 가지 않아 인터넷으로 본 이후에 머릿속으로 하나의 맵을 만들고 나서야 이해가 되기도 했었다. 지하철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소설들은 아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했었는데 개인적으로 뽑자면 조영주 작가님의 <버뮤다 응암지대의 사랑>과 정해연 작가님의 <인생, 리셋>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버뮤다 응암지대의 사랑>은 작가 지망생과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신춘 문예 등단 이후 전업 작가로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지만 별 소득이 없는 주인공 해환은 첫 문장을 쓰기 위해 아침부터 6호선 신내역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항상 1-3 모퉁이에 있는 남자를 '13모남'이라고 스스로 줄임말을 만들어 관찰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13모남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둘 다 준비생이므로 돈이 없었기에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등 짠내 나는 데이트를 즐겼다. 둘은 유명 인사가 됐다.

처음에는 6호선의 버뮤다 응암 지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 유일의 단선 노선이어서 갈 때는 쭉 이어서 가지만 반대는 순환이 아닌 뺑 돌아서 가야한다는 사실이 뭔가 싶었다. 지도가 머릿속으로 바로 그려지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말이다. 돈이 부족한 두 취업준비생(작가 지망생을 취업준비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의 연애 이야기는 소금이 뿌려지는 듯한 짠내가 나면서도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단내가 나기도 했었다. 결말이 흐를수록 해환의 입장으로 감정 이입이 되어 13모남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는 것은 비밀이다.

<인생, 리셋>은 나 역시도 조금 꿈꿨던 적이 있는 이야기여서 공감이 되었다. 그렇다고 소설의 주인공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조금이나마 괜찮았을까, 하는 정도의 가벼운 상상이다. 지인의 배신으로 큰 실패를 맞이한 준규는 과거 두 여자 사이에서 미란이라는 인물을 선택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한다. 미란이 자신의 아들을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패배감을 느껴 지하철 철로에 몸을 던졌고, 여자를 선택한 시간이었던 1985년의 그날로 돌아가게 된다. 처음 돌아갔을 때에는 한 남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란을 선택했다. 현실로 돌아온 준규는 다른 여자인 송주를 선택할 때까지 지하철 철로에 몸은 던진다.

어차피 사람은 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특히, 여기에 등장하는 준규라는 인물은 내 기준 그냥 쓰레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집이 부자인 송주가 아니라 부성애에 이끌려 미란을 선택했다는 생각에 연민이 들기도 했었지만 1985년 그날의 준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이 주신 자업자득이 아니었을까 싶다. 뭘 해도 망할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약자에게 쌍욕을 서슴없이 내뱉고, 자신이 실패한 일을 부인의 탓으로 돌린다. 단순하게 부자 아내가 아닌 평범한 아내를 선택했다는 이유 차원이 아니라 그냥 인생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준규의 자기연민은 갈수록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식게 만들었고, 결말 부분에서 나름 통쾌했다. 개인적으로 준규의 정떨어지는 행동을 볼 때마다 죽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공포 스트리머의 이야기와 편권도라는 무술을 개발한 노인의 이야기, 아빠를 잡아먹은 괴물을 찾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 미스터리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와 그녀를 지켜보는 남자의 이야기 등 지하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소설을 덮으면서 지하철에는 사랑도 있고, 괴물도 있고, 애국심도 있고, 그냥 인생만사가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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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의 근사치 오늘의 젊은 문학 6
김나현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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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 p.243

인공지능은 SF 소설의 단골 소재이다. 거기에 과연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인공지능과 인간이 친구가 되는 것부터 인간에게 동정을 느끼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들까지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늘 반신반의하지만 막상 아예 비현실적인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 내가 인공지능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SF 장르의 소설을 많이 봐서 그런 것인가 싶다.

이 책은 김나현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이 가장 끌렸던 소설이었다. SF 장르의 소설이라는 사실은 확인이 가능했지만 휴먼의 근사치라는 게 어떤 부분일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근사치를 따라와야 될 부분들은 많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감정, 전에 이야기를 했었던 도덕이나 윤리적인 차원,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경험들이 그렇다. 구체적으로 어떤 근사치를 원하는지 알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이다.

70일간의 기록적인 호우로 부모님을 잃은 한이소라는 여자 아이가 있다. 비로 건물이 잠기는 중에 고립된 이소네 가족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구조를 기다린다. 구명 보트가 와서 배를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소의 부모님께서 도와주기를 원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이소를 데리고 가는 조건으로 가겠다고 했다. 구명 보트의 구조원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고, 고민하다가 이소에게 열흘 뒤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구명 보트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더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이소는 보호소로 옮겨지게 되고, 거기에서 지옥의 날을 보낸다.

보호소에서 동급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지만 그를 돕는 이연이라는 상담 선생님이 그나마 큰 위안이다. 시간이 흘러 보호소를 퇴소한 이후 영상을 복원하는 태거 하우스에서 태거로 근무하게 된다. 그곳에서도 그렇게 좋은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친구인 루다와 상사인 구현우 실장으로 직장생활을 해나간다. 이소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이드라는 로봇이 이소의 태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했고, 막막함에 빠진다. 그 와중에 이드와 관련된 사건을 겪게 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보통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적대시되는 이야기를 많이 봐왔는데 인간을 위한 인공지능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공지능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돕는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애초에 인공지능이 움직이는 목적이 선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던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SF 장르의 소설을 더욱 읽다 보면 선한 인공지능을 많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역시도 이드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인간의 욕심과 권력 때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이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행동한다. 비록, 피가 흐르지 않기에 누구보다 몸은 차가울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한이소의 부모님께서 만든 이드가 그랬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했고, 인간이라고 불리는 로봇 앞에서 차마 죽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극히 이성적인 인공지능이나 로봇이었다면 감정 하나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에 비해 인간은 자신들의 죄를 덮기에 급급했으며, 방해하는 자를 찾아가 응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인공지능이라고 불리는 인간이 아닌 물체들과 인간의 근사치는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과 비슷하게 코드값을 입력한다면 적어도 인간과 비슷하거나 적어도 그 이상이지 않을까. 소설에 등장한 휴먼의 근사치는 선함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 이드의 코드값은 "자신의 선한 가치를 증명하면서 살아간다."였다. 또한, 주인공을 지키는 이드 또한 그를 지키는 게 코드값이었다. 이드가 더 인간과 가깝다는 것은 참 씁쓸한 아이러니이다.

그동안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지만 유독 이 소설은 유독 깊게 와닿았던 책이다. 인간 역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서 살아가지만 선한 가치를 증명하면서 살아가는 이드를 보면서 나의 가치에 대해, 나의 선함에 대해 조금은 깊게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모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불안보다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던 따뜻한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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