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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 소외된 노동계급의 목소리에서 정치를 상상하기
제니퍼 M. 실바 지음, 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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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어딘가에서 그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 p.55
주변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나마 살고 있는 지역 자체가 정치색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사실 큰 트러블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동년배의 친구들과 정치 성향 자체도 잘 맞는 편이어서 정치 이야기가 크게 장애물이 되었던 적도 없다. 그러나 인터넷을 보면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정치색을 띌 수는 없겠지만 양극단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새롭다.
이 책은 제니퍼 M. 실바의 사회학 도서이다. 소외 노동자와 정치를 다룬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이 맥락이기 때문에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책은 소외 노동자의 정치 무관심, 보수성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반에는 저자가 인터뷰한 노동계급이 거주하는 도시인 콜브룩이라는 도시와 소외 노동자들에 관한 설명을 해 주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백인 남성, 백인 여성, 아프리카계를 비롯한 다른 인종의 남성, 다른 인종의 여성 등 성별 및 인종별로 정치에 대한 생각이 제시되어 있는데 참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부분이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고 느껴졌다.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각자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또한, 부모님과 자신이 민주당원임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고, 아예 선거 투표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치에 대한 결과는 똑같지만 그들이 그런 노선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달랐다. 그 지점을 읽으면서 참 인상 깊게 남았다.
백인 남성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자신의 명예를 다시 되돌려받기를 원했다. 심지어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생이 자신보다 시급이 높다거나 일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보조를 받는 사람들,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자신들을 대우해 주지 않는 정부에게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백인 여성의 경우에는 약물이나 알코올 등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았다. 청소년 시기에 결혼해 아이를 낳지만 결국 이혼한다.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같은 여성인 힐러리 대선 후보를 믿지 못한다. 오히려 백인 남성을 두둔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인종의 남성은 사회적인 차별에 맞서게 된다. 특히, 백인들로부터 경멸적인 언행을 듣게 되거나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었다. 백인 남성은 콜브룩이라는 도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비교적 콜브룩에 만족하는 모습도 보인다. 정부의 정책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인종의 여성은 더욱 그 부분이 크다. 또한, 백인 여성의 경우처럼 여성보다는 남성을 더욱 신뢰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부류를 막론하고 정치적 무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무기력하게 살고 있지 않았다. 복지의 딜레마인 복지 포퓰리즘의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학위를 받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자 했다. 국가의 정책을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푸드 스탬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누구보다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백인 남성 인터뷰에서 국가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부류에게 들어가는 정책을 끊어야 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떠올랐다. 이주민에 대한 정책에 부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국민들을 말이다. 아마 그 인터뷰를 하던 이들의 생각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복지를 전공해 관련 직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의견을 들을 때마다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의 주류 국민으로서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그들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답답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문 중 하나가 '왜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노조 파업 보도를 보면서 독재 정치로 돌아가 저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매번 대통령과 국회의원 투표 결과에서 드러나듯 생활 소득이 낮은 국민들이 오히려 보수 성향으로 몰리는 이유가 참 궁금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미국과 한국은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외된 노동 계급의 정치 성향에 대해 더욱 전문적인 도서를 읽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이론이나 논문 등의 내용보다는 미국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각 부류의 입장과 가정사를 취재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와닿았지만 미국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일이 조금 힘들기도 했었다. 이들이 가진 정치적 무관심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대한민국의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정부는 다양한 부류의 인간을 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각자의 의견을 모두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신뢰를 가져야 할 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정작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는 없었을 테니 아마도 그게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뭔가 현실적으로 사회의 단면을 보았던 느낌을 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