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온 탐정
이동원 지음 / 스윙테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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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같은 세계에 있습니다. / p.328

무신론자에 가까운 편이어서 그런지 천국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의 존재를 신뢰하는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마음 기댈 곳이 없다면 그들처럼 천국을 비롯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래 성격 자체가 현실주의적인 면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을 깊이 고민한 적은 없었다.

이 책은 이동원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표지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집 모양의 표지인데 지금까지 그런 표지들의 소설에서 나름 큰 위안을 얻었다. 이제 보기만 해도 평온을 느낄 정도여서 관심이 갔다. 거기에 신학대학을 포기한 경찰과 법의학관을 포기한 목사의 조합이 조금 신선하면서도 생소했다. 둘의 시너지가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성요한이라는 형사와 유진신이라는 목사이다. 성요한은 경찰서 근처에 있는 카페의 커피를 좋아한다. 또한, 자신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주인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어느 날, 성요한 머리에 있는 상처를 보고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주인을 경계한다. 그리고 그 주인이 목사인 유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을 믿지 않게 된 성요한은 유진신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자꾸 다가오는 유진신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공조 수사를 한다.

교회에서 간증을 했던 노인 자살 사건으로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의심이 가는 인물 한 명을 예의 주시한다. 그러나 그는 미꾸라지처럼 여기저기 빠져나가기 바빴으며, 다른 인물을 범죄에 빠트리는 등 악독한 모습을 보인다. 거대한 악에 맞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들과 함께 펼쳐지는 각자의 개인사까지 밝혀진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종교에 대한 시각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 성요한은 개신교 자체에 큰 혐오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 기도원에 계셨고, 과거 신학대학을 다녔음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종교와 관련되었겠지만 그의 사상은 반대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신이 깨달음을 주셨다는 유진신의 말을 들을 때마다 성요한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도 성요한의 마음이 조금 더 와닿았다. 그러나 종교와 경찰의 공통점을 말하는 내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기도 했었다. 이를 비교하는 내용들이 자주 등장해서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타인을 향한 마음이었다. 이는 노인 자살 사건과 청년 실종 사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두 피해자의 공통점은 자신보다 다른 이들을 챙겼다는 것이다. 특히, 노인 자살 사건의 피해자는 한 청년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했었고, 청년 실종 사건의 피해자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경찰 시험을 포기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선한 마음을 지닌 그들의 이야기가 깊이 와닿았다. 어느 면에서는 어두운 세력들의 조소가 떠올랐다. 피해자들의 선과 어두운 세력의 악이 더욱 대비가 되었던 점도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성요한에게 유진신이 한 말이었다. 사실 잘하고 있다는 내용을 가진 말이었지만 그게 참 위안으로 느껴졌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나쁜 세력을 처단하고자 하는 성요한은 정의로운 인물이었으며, 유진신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두 사람의 시너지가 마치 천국에서 온 커피처럼 큰 여운을 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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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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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자면 아주 무섭도록 자기 삶 속으로 포섭된 고독이었다. / p.13

크리스마스에 대한 큰 생각이 없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산타클로스의 정체를 상상한 적이 없으며, 선물에 대한 기대감도 없었다. 다른 이의 생일에 크게 즐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할 때부터는 그저 일을 쉴 수 있는 빨간 날이라는 생각에 그것도 큰 선물이라는 생각만 했었다. 어떻게 보면 순수함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김금희 작가님의 연작 소설이다. 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없었는데 꽤 오래 전부터 계획에 넣은 책이었다. 아마 발간 소식을 서점으로 보게 되면서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우연히 출판사에서 특별 에디션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입해 책장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되자마자 꺼내들게 되었다.

소설은 총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그러나 특정한 화자가 정해져 있는 것보다는 한 편의 소설에 등장한 인물 중 한 명의 새로운 이야기가 다음 소설에 이어진다. 인물은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이 이야기에 새로 등장하기도 한다. 주변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과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이야기들이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일곱 편의 소설 중 <은하의 밤>,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라는 두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은하의 밤>은 은하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은하는 예능 작가로 일하던 중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는다. 그동안 기도를 하면서 보냈고, 다른 이들에게는 갑상선암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항암이 끝난 이후 복귀한 회사에서 보도국의 오태만이라는 아나운서를 만난다. 보도국의 축소로 인사이동을 받은 직원이었다. 그는 쿠바에서 죽을 고비를 건넜을 때 만난 마차의 기억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내용보다는 은하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크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이 젊은 나이에 비슷한 암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또한, 이야기 중 이지민 PD는 은하의 질환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가정사를 말하기도 한다. 그 부분은 참 공감이 될 정도로 와닿았다. 또한, 오태만이 쿠바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등장했던 마차가 조금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역시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은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당신의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는 강아지를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내용 자체는 참 단순하다. 오래 기르던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후로 화자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연락한다. 그게 친한 인물에 한정되지 않고 오랜 기간 연락이 끊긴 인물에게도 강아지를 보고 싶다면서 만남을 제안했는데 당황했을 법도 했지만 제안을 받은 인물들은 하나같이 수락한다. 그러면서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인간애가 많이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사실 나의 입장으로 상상해 본다면 조금 당황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우는 편인데 기억에 잊혀진 인물이 카카오톡으로 나의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한다면 조금 의심하게 될 듯하다. 혹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화자는 강아지를 보면서, 또 만났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강아지에 대한 상실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기에 작품에서 느껴지는 세심하고도 따뜻한 느낌을 초반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씩 감성이 스며들었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에게 손을 내미는 느꼈던 호의나 관심, 인간 사이의 애정 등을 가감없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부분이 참 좋았다. 크리스마스까지 아꼈던 스스로를 칭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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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 소외된 노동계급의 목소리에서 정치를 상상하기
제니퍼 M. 실바 지음, 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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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어딘가에서 그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 p.55

주변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나마 살고 있는 지역 자체가 정치색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사실 큰 트러블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동년배의 친구들과 정치 성향 자체도 잘 맞는 편이어서 정치 이야기가 크게 장애물이 되었던 적도 없다. 그러나 인터넷을 보면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정치색을 띌 수는 없겠지만 양극단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새롭다.

이 책은 제니퍼 M. 실바의 사회학 도서이다. 소외 노동자와 정치를 다룬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이 맥락이기 때문에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책은 소외 노동자의 정치 무관심, 보수성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반에는 저자가 인터뷰한 노동계급이 거주하는 도시인 콜브룩이라는 도시와 소외 노동자들에 관한 설명을 해 주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백인 남성, 백인 여성, 아프리카계를 비롯한 다른 인종의 남성, 다른 인종의 여성 등 성별 및 인종별로 정치에 대한 생각이 제시되어 있는데 참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부분이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고 느껴졌다.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각자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또한, 부모님과 자신이 민주당원임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고, 아예 선거 투표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치에 대한 결과는 똑같지만 그들이 그런 노선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달랐다. 그 지점을 읽으면서 참 인상 깊게 남았다.

백인 남성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자신의 명예를 다시 되돌려받기를 원했다. 심지어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생이 자신보다 시급이 높다거나 일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보조를 받는 사람들,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자신들을 대우해 주지 않는 정부에게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백인 여성의 경우에는 약물이나 알코올 등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았다. 청소년 시기에 결혼해 아이를 낳지만 결국 이혼한다.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같은 여성인 힐러리 대선 후보를 믿지 못한다. 오히려 백인 남성을 두둔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인종의 남성은 사회적인 차별에 맞서게 된다. 특히, 백인들로부터 경멸적인 언행을 듣게 되거나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었다. 백인 남성은 콜브룩이라는 도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비교적 콜브룩에 만족하는 모습도 보인다. 정부의 정책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인종의 여성은 더욱 그 부분이 크다. 또한, 백인 여성의 경우처럼 여성보다는 남성을 더욱 신뢰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부류를 막론하고 정치적 무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무기력하게 살고 있지 않았다. 복지의 딜레마인 복지 포퓰리즘의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학위를 받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자 했다. 국가의 정책을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푸드 스탬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누구보다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백인 남성 인터뷰에서 국가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부류에게 들어가는 정책을 끊어야 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떠올랐다. 이주민에 대한 정책에 부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국민들을 말이다. 아마 그 인터뷰를 하던 이들의 생각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복지를 전공해 관련 직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의견을 들을 때마다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의 주류 국민으로서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그들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답답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문 중 하나가 '왜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노조 파업 보도를 보면서 독재 정치로 돌아가 저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매번 대통령과 국회의원 투표 결과에서 드러나듯 생활 소득이 낮은 국민들이 오히려 보수 성향으로 몰리는 이유가 참 궁금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미국과 한국은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외된 노동 계급의 정치 성향에 대해 더욱 전문적인 도서를 읽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이론이나 논문 등의 내용보다는 미국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각 부류의 입장과 가정사를 취재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와닿았지만 미국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일이 조금 힘들기도 했었다. 이들이 가진 정치적 무관심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대한민국의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정부는 다양한 부류의 인간을 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각자의 의견을 모두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신뢰를 가져야 할 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정작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는 없었을 테니 아마도 그게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뭔가 현실적으로 사회의 단면을 보았던 느낌을 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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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껍질
최석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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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없는 이타심. / p.56

가지고 있던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음주 후 필름이 끊기거나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익숙하게 알고 있던 누군가를 잊는 경우는 없었다. 큰 사고 또는 트라우마, 질환으로 기억 상실이 있을 테지만 그 어느 누군가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최석규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 자체가 조금 생소했다. 마그리트의 껍질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호기심으로 고르게 된 책이다. 내용을 보니 인간의 악을 다루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기억을 잃는 주인공이 이를 파헤치려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소설의 주인공은 강규호라는 인물은 CCTV 보안 관련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병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저기 다쳐서 병원에 오게 되었지만 최근 이 년 정도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듣는다. 집에서 금고를 발견한다거나 자신의 뒤를 쫓는 수상한 남자 등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기억을 찾으면서 하나하나 전말이 밝혀지고 사실을 뒤쫓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규호가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주위에서 강규호를 노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특이한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설정만 본다면 강규호 자체는 되게 평범한 인물이다. 대리와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성실하게 업무에 집중하는 등의 모습이 그렇다. 그냥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에게서 독특함이라는 생각을 느꼈던 점은 성격에 있었다. 누가 봐도 화가 날 상황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면이다. 심지어 조폭의 습격 중에도 큰소리를 치는 대리와 달리 강규호는 시종일관 차분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이를 대응하려고 했다. 그 모습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런 강규호를 보면서 드라마의 한 인물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정적인 것보다는 이성적인 것이 더욱 낫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역시도 초반에는 프로페셔널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중반으로 흐를수록 강규호에 대한 생각은 독특함을 떠나 의문으로 남았다. 약간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너무 과하게 이성적이라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부터 강규호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을 뒤쫓는 남자를 잡을 때의 모습이었는데 나의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조금 다른 대응이었다. 사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면 용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서서 경찰에서 신고했을 법한데 몸으로 먼저 나가 목숨을 걸고 알아내려고 할 때에는 역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그리트의 껍질이라는 제목의 비밀과 강규호를 비롯한 등장인물의 비밀이 드러날 때에는 그동안 생각했던 누군가에 대한 논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으며, 악의 축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소설을 읽고 난 이후에도 그들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도 사회가 만든 하나의 괴물이지 않을까. 그 누군가 또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이 들었다.

마그리트의 껍질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주는 낯선 이미지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의 뜻이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가 난해하지 않으며, 문체 역시도 쉽게 읽혀졌다는 점에서 두 시간 내외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강규호의 의식을 흘러가는 전개로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추리 소설에서 느꼈던 긴장감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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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독서법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9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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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셀지도 모른다. / p.33

인터넷에서 MBTI의 마지막 J유형을 계획형이 아닌 통제형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운데 유형은 가끔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비교적 앞에 있는 I 유형과 가장 뒤에 있는 J유형은 변하지 않는 편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보통 J유형은 계획적으로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불리는 듯했지만 변수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계획을 하는 것이기에 상황을 통제하는 의미로 보아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예상 시나리오와 엇나가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게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 강박을 달고 살던 사람이 조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이는 한 청소년 소설을 읽은 것이 계기인데 주인공이 시간을 판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소재 자체도 참 흥미로웠는데 시간의 관점 자체를 색다르게 알려 주는 내용이어서 좋았다. 아마 청소년기에 읽었다면 시간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편하게 살았을 법도 한데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읽어서 그 부분이 아쉽다고 느낄 정도였다. 사실 지금도 시간 강박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혼자 계획하는 일만큼은 조금은 여유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많이 게으르다는 말까지 할 정도이니 많이 발전했다.

이 책은 김선영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렇게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 바로 김선영 작가님의 '시간을 파는 상점'이었다.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어머니의 말씀이 가장 인상적이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좋기도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계획적으로 살아왔던 나날에 띵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고 해서 더욱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며, 이 역시도 청소년 문학이기에 얇은 페이지 수이다. 약 백오십 페이지 정도여서 한 시간 반에 걸려 완독했다. 역시나 생각할 부분들이 많았기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바깥은 준비됐어>와 <나는 잘 지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바깥은 준비됐어>는 주인공이 중학교 때 멀어졌던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를 가면서 등교를 거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과 조금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유라는 중학교 때 친했지만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공주와 시녀라는 소문이 돌고, 주인공이 준 편지를 안 좋게 처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유라와 거리를 두고 멀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유라를 본 이후 어머니께 등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결국 주인공은 학교 근처를 배회하였고, 어머니는 친구인 상담사에게 주인공을 보낸다. 그곳에서 비둘기 알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이야기와 유라와의 관계 등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누구나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닌 간접적인 소문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이 살을 붙여서 돌아오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과거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크게 사람들의 소문에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오해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읽는 내내 그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껄끄러운 사이의 친구를 봐야 하므로 등교를 안 한다는 게 철이 없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당시 청소년이라면 충분히 가졌을 마음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사소한 비둘기 알 지키기로 조금이나마 주인공의 인식도 변화되는 부분은 더욱 좋았다.

두 번째 <나는 잘 지내>는 유럽으로 여행을 간 모녀의 이야기이다. 도전적인 딸과 조심스러운 엄마는 유럽 여행으로 떠난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일이 없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엄마는 언니를 잃은 경험이 있는데 언니 역시도 도전적인 성향이었기 때문에 딸이 더욱 걱정이 된다. 반대로 딸은 매사 방어적인 모습을 취하는 엄마가 답답하면서 간섭을 하는 듯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딸은 엄마의 언니인 이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

청소년 소설에서 어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게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물론, 모든 청소년 소설의 화자가 청소년은 아니지만 그것도 성인의 모녀 이야기가 화자인 경우는 처음 보는 듯했다. 그러나 가장 공감이 되었던 소설 중 하나인데 실제로도 딸이기 때문에 딸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기에 엄마의 입장도 수긍할 수 있었다. 특히, 사랑했던 언니를 떠나 보낸 입장에서 딸 역시도 그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게 충분히 느껴졌다. 아마 내내 노심초사하면서 딸을 지켜봤을 것이다. 소설에 등장한 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단단한 인물이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인 엄마를 걱정하는 이모를 생각했던 것만 봐도 그랬다.

그밖에도 이혼 위기에 놓인 부모님을 바라보는 한 학생의 난타 도전기, 도서부장의 신비한 능력에 관한 이야기, 모자의 중독에 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 역시도 하나하나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자가 하나같이 염세주의적이거나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는 아마 현실의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들을 무기력하게 두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좋았다. 난타와 책이라는 수단으로 조금씩 성취해가는 모습이 흐뭇했었다.

어른이 읽어도 마음을 관통하는 부분을 준다는 점에서 청소년 문학의 매력은 끝이 없다. 얇은 페이지가 야속하다고 느낄 정도로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김선영 작가님의 청소년 문학은 늘 우선순위로 놓고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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