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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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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 p.5
유토피아를 꿈꾸지는 않지만 살고 싶은 가상의 도시를 마음에 품고 산다. SF 소설에 나올 거대한 기계 도시라기보다는 뭔가 시골처럼 평화로운 도시에 가깝다. 그러나 시골이라고 해서 너무 야생의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도시를 하나로 표현하자면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 등장하는 북현리일 듯하다. 그런 풍경이 그려지는 도시에서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이 책은 위화의 장편 소설이다. 지금까지 위화라는 작가에 대해 크게 아는 정보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나의 소설 취향은 한국 작가의 현대 문학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연히 허삼관 매혈기라는 소설을 집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설 역시도 원작을 읽지는 못했다. 우연히 하정우 배우님의 영화로 이름만 들었을 뿐이다. 제대로 뭐 하나 알지도 못하는 소설 제목이 왜 눈에 들어온 것일까. 올해 중국 문학을 읽으면서 나름 취향에 맞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입문하자는 생각으로 최신작을 고르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린샹푸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 살던 린샹푸는 하룻밤을 묵기 위해 찾아온 아청과 샤오메이라는 이름의 남매를 만난다. 그들은 원청이라는 도시에 왔다고 했다. 사실 린샹푸가 내내 부부라고 의심을 했었던 것을 본다면 그렇게 닮지는 않은 듯하다. 남매 사이를 의심했던 것도 잠시 넓은 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린샹푸는 그들에게 방을 흔쾌히 내주었다. 아청은 경성에 있는 친척의 집에 가야 하니 샤오메이를 맡아 줄 것을 요청한다. 그 역시도 수락하면서 린샹푸와 샤오메이는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 아무래도 청춘남녀가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생겼고, 둘은 동침을 하기에 이른다. 샤오메이를 부인으로 맞이할 것을 맹세하면서 부모님의 묘에 간다거나 자신이 가진 금괴 등의 보물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렇게 둘만의 행복한 시간이 무르익을 때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금괴와 보물 일부를 가지고 떠난다.
애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린샹푸에게 다시 샤오메이가 찾아온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면서 말이다. 린샹푸는 분노했던 것도 잠시 결국 다시 샤오메이를 받아들인다. 물론, 도둑질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게 딸을 낳은 이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했다. 또 샤오메이가 사라졌다. 린샹푸는 딸을 데리고 샤오메이와 아청이 있는 원청이라는 도시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원청이라는 도시는 없었으며, 그 누구도 샤오메이와 아청을 모른다고 답한다. 그저 시진이라는 도시에서 그들이 가진 비슷한 말투를 구사한다는 증거로 이들이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게 샤오메이를 찾아 나섰던 린샹푸는 시진에 정착하게 된다.
생각보다 페이지가 꽤 많아서 걱정스러웠다. 거기에 중국 역사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 들었다. 사실 스토리 자체는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를 딱 한 줄로 표현하면 "원청이라는 도시를 찾아 나서는 린샹푸의 이야기."로 딱 떨어지기 때문이다. 찾아 나서는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스펙타클하거나 도전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어떤 대목에서는 우울하거나 비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린샹푸가 딸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시진의 여성들에게 동냥을 하러 다닐 때가 마음이 아팠다. 린샹푸의 인생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린샹푸를 보자마자 드라마 <도깨비>에서 조실부모 사고무탁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지은탁 대사가 떠올랐다. 그만큼 린샹푸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고 느껴졌다. 부모님을 잃은 것도 모자라 자신과 미래를 약속하던 아내가 돈을 들고 사라졌다. 그와중에 알고 있던 아내의 정보는 거짓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시진에서 딸과 함께 살아간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성실함과 기술, 인복이지 않을까 싶다.
읽는 내내 원청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대해 깊이 생각했었던 것 같다. 린샹푸에게는 시진이라고 불리는 원청의 의미는 무엇일까. 중국에는 없는 도시이지만 어떻게 보면 린샹푸에게는 제 2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과 딸을 받아 주는 천융량 가족이 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린샹푸를 도와 주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 부와 명성을 얻기도 했다. 적어도 린샹푸에게는 이 부분에서 전화위복이 되지 않았을까.
그밖에도 중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뭔가 답답함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라가 어지러운 시기에는 도적과 같은 사람들이 판을 치기 마련이다. 린샹푸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토비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온갖 비상식적인 일을 행한다. 그들의 행위들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시진의 사람들 역시도 구이민을 주도로 군대를 조직하지만 토비들은 이기적이고 난폭했다. 린샹푸와 천융량 등 시진의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토비라는 무리로 걷게 된다는 게 참 마음 아팠다.
긴 페이지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사실 역사를 다룬 소설들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누구보다 린샹푸의 운명이 가슴 아팠고, 토비들의 행동에 분노했으며, 샤오메이와 아청의 이기심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만큼 원청이라는 가상의 도시의 일원으로서 희노애락을 같이 나눈 느낌이었다. 그만큼 흥미롭고도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표현 능력의 한계를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체감했다. 좋은 작품을 표현하기에는 글솜씨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참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위화라는 작가의 입문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 참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원청이라는 도시를 마음에 품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