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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시호도 문구점
우에다 겐지 지음, 최주연 옮김 / 크래커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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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 p.18
평소 필기구에 그렇게까지 큰 관심이 없다. 교육에서 받았던 홍보용 볼펜으로 다 떨어질 때까지 사용할 정도로 도구를 가리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마음에 드는 볼펜이 생겨서 눈에 보이거나 손에 닿는 곳에 무조건 배치하는 중이다. 볼펜치고는 가격대가 조금 나가는 편인데 그래도 대략 대여섯 자루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하나가 사라졌는데 마음이 쓰린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책은 우에다 겐지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인 힐링 소재여서 더욱 돌아볼 것도 없이 선택한 책이다. 도서관, 서점, 음식점 등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치유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문구점 소재는 또 처음이어서 관심이 갔다. 특히, 학창시절에 비해 요즈음 시대에 문구점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은 긴자 시호도 문구점이라는 공간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는 할머니께 편지를 보내는 신입 사원, 두 번째는 어머니처럼 자신을 챙겨 주었던 사장님께 전하지 못할 말을 전달해야 하는 직원, 세상을 떠난 전 배우자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 되는 남편, 꽤 오랜 시간동안 짝사랑했던 이성에게 고백하고 싶은 학생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문구점을 방문해 물건을 구입한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공간과 문구점의 주인 겐, 주변 인물들만 이어질 뿐 스토리는 옴니버스의 형태로 흘러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바로 완독하고 싶었지만 쉴 때마다 틈틈히 읽다 보니 이틀 정도에 완독이 가능했다. 아마 쭉 이어서 읽는다면 두 시간에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양이었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쭉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등장하는 신입 사원의 이야기가 가장 큰 공감이 되었다. 신입 연수를 받고 첫 월급을 탄 주인공은 회사 동료의 소개로 긴자 시호도 문구점을 방문한다. 할머니께 전할 편지지를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겐은 이미 동료로부터 주인공의 방문 소식을 들은 상태이고, 반갑게 그리고 친절하게 맞이한다. 과거 할머니로부터 몽블랑 만년필을 받았던 기억을 겐과 주고받던 신입 사원은 우연히 쪽지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몇 년 전의 신입일 때의 생각이 떠올랐던 내용이었다. 당시에 첫 월급을 받아 할머니께 내복을 선물해드린 기억이 있는데 편지를 썼던 경험은 없었던 것 같다. 워낙에 무뚝뚝한 편이어서 마음을 표현하기 부끄러워했고, 지금까지도 말이나 글로 할머니께 감사함을 전달한 적이 없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 스토리를 읽으면서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밖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공감과 힐링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문구점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끌리기는 했지만 필기구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이야기 자체가 해답이 되었다. 잊고 있었던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움을 전해 준 소설이어서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힐링 소설의 매력을 다시 경험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