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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날아 차 - 작심삼일 다이어터에서 중년의 핵주먹으로!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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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여기 있지만 생각은 과거와 현재를 널뛰기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p.203
어렸을 때 하얀 도복에 띠를 매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동생과 태권도장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아버지께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과 나는 도복을 입고 체육관을 다니게 되었는데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흰색의 도복이 아닌 검정색 도복을 입었고, 손에 나무로 된 검이 쥐어졌다. 그곳은 태권도장이 아닌 검도장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자매를 검도장에 보내셨는지 이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검정 도복을 입었다는 사실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며, 칼 좀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비록, 학업에 집중하고자 일 년 정도 다니다 그만 두게 되었지만 검정색 띠까지 받았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신감과 자부심을 들게 하는 부분이다.
이 책은 고선규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작가님은 전에 자살 사별자의 인터뷰를 담은 책으로 접한 적이 있었다. 당시 조금은 낯선 자살 사별자를 알게 되었고, 주변에 있는 자살 사별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다. 사실 초반에 출판사의 소개로만 보았을 때에는 그저 임상 심리를 하시는 분의 태권도 도전기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고선규 작가님이었다는 책이 발간된 이후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어 즐겁게 읽었다.
저자는 친구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다. 태권도 하면 어린 학생들이 사회성과 인성을 키우기 위해 보내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태권도를 접하고 보니 매력이 넘치는 스포츠이며, 태권도를 배우면서 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태권도 에세이이기는 하지만 드문드문 저자의 유년 시절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다. 특히, 우량아로 태어났기에 신체와 다이어트에 관한 저자의 생각들이 나온다.
읽는 내내 공감을 하면서 읽었다. 나 역시도 4 kg이 넘는 우량아로 태어나서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이 그대로 활자로 옮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태권도에 대한 인식도 어린 아이들이 배우는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어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어린 시절에 비해 조금은 옅어졌지만 가끔은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으로서 이 부분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참 인상 깊게 남았다. 첫 번째는 태권도 겨루기에 대한 내용이다. 상대방과 겨루기를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다루었는데 태권도 기술을 활용해 멋있게 겨룰 것이라는 다짐과 달리 막 덤비는 개싸움이 되었고, 발가락에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겪은 일 자체도 뭔가 상상이 되었지만 그것보다 태권도 겨루기로부터 느꼈던 저자의 생각이 더욱 와닿았다. 겨룰 때에는 상대와의 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 관계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항상 머릿속으로 거리 유지를 생각했기에 큰 공감이 되었다.
두 번째는 원숭이 마음이라는 내용이다. 수련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저자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원숭이 마음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이 단어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 시끄러운 바깥의 소리에 더욱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저자처럼 ASMR을 듣는다거나 명상 매체를 보다가도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튀어오를 때가 꽤 많다. 아마 현대인들이라면 이런 부분에 공감하지 않을까.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으니 저자의 이야기에 웃게 되었고, 태권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열정과 위로를 동시에 주었다는 점에서 기대치만큼 충족이 되었으며, 가볍게 읽기에도 손색이 없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