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월드
야즈키 미치코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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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꼈을 가부장적 제도를 이 세계관에서는 어떻게 역전시켜 표현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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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사라진 세계
모리타 아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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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랑을 '시한부의 사랑'이라고 불렀다. / p.104

시간이 참 빠르다. 올해도 벌써 중반을 향해 흘러가고 오지 않을 것 같던 봄도 이제 마지막에 닿았다. 겨울에 입사했는데 그동안 벚꽃이 피고 지는 것도 보았고, 지금은 모내기 하는 풍경들을 매일 보고 있다. 이제 그 모습들도 사라질 것이고, 매미 소리가 가까워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모리타 아오의 장편소설이다. 표지가 참 강렬했다. 마치 종종 하는 게임의 일러스트를 보는 듯했는데 그래서 더욱 익숙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지금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어서 더욱 눈길이 가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곧 여름이 오겠지만 어떻게 보면 올해 봄이 사라질 텐데 적어도 2023 년이라는 시간적 내경에서는 봄이 사라지는 세계일 테니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키토라는 남자와 하루나라는 여자이다. 아키토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오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의 이상 증세를 느껴 병원을 방문했더니 심장에 종양이 생겨 일 년이라는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병원에 있는 날이 길어질수록 절망감에 빠져들어 죽음을 먼저 생각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퇴원하는 날에 우연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하루나를 보게 된다. 그림 그리는 게 삶의 낙이었던 아키토는 하루나에게 눈길이 갔고, 그대로 첫눈에 반했다.

하루나와 친해진 아키토에게 학교를 다니는 중에도 하교 후 병원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것도 자신의 진료가 아닌 하루나를 보기 위해서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하루나에게 꽃을 사서 병문안을 갔다. 거베라라는 꽃을 구매했는데 꽃의 색깔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심지어 갯수에 따라서도 또 의미가 다르다. 반년밖에 남지 않은 하루나를 위해 과거에 그녀와 절교했던 친구를 찾아가 부탁을 하는 등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읽으면서 구구절절 사랑 이야기가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두 사람이 청소년이기에 풋풋한 청춘 로맨스처럼 그려짐과 동시에 애달픈 러브 스토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든 이별이 어떻게든 끝이 있겠지만 두 사람은 이미 끝이 정해졌다는 사실이 더욱 그런 감정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두 사람의 끝이 같은 날이 아닌 한 사람은 공허하게 남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개인적으로 하루나보다는 아키토 입장에 대입해 상상력을 펼쳤던 것 같다. 크게 두 가지 지점을 상상했었는데 첫 번째는 반년 남은 하루나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문제이다. 아키토는 하루나가 원하는 것이라면 같이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자신 역시 환자이기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키는 일도 있었지만 최대한 들어주었다. 나라면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그동안 연인이 생기면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추억을 남기고자 노력했을 것 같다. 신체적인 문제를 감안해 모든 일들을 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쉬움이 들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하루나에게 나의 사실을 고백했을까에 대한 문제이다. 소설 속에서 아키토는 자신의 정보를 하루나에게 주는 것이 아닌 하루나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역할을 자처했던 것으로 보여졌다. 내가 하루나라면 이 지점에서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나라면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에 닿았다. 사실 아키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나름의 이유로 말을 아꼈던 것이겠지만 아마 나라면 애초에 하루나에게 다가갈 때 너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어필해 친구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흔한 클리셰와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공식에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읽는 내내 이야기에서 받았던 생각도 그와 비슷했다. 그러나 끝을 알고 시작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뭔가 짠하면서도 아픈 감정들을 많이 느꼈고, 감정이입이 꽤 잘 되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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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김도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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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올리니의 세계에 치치올리나가 있었다. / p.43

성향 자체가 낯선 사람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낯선 사람과 분위기의 호기심보다는 익숙한 사람과 환경에서의 편안함을 더욱 선호하는 사람이라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낯설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에 그렇게까지 반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은 낯선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조금 의문이 들 수 있기에 사람과 환경 한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김도훈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영화 잡지 기자 출신의 작가님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또한, 예전에 읽었던 영화 관련 서적에서 종종 접했던 이름이고, 또 문체가 뭔가 까칠하게 느껴져서 참 인상적으로 남았던 분이다. 그 지점이 부정적으로 거부감이 든다기보다는 오히려 솔직하고 시니컬하게 다가왔기에 좋게 기억이 된다.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읽게 되었다.

책에는 총 스물여섯 명의 인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누군가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잊혀진 사람이며, 또 누군가는 세상에 경종을 울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주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만 과오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와 함께 저자의 솔직한 의견들이 구성되어 있다.

읽으면서 낯선 사람이라는 제목이 강하게 와닿았다. 스물여섯 명이라는 많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딱 두 명 정도만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 명은 그마저도 어렴풋이 들었을 뿐 얼굴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매체로 종종 보았던 유리 겔러라는 초능력자만 낯익은 인물이었고, 린제이 로한은 지나가다 얼핏 이름만 들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모두 낯선 사람이다. 아마 저자의 성장하는 시기와 내 나이와 괴리감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전체적으로 모든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별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무언가 남겼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인원 하면 떠오르는 제인 구달과 비슷하게 고릴라와 함께했던 다이앤 포시, 고양이 배변 모래를 발명했던 에드워드 로, 왜소증 배우 보로코 시건 등 그동안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나름의 재미를 주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지점에서 다들 인상적이었지만 두 명을 추리자면 <치치올리나>와 <모나 헤이더>를 언급하고 싶다. 우선, <치치올리나>는 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이자 하원 국회의원을 지냈던 인물이다. 사실 이렇게 두 직업을 놓고 보면 괴리감을 넘어서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국민들의 인식 역시도 다른가 싶었다. 치치올리나는 진보적이며, 섹스라는 사회적 금기를 활용해 정치를 펼쳤다고 하는데 이 지점이 나름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후세인이 평화를 추구한다면 그와 성관계를 맺겠다는 공약을 했다는 것 자체는 조금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정치가 장난이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읽는 내내 나름 경외감까지 느꼈으며, 이 지점이 참 인상적으로 남았던 부분이다.

두 번째 인물인 <모나 헤이더>는 미국의 힙합 가수이다. 알고 있는 미국의 힙합 가수만 해도 손에 꼽힐 정도로 꽤 있는데 이 사람이 왜 인상적이었냐고 묻는다면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 사람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냥 힙합 가수가 아닌 자유를 노래한 가수인데, 그것도 히잡을 쓸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도 그렇게 여론이 좋지 않다. 또한, 히잡이라는 게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는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종종 이슬람교에서는 여성을 마치 물건처럼 취급한다거나 권리 자체를 무시하는 경우를 매체에서 들었기에 이 역시 이미지가 좋지는 않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도 자신의 종교를 존중받을 권리를 외쳤다는 게 인상적으로 남았다.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이는 깊이 생각할 지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여전히 시니컬하게 의견을 툭 던지는 문체가 참 인상적으로 남았다. 어느 지점에서는 개인적인 생각과 달라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공감이 되었다. 어디까지나 읽으면서 든 생각이지만 저자의 편견은 그저 백지가 아닐까 싶었다. 남녀노소를 떠나 어떤 하나의 지점에 편중되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모든 방향을 열어두고 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편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스스로의 무지한 편견을 반성하면서 조금 더 수용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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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게스트
김찬영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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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은 그런 모두에게 희망의 수도원이었다. / p.30

고등학교 때 개신교 미션스쿨을 다녔는데 천주교 봉사 동아리를 들어가면서부터 처음 성당을 갔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종교를 가진 동아리인 줄 모르고 그동안 좋아했던 봉사활동이라는 이름 하나로 가입을 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천주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토요일이 되면 성당에 가서 함께 미사를 드리거나 농촌 체험 활동 등의 다양한 봉사를 했었던 적이 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지만 수녀님과 신부님을 비롯해 교구 직원분들과 친해졌다.

그러다 보니 천주교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종교 중 하나이다. 지금은 비록 무신론자로 살고 있지만 나중에 정 의지할 곳이 없거나 정신적으로 신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천주교를 믿어야겠다고 막연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아마 죽을 때까지 종교를 믿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김찬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는 별로 없었는데 한 십 년 정도 사이에 천주교를 주제로 하는 매체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 같다. 강동원 배우님 주연의 퇴마 영화부터 시작해 수도복을 입고 등장하는 신부님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직업의 특성상 종교의 자선 활동으로 세워진 곳이 많다 보니 종교인들의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수도원의 이야기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제주도의 에덴 수도원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프란체스카를 비롯해 베드로, 라자로, 안토니오, 요셉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의 수도사와 강아지까지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어떤 긴 머리를 한 남자 영철이 찾아온다. 영철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해 죽음까지 생각하다 우연히 생긴 돈으로 제주도에 여행 온 사람이라고 했다. 늘 그렇듯 따뜻하게 영철을 맞이한 수도사들에게 영철은 로또 한 장을 내민다.

1,3,5,7,9,11 이라는 숫자가 적힌 천 원짜리 로또 한 장. 너무 정직하게 배열된 이 숫자를 오랜 세월 구입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당첨이 안 될 것 같은 번호였다. 그러나 로또가 육십 억 일등에 당첨이 되었다. 이를 본 수도사들은 욕망과 직업 정신 사이에서 큰 고민을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철이 사망한 채 발견된다. 거기에 영철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오수빈이라는 여자와 수빈을 쫓는 대부업자들까지 들이닥치면서 그야말로 에덴 수도원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다.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책이었다. 주제부터가 나름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품에 묘사된 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은 예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어떻게 보면 심각한 상황인데 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느낌이 강했다. 예를 들자면 영철이 죽음을 맞이한 것 자체가 수도원의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면서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수도사들의 엉뚱하고도 답답한 전개로 이를 너무 흥미롭게 끌고 간다. 분위기마저 다 잊었다. 전체적으로 모든 장면들이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수도사들이 가진 돈에 대한 욕망으로 전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정작 스토리는 조금 다른 결로 흘러가는 듯했다. 속세보다는 양심에 대한 문제로 말이다. 물론, 라자로가 로또를 숨기는 등 속물적인 태도를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수도사들은 직업 정신과 오해로부터 이를 벗어나기 위해 딜레마에 빠지는 내용이다. 생각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인간의 양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요셉이 금욕을 해야 하는 직업 정신과 수빈을 보면서 느꼈던 사랑의 감정 사이의 고민, 라자로가 속세의 상징과 같은 돈과 종교인으로서의 마음 등 전반적으로 인물들이 가졌던 생각들이 마치 독자들에게 말풍선처럼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은 그야말로 코미디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그런 지점에서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했고, 너무나 유쾌하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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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안전가옥 오리지널 24
민지형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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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은 곳. 여러분에게도 그런 곳이 있으신가요? / p.16

즐겨 보는 드라마에서 "망각은 신의 배려가 아닐까요?"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어렸을 때에는 기억력 좋은 것이 나름의 자랑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다른 이들에 비해 작은 것 하나까지도 기억해 노력 대비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꼈다. 보통 한 시간을 공부한다고 해도 적어도 주변 친구들에 비해 점수는 월등하게 잘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위권을 달리는 정도의 수재는 아니었지만 공부하는 것만 보면 하위권을 맴돌았을 텐데 중상위권까지는 그냥 올라갔다는 점에서 나름 기억력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부터 기억력 좋은 것이 비단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가으로 바뀌게 되었다. 특히, 업무를 하면서 실수를 한다거나 스스로 이불을 발로 차고 싶을 정도의 창피한 일을 했을 때 그 기억들이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냥 좋게 잊고 새로 시작해도 될 일을 계속 이를 곱씹으면서 생각하다 보니 어떠한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과거의 실수가 떠올라 주저하게 된다. 그때 본 저 대사가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망각 또한 신의 배려라고 한다면 제발 삼십 넘게 했던 나의 실수들도 모조리 망각의 자리에 넣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이 책은 민지형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오픈 릴레이션십이라는 주제로 친구들과 토론을 끝도 없이 하게 되었던 <나의 완벽한 남자 친구와 그의 연인>과 그동안 신레렐라라는 편견을 새롭게 깨게 해 주었던 <신데렐라 프로젝트> 등 트렌디한 주제의 작품을 집필하시는 작가님으로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다. 이번에 신작 소식을 접해서 나름 큰 기대를 하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재이라는 인물이다. 부잣집의 가사 도우미로 살아가는 재이는 라이프 랜드 스케이프라는 이름의 기계를 하나 알게 된다. 입이 크게 벌어질 정도로 고가인데 사람들의 기억을 저장해 이를 체험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일하고 있는 집에서 그 기기를 구입했는데 재이는 이 기기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던 중 사모님께서 남편을 살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사모님 역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기기가 원인이 되어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라이프 랜드 스케이프를 만든 리사는 재이를 찾아가게 되고, 재이는 본의 아니게 사건과 기기의 중심이 되었다.

그동안 읽었던 작가님의 작품과 다르게 장르의 냄새를 맡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기억을 주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라이프 랜드 스케이프로부터 과학과 기술의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SF 소설을 나름 자주 읽는 사람으로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고, 요즈음 기술 발전 속도로만 보더라도 곧 다가올 미래에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와닿는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단 한 가지의 생각이 관통했다. 이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한데 성범죄에 대한 부분이었다. 초반에는 라이프 랜드 스케이프와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이 리사의 아버지로 이동한다. 읽으면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이버 성범죄와 클럽과 관련된 성범죄의 기사가 결합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몰입도가 높았으며, 그 지점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먼 나라의 일은 아닌 듯했다. 이렇게 늘 사회적인 화두를 하나씩 던지는 작가님의 스타일처럼 이 작품에서는 성범죄가 크게 와닿았다.

아마 늘 그랬던 것처럼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나니 한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와 더불어 망각이라는 게 신의 배려이자 축복이겠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오랫동안 기억해야 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잔인함을 주는 기억이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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