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 재앙의 책
오다 마사쿠니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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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카하라 씨, 당신은 자신이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갑갑함을 느낀 점은 없습니까? / p.100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 문장에 온전히 공감했다면 최근 들어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당장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겨 주는 주변 인물들도 과연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악이라는 기준 자체가 워낙 모호하고 주관적이어서 이를 무 자르듯 쉽게 단정 지을 것은 아니다. 일부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은 있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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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를 생각하면서 선택한 책은 오다 마사쿠니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표지만 보면 취향과 거리가 먼 책이다. 많이 접하는 장르는 아니어서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화'를 다루어서 관심이 갔다. 살아가면서 무수히 겪게 될 화와 소설에 드러나는 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작품의 세계에 온전히 빠지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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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는 기괴하고도 환상적인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귀와 관련된 특이한 능력을 가진 남자와 먹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먹기 시작한 소설가, 갑자기 다른 취향의 몸매를 가진 여성에게 끌리는 남자, 머리카락을 신으로 모시는 신흥 종교, 전철에서 사람들을 전라 상태로 만드는 혼란의 바이러스까지 각 단편은 인간의 어느 부위 또는 관련이 되는 어느 부분을 주제로 펼쳐진 괴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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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따라 몰입도에 큰 차이를 보이는 작품집이었다. 머릿속으로 세계관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소설이 있었지만, 반대로 몇 번을 곱씹어도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소설도 있었다. 그럼에도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인 상황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흐름에 낯섦과 신선함을 동시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몽환적인 괴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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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부드러운 곳으로 돌아가다>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네 번째 실린 작품으로, 소설의 화자에게 아내 유키에의 마른 체형이 어느 순간부터 볼품없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회사에 출근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풍만한 체형의 여성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 여성 역시 화자에게 대담하게 손길을 건넨다.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현실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에 머릿속에 오래 남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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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책으로 바꾸어 보면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이든 분명히 무언가를 남긴다. 이 작품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과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폭력적이다. 특히, 언급했던 단편은 남성의 시선에서 쓰인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이야기다. 같은 여성이기에 느끼는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 또한 책이 주는 메시지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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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산 -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소설 부문 대상작
홍진희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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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지승 씨. 난 분명 경고했어요. 용악산에 가면 안 돼요. 잊지 말아요. 용악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면 안 된다고요.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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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년은 그야말로 드라마 천국이었다. <응답하라 1988> 겨울을, <태양의 후예가>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 드라마 팬이었던 입장에서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바보 상자를 그렇게 붙들고 살았다. 마침 취업 준비 기간이었는데 그때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고, 백수가 체질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잊지 못하는 드라마가 하나 더 있다. 아니, 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내용을 술술 알고 있는 그 드라마 역시도 2016 년에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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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시그널>을 연상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홍진희 작가님의 <야수의 산>이다. 언급한 것과 같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애초에 무서운 영상 매체를 보지 않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웰메이드 드라마로 알고 있다.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영상은 못 봐도 활자는 그래도 대범하게 볼 수 있다.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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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촘촘한 서사가 인상적이었는데 장르 소설의 특성상 서사의 빈 구멍이 보이면 조금 김이 빠지게 되는 편이다.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논리적으로 바퀴가 물리듯 딱 맞아 떨어져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긴장감이 휘몰아쳤다. 점심을 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몰입했다. 언급한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한 독자들이라면 무조건 만족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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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해인이라는 인물에 마음이 갔다. 해인은 아버지께서 실종이 되고 난 이후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기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15년 동안 잊지 못했던, 아니 계속 울리기만 기다렸던 아버지의 휴대 전화로부터 연락이 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놀란 것은 둘째치고 다시금 잃어버린 희망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딸의 입장이기에 해인의 간절함이 무엇보다 크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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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감질맛 나게 끝나버린 페이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다음 내용에서는 해인과 지승이 어떤 연결을 통해 용악산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게 될지 궁금해진다. 무더위로 지친 이 시기에 섬뜩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머지 이야기가 수록된 작품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독자로서 마무리 이야기를 얼른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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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 제13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작
이유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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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을 열고,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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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큰 걱정 중 하나는 장례식에 사람을 부르는 문제였다. 인간관계의 폭이 좁은 사람이어서 내가 죽으면 찾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가족상을 치르면서 부모상의 덕은 자식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정작 부친상을 지내면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친구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장례식이 그렇게 생각보다 외롭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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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라는 단어에 시선이 닿아 선택하게 된 책은 이유진 작가님의 에세이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죽음을 담은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멈추게 된다.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예소연 작가님의 <그 개와 혁명>, 아니에르노 작가님의 <남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딸의 입장에서 읽는 내내 많이 울었고, 그만큼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에세이는 오랜만이었는데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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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는 하반기 인사이동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가족이 있는 제주로 향하려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시신이 아버지임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배우자에게 설명하고 수원에 있는 한 병원 안치실로 발길을 돌렸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모습과 다른 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홀로 무빈소로 상을 치르고 유골함과 함께 제주에 도착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과거의 아픈 기억들과 현재 가족들의 에피소드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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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장르의 특성상 특별하게 이해가 필요한 부분은 없었다. 사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소재가 감정적으로 버거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오히려 담담한 문체로 써 내려간 이야기여서 크게 동요는 없었다. 가벼우면서도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읽으면 충분히 괜찮을 듯하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사적인 판단이지만 딸보다는 아들의 입장에 서 있는 독자에게 조금 더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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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연고'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의 '무연고'는 로또 종이 뒷면에 무연고로 처리해 달라는 아버지의 유서에 등장하는 단어다. 작가님께서는 가족의 이야기, 어머니와의 이야기, 더 나아가 직업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연고의 의미를 계속 되짚는다. 사실 그동안 매체에서 드문드문 보았던 그 단어가 이렇게 깊게 와닿을 줄 몰랐다. 잠시 머물러 내 아버지의 연고는 무엇이었을지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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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그리움과 슬픔, 일부의 재산 또는 채무까지 참 많은 것을 남긴다. 아버지 역시 가족이라고는 없지만 결국에는 이십 년을 돌아 아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가셨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삶과 작가님께서 지게 되었던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조차도 모르는 타인이지만 남겨진 사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공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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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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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에 판타지 한 스푼이 얹어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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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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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어.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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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관계가 좋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물음표가 뜬다. 보통 자매들과 다르게 조금 거리가 있는 사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친하기는 하지만 속을 내비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동생은 이것저것 고민을 아무렇지 않게 터놓지만 내가 그렇지 않다. 가끔은 친구가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성향이 정반대라는 것과 결혼 유무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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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중에서 선택하게 된 이 책은 전예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그동안 읽은 책을 떠올려 보니 자매가 등장하는 소설을 생각보다 적게 읽은 것 같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은 만화인 <자매의 책장>인데 그것도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울리는 작품이었을 뿐 혈육지간의 공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늘 믿고 읽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의 신작인 만큼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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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네 살 터울의 두 자매다.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신호로 서로 얼굴을 붙이면 입이 하나가 되어 뭐든 삼킬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었던 친구의 손가락을,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의 꼬리를 그렇게 먹어 치웠다. 자매는 먹고 난 이후 특정 증상을 경험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처음 보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성장한다. 할머니와 서로에 대한 감정, 그 능력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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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혔지만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은 괜찮았다. 오히려 이 지점은 괜찮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게 너무 어려웠다. 분명 인간인데 그들의 모습이 마치 괴물처럼 상상이 되었다. 그게 괴리감으로 다가왔는데 부족한 상상력이 한계처럼 다가온 듯하다. 일상에서의 판타지를 한 스푼 넣은 작품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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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유무(有無)의 기준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자매가 먹어 치우는 것은 대부분 살아 있는 무언가다. 그게 인간이나 동물의 한 부위일 수도, 생물 전체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과연 없어지는 것일까. 중후반부에 그들이 먹은 것에 대한 증상이 발현되면서 잔여물이 남았는데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것일까. 어디에서부터 뿌리가 나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다시 태어나게 했다면 그것은 먹은 것의 연장선인가, 새로 태어난 신생물인가.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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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었다. 분명 공통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겠지만, 나이와 성격,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두 사람의 거리는 어느 정도 평행선을 달리는 듯했다. 무언가를 먹어 치우는 능력이 없는 나와 동생의 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가상의 두 사람과 현실의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자매의 보이지 않는 선을 이들의 거리로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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