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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
성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꿈들을 보관했다 잃어버렸을까. / p.35
전체적으로 나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지만, 단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 바로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다. 태어나자마자 봤다고 해도 한 삼십 년은 넘게 살면서 거울을 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만큼 거울 보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외모 체크가 필요한 자리에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부분들을 점검하는 편이다. 어디에서든 거울을 들이민다면 그냥 대충 대답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해버린다. 이제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때가 된 것 같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루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이 작품은 성혜령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종종 앤솔로지 작품집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접했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소설이 바로 <원경>이었다. 그밖에도 올해 발간된 월급사실주의 앤솔로지 작품집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에 수록된 <퇴직금 돌려받기>라는 작품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단편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소설집이 기대되었다.
소설집에는 앞서 언급한 <원경>을 비롯해 총 여덟 작품이 수록되었다. 각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90년대에 태어난 인물들로, 삼십대에서 사십대 전후의 청년층이다. 갑자기 사라진 임장 모임의 구성원을 찾는 두 여자,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어머니와 살게 된 딸, 병상에 누운 환자의 씻을 수 없는 과거를 알게 된 간병인, 암 선고를 듣자마자 이별을 고했던 전 여자 친구에게 연락하는 남성 등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가장 크게 와닿았던 지점은 인물들과 사건에서 익숙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운석>처럼 쉽게 일어나기 힘든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장 몰입되었고, 인물들 하나하나에 공감하면서 읽었다. 세계관이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보다는 피부로 느껴지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대부호>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오빠가 산재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가족과 독립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홀로 계신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멀리 떨어진 시간만큼이나 어머니와 딸 사이의 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 중후반부에 정치 음모론 영상을 봤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겪는 일들이 마치 우리를 비치는 거울이었다. 누군가는 집안이 온통 쓰레기로 가득했고, 또 누군가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믿었고, 다른 누군가는 결혼 상대의 암 전력을 이유로 이별을 선언했다. 알고 본다면 그저 소설일 뿐이지만, 모르고 본다면 사실로도 착각할 수 있는 사건의 연속이다. 길거리에서 스치고 지나갔던 많은 이들의 이면이 거울에 비치듯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