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 혹은 멀의 세계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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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끔은 나도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어. / p.361

과거에는 허구로만 여기게 되었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현실이 되었을 때 놀라움을 느낀다. 가장 가깝게 이를 느꼈던 일은 영화 <HER>이었다. 2014 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에 그들의 사랑이 멀게 느껴졌는데, 그 영화의 배경이 2025 년이었다는 것을 듣고 실감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AI와의 애정을 다룬 매체들을 보면서 당황스러움을 느낀 것과 동시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근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에드워드 애슈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SF 장르를 크게 선호하지 않음에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와 흥미로웠던 소설을 뽑으라고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두 권 다 SF이다. 하나는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다른 하나가 <미키 7>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의 세계가 온전히 피부에 와닿았고, 영화를 보면서 그대로 소름이 돋았다. 그 <미키 7> 작가의 신작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멀 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이다. 그를 둘러싼 세계는 '휴머니스트' 반군과 '연방군' 사이의 전쟁으로 어지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멀은 인공지능 중에서도 자아를 가지고 있었고, 여러 물체에 들어가 인간들의 군상을 관찰했다. 그러다사이보그 여성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신세가 된다. 과연 멀은 인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요즈음 큰 이슈 중 하나인 인공지능을 소재로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현실감이 느껴졌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등장하는 이름이 너무 많다. 이미 멀로 알고 있는 주인공의 이름이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다른 인공지능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현실감 있는 SF 장르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멀의 특징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역할은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만나는 인물들을 이해하는 듯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공지능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중 상대 진영의 총에 맞아 쓰러진 이가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멀은 상처를 입은 부위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게 유머러스하면서도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점으로 강하게 와닿았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있는 날이 올까. 가상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는 불가능을 외치고 싶다. 멀이 제어할 수 없는 한계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멀과 인간 사이의 논리와 감성의 오류가 인간들 사이의 소통 오류와 겹쳐서 보였다. 물론, 인공지능은 언젠가 인간의 세계를 침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배당할 자의 거시적인 걱정보다는 우리가 경험하는 에러에 대한 미시적 물음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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