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류 -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
은모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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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양이든 온도든 언제나 적정한 정도를 취하라.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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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나의 눈물 버튼이 된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첫 회에서 삼천포가 신촌의 하숙집을 찾아오는 여정이다. 지하철 환승하는 방법을 몰라 '신촌행' 열차를 무작정 기다리고, 지하철 9번 출구를 찾아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린다. 심지어 시골 사람을 무시했던 택시기사는 삼천포에게 바가지까지 쓴다. '서울 이곳은'이라는 노래는 서글픔을 더했고, 서울에 살아본 적도 없는 촌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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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은모든 작가님의 에세이다. 불과 삼 년 전부터 '서울국제도서전'에 가기 위해 2박 3일로 서울 여행하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첫 해에는 광화문 근처를, 두 번째 해에는 여의도 근처를 다녔다. 올해에는 안양천 근처에 숙소를 잡고, 서대문 역사 투어를 했다. 아직 더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지방 사람으로서 도움을 받고 싶어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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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제목 그대로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풍류에 관한 이야기다. 익혀 먹어도,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 굴을 예찬하는 글, 요즈음 뜨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의 매화가 가장 풍성한 '청계천 하동매화거리' 등 서울의 맛, 서울의 멋, 서울의 흥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작가님이 서울에서 누린 경험담과 정보가 담겨 있다. 거기에 작가님과 주변 지인들의 진솔한 생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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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가님의 소설을 접한 적이 없는 독자로서 에세이를 이렇게 접한다는 게 나름의 걱정이었다. 에세이는 확실히 호불호가 있는 편이어서 작품을 읽기도 전에 편견을 가지게 될 것 같은 기우가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서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지방의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공감보다는 새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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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들어가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님께서는 소설 창작을 배우려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셨는데, 문장의 빈약함에 자책하는 대신 바깥에서 부지런히 경험하자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전하신다고 한다. 두 문장으로 줄이면 '잘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자. 계속하기 위해 잘 놀기도 하자.' 최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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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여전히 미지의 도시다.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더 많고, 다가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도 변함이 없다. 내 생애 서울에서 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여러모로 무섭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작가님의 이 에세이 하나면 앞으로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매년 서울을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쉬어 갈 큰 휴식처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그려 갈 서울의 풍류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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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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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몽은 이제 그 순간이 도래하는 걸 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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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역사 이야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욱 거리를 둔다. 정보가 부족해 그 처참함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글자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가 내 안으로 밀려드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막상 읽고 나면 여운을 경험할 때가 많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권력이 사람을 짓밟고 전쟁이 되풀이되던 역사가 신화처럼 아득해지는 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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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이 책은 조나탕 베르베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이름이 비슷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읽었던 <등장인물 연구 일지>라는 작품이 꽤나 인상적으로 남았다. 뭔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 신작 소식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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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시몽이다. 시계공인 아버지 테오와 함께 살아가던 시몽이 공화군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몽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고향은 폐허가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는 감옥에 갇혔으며,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시몽은 아버지를 죽였던 총독 카리에르에게 쳐들어갔지만, 스스로를 창녀라고 소개하는 여자로부터 묘한 제안을 듣고 복수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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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시기라는 낯선 시간적 배경과 많은 인물들의 등장, 벽돌에 가까운 600페이지의 무게 등 전반적인 특징만 놓고 본다면 부담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스토리의 몰입감이 그 부담을 상쇄할 만큼 컸다. 결론적으로는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낯선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정보가 없어도 충분히 완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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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악인 카리에르의 행보가 인상적이었다. 카리에르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시몽이 살고 있는 마을을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또한, 이익 앞에서는 무슨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시몽이 자신에게 복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움이 될 때까지는 두고 보았다가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가차 없이 버렸다. 그의 온갖 행동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어떤 인물보다 악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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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의 이야기에서 왜 기시감이 느껴졌을까. 과거 5.18민주화운동이 불현듯 떠올랐다. 권력을 위해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켰던 카리에르의 모습이 그날의 권력자와 고스란히 겹쳐 보였다. 아마도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현실감에서 비롯된 분노 때문일 것이다. 제목의 단두대가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진 소설은 처음이다. 역사는 여전히 반복되고, 지금도 흐르는 중이다. 권력이 사람을 짓밟는 일이 신화가 되는 날은 아직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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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의 삽목
마쓰시타 류노스케 지음, 마미영 옮김 / 반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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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에 두려워해야 할 건 없어. 단지 이해할 뿐이지.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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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작가를 꿈꾸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다. 국문학과 창작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아마추어일 뿐이라는 생각에 단념하게 된다. 물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게 언제 현실로 이루어질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읽는 일에만큼은 자신 있는 독자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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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를 독학으로 직접 독학으로 공부해 완성했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던 이 작품은 반타 출판사에서 발간된 마쓰시타 류노스케 작가의 장편소설 <1차원의 삽목>이다. 무엇보다 현직 엔지니어인 작가가 유전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완성한 작품이라는 것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그것도 MBA 유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썼다는 이야기가 같은 직장인으로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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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대학원에서 유전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하루카다. 어느 날, 히말라야 산중에서 발굴된 이백여 년 전의 백골 DNA 분석을 요청받는다. 그런데 그 백골에서 사라진 여동생의 DNA와 일치했다는 소견을 확인한다. 믿을 수 없는 결과뿐만 아니라 의뢰했던 교수마저 시체로 발견되는 등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주변의 만류에도 하루카는 사라진 여동생과 백골의 비밀을 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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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추리와 SF, 판타지가 조합된 스토리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히말라야 빙하 호수에서 발견된 다양한 연대의 유골 발굴 사건에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이 현실감을 더했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문고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출간 1년 만에 일본에서 65만 부가 팔렸다는 명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왜 '새로운 천재 작가의 등장'이라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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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초반의 설정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상식적으로 200여 년 전의 백골과 4년 전에 실종된 여동생의 DNA가 일치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두세 번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육체가 다를 텐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작품을 선택한 지점도 바로 소재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선이라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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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직장인보다는 작가로 남고 싶은 사람으로서 응원의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한두 장씩 넘기기 시작하면서 점점 작품에 대한 몰입으로 바뀌어 갔다.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권력과 욕망부터 가족과의 사랑과 의리에 이르기까지 지금 사회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오롯이 담겼다. 도파민 넘치는 전개를 즐길 수 있지만, 권력과 욕망, 가족애 같은 익숙한 주제를 이렇게 낯선 소재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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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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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건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마음속에 개와 늑대를 함께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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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열정. 그것은 어디로부터 나올까. 꽤 오랜 시간 아이돌을 좋아했거나, 지금처럼 책에 미쳐서 살아가고 있지만 완벽하게 빠졌다고 하기에는 의문이 들었다. 나름의 철칙이 있기 때문에 현실과 구분을 지어서 좋아했다. SNS에서 덕후들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열 가지 중 두세 가지 정도만 겨우 인정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치도록 파고드는 능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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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활자로 경험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이요하라 신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 세 권째 작품을 만난다. 처음에 읽었던 <달까지 3킬로미터>의 표제작에서 주인공의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준 택시기사의 한마디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이어서 읽은 <하늘을 건너는 교실>에서는 배제를 받았던 인물들이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신작도 비슷한 감정을 기대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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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집에는 총 다섯 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에 빠졌다. 지금은 사라진 미시마 토양을 찾는 남자, 도망치듯 내려온 시골에서 늑대 울음소리를 들은 여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서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간, 거북이를 지키고 있는 아이, 하늘에서 운석 파편을 발견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현실에서 만나면 괴짜 취급을 받을 법한 주인공들의 사연들을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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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전작에서도 경험했던 부분이지만, 과학적 지식을 풀어 설명해 주는 듯한 문체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과학적 상상력이 부족할 정도로 과학 지식이 얕은 편인데, 충분히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하게 읽었다. 물론, 하드 SF 장르를 기대한다면 오히려 심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SF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막막함을 느꼈던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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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늑대개 다이어리>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에 늑대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심지어 주인공은 주인집 강아지와 함께 늑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미 절멸된 늑대를 마주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항상 피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늑대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드는 생각에 많이 공감했다. 아마 현대인들이라면 충분히 이 지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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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사회학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 지질학과 생물학 등의 다양한 과학 분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읽는 내내 잊고 있었던 역사, 그리고 앞으로는 잊지 말아야 할 자연과의 공존 등 우리가 흔히 접했던 사회학에 조금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 두 학문은 동전과 같은 존재인 것일까. 아니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일까. 인간으로서 과학과 사회학을 조금 더 가까이 두어야만 하는 이유를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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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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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군가에 관해 상상하는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에.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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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쓰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많이 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직접 자신의 글을 쓰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는데,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쓰더라도 천번쯤 고민해 겨우 작성한다. 나 역시도 오랜 시간을 책과 함께 살았지만, 이렇게 글로써 표현하게 된 것은 이미 책을 손에 쥔 지 이십 년이 훨씬 지난 이후였다. 나의 이야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허구의 세계인 소설은 또 얼마나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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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글쓰기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김경욱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제목이었다. 도련님이 작가가 된 이유를 묻는 소설이라는 것에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님의 작품이었는데, 마침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 중 한 곳인 '문학동네'의 한국소설이다. 그러면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보통 새로 만나는 작품들은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시작한다. 긴장감보다는 호기심과 설렘이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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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총 여덟 작품이 수록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적인 소재도 있지만,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는 판타지 분위기의 소재도 있다. 전반적으로 소설 작가가 주인공이거나 작품을 집필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더라도 출판사에 근무하는 영업직 직원이 등장한다거나 국어 교사가 과거의 업이었던 인물 등 '글'이라는 테마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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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들이었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예스러운 편이다. 양귀자 작가님의 작품에서 읽었을 때의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90년대의 서울 사람 인터뷰를 활자로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죽은 단어들이 나오는 소설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난 이후에 속도가 붙었다. 곱씹게 되는 문체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문장의 맛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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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 사람만 데려갈 수 있다면>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혼자 살고 있는 남자 필호다. 벌레가 나온 족발을 버리러 가는 길에 운 없이 죽음을 당했다. 필호는 저승에 갈 때 한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들은 필호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이다. 나라면 누구를 택할지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어, 이 소설은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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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남을녀.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를 일컫는 말로, 평범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 문학평론가님의 해설에서도 드러나는 이 네 글자가 곧 단편소설집을 완벽하게 설명해 주는 단어다. 사실 작품들은 하나같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주변인이다. 과연 소설이라는 게 무엇일까. 단순하게 허구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보통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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